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그 후 1년(2)

군은 변희수를 어떻게 지웠나…법정 기록에 담긴 ‘무지’와 ‘몰이해’

유경선·조해람 기자
지난 27일 서울 신촌에서 고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변 하사의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 시민들이 두고 간 꽃들이 놓여 있다. 유경선 기자

지난 27일 서울 신촌에서 고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변 하사의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 시민들이 두고 간 꽃들이 놓여 있다. 유경선 기자

국내 최초의 ‘트랜스젠더 여군’인 고 변희수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소송 기록은 ‘여성이자 군인’이기를 바랐던 그의 고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변 하사의 상담 내역과 진료 기록, 그가 군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증명하는 주변인들 증언이 촘촘히 담겨 있다. 반면 전역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한 군은 재판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드러냈다. ‘제2의 변희수’를 상상하고 준비하기보다 변 하사가 연 공론장의 문을 닫고 군적을 지우는 데 몰두했다. 군의 주장은 결국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변 하사는 최초의 트랜스젠더 군인이 됐다. 하지만 군의 차별적 인식이 낸 상처는 오래 남았다.

■군 “트랜스젠더, 정신건강 문제…융합도 어려워”

군은 변 하사의 전역처분 취소 소송에서 “트랜스젠더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며, 성별을 전환하더라도 우울증에 쉽게 시달리거나 낮은 질의 삶을 살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6월 제출한 재판 준비서면에 “성전환 이전 성전환증 유병자는 일반인에 비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바”라며 “성전환수술(성확정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통제군보다 높은 사망률과 정신의학적 발병 수준을 보인다”고 적었다.

군 주장의 출처는 스웨덴에서 수행된 ‘성전환수술을 받은 성전환자에 대한 장기 추적조사’ 연구보고서이다. 그러나 정작 이 연구는 트랜스젠더의 사망률이 높은 데는 ‘사회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결론에서 “성전환수술 후 보다 높은 수준의 육체적·정신적 돌봄을 권유해야 한다”고 제언한 것도 그래서다. 트랜스젠더가 내재적 원인 때문에 사망·발병 문제를 겪을 것이라는 편견이 바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의 주범이고, 차별의 결과를 다시 차별의 근거로 이용해선 안 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그런데도 군은 이 보고서를 정반대 맥락에서 인용한 것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지난해 8월 “(군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최신의 과학적·의학적 지식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무지와 몰이해에 바탕을 뒀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전환증’을 정신·행동장애 분류에서 제외했다. 군은 변 하사의 변호인단이 트랜스젠더의 안정적 생활 가능성을 제시하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자 “믿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육군본부 전역심사위원회는변 하사에 대해 강제전역 결정을 내리면서 “성전환수술 사실을 (부대원들이) 알게 되면 융합하기 어렵다는 부분을 고려했다. 트랜스젠더가 사회와 어울리기 어려운 존재”라고 밝혔다.

변희수 부사관이 지난 2020년 1월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의 강제 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희수 부사관이 지난 2020년 1월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의 강제 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확정수술은 ‘치료’인데…군 “고의로 초래한 장애”

군은 변 하사가 받은 성확정수술을 “고의로 초래한 심신장애”로 규정했다. 지난해 2월과 5월, 6월 재판부에 제출한 준비서면 등에 이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군은 성확정수술 이후 변 하사의 신체를 군인사법상 심신장애 등급표에 마련된 ‘음경 상실’과 ‘고환 결손’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군 의무조사위원회는 이 기준에 따라 변 하사를 심신장애 3급으로 분류했다. “고의로 초래됐다”는 표현은 변 하사가 ‘음경 상실과 고환 결손’에 이를 것을 알면서도 수술을 받았다는 취지로 활용됐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전문가 의견서에서 “성확정수술은 고의적 심신장애 초래가 아닌, 성별 불쾌감의 적절한 의학적 치료”라며 “해외 연구에 따르면 성확정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는 성별 불쾌감이 감소해 심리적·사회적으로 더욱 건강한 상태로 지내게 된다”고 밝혔다. 변 하사가 성확정수술을 받은 것은 ‘장애’를 야기한 것이 아니라 ‘치료’라는 것이다. 그러나 군은 ‘고의에 의한 장애’라며 정반대로 받아들였다. 군인권센터는 2020년 1월 국방부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낸 진정에서 군인사법 시행규칙상 언급된 ‘고의’라는 단어는 군 복무를 회피하기 위한 고의에 한정해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희수, 그 후 1년②]군은 변희수를 어떻게 지웠나…법정 기록에 담긴 ‘무지’와 ‘몰이해’

■군의 발빠른 전역 결정…무리하고 성급한 ‘변희수 지우기’

트랜스젠더를 향한 군의 협소한 인식은 ‘변희수 지우기’로 이어졌다. 전역심사위원회는 출석 위원 6인이 만장일치로 전역을 결정했다. 군은 인사소청심사위원회를 열어달라는 변 하사의 요청도 기각했다.

