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과 2019년 10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3년 전 가수 겸 배우 설리, 최근 배구선수 김인혁씨와 BJ잼미사건의 사망 사건을 취재한 이유진 기자는 “혐오 장사는 언론과 포털에서 유튜브와 커뮤니티로 옮겨갔을 뿐 혐오로 버는 돈은 더 많아졌고, 이에 가담하는 사람들은 정의감에 차있다”고 말합니다. 플랫팀이 설리 사망 당시 1년치 기사 키워드를 분석한 2019년 기사를 다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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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기사’ 1년치 분석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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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배우 설리(25·본명 최진리)의 사망을 계기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퍼나르는 기사와 악성댓글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설리는 악성댓글과 루머로 인한 고통으로 2014년 활동을 한 차례 중단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한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은 15일 지난 1년 간 언론보도를 분석해, 설리의 사생활 기사와 악성댓글이 어떻게 재생산돼 왔는지 살펴봤다. 연예매체를 제외하고 중앙일간지, 경제지, 지역종합지, 방송사 등 54개 매체를 분석한 결과 지난 1년 간 설리와 관련한 기사는 1666건이었다. 기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로는 ‘악플’과 함께 ‘인스타그램’ 등 사생활과 관련한 단어가 꼽혔다.
분석대상을 온라인 연예매체 등까지 확대하자 관련 기사는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설리의 사망 전날인 10월13일을 기준으로 1년동안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검색된 연예인 설리 관련 기사는 1만3396건이었다. 네이버와 현재 검색제휴 및 콘텐츠제휴를 맺고 있는 언론사는 약 800여개다.
📌[플랫]설리, 가장 폭력적인 곳에서 가장 전투적으로 싸웠던
📌[플랫]'클린봇' 뒤에 숨은 포털, 빈틈에서 자라나는 차별주의자들
📌‘가품 착용’ 송지아 비판, ‘온라인 집단린치‘ 양상···외모비하·가족 신상털기까지
검색결과에 ‘노브라(브레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외출하는 행위)’를 포함하자 1370건의 기사가 검색됐다. 기사 10건 중 1건은 노브라를 언급한 셈이다. 평소 편한 옷차림을 즐긴 설리를 두고 일부 누리꾼은 ‘노브라’를 언급하며 지속적인 비난을 가해왔다.
15일까지도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설리의 ‘SNS 신체 노출사고’의 경우엔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28일 이후 3일간 관련기사가 234건이나 쏟아졌다. 언론사들은 사고를 ‘논란’이란 제목으로 포장해 그대로 전달했다. 그리고 이에 달린 악성댓글을 이용해 다시 기사를 생산했다. ‘이슈메이커 설리, SNS 방송 노출 논란→이틀째 갑론을박 ing’. ‘설리 방송노출논란, 3일째 시끌→설리 논란 또 한번 난리’, ‘설리, 라이브 노출 그후…아쉬움 남는 당당함’ 등 악성댓글을 그대로 전함과 동시에 설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기사 댓글란에는 또 다시 설리에 대한 모욕적인 비난 댓글이 달렸고, 높은 공감수를 얻어 상위에 랭크됐다.
전문가들은 언론이 악성댓글을 기사화시켜 사람들의 주목 끌고, 더 가학적인 댓글을 유도하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연예인의 SNS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악성댓글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것은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해 또 다른 악성댓글을 불러오는 동기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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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매체’ 빼도 1년간 1666건
최다언급은 ‘악플’과 ‘노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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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가 언급된 1666건의 기사를 빅카인즈가 제공하는 키워드 추출 시스템을 통해 분석했다. 설리를 필수검색어로 설정하고, 존 설리반, 설리 문타리 등 설리와 무관한 인물과 관련된 단어를 모두 제외했다. 빅카인즈는 1990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54개 매체가 제공한 뉴스 콘텐츠 약 6000만건을 검색할 수 있다. 연예·스포츠 매체는 포함되지 않는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관계자는 “빅카인즈 뉴스 분석에 스포츠·연예 매체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련 기사의 수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리가 사망하기 전날인 13일을 기준으로 지난 1년 간 기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악플’(2264회)이었다. 두 번째로 많은 단어 ‘인스타그램’(841회)보다 약 2.5배 이상 많이 언급된 것이다. 설리가 출연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진리상점’(765회), ‘SNS’(557회), ‘노브라’(538회) 등이 뒤를 이었다.
빅카인즈는 개별 기사에서 특정 키워드를 얼마나 비중있게 다루는가를 자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출력해 ‘가중치’라는 결과치로도 제공한다. 가중치가 가장 높은 키워드는 ‘인스타그램’(284.12)이었으며, ‘악플’(196.38), ‘SNS’(165.99), ‘노브라’(128.58), ‘JTBC2 악플’(126.12) 순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연예인과 비교했을 때도 악플이나 SNS를 언급한 기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설명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직접 발로 뛰어 확인해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닌 SNS를 뒤져 쉽게 기사를 생산하는 보도 관행이 엿보인다”며 “독창적인 기사를 쓰는 대신 클릭수를 유도하며 서로 경쟁적으로 베끼기만 하는 언론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와 더불어 저널리즘의 가치도 함께 떨어지고 있다”이라고 분석했다.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은 “연예인의 죽음을 두고 악성댓글 탓이라고만 하는 것은 악성댓글이란 편한 악마를 설정해두고 언론이 재생산해왔던 이미지와 여기에 부화뇌동해 폭력적 시선을 던진 대중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여성 연예인을 부위별로 성적대상화하고 성적으로 모욕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언론 역시 이런 시각에 편승하고, 이를 이용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악성댓글을 단 누리꾼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며 인터넷 실명제 부활 등을 요구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청원인은 설리의 사망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언급하며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악성댓글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으면 한다”라고 청원의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를 포함해 몇 가지 정책 변화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악성댓글과 이를 재생산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온라인 괴롭힘을 확대 재생산해 온 이른바 '사이버 렉카'들을 방치해 사태를 키운 주범으로 ‘유튜브’를 지목했다.
— 플랫 (@flatflat38) February 7, 2022
조장미씨(BJ잼미)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6일 유튜브에서도 과거 그를 대상으로 했던 루머를 다룬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https://t.co/RN1hhnLkm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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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yjleee@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