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서바이벌 ‘비자게임’-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최민지 기자
프롤로그

<b>이 신분증 받기까지 11년</b> 유명 방송인이자 회사원인 네팔 출신 수잔 샤키야가 지난 1일 서울 송파구의 집에서 한국 체류 11년 만에 발급받은 영주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가장 안정적인 체류자격이자 한국 정주를 원하는 이주민들에겐 ‘꿈’이기도 한 영주증을 얻기까지 수잔도 여러 차례 아찔한 고비를 넘어야 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이 신분증 받기까지 11년 유명 방송인이자 회사원인 네팔 출신 수잔 샤키야가 지난 1일 서울 송파구의 집에서 한국 체류 11년 만에 발급받은 영주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가장 안정적인 체류자격이자 한국 정주를 원하는 이주민들에겐 ‘꿈’이기도 한 영주증을 얻기까지 수잔도 여러 차례 아찔한 고비를 넘어야 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 215만명
2024년엔 전체 인구의 5% 이상
이주민 정책 재점검 필요한 때


당신의 이웃은 누구인가. 철수와 영희뿐인가.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찰스’와 ‘응우옌’이 새로 이웃이 됐음을 알고 있는가.

국내 거주 외국인 주민(귀화자 포함) 수는 215만명(2020년 기준), 전체의 4.1%다. 경기 안산(13.1%)·시흥(12.4%)과 충북 음성(14.6%) 등에선 10%를 넘어섰다. 40만명의 미등록 외국인을 포함하면 대구 인구(약 240만명)를 웃돈다. 코로나19 사태로 체류 외국인 수는 다소 줄었지만 전문가들은 2024년이면 외국인 주민 수가 5%를 넘어설 것으로 본다.

이주민들은 한국의 뿌리산업과 돌봄노동을 떠받쳐 왔다. 다양한 배경의 이주민들이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고 이미 이들 없이 한국 사회는 작동하기 어렵게 됐다. 코로나19로 외국인 유입이 줄면서 이들의 존재감은 더 커졌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인식은 이주민 유입이 본격화한 199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저성장 탓에 이주민을 향한 시선은 더 싸늘해졌고, 다양한 문화정체성을 이유로 한 타자화도 여전하다. 한국이 독일·중동으로 노동자를 보냈고, 재외동포가 800만명에 이르는 ‘이주 국가’임을 되돌아보는 이는 적다. ‘외국인 비중이 5%이면 다문화사회’라는 출처불명의 정보가 통용되는 것도 한국 사회의 얕은 인식을 드러낸다.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과 2006년 다문화사회 선언으로 대표되는 이주민 정책은 ‘5% 시대’를 앞둔 지금도 유효한가.

한국은 2020년 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전환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라도 이주민 정책은 재점검이 필요하다. 그들을 노동력으로만 간주해 짜온 정책에 문제는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정현종 ‘방문객’)이기 때문이다.

2022년 세계는 불안정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최대 500만명의 난민이 발생할 전망이다.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은 ‘기후 난민’도 빠르게 늘고 있다. 국제 이주 행렬을 유발하는 부국과 빈국 간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한국은 아시아의 주요 이주 희망국이 된 지 오래다. ‘K웨이브’로 매력 국가가 된 한국을 향해 오늘도 많은 청년들이 짐을 싼다. 개방경제로 성장해온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 삶의 공간을 내어줄 채비가 되어 있는가.

경향신문 기획취재팀은 지난 12월부터 이주민 150여명을 만나 인구 5%에 달하는 그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심층 취재했다. 그들은 체류자격에 불안해했으며, 강도 높은 노동에 건강을 잃거나 낯선 땅에서 죽음을 맞기도 한다. 성년이 된 이주민 2세들의 고민, 국적과 젠더의 이중 사슬에 엮인 이주여성들의 고단한 삶도 들여다봤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는 아웃사이더이자 날카로운 관찰자였다.



