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중 찍힌 알몸영상 따로 옮긴 소방대원에 고작 '경고'

강은 기자
구조 중 찍힌 알몸영상 따로 옮긴 소방대원에 고작 '경고'

“부족한 부분 공부하려 저장”…교대할 동료에게도 보여줘
징계위 “유출은 아냐”…웨어러블캠 관리 규정 필요성 대두

구조 출동을 나간 한 소방대원이 알몸으로 누워 있던 구조대상자 모습이 담긴 웨어러블캠 영상을 개인 휴대전화에 무단으로 저장하고 동료에게도 보여준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소방대원은 소방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으나 경고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웨어러블캠은 구급대원 폭행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됐으나 현장 촬영물의 외부 유출 및 임의 편집 등에 대한 운영·관리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중부소방서 현장대응단 소속 구조대원 A씨는 지난해 8월 ‘B씨가 연락이 안 된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서울시내 한 공동주택으로 출동했다. 당시 A씨는 복식 사다리를 이용해 집 내부로 진입해 구조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던 B씨의 모습이 출동 장비인 웨어러블캠에 자동 저장됐다. 이후 A씨는 해당 영상을 본인 휴대전화로 옮겨 저장했고, 근무 교대 과정에서 다른 동료에게도 보여줬다. 이같은 사실은 소방공무원의 비위행위를 제보할 수 있는 익명게시판을 통해 알려졌다.

중부소방서는 이에 지난해 10월21일 징계위원회를 소집했으나 A씨에게 불문경고 조치만 내렸다. 불문경고는 공무원법에 규정된 감봉·견책 등 경징계보다 낮은 수위 처분이다. 징계위에 참여했던 소방서 한 관계자는 “영상이 삭제된 상태라 A씨 휴대전화와 웨어러블캠을 압수해 디지털포렌식을 두 번이나 진행했는데도 영상을 복원하지 못했다”며 “외부유출 정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역시 사안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본부 차원의 감찰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소방감사담당 관계자는 “소방위 이하 계급은 일선 소방서장이 1차 감찰조사 권한을 갖고 있다”면서 “기관장이 이미 처분내린 것을 본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징계위 회의록을 보면, A씨는 영상을 개인 휴대전화에 무단 저장하고 동료에게 보여준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를 돌려볼 의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구조현장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보고 공부하기 위해 영상을 저장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A씨는 “(구조대상자가) 베개를 끌어안고 있어서 (민감한 부분은) 다 가려져 있었다. 얼굴도 안 보였다”고 덧붙였다.

‘동료에게 보여줄 때 여성의 신체에 대해 언급한 적 없냐’는 질문에는 “시간이 지나서 그것까지는 기억을 못 하겠다. 인수인계 과정이었고, 직장 내부의 자세한 것까지는 말씀드릴 게 없다”고 했다. A씨는 최근 구조대원이 아닌 다른 업무로 인사조치됐다.

웨어러블캠은 소방대원이 화재진압·구급·구조 현장 출동 시 폭행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해 기록을 남기려는 목적으로 2014년 도입됐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웨어러블캠은) 소방대원이 불공정 시비에 휘말렸을 때 중요한 증빙자료가 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민감한 사생활이 담길 수 있는 이 영상들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의 경우 ‘웨어러블 폴리스캠 시스템 운영 규칙’을 둬 사용 범위·사용자 준수사항·보관 기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중부소방서는 경향신문 취재가 시작돼서야 뒤늦게 “우리도 정식으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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