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남녀 갈라치는 역사적 중범죄…청년층 뭉쳐 싸워야”읽음

최민영 논설위원

장경섭 교수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인왕산로 초소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 교수는 한국 개발가족주의 속에 지배 엘리트 계층마저 공적 가치보다 가족을 앞세운다면서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용인한다. 죄의식이 없다”고 비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인왕산로 초소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 교수는 한국 개발가족주의 속에 지배 엘리트 계층마저 공적 가치보다 가족을 앞세운다면서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용인한다. 죄의식이 없다”고 비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한국의 경제사회질서를 가족자유주의(Familial Liberalism)로 이론화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현대 한국사회의 성격을 ‘압축적 근대성’으로 보고 이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데 힘써왔다. 즉, 한국의 압축 성장은 가족의존적 사회·경제체제를 기초로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론은 한국의 가족 및 그 재생산 위기를 설명하는 독창적 이론으로 평가받으며, 한국 및 동아시아 비교문화 연구의 중심으로 활용돼왔다. <가족, 생애, 정치경제: 압축적 근대성의 미시적 기초> 등 저서·논문이 있으며, <내일의 종언? 가족자유주의와 사회재생산 위기>로 지난해 ‘제2회 최재석 학술상’을 수상했다.

“노인이 투명인간 취급받는 것처럼 청년도 배제
이준석, 기득권 지키려고 젠더 갈등 부추겨

사회재생산 자원까지 싹 끌어다 경제발전 올인
사회, 가족, 개인 모두 존속 자체가 위협받아
청년세대에 결혼·출산이 부담스러운 게 당연

장경섭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N포세대’ 신조어를 낳은 2011년 경향신문 기획취재에 방향성을 제시한 학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출생률과 가장 높은 자살률 위기의 뿌리에 가족에 복지를 떠넘긴 개발주의 국가가 있다는 그의 ‘압축적 근대성’ 이론은 한국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충격에 대해 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인왕산로 초소책방에서 만난 그는 “시일야방성대곡(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울분을 표현한 논설)이라도 쓰고 싶을 정도”라며 빼곡하게 채워놓은 B5 크기 메모지 10여장을 슬링백에서 꺼냈다. “정치인들이 남녀를 갈라치는 역사의 중범죄를 짓고 있다”고 말문을 연 장 교수는 2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시종 비판과 개탄을 쏟아냈다.

-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 혼인율과 합계출산율 모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070년이 되면 한국의 인구가 3766만명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가족이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회간접자본이다. 국가가 경제성장을 앞세워 공백 상태로 방치하다시피 한 복지를 가족이 메워왔다. 동시에 가족은 개발주의에도 편승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자녀교육에 투자하고, 주택 투기도 보편화되다시피 했다. 개발주의하에 국가와 가족이 연합해서 도박성 짙은 ‘복불복’ 사회 재생산 체계를 만든 것이다. 가족에 가해지는 압력이 정말 크다. 이렇게 재생산에 필요한 자원까지 싹 다 끌어다 경제발전에 쏟아부으니 사회, 노동, 가족, 개인 모두 존속 자체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청년세대들에게 결혼과 출산이 부담스러운 게 당연하다.”

-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하면서 젠더갈등 이슈가 더 커지고 있다.

“일자리가 충분하고 21세기 사회 주체로서 청년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싸움 날 일이 없다. 그런데 한국에선 노인들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것 못지않게 청년들도 배제되어 있다. 청년세대는 생식기적인 차이 말고는 사실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는 중이다. 모든 문제를 만든 건 기성세대다. 청년층은 연합전선을 만들어서 기성세대와 투쟁해야 한다. 청년 조직화를 돕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런 남녀를 갈라친다. 매우 악질적인 선동이자 역사적으로 추잡한 중범죄다. 과거 영호남이나 색깔논쟁으로 권력을 나눠먹은 것처럼 이번에는 젠더갈등으로 정치기득권 유지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거다.”

1991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주부들이 ‘근검절약, 가정의례준칙 준수’ 등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선서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1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주부들이 ‘근검절약, 가정의례준칙 준수’ 등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선서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성가족부, 여성 이중삼중 착취 완화에 목적
하는 일 제대로 모르고 폐지론으로 희생양 삼아

한국 여성들 지연된 자유주의 근대화 겪는 중
남성들은 그런 맥락도 없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
사회심리 차원서 ‘이대남’도 여기서 기인한 듯”

- ‘여성가족부 폐지’가 국민의힘의 대선 공약인데.