이주민으로 한국에 산다는 건 ‘살아남기’에 가깝다

한국 영주권자인 수잔 샤키야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수잔은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집에서 만났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한국 영주권자인 수잔 샤키야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수잔은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집에서 만났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방송으로 유명해진 네팔인 수잔도
‘F-5’ 영주자격 얻는 데 11년 걸려
학력·전공 연관성·소득·연령 등
조건 까다로워 중도 포기자 많아

구직(D-10) 비자 소지자인 에콰도르인 유학생 지오바나 브라보말로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지오바나는 지난 16일 전북대 강의실에서 만났다. 더 머물지 못해 떠나게 된 지오바나는 한국의 비자·체류관리 정책에 대해 아쉬워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구직(D-10) 비자 소지자인 에콰도르인 유학생 지오바나 브라보말로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지오바나는 지난 16일 전북대 강의실에서 만났다. 더 머물지 못해 떠나게 된 지오바나는 한국의 비자·체류관리 정책에 대해 아쉬워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NGO 활동 에콰도르인 지오바나
“한국 정부, 유학생 유치에만 골몰
졸업 후 삶에 대한 배려는 부족”

서른네 살 청년 수잔 샤키야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네팔 사람’이다. 2015년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유창한 한국어로 토론하는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수잔은 9년차 회사원이다. 서울의 한 방산업체에서 해외 마케팅을 맡고 있다. 종종 방송에 얼굴을 비추지만 요즘은 통·번역 일이 더 많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인증한 전문통역인이다.

지난 1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집에서 그가 보여준 여권에는 한국 생활 12년간의 궤적이 담겨 있었다. “저희는 뭘 하더라도 비자가 필요해요. 이건 영주증이에요. 체류 자격에 ‘영주(F-5)’라고 찍혀 있죠. 이걸 받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D-4(어학연수) 비자로 시작해 D-2(유학) 비자, E-7(취업) 비자로 갔고요. 그다음 F-2(거주) 비자 받고 F-5(영주)까지 왔어요.”

‘체류 자격’, 이주민에게는 가장 무거운 단어다. 한국에서 얼마나 머물며 어떤 활동을 할 수 있고, 어느 수준의 사회안전망이 적용되는지가 체류 자격에 따라 정해진다. 대중에게 익숙한 방송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 역시 12년간 몇차례 체류자격을 바꿔야 했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인들에겐 관심 밖의 일이지만 ‘한국의 5%’에겐 삶의 등급이 걸린 문제다. 거리에서 드물지 않게 마주치는 외국인들은 어떤 비자, 체류자격을 갖고 있을까. 빈번히 바뀌는 규정과 낮은 예측 가능성, 까다로운 조건 탓에 ‘한국 정주’를 희망하는 이주민이 종착지까지 가는 길은 험난한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① D-4(어학연수)

수잔이 네팔에서 대학에 다니던 2008년은 239년 만에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던 격동기였다. 레짐체인지의 혼란에 학교가 문을 닫았고, 1년간 등교한 날이 3~4개월도 안 됐다. 부모들은 자녀를 해외로 보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일했던 아버지 지인과 매년 산을 타러 네팔에 오던 한국인들의 권유로 수잔도 한국행을 결심했다.

‘3수’ 끝에 어학연수(D-4) 비자를 받아 2010년 봄 한국 땅을 밟았다. 1년간 단국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한 뒤 이듬해 같은 대학 도시계획부동산학과에 입학했다. 네팔에서 전공하던 경영학에서 방향을 바꾼 이유가 있었다. “높고 깔끔한 건물, 칼같이 시간 맞춰 오는 지하철에 놀랐어요. 한국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발전했다는 게 신기했죠. 카트만두에도 도시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② D-2(유학)

11학번 신입생이 되면서 D-2(유학)로 체류자격을 바꿨다. 4년간 ‘코피 날 만큼’ 열심히 산 덕에 평점 4.1점으로 성적 최우수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피곤한 나날이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깃집 서빙부터 배달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출입국관리법상 취업활동은 E(취업비자)계열과 F-2(거주) 같은 F계열 비자 등으로 제한된다. 유학비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권에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 스티커가 하나둘 붙기 시작했다.

