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화면 절반이 수어 통역…'반짝이는 박수소리' 이어가려면읽음

박하얀 기자
지난 3일 KBS 뉴스9에 방영된 화면 갈무리. 앵커(왼쪽)와 수어 통역사가 수어로 ‘반짝이는’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3일 KBS 뉴스9에 방영된 화면 갈무리. 앵커(왼쪽)와 수어 통역사가 수어로 ‘반짝이는’을 나타내고 있다.

# ‘수어의 날’인 지난 3일 KBS <뉴스 9>이 끝나갈 무렵, 화면 오른쪽 하단의 작은 원형 안에 있던 수어통역사가 앵커와 같은 비중으로 화면에 비쳤다. “서로 조금씩 다른 모든 사람들이 수어로 다 같이 반짝이는 날을 기대하면서 오늘 9시 뉴스 마무리하겠습니다.” 앵커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언급하며 양손을 흔들어 보이는 등 수어로 뉴스를 끝맺었다. 방송 이후 “좋은 변화”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 같은 날 밤 열린 지상파 방송3사 주관 대선 후보 TV토론회. 여기에선 수어통역사 1명이 사회자와 후보 4명까지 ‘1인 5역’을 맡았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회를 수어통역사 2명이 1시간씩 나눠 맡긴 했지만, 이를 시청하는 농인(청각 장애인)으로서는 쉽게 알아듣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후보들 간 토론이 빠른 속도로 오가고 발언이 맞물린 데다, 통역사는 화면 오른쪽 하단에 작게 위치한 탓에 수어 사용자들은 어떤 후보가 발언하는지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한국 수어의 날 주간이 6일 막을 내렸다. 한국수화언어는 2016년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공용어로 인정받긴 했지만, 농인의 언어권이 충분히 보장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 3일 지상파 방송3사 주관으로 열린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 후보 4명과 사회자 1명이 출연한 가운데 동시에 말하는 경우가 잦았고 발언이 빠른 속도로 오가기도 했지만, 수어 통역사는 1명만 배치됐다. KBS 유튜브 갈무리

지난 3일 지상파 방송3사 주관으로 열린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 후보 4명과 사회자 1명이 출연한 가운데 동시에 말하는 경우가 잦았고 발언이 빠른 속도로 오가기도 했지만, 수어 통역사는 1명만 배치됐다. KBS 유튜브 갈무리

현재는 지상파 방송 3사가 저녁 종합 뉴스에 수어통역을 모두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3사가 모두 수어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9월부터였다. 이전까지는 방송법상 5%의 의무 편성 비율이 지정돼 있던 것이 전부여서 시청률이 낮은 시간대 등에 한정됐었다. 수어통역 방송은 장애 인권단체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인권위가 방송사에 시정을 권고한 끝에야 메인 뉴스 등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한정돼 있다. 손동작과 위치, 얼굴 표정 등이 중요한 수어에는 비좁기 그지없다. 국제농인연맹이 권장하는 생방송 수어 통역 화면 크기는 전체 화면의 3분의 1이다.

사법제도도 수어 사용자에게는 아직 넘기 힘든 벽이다. 대법원은 2020년 8월 ‘수어통역 등에 관한 예규’를 제정해 소송 관계인과 재판 방청인의 수어 통역을 국고로 부담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하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수요와 관계없이 수어 통역사는 1명만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재판이 한 시간 넘게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통역사 한 사람이 쉴 새 없이 원고·피고 대리인과 재판장의 발언을 통역해야 해 통역의 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규를 넘어 법률에 수어 관련 규정을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현행 한국수화언어법은 국가와 지자체의 수어통역 지원을 명시하면서도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 공공분야에 치우쳐 있다. 그만큼 농인들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지원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농인들은 공연 주최측이나 소속사 등 서비스 제공자에게 통역 서비스를 요청해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금융기관을 비대면으로 이용하거나 고용 상담기관, 병원 등에서 수어 통역 인력을 지원받기에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장애 인권단체들은 상주 통역사를 늘리고 ‘의사소통 바우처’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의사소통 바우처는 장애인이 일정 시간 수어나 문자 통역 지원을 정부·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는 “일상에서 (장애인들의) 다양한 활동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통역이 필요한데 지원이 가닿지 않고 있다”며 “수어통역 센터당 상주 통역사가 3명 정도에 그쳐 지원을 받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미애 수어통역사는 “수어 통역사를 정식으로 채용하는 국가기관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각 행정기관에 상주 통역사를 둬서 농인 등이 지역 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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