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보호받지 못하는 몸-혐오정치가 내세운 ‘이주민 무임승차론’

배문규 기자

출국유예 해놓고 건보자격 뺏는 칸막이 행정에 ‘수천만원 날벼락’

중국동포 원옥화씨가 지난달 7일 평소 장을 보러 다니는 시장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원씨는 코로나19로 출국유예 상태가 됐지만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해 병원비 등 3600만원을 내야 하는 처지다. 그는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왔다며 “억울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강윤중 기자

중국동포 원옥화씨가 지난달 7일 평소 장을 보러 다니는 시장에서 사진촬영에 응했다. 원씨는 코로나19로 출국유예 상태가 됐지만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해 병원비 등 3600만원을 내야 하는 처지다. 그는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왔다며 “억울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강윤중 기자

중국동포, 코로나 속 비자 만료
건보공단, 규정 없다는 이유로
“부담금 내라” 체납 고지서
이주민 5만여명 비슷한 처지

수백번은 접었다 펼친 듯 고지서가 닳아 인쇄된 글씨들이 흐릿했다. 건강보험공단 ‘기타징수금고지서’ 귀퉁이에 적힌 ‘부당이득금(연체금 부과 대상) 34352570원’. 코로나19로 한국에 발이 묶인 동안 치료받은 대학병원 진료비와 약값이다.

지난 3월7일 서울 독산동에서 만난 중국동포 원옥화씨(59)는 “평생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내라는 날벼락 같은 통지가 믿기지 않는 듯 “억울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젖은 눈을 비비는 주름진 손에서 고단함이 묻어났다. 원씨는 2014년 방문취업(H-2)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뒤 공장과 식당일을 번갈아 가며 생활해왔다. 2017년 난소암으로 수술을 받았으나 2020년 2월 암이 재발했다. 만기된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중국에 다녀와야 할 참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출국유예 조치를 받았다. 항암 치료를 받고 2021년 2월 중국으로 출국했다. 그해 6월 돌아온 집에서 마주한 것이 3435만원짜리 체납 고지서였다.

원씨는 공장에 다닐 때는 직장가입자로 보험료를 냈고, 2019년 7월 외국인 지역가입이 의무화된 이후에는 매달 보험료 12만~13만원을 빠짐없이 납부해왔다. 출국유예 동안에도 보험료를 냈다. 출입국·외국인청은 원씨의 건강보험 자격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런데도 공단은 ‘출국유예를 받았지만 비자 기한이 만료됐으니 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상실했다’고 통보했다. ‘국민건강보험 시행규칙’에 출국유예 관련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다. 납부한 보험료는 돌려줄 테니 치료비에 대한 공단 부담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법무부의 출국유예 조치는 고려하지 않은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의 전형이다.

원옥화씨가 새로 받은 건강보험공단의 ‘독촉 고지서’에 3435만2570원의 납부금액이 선명하다. 강윤중 기자

원옥화씨가 새로 받은 건강보험공단의 ‘독촉 고지서’에 3435만2570원의 납부금액이 선명하다. 강윤중 기자

원씨는 공익 재단법인 동천의 도움을 받아 공단을 상대로 부당이득금환수고지처분취소소송을 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연체이자를 더한 3600만원을 매달 100만원씩 나눠 낸다. 월 보험료 13만9870원(2022년 기준)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체납하면 강제 출국되기 때문이다. 친지들의 도움으로 겨우 석 달치를 냈지만, 일을 할 수 없는 몸상태여서 얼마나 버틸지 기약하기 어렵다. 원씨와 비슷한 처지의 이주민이 파악된 것만 5만5731건(동천 권영실 변호사, 2020~2021년 8월)이었다.