③ E-7(특정활동)

졸업을 앞둔 2014년 취업에 성공했다. 군용 낙하산을 만드는 방산업체의 인턴이 된 것이다. 2012년 에베레스트 등반에 나선 한국인 그룹을 가이드했는데, 성실한 수잔을 눈여겨본 한 등반객이 귀국 후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다. 취업난을 넘어선 그에게 또 다른 ‘비자 문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취업비자로 불리는 E-7(특정활동) 비자는 대학 졸업 후 국내 기업에 취직한 외국인이 한국에 머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다. 문제는 ‘전공과의 관련성’이었다. 2015년 다소 완화됐지만, 당시 E-7 비자를 받으려면 전공 관련 직종에 취업해야 했다. 당국은 그의 전공이 방산업체와 맞지 않는다고 봤다. “처음엔 비자를 안 준다고 했어요. 사장님이 직접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이 친구 없으면 큰일난다’고 설득해 겨우 받았죠.”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국내 45개 대학 외국인유학생 취업 현황(2009년)에 따르면 매년 졸업생 1만여명 중 국내 취업자는 100명에 못미친다. 유학생 99%가 한국에서 취업을 하지 못해 돌아간다는 뜻이다.

2015년 1월 <비정상회담> 출연은 수잔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5년간 갈고닦은 그의 말솜씨와 성실한 태도가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고정 출연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비자와 연계된 직장 외 취업 활동은 금지돼 있다. 첫 출연 때 받은 활동허가서는 ‘일회용’이라 다시 허가를 받아야 했다. 당시 출입국 반응이 기억에 생생하다. “담당자가 ‘회사냐, 연예인이냐’ 하나를 택하래요. 연예인 할 거면 E-6(예술흥행) 비자로 바꾸고 회사를 관두라면서요.” 방송사 PD, 회사 사장과 함께 출입국사무소를 찾아 설득한 지 이틀 만에 허가가 떨어졌다. 그를 찾는 곳이 늘면서 출입국사무소를 제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수잔은 이 시기를 떠올리면 아쉬움이 많다. “다른 방송에 나가려면 신청을 하고 며칠씩 기다렸어요. 당장 내일 녹화인데, 허가가 안 나와 기회를 놓치곤 했죠.”

④F-2(거주)

[5%의 한국]①서바이벌 ‘비자게임’-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그러다 F-2(거주) 비자(사진)란 걸 알게 됐다. F-5(영주)를 제외하면 가장 안정적인 비자다. 한번 받으면 최장 5년까지 체류가 보장되며 취업도 자유롭다.

수잔의 E-7-2(준전문인력) 비자에서 갈 수 있는 것은 F-2-7(점수제 거주) 비자로, 학력·한국어 능력·소득·연령(젊을수록 고득점)에서 일정 기준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봉사와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KIIP) 이수 점수를 더해 120점 만점에 80점을 넘으면 된다. KIIP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 과정으로 5단계 이수까지 총 515시간이 걸린다. “2번만 수업에 빠져도 탈락이라 3번째 도전해 이수했어요. 과거 기부 이력으로 2점을 추가로 받아 2017년 5년짜리 F-2를 받았습니다.”

⑤ 마침내 F-5(영주)

영주자격(F-5)은 체류기간 제한이 없고 10년마다 국내 거주 중임을 신고하면 갱신된다. 이주민에겐 꿈의 비자다. 2019년 12월 기준 15만3291명이 영주권을 받아 체류 중이다. 점수제 거주(F-2-7) 비자를 가진 수잔의 경우 27가지 영주권 중 점수제 영주(F-5-16)가 현실적이었다.

한국 생활 10년에 한국인 뺨치는 한국어 실력, 다채로운 경력을 갖춘 그로서도 영주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득이 걸림돌이었다. F-5-16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전년기준)의 2배 이상을 요구한다. 2019년 GNI는 3532만원이었으니 수잔은 7064만원을 넘겨야 했다. 그해 임금노동자의 중위 월소득(234만원)을 감안하면 꽤 높은 기준이다. “회사 급여가 기준에 못미치는 걸 문제 삼더군요. 방송, 통역으로 번 돈은 쳐주질 않았어요. 모두 성실히 신고하고 세금도 냈는데도요. 세 번 신청했는데 다 거절당했죠.”

