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주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었다, 대선에는 아직도 그들이 없다

조해람 기자

 외국인 고용허가제 업무협약 국가 제외

 인도 출신, 컨테이너기숙사 화재로 숨져

“사업장 변경 자유·정상적인 기숙사 제공”

 이주노동자평등연대, 국회 앞 기자회견

22일 오전 0시 5분께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한 식품공장 컨테이너 숙소에서 불이 나 인도 출신 40대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컨테이너 진화작업 하는 소방당국. 연합뉴스

22일 오전 0시 5분께 경기 파주시 조리읍의 한 식품공장 컨테이너 숙소에서 불이 나 인도 출신 40대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컨테이너 진화작업 하는 소방당국. 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0시5분쯤 경기 파주의 한 식품공장 기숙사에서 불이 났다. 기숙사라지만 컨테이너 건물이었다. 이곳에 혼자 살던 인도 출신 노동자 A씨는 도망치려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아 변을 당했다. “살려 달라”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인근 공장 사장이 도끼로 문과 쇠창살 창문을 부수려 했지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국적이 다르고 (고용허가제) 업무협약국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런 숙소를 제공해도 되는 건지, 그런 이주노동자들은 화재로 사망해도 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인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고 다음날인 23일 국회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평등연대의 ‘이주노동자 대선정책 요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부터 미신고된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에게는 이주노동자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A씨는 외국인 고용허가제 업무협약 국가가 아닌 인도 출신이어서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았다. 우다야 위원장은 “협약을 맺은 국가에서 오는 노동자도 여전히 아주 열악한 숙소에서 살고 있다”며 “10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경제의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지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사장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사진) 등 이주노동자평등연대 활동가들이 23일 국회 앞에서 대선 정책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자유와 노동허가제 실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 등을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강윤중 기자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사진) 등 이주노동자평등연대 활동가들이 23일 국회 앞에서 대선 정책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자유와 노동허가제 실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 등을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강윤중 기자

파주 기숙사 화재사고의 비극도 이주노동자를 향한 뿌리깊은 차별의 연장선에 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노동 공약이 실종된 대선 국면에서 ‘가장 약한 노동자’인 이주노동자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고 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저출생과 노동력 부족 국가에서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은 한국 사회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존재들”이라며 “대한민국의 내일을 이야기하고 비전을 제시한다면서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배제하는 것 자체가 기만”이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들이 되레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예를 들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최근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숟가락만 얹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외국인 건강보험은 오히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1조4095억원의 흑자를 남긴 사실이 알려지며 빈축을 샀다. 사업자등록이 안 된 사업장에 취업한 바람에 ‘직장가입’을 못 해서 더 비싼 건강보험료를 내고, 보험료를 내도 시간이 없어 병원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제1야당 후보는 저열한 행태를 서슴없이 드러내고, 집권여당은 정부의 이주민 차별 정책에 대해 아무런 평가나 반성도 없다”며 “혐오와 차별을 추종하는 퇴행만 하지 말고 한 걸음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내딛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20여년 전 한국에 들어온 필리핀 출신 존스 갈랑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이주노동자들은 1997년 IMF 위기와 현재의 코로나19 등 한국의 많은 위기를 가장 앞에서 맞았다. 이런 위기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인력난 해결과 한국의 세계시장 경쟁력에 도움을 줬다”며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전국에 다 퍼져 있는 만큼, 대선 후보들은 위선자가 되지 말고 이주민 정책을 대선 정책공약에 포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의 자유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를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임금체불·산업재해 대책 마련, 재난지원정책 차별 중단, 여성이주노동자 성차별·성폭력 근절 등도 함께 요구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활동가들이 23일 국회 앞에서 대선 정책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자유와 고용허가제 폐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 등을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강윤중 기자

이주노동자평등연대 활동가들이 23일 국회 앞에서 대선 정책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자유와 고용허가제 폐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 등을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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