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산불 왜 거세졌나 보니…겨울 가뭄에 강풍이 ‘불쏘시개’

윤희일 선임기자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서 6일 한 남성이 화재로 전소된 집 마당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경북 울진군 북면 고목리에서 6일 한 남성이 화재로 전소된 집 마당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강원 곳곳에서 사흘째 산불이 이어진 6일 강원 동해시 묵호진동의 주택들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있다. | 권도현 기자

강원 곳곳에서 사흘째 산불이 이어진 6일 강원 동해시 묵호진동의 주택들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있다. | 권도현 기자

봄철 산불이 무섭다. 더 빨라지고, 더 잦아지고, 더 거세졌다. 사상 유례 없는 겨울 가뭄과 강풍이 겹치면서 초대형 산불이 잇따르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속에 겨울철·봄철의 가뭄과 이에 따른 대형 산불이 반복될 수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6일 산림청에 따르면 올 들어 발생한 산불은 지난 3일 기준 236건으로 예년(96.7건)에 비해 무려 2.4배나 늘어났다. 4일부터 6일까지 울진·삼척·영월·강릉 등에서 추가로 10여건의 산불이 발생해 무려 1만4000여㏊의 산림이 불에 탔다. 보통 4월에 많이 발생하는 대형 산불이 올해는 2·3월부터 빈발하고 있는데다 규모도 커지고 있어 올봄 산불의 피해 규모는 역대급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봄철 산불이 이른 시기에 급증한 핵심적인 이유로는 사상 유례없이 심각한 겨울 가뭄이 꼽힌다. 최근 3개월 동안의 전국 평균 강수량은 13.3㎜로 평년대비 14.6%에 불과한 상황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과거에 볼 수 없던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국 대부분 지역의 산속 나무·낙엽·잔가지 등이 바짝 말라있다”면서 “일단 불이 붙으면 바로 번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4일부터 6일까지 강원 영동지역과 경북 내륙 및 동해안지역을 순간 풍속이 초속 25m를 넘는 강풍이 몰아치면서 울진·삼척·동해·영월 등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했다. 특히 온도가 높고 건조한 ‘양간지풍’까지 발생하면서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건조한 상황에서 산을 덮치는 강풍은 불을 급속도로 확산시킨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산사태연구과의 분석결과를 보면, 풍속이 초속 6m이고 경사가 30도인 상황에서의 산불확산 속도는 바람이 없는 평지에 비해 약 79배까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28일 발생한 합천 산불의 경우 순간 최대풍속이 6m였는데,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 동안 300㏊의 산림이 불에 탔다. 산림청 관계자는 “당시 불씨가 순식간에 1㎞까지 날아간 사례도 확인됐을 정도로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강원 동해시 발한동 일대가 5일 산불로 인해 뿌연 연기로 뒤덮여 있다. 강릉 옥계에서 시작된 산불을 강풍을 타고 동해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강원 동해시 발한동 일대가 5일 산불로 인해 뿌연 연기로 뒤덮여 있다. 강릉 옥계에서 시작된 산불을 강풍을 타고 동해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2019년 봄에 발생한 고성·속초 산불의 경우 최대 순간 풍속이 초속 35.6m였는데, 최초 발화지점에서 7.7㎞가량 떨어진 해안가까지 산불이 번지는데 9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당시 불의 확산 속도는 시간당 5.1㎞였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산불은 ‘건조’와 ‘강풍’이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동시다발’ 형태로 이어졌고, 이는 진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됐다. 헬기 등 진화장비를 분산시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새벽, 헬기가 104대 출동할 당시 이미 울진·강릉·영월 등 6곳에서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국은 헬기 50대를 울진 산불에, 29대를 강릉·동해 산불에 각각 투입하고 나머지 헬기는 영월 등 다른 곳으로 보냈다. 산림청 관계자는 “산불이 동시다발 형태로 이어지면 헬기 등 소방 자원을 분산 투입하게 되면서 진화의 효율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진화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산림을 구성하는 나무 중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의 비율이 높은 것도 진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국내 산림의 37%는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등 침엽수로 이루어져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소나무 숲은 송진이 있어 불이 잘 붙고 오래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면서 “나무 전체로 번진 불이 인접한 다른 나무로까지 붙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대량의 열에너지가 기둥처럼 만들어지면서 산불이 급속히 확산된다”고 설명했다.

대형산불을 부르는 겨울·봄철 가뭄과 강풍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온난화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겨울·봄철 산불 발생 위험성을 높이고 있는 핵심 요인으로 높은 해수면 온도와 낮은 습도를 꼽았다. 권춘근 산림과학원 연구사는 “지구온난화에 따라 나타나고 있는 전세계적인 해수면 온도 상승이 결국 숲이 있는 육지의 온도를 높이게 된다”면서 “온도가 높아지면 바로 습도가 낮아지고, 산속의 낙엽 등 가연성 물질이 바짝 마르게 되면서 산불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산불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기상 인자 중에서 온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온도가 1.5℃ 오르면 산불 위험도는 8.6% 높아지고, 2.0℃ 오르면 13.5%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산불 현장.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산불 현장.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이처럼 대형산불 가능성이 높아지고, 실제 발생이 잦아지자 산림청이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산림청은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봄철의 입산통제구역(현재 222만㏊)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농촌지역의 불법소각 행위에 대한 단속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최근 10년 동안 발생한 산불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33%는 입산자에 의한 실화였고, 28%는 논·밭두렁 태우기나 쓰레기 태우기 등 소각행위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사람의 실수로 인한 산불 발생을 막는데 우선 힘을 쏟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산불로 주택이나 문화재 등이 소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림과 주택 등의 사이에 50m의 안전거리를 두고 산불에 강한 관목류 등을 식재하는 방법으로 ‘산불안전공간’을 조성하는 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산림청은 강풍에도 운항이 가능한 헬기를 늘리기 위해 노후헬기 13대를 중·대형급으로 교체하고 3대의 헬기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숲을 활엽수 등 다른 나무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험준한 산악지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소나무 숲을 인공적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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