“여성가족부가 하는 일도 제대로 모르고 희생양 삼자는 얘기다. 외환위기 구조조정 몸살을 앓던 2001년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출범한 여가부는 여성권익 향상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여성을 이중삼중으로 죽도록 착취하는 구조의 부작용을 줄이고 완충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부처 업무에 ‘국제결혼’이 있는데, 부족한 ‘복지젠더’를 외국인을 데려와서라도 메우자는 거다. 개발주의 가부장체제에서 여성을 더 효율적으로 굴리자는 것이다.”

- ‘복지젠더’가 무슨 뜻인가.

“여성들, 특히 서민 기혼 여성들이다. 21세기 들어서까지 바뀐 적 없는 ‘선 성장 후 분배’ 기조에서 경제개발에 뭐든 다 투입하려고 정부가 복지지출을 최소화하고 사회보장이 부족한 와중에 이를 메워왔다. 집안일 하고 애 키우면서 맞벌이도 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남성 가장의 고용지위가 불안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소득을 메우기 위해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게 보편화됐다. 일과 가정이라는 ‘이중근무’도 고생스러운데, 한국 남성들은 가사노동에 대해 만성적으로 비협조적이다. 여기에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는 노부모를 보살피는 ‘삼차근무’ 부담까지 더해졌다. 한국의 가족지원복지 제도나 재정지출 수준은 한국보다 낮은 경제발전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많은 노인과 아동, 장애인 등 부양보호 대상자들의 삶이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부양노동자로서 여성의 지위가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청년여성들이 결혼을 하려고 하겠나.”

구제금융 당시인 1998년 한 가족이 이웃과 친지들의 소식을 담은 가족신문을 돌려 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구제금융 당시인 1998년 한 가족이 이웃과 친지들의 소식을 담은 가족신문을 돌려 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8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생아실이 대부분 비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8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생아실이 대부분 비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10년 전에 비하면 페미니즘 움직임이 크고 뚜렷해졌다. 젊은 여성들은 자기 인생을 살겠다고 한다.

“한국 여성들은 ‘지연된 자유주의 근대화’를 겪는 중이다. 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개인주의다. 개인으로, 사회 주체로 성공하겠다는 이 같은 어젠다에 국가·사회 차원에서 가치가 부여됐다. 여성이 잘돼야 할 권리가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거다. 미시적으로 딸들은 엄마와 다른 삶을 살길 원한다. 남자 가장들이 산업전사로 추앙받을 때 여성들은 누구로부터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 딸들에게 엄마는 무명의 영웅(unsung hero)이다. 거시적으로는 청년세대로서 기성세대가 엉망으로 만들어 취업난에 빠진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이냐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여성이 취업 잘된다고 하지만 다 착시현상이다. 같은 서울대 박사여도 남성 취업이 여성보다 더 잘된다. 남자는 취업 수준이 아버지 세대를 밑도니 취업이 안 된다는 것이고, 여성은 예전보다는 나으니 잘된다고 하는 것이다.”

- 남성들은 그런 어젠다가 별로 없는 듯하다. ‘반페미니즘’은 주동적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반동의 성격이 더 강하다.

“남성들은 근대화 같은 맥락이 없다. ‘네가 잘되는 게 사회의 진화다’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나. 사회도 국가도 위로가 안 된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여성과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 스스로를 재수가 없는 세대로 여긴다. 취업난과 생활고를 부모의 지원 덕으로 견딜 수 있으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마저 안 되면 정말 살기 어렵다. 사회심리 차원에서 ‘이대남’도 여기서 기인한다. 이 지점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파고들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당권을 잡는 지렛대로 썼다.”

사회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게 업인 장 교수는 “북촌과 서촌 일대 카페에서 사람 보길 좋아한다”고 말했다. 약속 장소로 그가 택한 ‘초소책방’은 인왕산 중턱에 있다. 1968년 1·21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청와대 방호 목적으로 설치한 경찰초소를 2020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시대가 변하니 건물도 바뀐 셈이다. 반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어떤 사회현상은 뿌리가 깊어 바뀌지 않는다. 장 교수는 최근 정치인들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최근 ‘나라가 없으면 국민이 있겠냐’고 말했다. 듣는 귀를 의심했다. 조직을 위해 구성원이 있다는 건 전형적인 검찰 아비투스(특정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향이나 사고, 인지, 판단과 행동 체계)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각종 경제지표가 나아졌다며 자화자찬했다. 관료들에게 둘러싸인 탓에 국가주의 논리를 흡수한 것 아니겠느냐. 거시경제와 재벌은 코로나19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했지만 자영업자를 비롯한 일반 국민들의 삶은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더 어려워졌다. 국민들은 주류경제에서 배제되고 도태되고 있다.”

