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그 후 1년(1)

‘유쾌한 고집쟁이’, 평등의 최전선에 영원한 여군으로 서다

조해람·유경선 기자
27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열린 열린 고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변 하사의 사진 앞에 꽃을 놓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27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열린 열린 고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변 하사의 사진 앞에 꽃을 놓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앳된 얼굴의 육군 하사와 20년 경력의 군 사건 전문 변호사는 충남 공주시의 한 메밀국수집에 마주앉았다. 2020년 1월22일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전역심사위원회 심의가 늦게 끝나 점심 때를 조금 놓친 터였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강석민 변호사는 솔직하게 변희수 하사에게 말했다. “희수야, 각오해라.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전역시킬 것 같다.” 오랜 경력에서 오는 감이었다. 군이라는 조직은 한번 버리면 철저하게 밀어버리는 곳임을, 군 판사 출신인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유~ 변호사님이 잘 모르셔서 그래요. 군대는 저를 버리지 않아요.” 변 하사는 군대를 믿었다. 나름 이유가 있었다. 심사 두 달 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확정(성전환)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에도 군복무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지만, 부대 동료들부터 군단장까지 모두 응원해줬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던 중 강 변호사의 전화가 울렸다. 군에 있던 지인이 전역 결정이 났다고 귀띔해준 것이다. 인터넷에도 ‘육군 트랜스젠더 하사 전역 결정’이라는 속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회의실에 변 하사와 강 변호사가 도착했다. 원래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혼자 전역심사 관련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변 하사는 자신이 직접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걱정이 앞섰다. 존재를 드러낸 트랜스젠더에게 쏟아진 온갖 혐오와 악플이 생생했다. 다들 말렸지만 그는 단호했다. “자기가 직접 나서야 힘이 있지 않겠냐고 했어요. 그게 싸움에 유리하다면 빨리 해서 이기고 돌아가겠다고.”

기자들이 군인권센터 강당을 가득 메웠다. 오후 4시30분 담담한 표정으로 변 하사가 카메라 앞에 섰다. 회의 때 차분했던 어깨는 임 소장이 회견문을 읽어내려갈수록 조금씩 떨렸다. 임 소장이 발언을 마치고 그가 입을 열었다. “성별 정체성을 떠나 제가 이 나라를 지키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저는 대한민국 군인입니다. 감사합니다. 통일!” 흐느끼며 경례를 올렸다. ‘최초의 성별정정 군인’ 변희수는 그렇게 세상에 자신을 드러냈다.

고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강제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변희수 하사가 2020년 1월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군의 강제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1부터 고3까지 꿈은 쭉 ‘군인’

기자회견이 있던 날 저녁 변 하사의 삼계고 동창 김선하씨는 남편과 경기도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TV엔 변 하사의 회견 장면이 나왔다. 옆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들은 다 들리게 변 하사를 욕했다. “속에서 너무 화가 나서 싸울 뻔 했어요. 대놓고 말은 못 했는데…. 남편이랑 둘이서 웅얼대며 화를 냈죠.” 변 하사를 보기 전까지 성소수자를 만나본 적 없는 김씨였지만, 막상 그가 성확정 수술을 받고 여성이 됐을 때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함께 보낸 시간의 지층은 편견이 뚫고 들어가기엔 두텁고 단단했다.

세상이 변 하사를 ‘트랜스젠더 군인’이라는 납작한 단층으로 해석하고 왈가왈부할 때, 친구들은 오랫동안 켜켜이 쌓아 온 ‘내 친구 희수’의 정체성에 그 한 층을 덤덤히 올려뒀다. 그들에게 변 하사는 게임을 좋아하고, 친해지면 꽤 수다스럽고, 은근히 고집이 있지만 세심한 친구였다. 김씨가 사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한 게임을 기억해뒀다가 “너 해”라며 툭 선물했다. 부사관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는 탈락한 친구들을 생각해 자랑을 삼갔다.

무엇보다 그는 타고난 ‘군인’이었다. 부사관 특성화고인 삼계고에서도 그의 군 사랑은 유별났다. 전쟁사·병기 이야기를 설명하길 즐겼고, 부사관 시험 면접을 앞두고는 예상답변을 “다 입력해 놓은 것처럼” 술술 외워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학생부 희망 진로엔 중1때부터 고3때까지 매년 ‘군인’ ‘부사관’ ‘장교’가 적혔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자신의 진로가 명확해 다양한 활동을 잘 활용함(중3)”,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신념으로 진로를 군인으로 확정(고3)”….

