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핵폭탄' 러시아 스위프트 결제망 퇴출…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이창준 기자

 제재 대상 은행과 거래 중인 국내기업

 수출 대금결제 지연·중단 손해 불가피

 우회 결제망 있어도 물가 인상 가능성

“피해 업체 금융지원 등 방안 강구해야”

로이터 연합뉴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시키기로 하면서 국내 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이 예상된다. 일단 러시아 은행과의 대금 결제가 어려워져 거래 비용 자체가 뛸 가능성이 높고, 최악의 경우 대러시아 교역 자체가 중단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러시아와의 거래가 원활하지 못하고 비용이 늘게 되면 러시아산 수입가격 자체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대러제재에 동참하면서도, 국내 기업의 피해를 지원해야 하는 정부의 대응이 중요하게 됐다.

■‘금융 핵폭탄’ 스위프트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검토 중이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지난달 28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에서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을 만나 대러 제재에 강한 동참 의지를 표명했다. 이 차관은 “대러 전략물자 수출금지를 시작으로 추가적인 제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스위프트 배제 등 대러 금융제재에 동참하는 구체적 내용도 관계부처간 협의·검토가 완료되는 대로 빠른 시일 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프트는 국제 금융거래와 결제 업무 등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 등록된 금융기관은 각각의 영문·숫자 코드를 부여받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간 대금 결제나 기타 국제 송금 업무를 수행한다. 현재 전 세계 200여개 국가 1만1500개가 넘는 금융기관이 이 결제망에 등록돼 있다.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퇴출된 금융기관은 국제 금융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가장 강력한 국제 금융 제재로 취급된다. 그간 미국은 자체적으로 러시아 금융기관을 지정해 자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고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을 통해 주변국에도 이같은 조치를 강요하는 식으로 러시아를 고립시켜왔지만, 이번에는 아예 러시아를 국제 교역 시스템에서 추방하도록 했다. 기존 제재에서는 미국과 거래가 많지 않은 아프리카나 중동 국가는 제재 동참 압박을 무시하고 러시아와 계속 거래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 은행이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되면 이같은 가능성도 원천 봉쇄된다.

스위프트 배제 조치는 주변 교역국에 광범위한 부수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금융 핵폭탄’에 비견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천연가스 수입량의 절반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은 배제 논의 과정에서 처음엔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과거에는 핵개발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은 이란과 북한이 각각 2012년과 2017년 스위프트에서 퇴출됐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비즈니스 애로 상담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비즈니스 애로 상담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거래 대금 못받고 수입물가 상승 위험도”

러시아 은행에 대한 스위프트 배제 조치가 시행되면 국내 경제 피해도 불가피하다. 다만 현재까지는 제재 대상 은행이 특정되지 않아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산출하기는 어렵다. 대상 은행이 일부에 그친다면 다른 러시아 은행 계좌를 통해 거래를 지속할 수 있지만 대다수 혹은 모든 러시아 은행이 전면 배제 대상으로 지정될 경우 대러 교역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재 대상이 지정되면 해당 은행을 통해 거래 중인 국내 기업은 수출 대금을 적시에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국내 대러 수출 비중은 1.6% 정도로 크지 않고, 대러 수출액은 12조원에 수준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러시아가 배제될 경우 한국기업은 대금결제 지연·중단에 따른 손해가 불가피하다”며 “자동차, 자동차부품, 화장품, 합성수지 등 주요 품목의 수출 감소도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전면 제한 조치가 내려져도 러시아와의 교역 방법이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위프트 결제망 이전 사용되던 ‘텔렉스’ 등 대체 결제 시스템이나 우회 결제망 등을 이용해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 역시 앞서 스위프트에서 배제됐을 당시 우리은행과 IBK 기업은행 등에 직접 원화 계좌를 개설해 원유 수출대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방식을 이용하더라도 물가 상승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대체 시스템을 이용하면 거래 절차도 늘 뿐더러 거래 투명성이 떨어져 거래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이로 인해 부품·원료 수입 과정에서 수급 차질과 가격 인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불확실성 자체가 높아지면서 기업 투자 심리도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수입품목 가운데 러시아 의존도가 20% 이상인 품목은 118개에 이른다. 나프타(23.4%), 팔라듐(33.2%), 우라늄235(33.8%) 등 원자재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고, 명태(96.1%), 대게(100%), 대구(93.6%), 명란(89.2%), 북어(92.7%) 등 수산물은 러시아산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제재와 지원의 딜레마

정부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해야 하면서도, 이로 인한 국내 경제 피해를 막아야 하는 과제를 동시에 떠안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대러시아 결제 애로가 발생할 경우 우리 기업의 대체 계좌 개설을 통해 무역대금 결제에 지장이 없도록 관계 외교당국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으나 28일 스위프트 배제 조치에 동참하겠다고 밝히면서 해당 내용을 대응 방안에서 제외시켰다. 러시아의 스위프트 퇴출에 동의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대체 거래 등 지원책을 거론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제재 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것처럼 비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제재 동참과 제재로 인한 국내 경제 피해 최소화 노력은 서로 반대 방향 같은 측면이 있다”며 “대응책을 논의하고는 있지만 이를 대외적으로 말하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받는 국내 수출입 업체에 직접 금융지원을 제공하는 등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규철 연구위원은 “(대체 거래 방법 등) 국제사회의 제재 동참 움직임으로부터 빠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 기업 대상 직접적인 금융지원 등을 통해 거래를 원활하게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