- 대선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흐르면서 국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민사회가 제거됐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였지만 명사들이 이끄는 ‘명사정당제’에 불과했다. 지배세력인 개발독재 군부나 보수엘리트인 한국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모두 시민의 이익과 가치를 대변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한민당 계열은 군부독재 투쟁을 통해 빠르게 정치귀족이 됐다. 제도 엘리트 형성은 태생적으로 제도기생적이고 자기봉사적이며 배타적인 명사집단에 의해 독점됐다. 전통시대와 차별성이 크지 않다.”

- 서민이 배제된귀족정치란 말인가.

“민주화 투쟁은 대학·지식인 중심으로 이뤄졌고, 정치적 자기선민화가 심했다. 중장년층 저학력의 서민계층이 이들 엘리트에게 느끼는 소외감과 거부감이 어마어마하다. 산동네 어귀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친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들더러 ‘재수없다’고 한다.”

- 미국에서 민주당 지지세력은 엘리트층, 공화당은 블루칼라 노동자로 갈리는 정치적 부족주의와 비슷한 현상인가.

“그렇다.”

- 코로나19 이후 서민들삶이 더 팍팍해졌다. 가계부채 문제는 경제뇌관이다.

“구조적 딜레마는 1997년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엔 부채는 기업이 지고 가계는 저축률이 높았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지나면서 반대로 됐다. 부채가 전이된 거다. 소득이 소진되고 경제활동 기회가 박탈되며 궁해진 가계가 빚내서 쓰다 터진 게 2002년 카드대란이다. 일시적이어야 할 신자유주의적 대책은 참여정부 들어 구조화되었다. 거시경제 지표는 향상되는데 일반 시민과 청년들의 삶은 힘들어졌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자영업자는 폭증했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금융지원으로 돕는다지만 대학 등록금 폭등은 방치하고, 부동산 투기는 방조하면서 서민들이 사회재생산재를 소비할 수 있도록 대출로 돕는 게 본질적으로 사회정책인가. 서민을 돕자는 건지 은행을 돕자는 건지 분간하기 어렵다.”

- 재벌기업으로의 경제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되는 추세다.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는 재벌이다. 법치질서의 핵심 중 하나가 사유재산 인정인데, 박정희 군부 시절에 경제개발을 위해 사회자원을 위탁받은 재벌들에게 그 부가 돌아갔다. 한국 재벌 부의 90%가 여기서 나왔다는 연구도 있다. 재벌이 수탁한 자산이 개인 소유로 공고화되는 탈법적인 과정을 전직 고관들 영입한 대형 로펌들이 도와주면서 한국의 새로운 지배연대를 형성했다. 범법이 만연하다보니 세대 승계 과정에서 LG그룹처럼 상속세만 제대로 내면 칭찬까지 받는다.”

- 지배 엘리트의 도덕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서민들은 ‘네 아들 공부 잘하냐?’를 인사말로 한다. 국가복지가 미뤄지니 자녀의 출세가 가족 생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산층이나 사회자원과 지위를 독점하는 엘리트층마저 공적인 사회가치보다 사적 차원의 가족을 앞세우니 문제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이 퇴직하면서 50억원을 수령한 사건이나, 오스템임플란트 공금 횡령 직원이 금괴를 가족들을 동원해 숨긴 사건 등은 엘리트들에게 이 같은 공적가치 실종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보여준다. 공적 자원의 악용을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 용인한다. 가치는 실종됐고 죄의식은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이나 윤석열 후보의 부인을 비롯해 가족 관련 검증이 정치적 논쟁으로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불가피하다.”

국가복지 공약이 2012년 대선 때 본격화됐다지만 시민에 대한 국가의 역할은 별반 확대되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에도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이 짐을 덜어주지 않는다면 가족은 정말 위기에 처한다는 게 장 교수의 진단이다.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면손수건으로 마스크 속 꺼칠한 수염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할 말을 다 하니 속이 후련합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정치인들, 남녀 갈라치는 역사적 중범죄…청년층 뭉쳐 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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