변 하사는 성확정수술을 받기 전 소속 부대에서 상담을 했다. 이때 수술 후 적절한 보직을 생각해보자는 친절한 제안이 있었다. 당시 소속 군단장이었던 김성일 예비역 중장은 “(수술을 받고) 와서 자연스럽게 보직을 바꿔 근무할 수 있게 조치했는데 그 이후 (내가 근무지를 옮겨) 역할을 못해줬다”고 말했다.

군은 변 하사가 소속부대의 배려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수술대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군은 강제전역 결정에 우려를 표명한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보낸 서한에서 “(변 하사는) 부대 차원에서 세심한 관리와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상관이 부대원 보호·관리 차원에서 상담하며 나눈 대화를 본인 입장에서 유리하게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변했다. 변 하사가 몸담은 부대에서는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리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변희수, 그 후 1년②]군은 변희수를 어떻게 지웠나…법정 기록에 담긴 ‘무지’와 ‘몰이해’

군은 변 하사가 성별 위화감 때문에 복무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군은 UN에 보낸 답변서에 “(변 하사가) 성 주체성 문제로 복무부적응 모습을 보였다”고 적었다. 소속 부대의 간부가 “조용했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맡은 일을 잘 수행하는 인원이었다”고 말한 기록, 전차 조종수 분야에서 하사 중 유일하게 A등급을 받는 등 기갑여단 조종수로서 좋은 성적을 보였던 사실, 대대 정작과에서 맡은 참모부 업무에서 인정받았던 사실 등 변 하사의 업무수행능력이 우수했다는 객관적 기록은 외면했다.

군이 재판에서 “변 하사의 우울감과 자살충동이 원래 심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자 변호인단의 분노가 폭발했다. 강석민 변호사는 “변 하사가 사망한 상태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악의적 주장이었다”고 회고했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변희수 공대위)’는 “망인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법정에 탄원서를 냈다. 강 변호사는 “정신적 괴로움은 전역 조치 이후 급격히 커졌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준비서면에서 “전역 처분 이후에서야 우울감이 등장하는 점이 명백하다”고 했다.

■‘제2의 변희수’ 맞을 기회 걷어찬 군…“남은 관문은 순직 인정”

군의 대응은 변 하사가 던진 질문에 대한 생산적 논의의 창을 닫아버렸다. 변 하사가 1년여 남은 복무기간을 다 채웠다면, 군이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대로 전역심사위회를 3개월만 미뤘더라면, 그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변 하사가 만기 전역을 했다면 한국 사회는 ‘트랜스젠더를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기초적 수준의 논의를 넘어서 트랜스젠더의 군 입대를 막는 현행법의 타당성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27일 오후 열린 열린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벽보판에 붙인 추모글./우철훈 선임기자

서울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27일 오후 열린 열린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벽보판에 붙인 추모글./우철훈 선임기자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당면한 과제는 변 하사의 순직 인정 여부이다. 변 하사의 만기 전역일은 2021년 2월28일. 경찰이 추정한 그의 사망 시점은 그로부터 하루 전인 2월27일이다. 수사기관이 추정한 사망 시점이 공증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변 하사가 복무기간 중 사망했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국방부는 변 하사가 숨진 채 발견된 2021년 3월3일이 사망일이라며 ‘만기전역’을 주장한다.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순직 여부를 규명하기 위해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다.

강 변호사는 “순직 인정, 국립묘지 안장, 국가유공자 인정을 거쳐 명예를 온전히 회복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변희수 공대위는 지난 27일 서울 신촌역 인근에서 열린 변 하사 1주기 추모제에서 “(순직 처리는) 국방부와 육군이 위법 처분의 책임을 인정하고 군이 자행해 온 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사과하게 하는 실질적 조치”라고 했다. 변 하사가 떠난 뒤에도 그를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인이고자 했던 변 하사의 열망이 왜, 어떻게 외면받았는지 기억해야만 그가 온몸으로 새긴 ‘기념비’를 제대로 세울 수 있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