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확대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 위한 미래 투자”

최민영 논설위원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홍 이사장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며 “지하철 엘리베이터 확충과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 확대는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장애인 이동권 개선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홍 이사장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며 “지하철 엘리베이터 확충과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 확대는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직장생활 24년차 워킹맘(49)이다. 한국외국어대 영어과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딸(17)이 2006년 척추종양을 갖고 태어나 암투병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게 되자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2015년 협동조합 ‘무의’를 설립하고 국내 최초인 장애인을 위한 지하철 환승지도 제작을 주도했다. 장애가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길 바라며 비장애인들과 함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문화시설·여행을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건물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2018년 한국장애인인권상(인권실천 부문), 2021년 KT희망인나눔인상 등을 수상했다. 카카오 사회공헌재단인 ‘카카오임팩트’가 선정한 사회혁신가로도 활동 중이다.

고령화 시대 ‘배리어프리’는 당연…이젠 달라져야 할 때다
지하철 ‘1역사 1동선’으론 부족 ‘1역사 2동선’은 확보돼야
엘리베이터서 승강장까지 동선 복잡하고 안내판도 불편
장애인 콜택시 운행 범위 제각각이고 1~2시간 대기는 기본
그들을 소비자로 보지 않고 시혜 대상으로 봐 놓치는 시장
이동 수단 검색·확인에 시간 뺏겨…장애인 하루는 ‘16시간’
하드웨어는 조금씩 나아지는데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미흡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배우고, 일하고, 사랑하는 모든 경험은 이동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은 이동을 통해 타인 및 사회와 온전히 연결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을 묶어놓은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이동 능력은 현대사회의 필수자원이고, 이동할 수 있는 권리는 기본권으로 꼽힌다. 이 당연한 얘기가 120만명, 그러니까 광역시 인구에 맞먹는 국내 지체장애인에게는 아직도 먼 얘기다.

1984년 휠체어 이용 장애인 김순석씨가 ‘서울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유서를 쓰고 세상을 등졌지만, 서울시내 횡단보도 턱을 비롯한 보행불편 사례는 지난해에만 7만건이 넘는다.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 사건 이후 장애인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도로·철로를 점거하고서야 2005년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이 만들어졌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택시도 버스도 지하철도 타기 힘들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교통약자법 관련 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3개월째 지하철 출퇴근길 시위를 벌이는 이유다.

휠체어 장애인인 17세 딸을 둔 워킹맘이자 장애인 콘텐츠를 만드는 협동조합 ‘무의’의 이사장인 홍윤희씨를 만나 교통약자의 이동권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즉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교통약자에 맞게 대중교통과 환경을 만드는 것은 결국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라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요구에 더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진행했다.

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일반 이용객들 뒤편으로 밀려나 있다. 누리꾼 제공

한 지하철역 엘리베이터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일반 이용객들 뒤편으로 밀려나 있다. 누리꾼 제공

- ‘무의’는 2017년 장애인 지하철 환승지도로 첫발을 뗐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많이 늘었는데, 어떤 점에서 여전히 불편한 것인가.

“올해 4월 기준 서울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로 승강장까지 이동 가능한 ‘1역사 1동선’은 총 283개역 가운데 261개역으로 92% 수준이다. 서울시가 처음엔 2004년까지 100% 하겠다더니 2022년으로 미뤄졌고 이번에는 2024년으로 연기됐다. 장애인 같은 소수자들의 요구는 거리에 나설 때에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들이 오랜 시위 끝에 이뤄낸 변화다. 광화문역 엘리베이터도 처음엔 이런저런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걸 바꿔냈다. 점점 늘어나는 교통약자들이 안심하고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1역사 2동선’, 그러니까 지하철역 1개당 엘리베이터 동선 2개는 확보돼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날 경우엔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 탑승 우선순위를 놓고 노인과 장애인이 갈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엘리베이터가 부족해서 그렇다. 유아차를 끄는 부모도, 이동이 불편한 시민도 맘 놓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일전에 한 어르신이 전동휠체어 이용자를 새치기하고 막말까지 해서 크게 놀란 적이 있다. 내가 없으면 누가 내 딸을 위해 싸워줄까 싶어서 이동권 문제에 더 천착하게 됐다.”