마지막이라 여긴 4번째에 거짓말같이 영주권이 나왔다. 공무원에게 ‘정말이냐’고 몇번이나 되물었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았단 생각에 여러 감정이 차올랐다. 영주권자가 된 지 약 1년,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하다. “이제 서류 준비도, ‘일이 없어지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안 해도 돼요. 제대로 살아야겠단 책임감도 생겼어요. 네팔 사람 받아줬더니 사고쳤단 말 나오면 안 되잖아요.”(웃음)

좁은 문, 누군가에겐 더 좁다

고학력에 다재다능함, 대중적 인기까지 갖춘 수잔도 ‘한국 정주’에 이르기까지 아찔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어야 했다. 다른 이주민들은 오죽할까. 이주노동자의 전형인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에겐 더 ‘좁은 문’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시케오(30)는 동료 이주노동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지난해 봄 비전문취업(E-9) 비자에서 외국인근로자숙련공(E-7-4) 비자로 갈아타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5년 이상 비전문취업 비자로 일한 이주민이 숙련도 등 요건을 충족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장기 체류 비자(2년마다 갱신)다. 2012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와 꼬박 9년 만이다. 그는 인천의 금속 공장을 거쳐 2018년부터 충북 음성에서 플라스틱 사출기술자로 일한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캄보디아인 아내와 2017년 가정도 꾸렸다. “비자 신청 서류가 복잡하고 저희 사장님도 경험이 없어 어려웠어요. 이 회사에서 일한 외국 사람이 많았는데 E-7으로 간 건 제가 처음이에요.”

케오는 계속 한국에서 일하며 머물고 싶어하지만 목표는 영주권이 아닌 거주(F-2) 비자다. E-7 비자로 한국에 5년 이상 거주하고 계좌에 3000만원 이상 잔액이 있어야 한다. 한국어능력시험과 사회통합프로그램(4급·4단계 이상)도 필요하다. “영주권까진 어려워요. F-5 받으려면 대학까지 다녀야 하는데 저는 중학교 2학년까지만 공부했거든요.” GNI 2배인 소득 기준도 현재로선 ‘넘사벽’이다.

흐릿한 비자 ‘지도’

한국의 비자·체류 관리 시스템은 이주민이 거의 없던 1960년대 만들어진 틀에 새 비자를 덧대는 방식으로 흘러왔다. 대분류로 36개(A~H), 세세하게 나누면 250여개에 달한다. 비자 종류가 복잡해지면서 이주민들은 적합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법무부 웹사이트 ‘하이코리아’는 만족도가 떨어진다. 이상욱 행정사는 “지도가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서 있는 상황”에 비유했다.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다 문제를 키우거나, 자신도 모르게 출입국관리법을 어기고 미등록 상태가 되기도 한다.

출입국 행정을 담당하는 법무부는 정부 부처 중 비공개 내부 규정이 가장 많다. ‘국가 안보’나 ‘국경 관리’ 같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지만, 이런 불투명성이 혼란을 키운다.

출입국 20년 근무 경력의 행정사 A씨는 “(비자 발급 등에 대한) 불허 기준은 명분이 분명하지 않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04년쯤 한국에서 20년 넘게 봉사한 수녀가 영주권을 신청했어요. 거절 명분이 없었는데 당시는 대만 화교를 빼면 요건 안 따지고 거의 불허하던 시절이라 그냥 이유 없이 불허했습니다.”

수시로 바뀌는 ‘체류 자격’ 매뉴얼…‘정주’까지 산 넘어 산

[5%의 한국]①서바이벌 ‘비자게임’-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출입국 규정, 자주 바뀌기로 악명
“담당자 따라 체류기간 달라지기도”
권위적·비일관적 대응 고질적 문제

60년대 만든 비자 시스템 덧대기만
‘저숙련 노동자 정주화’ 문턱 제거 등
정부, 개방적 이민 정책 마련하고
한국 사회 구성원에게 이해시켜야

한국의 체류관리 정책이 다양한 이주민의 삶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인이 밟는 전형적 경로가 비자 발급·연장·변경 등 절차에 그대로 녹아있다는 것이다.