꿈에 그리던 군 생활을 시작했지만 변 하사의 마음은 병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괴롭힌 ‘젠더 디스포리아(타고난 신체적 성별과 성정체성의 불일치에서 오는 위화감)’가 내면에 요동쳤다. 영혼은 여성인데 신체는 남성인 자신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수술을 받으면 평생 꿈꿔온 일터인 군대를 나가야 할 수 있었다. 우울과 혼란이 심해져 입원한 국군수도병원에서, 수술을 통해 ‘진짜 나’를 찾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2019년 11월29일 변 하사는 태국에서 수술을 받았다. 동고동락한 부대원들은 그의 편이었다. “변 하사와 같이 지내본 이들은 ‘불편하다’는 말을 안 해요. 같이 지내보면 성소수자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죠(김형남 사무국장).” 군단장이던 김성일 예비역 중장은 변 하사의 편지에 “누구나 자란 환경과 여건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변 하사를 존중하고 있다. 슬기롭게 극복하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답장했다. 김 중장은 “다른 곳으로 인사가 나 직접 챙겨줄 수 없는 상황에서 결론이 다른 방향으로 나와 아쉬웠다”고 회고했다.

고 변희수 하사의 소속부대 군단장이던 김성일 예비역 중장이 변 하사에게 보낸 e메일. 군인권센터 제공

고 변희수 하사의 소속부대 군단장이던 김성일 예비역 중장이 변 하사에게 보낸 e메일. 군인권센터 제공

■실직한 노동자가 보여준 ‘기갑의 돌파력’

2020년 어느 여름날 충남 계룡역에 한 4성 장군이 지나갔다. 대합실에 앉아 있던 김보라미 변호사에게 변 하사가 한껏 들떠 설명을 시작했다. “연예인 얘기하는 것처럼 신이 나서 저 사람이 누구고 군에서 어떤 위상이고…. 어떻게 저렇게 군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전역처분을 다시 심사해 달라며 제기한 인사소청심사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날 내내 변 하사는 복귀 후의 계획과 꿈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인사소청심사위원회는 변 하사의 소청을 기각했다.

“희수는 실직한 노동자이기도 하죠. 성차별로 자기 일자리에서 쫓겨난 노동자.” 변 하사의 싸움을 가까이에서 도운 김형남 사무국장은 그의 싸움에서 노동권의 문제도 뺄 수 없다고 본다. ‘나다움’을 유지하면서 평생 꿈꿔온 직장으로 복귀하겠다는 게 변 하사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복귀하기 위해 싸우고 투쟁해야 한다는 점은 고달픔이었다. “병가 내고 수술하고 오는데 복귀 가능성을 고민하나요? 그런데 성소수자들에게는 이런 차별이 일상화돼 있어요.”

2020년 1월 전역심사 때만 해도 변 하사는 심사관에게 “지금이라도 전투임무 수행이 가능하다”며 의지를 보였다. 강제전역 후에도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돌파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말을 처음 기록한 <한겨레> 김종철 기자는 변 하사를 만난 순간 “말갛고 순수한 기운”을 느꼈다. 성전환 이후 너무 좋다며 밝게 웃었다. 생애 첫 언론 단독인터뷰에서 변 하사는 “차별 없는 군을 만들기 위해 ‘기갑 선봉’답게 선봉에서 싸우겠다”고 했다.

소청이 기각된 뒤 눈에 띄게 지쳐갔다. 강제전역은 곧 부당해고였고, 해고는 우울감의 가장 큰 원인이 됐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전역처분 취소 소송에 제출한 의무기록감정서에서 “성확정수술 이후 군인이라는 직업을 잃게 되고, (수술 후에도) 군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본인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와 우울감을 심화했다”고 밝혔다. 복귀가 요원해질수록 칩거가 길어졌다. 그해 8월11일 전역처분 취소 소송 돌입 기자회견을 앞두고 활동가가 급히 그를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를 다듬고 흰 셔츠와 바지를 사 입힐 정도였다.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일상을 지키려 나름대로 애썼다. 친구를 놀려주려고 서바이벌용 완전군장을 찬 채 자취방을 기습했다. “참 독특하고 유쾌한 친구였어요. 게임도 좋아해서 저에게 ‘그렇게 할 거면 게임 접어’라고 잔소리도 하고, 가끔 치킨도 먹고 고기도 먹고….” 커밍아웃 후 알게 된 친구이자 성소수자인 A씨의 말이다. 고교 동창들과는 함께 게임을 ‘클리어’하자며 날도 잡았다. 그러나 전역처분 취소 소송 재판은 기약없이 밀려 갔다. 연락이 안 되는 날이 잦아졌다. 계속 군에 있었다면 의무 복무가 만료됐을 2021년 2월28일이 천천히 오고 있었다.

2020년 8월1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전역처분 취소 소송 제기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변희수 하사(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변호인단 소속 김보라미 변호사, 오른쪽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권호욱 선임기자

2020년 8월1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전역처분 취소 소송 제기 기자회견’에 참석한 고 변희수 하사(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변호인단 소속 김보라미 변호사, 오른쪽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권호욱 선임기자

■“그가 없으니 더더욱 이겨야 했다”

충북 청주정신건강센터 직원들이 오피스텔 문을 쾅쾅 두드렸다.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된다는 군인권센터의 신고를 받고 달려간 이들이었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출동한 경찰이 문을 땄다. 2021년 3월3일 변 하사는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타살 혐의는 없었다. 경찰은 변사사건 수사기록에 사망일을 2월27일로 적었다. “전화를 받고 보니 카톡이 수백개 쌓여 있고, 처음엔 오보 아닌가 했어요. 단톡방에서 단체 음성채팅을 했는데 희수만 안 받으니 친구들이 다 울고, 저도 울고…(동창 김선하씨)” 청주로 달려온 활동가들과 유족이 급히 장례식장을 예약해 장례를 치렀다.