2001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저상버스 확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전국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1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저상버스 확대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그 후 20년이 지났지만 전국 시내버스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역내 동선도 문제로 지적된다.

“2000년대 이후 개통한 지하철은 그나마 배리어프리로 설계돼 나은 편이다. 반면 이동권 개념이 없던 1970~90년대 개통된 지하철역은 엘리베이터를 나중에 추가하느라 동선이 복잡해졌다. 노원역의 4·7호선 환승 구간에서 휠체어 장애인은 역사 바깥까지 나가서 빙 돌아야 한다. 안내표지판을 일반인 눈높이로 설치해 장애인은 목을 한참 뒤로 꺾어야 겨우 보이는 경우도 있다.”

배리어프리 대중교통은 2019년 기준 수도권 인구 약 4분의 1에 달하는 장애인·고령자·임산부·어린이와 영유아 동반자 등 교통약자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고령자를 중심으로 교통약자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1역사 2동선 정책으로 전환이 필요하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못한 역사들은 사유지 매입 및 수직형 리프트 설치 등의 방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한 바 있다. 15인승 위주인 엘리베이터 바닥면적 규정도 늘어나는 교통약자와 다양해지는 개인 이동수단에 맞게 상향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신설 노선 엘리베이터는 50인승이 많다고 한다. 승강 환경도 개선이 필요하다. 승강장과 연단 간격이 10㎝를 넘거나 높이가 1.5㎝를 초과하는 경우 휠체어 이용자는 바퀴가 빠질까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고 한다. 이에 2019년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차별구제소송이 제기됐지만, 법원은 관련 규정이 없을 때 지어진 신촌·충무로 역사에는 소급적용이 안 된다고 판결했다.

- 해외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 어떤가.

“호주 시드니를 딸과 함께 여행했을 때다. 전철 플랫폼과 기차의 단차가 매우 컸는데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상주직원 2명이 이동식 램프를 들고와 목적지를 묻더라. 하차할 역에 전화해 우리가 탑승한 칸과 도착 예정시간을 알리며 대기를 지시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시드니는 부산과 비슷하게 산과 언덕이 많은 지형인데 휠체어로 접근이 가능하게 도시를 디자인해놨다. 부족한 부분은 사람이 나서서 돕고 메운다. 반면 한국을 방문하는 휠체어 외국인들은 이동이 불편해 여행 오기가 꺼려진다고 한다.”

-지하철 출퇴근 시위의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는 ‘특별교통수단’, 그러니까 장애인 콜택시 운영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장콜’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보조하는 형태다. 인천·서울·하남 등이 다 따로 별도의 명칭으로 운영되고, 운행 가능한 범위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택시에서 하차해 해당 지자체에 다시 신청하는 방식으로 환승해야 한다. 그나마 이용하려면 1~2시간 기다리는 게 기본이다. 실제 탑승자 기준으로만 작성되는 통계에는 대기시간이 1시간 미만으로 나오는데, 탑승을 포기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인도 학교, 병원 갈 때 택시를 탈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이들과 만날 약속을 하고 일정 잡는 게 매우 힘들다.”

2020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학생 및 학부모들이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무의가 만든 궁 소풍지도인 ‘궁 어디까지 가봤니’를 점검하려고 모였다.  협동조합 무의 제공

2020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왼쪽에서 두번째)을 비롯한 학생 및 학부모들이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무의가 만든 궁 소풍지도인 ‘궁 어디까지 가봤니’를 점검하려고 모였다. 협동조합 무의 제공

- 국토교통부가 2018년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표준조례를 만들었다는데 별 효과가 없나.

“비용을 줄여주는 것도 복지지만, 수단이나 공급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한 복지라고 본다. 후면이 개방된 뉴욕의 일반 옐로캡들이 그런 경우다. 휠체어가 탑승하지 않고 운행할 때에는 화물을 넉넉하게 실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콜택시도 휠체어가 못 들어가는 차종이 적지 않다. 장애인을 소비자로 보지 않고 시혜의 대상으로만 봐서 놓치고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더 내고 택시를 타고 싶어도 그럴 택시가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앙정부가 운영기준을 통일해 배리어프리 플랫폼을 구축하고 적정 차량대수를 산정해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 대중교통을 이동하려면 가능한 동선과 이동수단을 물색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다.

