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 청소년, ‘신고사실 부모 통지’ 수사규칙에 “신고 포기”

박하얀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경찰이 지난해 1월 ‘성범죄 피해 아동·청소년의 신고 사실을 부모에게 통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존 수사규칙의 조항을 삭제한 탓에 피해 청소년들이 신고 자체를 포기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단법인 ‘탁틴내일’은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인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성범죄 피해 아동·청소년 최상의 이익을 고려하는 수사절차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단체는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개정으로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의 신고 사실을 보호자에게 통지하는 게 원칙으로 굳어져 신고 단계부터 막히는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며 “피해 아동·청소년의 권리 구제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행 피해를 당한 A양(17)은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보호자 통지’가 필수라는 사실을 알고 신고를 포기했다. A양은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고,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동조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그런 경험 때문에 이번에도 ‘부모가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신고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B양(17)도 지난해 성폭행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았지만 담당 수사관이 “부모님에게 통지한다”는 안내를 듣고 진술을 미뤘다고 했다. 경찰은 2~3주쯤 지나 보호자에게 통지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사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지만 부모를 대신할 신뢰관계인에게는 통지를 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B양은 결국 신고를 포기했다.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이 이처럼 경찰서까지 찾아갔다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은 지난해 1월 경찰청 범죄수사규칙(경찰청 훈령)이 개정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개정 전 범죄수사규칙은 ‘경찰관은 (수사진행상황) 통지가 수사 또는 재판에 지장을 주는 때, 피해자 또는 사건관계인의 명예와 권리를 부당히 침해하거나 피해자 또는 사건관계인에게 보복범죄나 2차 피해의 우려가 있는 때에는 통지하지 않을 수 있다’(제204조 4항)고 돼 있었다. 경찰은 이 조항 등을 근거로 보호자에 대한 통지 예외를 폭넓게 인정했다.

이 조항은 지난해 1월 범죄수사규칙 개정 때 빠졌다. 개정 범죄수사규칙은 ‘경찰관은 통지대상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본인과 법정대리인·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 또는 가족에게 통지해야 한다’(제13조 1항),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가해자 또는 피의자가 법정대리인 등인 경우에는 법정대리인 등에게 통지하지 않는다. 다만, 필요한 경우 미성년자의 동의를 얻어 그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통지할 수 있다’(제13조 2항)고 돼 있다.

경찰은 상위규정인 행정안전부령 경찰수사규칙에 법정대리인 통지 예외 규정이 담겨 있어 하위 규정인 경찰청 훈령에서는 예외조항을 삭제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찰청 훈령에서 예외조항을 삭제한 탓에 일선 경찰서에서 ‘통지 예외’를 적용하는 사례가 줄었다는 게 단체의 주장이다. 경찰청 훈령이 상위규정인 행정안전부령은 물론 형사소송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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