[5%의 한국]①서바이벌 ‘비자게임’-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지난해 8월 전북대를 졸업한 지오바나 브라보말로(25·에콰도르·사진)가 그 전형에서 벗어난 사례다. 사회학 전공자로 인권에 관심이 많은 그는 현재 NGO 활동 중이지만 비자는 D-10(구직)이다. 학사 학위 이상 외국인이 구직 활동 시 최대 2년까지 받는 비자로 구직·인턴 활동만 허용된다. “대학 생활은 ‘전환의 시기’예요. 졸업 후 공부를 더 할지, 직장을 찾을지 고민이 필요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요.” 한국 정부가 유학생 유치에 골몰할 뿐 졸업 후 삶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비자가 만료되는 올가을 유럽으로 떠난다. ‘브리징(연계) 비자’로 과도기 중 체류를 보장하는 호주였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출입국 규정은 자주 변경되기로도 악명 높다. 하이코리아에는 사증·체류 자격 매뉴얼이 며칠 단위로 업데이트된다. 분량만 500쪽에 달하는데 한국어판만 있다. 출입국의 권위적이고 일관성 없는 대응도 이주민들을 떨게 한다. 결혼이민(F-6)자이자 대학원생인 B씨(32·일본)는 “출입국에 갈 때면 늘 긴장한다. 같은 조건이라도 담당자에 따라 받는 체류기간도 달라진다”고 했다. 피부색이나 출신국가, 체류자격에 따라 공무원들의 ‘친절도’가 달라지는 것도 여전하다.

[5%의 한국]①서바이벌 ‘비자게임’-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닫힌 ‘이민국가’의 문

비자 체계와 체류관리 시스템은 이주민들이 겪는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외국인 유입에 대한 정부의 철학과 정책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국만 체류 자격이 복잡하고 절차가 까다로운 것도 아니다. 이민정책연구원 최서리 박사는 “핵심은 이주민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수용할지 여부에 대한 입장”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한때 ‘이민 국가’임을 천명한 적이 있다. 2008년 제1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 ‘적극적 이민 허용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비전이 담겼다. 앞서 2006년엔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문화정책이 시작됐다. 중국과 구소련 지역 동포들을 위한 방문취업(H-2) 비자가 도입된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2013년 2차, 2018년 3차 기본계획을 거치며 ‘이민 허용’을 ‘국민이 공감하는 질서 있는 개방’이 대체했다. 이주민에 대한 여론 악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우수인재’에 대한 적극적 영입이다.

그런데 우수인재들은 한국 생활에 만족할까. 대학 교수 C씨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한국행을 택했다. 착각이었다. 장애인복지법은 재외동포(F-4), 영주권자(F-5), 결혼이민자(F-6), 난민인정자(F-2)만을 장애인 등록대상으로 하고 있어 그의 아이는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우수인재가 혼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우수인재를 받겠다면서 자녀는 지원하지 않으면 누가 오겠어요?”(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연구위원)

외국인 투자자도 정부가 반기는 대상이다. D-8(투자) 비자는 국내 투자 1억원 이상 등 조건을 충족하면 받을 수 있다. D-8-4(기술창업) 비자 소지자인 웨이옌 툰(22·미얀마)은 국내 진출 해외 기업을 상대로 한 컨설팅 업체를 운영한다.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주관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에 입상, 정부 투자를 받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역시 불안을 느낀다. 영주권을 받으려면 비자가 만료되는 3년 뒤 ‘매출 3억원과 한국인 직원 2명 풀타임 고용’ 등의 조건을 맞춰야 한다. 일정 소득을 내지 못하면 한국에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특히 코로나19로 외국인 자영업자들은 체류자격마저 흔들리는 이중고를 겪는다.