고 변희수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된 다음날인 2021년 3월4일 충북 청주 변 하사의 자택 현관문 앞에 술병과 부의 봉투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고 변희수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된 다음날인 2021년 3월4일 충북 청주 변 하사의 자택 현관문 앞에 술병과 부의 봉투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성소수자 친구 A씨는 변 하사의 장례식장을 다녀와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웠다. “저희 모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해야 하는 시기였어요. 우리가 이 시기를 잘 견뎌야 한다고…일상을 영위할 동력이 떨어졌었죠.” 남은 이들은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 됐다. 변호인단과 활동가들이 유족을 설득해 소송수계를 받았다. “심신장애로 인한 적법한 전역”이라는 육군에 변호인단은 “여성인 변 하사에게 남성의 기준을 들이밀어 심신장애로 판단해 전역시킨 것은 위법”이라고 맞섰다. 의사들의 의견서와 시민 수천명의 연서명,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이 보낸 탄원서 수십장이 힘을 보탰다.

2021년 10월7일 대전지방법원 법정에 앉은 김선하씨는 판사의 굳은 표정을 보고 순간 겁이 났다. 변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 소송 선고기일이었다. “설마 내가 원하는 그 말을 못 듣나….” 김씨의 걱정과 달리 이날 재판부는 군의 강제전역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아, 이겼어, 이겼어!” 재판을 지켜본 활동가들과 지인들, 성소수자들이 기뻐했다. 환호는 곧바로 탄식이 됐다. 소송의 주인공 변 하사가 세상에 없었다. “처음 들었던 생각이요? 화가 났죠. 이렇게 간단한 판결이잖아요. 이 한 줄 때문에 한 사람의 삶이 끝나야 하는지….” 현장에서 선고를 들은 김형남 사무국장은 울음을 꾹 참았다.

[변희수, 그 후 1년①]‘유쾌한 고집쟁이’, 평등의 최전선에 영원한 여군으로 서다

■“기나긴 여정, 시간은 인권 편”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나 시간은 인권의 편이다.” 변 하사가 처음 존재를 드러낸 2020년 1월22일,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이 읽은 문장은 옳았다. 변 하사의 짧은 삶은 다른 이들의 긴 여정을 전진시켰다. 국방부는 병역 신체검사 항목에서 ‘성주체성장애’를 ‘성별불일치’로 바꿨다. 김선하씨는 기사 댓글을 볼 때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한다. 원색적인 비난뿐이었던 댓글창에 ‘미안하다’ ‘그 당시엔 몰랐다’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변 하사의 1주기인 2022년 2월27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활짝 웃는 그의 사진 앞으로 안개꽃 다발이 놓였다. 추모제가 시작되자마자 포스트잇이 판넬을 가득 채웠다. ‘변 하사님의 용기와 의지를 기억하겠습니다’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는 사회가 오도록 노력할게요’ 추모 문구가 꼬리를 잇는 동안 청주시의 한 납골당에는 변 하사의 유골함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안식을 취했다. 군인인 채 떠났지만 아직 순직 인정은 받지 못한 그가 잠시 머물고 있는 자리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그의 순직 여부를 가리기 위한 직권조사를 진행 중이다.

‘기나긴 여정’의 남은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많은 소수자들이 아직도 차별과 혐오를 일상처럼 겪는다. 변 하사가 떠난 자리에서도 그와 닮은 다른 이들이 같은 벽에 부딪힐 터다. 그들이 그나마 ‘더 나은 자리’에서 부딪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남은 이들의 몫이라고, 그와 싸움을 함께한 이들은 믿는다. 법원도 그들의 의지를 보장했다. “성정체성의 혼란 또는 성별불일치로 성확정수술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이 사건 처분과 동일한 사유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을 배제하기 어렵다. 소송수계는 국민의 권리구제 확대 등에서 필요하다(대전지법, 전역처분 취소 소송 판결문 중).” 변 하사는 떠난 뒤에도 꿈을 이뤄가고 있다.

고 변희수 하사의 1주기인 2022년 2월27일 충북 청주 한 납골당에 그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생일은 음력으로, 기일은 숨진 채 발견된 3월3일로 표기됐다. 조해람 기자

고 변희수 하사의 1주기인 2022년 2월27일 충북 청주 한 납골당에 그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 생일은 음력으로, 기일은 숨진 채 발견된 3월3일로 표기됐다.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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