“그래서 비장애인의 하루는 24시간이지만, 장애인의 하루는 16시간이라고 말한다. 딸이 K팝을 좋아하는데 공연에 가려면 여러 번 검색과 확인을 해야 한다. 장애인용 휠체어석이 있는 공연장이더라도 기획사 결정에 따라 장애인석을 판매하지 않을 수도 있더라. 팬미팅 하는 카페도, 딸과 함께 가는 식당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해야 한다. 얼마 전 부산에서 관광열차를 탄 적 있는데, 수동경사로가 대부분의 전동휠체어 바퀴와 맞지 않는 형태였다. 하드웨어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부족하지 않나 싶다.”

홍 이사장은 “장애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예기치 못한 불행일 수는 있지만 그 불행이 약간 불편한 수준에서 끝나야지,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안경을 쓰면 시력 나쁜 사람도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처럼, 적정한 인프라가 갖춰진다면 장애는 무의미해진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집권 시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챙기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저상버스, 도입은 ‘느릿느릿’ 지역편차는 ‘들쭉날쭉’

2020년 기준 보급 달성치 28%뿐
도입 의무화 법 개정안 통과 불구
예산·적용 대상 등 갈 길은 멀어


[논설위원의 단도직입]“이동권 확대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 위한 미래 투자”

버스는 지하철과 더불어 보편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꼽힌다. 하지만 휠체어 이용자는 타기가 쉽지 않다. 저상버스가 많지 않아서다. 홍윤희 협동조합 무의 이사장은 “선진국의 경우 런던, 도쿄를 비롯한 대부분 도시의 버스는 교통약자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한국은 지금까지 그러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저상버스는 지면으로부터 높이가 34㎝를 넘지 않는 차량 바닥 면적이 전체의 35% 이상을 충족하고, 휠체어 승강설비가 있고, 교통약자용 좌석을 갖춘 버스를 이른다. 지난해 말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42%를 저상버스로 보급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었으나 2020년 기준 달성치는 28.4%에 그친다. 지역편차도 심해서 서울은 56.4%인 반면 충남은 10%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 파란색 간선버스에 집중돼 있다. 초록색 지선버스(마을버스)는 여전히 차고가 높은 버스가 대부분이다.

계단이 가파른 이런 버스는 건강한 성인도 이용하기가 편치 않다. 노인이나 어린 자녀를 동반할 땐 넘어져 다칠 수 있다. 저상버스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복합적이라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위한 개별적 이동수단에 대한 실태조사’(2019년)에서 분석한 바 있다. 저상버스는 일반버스보다 7000만원 이상 비싼데 태울 수 있는 승객은 기존 버스보다 적고, 운영이나 관리도 번거로워서 운수회사들이 도입을 꺼린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법 개정이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차령이 만료된 낡은 기존 버스를 폐차할 경우 저상버스로 새 차를 들이도록 의무화하는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안을 합친 것이다. 그럼에도 관련 예산 확보를 비롯해 한계가 여전하다고 장애인들은 말한다.

특히 시·도 경계를 넘으며 철도로 닿지 않는 지역을 연결하는 1만여대의 고속·시외버스는 이 법의 의무화 대상에서 빠졌다. 먼 거리를 적은 비용으로 여러 곳 갈 수 있는 버스들이지만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하다. 서울~경기를 오가는 광역버스를 제외하고는 다른 원거리 지역으로 이동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교통약자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비용이 비싼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이동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정부가 2019년 서울~부산, 서울~강릉, 서울~전주, 서울~당진 4개 노선에서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를 시범운행했으나 실적이 부진했다. KTX와 노선이 겹치는 데다 3일 전에 예매를 해야 하는 등 이용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기존 KTX로 닿을 수 없는 지역을 연결해주는 버스 운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고속버스 디자인도 과제다. 독일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저상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일반 차량보다 비쌀 뿐 기술적 문제는 없다고 한다. 일반 버스에 휠체어 탑승 리프트를 장착하도록 개조하는 방법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산하 연구원을 통해 탑승 리프트를 장착한 버스 디자인 및 교통사고 시 휠체어 탑승자의 제동 안전성 등을 다룬 연구보고서를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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