르포

장애인 가로막는 방역패스, 혹시 ‘약자패스’인가요?

이유진 기자

시각장애인 방역패스 시설 출입 동행기
장애인단체 “비장애인 눈높이에서 설계”

정부가 식당·카페 등에 적용하던 방역패스를 면적 3000㎡ 이상인 대형 매장에 확대 적용한 지 3일째 되던 지난 12일 경기 수원시 수원역 역내 롯데리아에서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가 QR코드 체크인을 시도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정부가 식당·카페 등에 적용하던 방역패스를 면적 3000㎡ 이상인 대형 매장에 확대 적용한 지 3일째 되던 지난 12일 경기 수원시 수원역 역내 롯데리아에서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가 QR코드 체크인을 시도하고 있다. 이유진 기자

QR체크인을 시도하는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 뒤로 ‘지금은 셀프계산대 전용 운영시간입니다’라고 쓰인 입간판과 키오스크 기계들이 보인다. 이유진 기자

QR체크인을 시도하는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 뒤로 ‘지금은 셀프계산대 전용 운영시간입니다’라고 쓰인 입간판과 키오스크 기계들이 보인다. 이유진 기자

“지금 되는 게 맞나요?” 지난 12일 롯데리아 경기 수원역점에서 전자출입명부 인증(QR체크인)을 시도하던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가 기자에게 물었다. 주변에는 시각장애인인 한 대표를 도와줄 직원이 보이지 않았고, 매장에는 ‘지금은 셀프계산대 전용 운영시간입니다’라고 적힌 입간판만 놓여 있었다. QR체크인 인증 기기 거치대가 기울어진 탓에 스마트폰 QR코드를 태블릿PC 화면에 비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15초 제한시간이 지나 QR체크인 애플리케이션(앱)이 번번이 꺼졌고, 그때마다 시각장애인용 음성변환 기능을 이용해 앱을 켜는 일을 반복했다. 5분간 공을 들여 성공했지만 ‘인증되었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은 매장 음악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한 대표는 “사람들이 기다릴지 모르니까 일단 (매장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했다.

이날 롯데리아 수원역점에서는 전자출입명부(QR체크인) 인증 기기 이용을 안내하는 직원을 찾기 힘들었다. 이유진 기자

이날 롯데리아 수원역점에서는 전자출입명부(QR체크인) 인증 기기 이용을 안내하는 직원을 찾기 힘들었다. 이유진 기자

발길을 돌려 인근 AK플라자 백화점으로 향했다. 출입문에는 ‘대규모 점포 방역패스 의무 적용 안내’ 문구와 함께 전화인증(안심콜) 연락처가 붙어 있었다. 한 대표는 “점자나 음성으로 번호를 안내하지 않는 한 시각장애인이 안심콜을 이용하긴 어렵다”고 했다. 열화상 카메라도 문제였다. 그가 “카메라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밀려드는 고객을 상대하던 백화점 직원은 “가까이 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자 한 대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방역패스도 그렇고. 디지털 기기나 앱을 쓸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잖아요. 시각장애인도 사회구성원이란 걸 정부조차 모르는 것 같아요.”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 매장 입구에 설치된 QR체크인 인증 기기들. 전화인증(안심콜) 이용안내가 붙어있지만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이유진 기자

AK플라자 백화점 수원점 매장 입구에 설치된 QR체크인 인증 기기들. 전화인증(안심콜) 이용안내가 붙어있지만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이유진 기자

열화상 카메라 역시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카메라의 위치를 찾기 어려울뿐 아니라 얼굴을 정확한 위치에 맞추기가 힘들었다. 체온 측정이 끝난 뒤 안내 음성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이유진 기자

열화상 카메라 역시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카메라의 위치를 찾기 어려울뿐 아니라 얼굴을 정확한 위치에 맞추기가 힘들었다. 체온 측정이 끝난 뒤 안내 음성도 잘 들리지 않았다. 이유진 기자

당일은 정부가 식당·카페 등에 적용해온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음성확인)를 면적 3000㎡ 이상인 대형 매장에 확대 적용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방역패스 시행 이후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등록장애인 263만3000여명 중 시각장애인은 9.6%인 25만2000여명에 달한다.

정부는 방역패스 이용이 어려운 장애인은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예방접종 스티커’를 발급받도록 안내했다. 하지만 대부분 시설에 QR체크인이 의무화되면서 매장들은 예방접종 스티커를 활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 대표는 “특히 비장애인과 외적으로 차이가 없는 저시력 장애인들이 힘들어 한다”며 “장애가 있는 줄 모르고 ‘시간을 끈다’며 욕을 하거나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일을 겪고 아예 외출을 포기한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다. 주민등록증 뒤에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은 ‘예방접종 스티커’를 붙였지만 “크게 쓸 일이 없다”고 했다. 이유진 기자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자다. 주민등록증 뒤에 주민센터에서 발급받은 ‘예방접종 스티커’를 붙였지만 “크게 쓸 일이 없다”고 했다. 이유진 기자

장애인단체들은 방역패스를 설계할 때 장애인들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이런 시행착오는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대표는 “화면 정중앙에 QR코드를 맞추는 게 아니라 기기 모서리를 맞대게 하거나, 예방접종 스티커에 교통카드처럼 전파식별(RFID) 기술을 적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심정섭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상담실장은 “QR인증 기기 대부분이 비장애인 눈높이에 배치돼 휠체어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있다”며 “방역패스를 시행함에 있어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대안도 함께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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