‘저숙련 노동자’의 정주화는 이주민 정책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노동자의 단기순환 원칙을 통해 이들의 정착을 막아왔다. 노동력은 활용하되 장기체류에 따른 각종 사회적 부담은 피하려는 의도였다.

2017년 숙련기능 외국인 점수(E-7-4) 비자 신설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받았다. 까다롭긴 해도 저숙련 노동자도 노력하면 장기 거주(F-2)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둔 것이다. 지난해 1250명이 E-7-4 비자를 받았고, 2025년까지 연간 쿼터가 2000명으로 늘어난다.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농어업 이민비자’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계절근로자 등이 농어업 분야에서 5년간 일하면 정주 가능한 비자를 준다는 게 골자다.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는 “정부가 저숙련 노동자를 이민 형태로 받아들이겠다고 한 첫 공식 선언이자 개방적 이민정책으로의 첫 신호”라고 했다. 그러나 정책 선회라기보다는 ‘일손 부족’ 호소 민원에 부응한 성격이 아직 강해 보인다.

하지만 캄보디아인 케오가 운 좋게 거주(F-2) 비자를 받는다 해도 수잔처럼 취업이 자유로워지진 않는다. 같은 거주비자라도 E-7-4에서 넘어온 경우 직종 변경이 제한된다. 그는 영주권을 받지 않는 한 사출 성형 기술자로만 일해야 한다. 그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과 잠재력이 발휘될 기회는 없다.

‘비자’라는 이데올로기

영국의 경제학자 폴 콜리어는 <엑소더스>에서 “이주가 좋은가 나쁜가는 틀린 질문”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상적인 정도”라고 했다. 그럼 현재 한국으로의 이주 행렬은 이상적인 수준인가. 전문가들은 쉬이 답을 내리지 못한다. 이주민 유입의 적정 규모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첫발도 떼지 못했다.

다만 한국이 이민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한국은 아시아의 주요 이주 목적국이 된 지 오래다. 2017년 생산가능인구 감소도 시작됐다. 정기선 전 이민정책연구원장은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개방적 이민 정책의 필요성을 한국 사회 구성원이 이해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비자·체류관리 정책도 손질이 필요하다. 한국행정연구원 정동재 연구위원은 “제도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투명성을 높이고, 이주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선주민과 공존할 수 있도록 ‘통합의 가치’를 시스템에 녹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비자 취득 문턱을 높인 채 ‘고급 인력’만 골라 받으려는 정책이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많았다. “받고 싶은 사람만 쏙쏙 골라 받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최계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것이다. 김연홍 한국행정학회 이사는 조건을 갖춘 저숙련 노동자의 정주 가능성을 높이는 ‘희망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E-9 노동자의 E-7-4 전환 비율(약 0.5%)은 턱없이 낮고 수요 조사도 주먹구구인 게 현실”이라며 “직종별 부족 인력 리스트를 작성하고 전환 비율을 인구 대비 이주민 비율인 5%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등록 체류’의 유인을 줄이기 위해 본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에게 공적개발원조(ODA) 차원의 취·창업 지원을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김철효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주를 밸브처럼 열었다 잠글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큰 착각”이라며 “비자 체계는 이주·이동 패턴의 실제 현상을 못 따라가는 이데올로기에 가깝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주민 정책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해묵은 ‘이주민 건보 무임승차론’을 꺼내 혐오에 기름을 부었다. ‘이민처(청)’ 설립 논의는 오래도록 답보상태다.

‘K’를 함께 만드는 사람들

지난 6~9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WDS) 한국관에는 ‘K방산’ 대표 업체가 총출동했다. 회사를 대표해 날아간 이곳에서 수잔은 바이어들을 상대로 자사 낙하산 제품을 홍보했다. 베트남·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한 땀 한 땀 재봉한 ‘메이드 인 코리아’ 낙하산은 네팔 사람 수잔을 통해 세계로 팔려나갔다. 과연 수잔이 다니는 회사만 그런 것일까.

[5%의 한국]①서바이벌 ‘비자게임’-당신은 이들의 이웃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
■기획취재팀 배문규·김원진·최민지(스포트라이트부) 이두리(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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