이주민들은 언어 제약, 정보 부족, 낮은 경제적·사회적 지위 등으로 건강권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2019년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내·외국인 간 형평성을 높인다”며 건강보험제도를 개편했다. 그로부터 3년, 비싼 보험료를 내지 못해 독촉고지서나 압류통지서를 받고 의료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건강보험료를 납부해야 체류자격이 유지되도록 제도가 바뀌면서 보험료를 내기 위해 빚을 지는 일까지 벌어진다. 진료비 부담 없이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만들어진 건강보험제도가 이주민에게는 건강권 보장은커녕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징수율 90.7%의 의미

[5%의 한국]③보호받지 못하는 몸-혐오정치가 내세운 ‘이주민 무임승차론’

“2월에 F-4(재외동포) 비자를 받았어요. 집에서 부품 조립하는 부업을 시작했고요. 앉아서 할 수 있는 공장 일을 찾아보고 있어요.”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최올가씨(45)는 오빠들을 따라 2019년 한국에 왔다. 지난달 7일 인천 연수구의 고려인 밀집지역 함박마을에서 만난 최씨는 하반신 장애로 노동이 어려워 두 오빠 도움으로 생활한다.

한국에 온 뒤 마음 한쪽을 짓누르는 건 부담스러운 건강보험료다. 지난해 작은오빠가 공사장에서 다쳐 일을 못하는 동안 큰오빠가 형제들의 보험료를 모두 부담했다. 외국인 지역가입자는 형제라도 각기 따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세 명이면 보험료가 매달 40만원이다. 월세에 생활비도 빠듯한 형편에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인천여성가족재단이 2020년 고려인 전체 가구 소득을 조사해보니 ‘100만~200만원 미만’ 38.0%, 200만~300만원 미만’ 35.3%였다. 김진영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 공동대표는 “설문조사 결과 고려인 65%가 보험료를 밀린 경험이 있었다”며 “다치기라도 하면 생계를 넘어 체류까지 위협받는다”고 했다.

직장가입 외국인들은 내국인과 차이가 없다. 문제는 지역가입자다. ‘외국인 건보 가입 확대’라는 방향 자체는 바람직했다. 하지만 보험료 부담 때문에 가입을 꺼리던 외국인들을 의무 가입시키면서 과도한 제재 등 내국인에 비해 제도가 차별적으로 바뀐 것이 문제를 낳고 있다.

우선 영주(F-5), 결혼이민(F-6)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가입 외국인들은 소득·재산이 적더라도 전년도 평균 보험료 이상을 내도록 제도가 변경됐다. 내국인은 섬·벽지·농어촌 거주자, 노인, 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 대해 보험료를 경감해주지만, 이주민은 경감 기준이 유학·연수 등 ‘체류 자격’이어서 경제사정이 고려되지 않는다. 소득이 없는 이주민도 매달 13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세대원 범위도 좁다. 내국인 지역가입자는 세대별 주민등록표에 등재되면 누구나 세대원이 된다. 반면 이주민은 배우자와 미성년자 자녀만 세대원이 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자격이 부여되는 최소 체류기간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났다.

체납에 대한 제재도 과도하다. 이주민 지역가입자는 다음달치 보험료를 전달 25일까지 미리 납부해야 하고, 한번이라도 내지 못하면 미납분을 채워넣을 때까지 보험적용을 받을 수 없다. 완납해도 보험 급여를 소급해 받을 수 없다. 건강보험료를 50만원 이상 체납한 이주민은 분할납부를 시작해야 체류연장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반면 내국인은 보험료가 6회 체납될 때까지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고, 급여 제한이 되더라도 보험료를 1회만 다시 내면 제한이 풀린다. 체납 보험료를 내면 부당이득 환수도 면제받는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소득이 많은 사람은 많이, 적은 사람은 적게 보험료를 부담하고 혜택은 동등하게 받도록 하는 건강보험의 사회연대 원칙이 외국인에 대해선 허물어졌다”고 했다.

본인과 미성년 형제자매 4명이 모두 보험료를 따로 내야 하는 20대 청년 가장, 수술 후 생계가 곤란해 받은 긴급지원금으로 보험료부터 납부한 50대 남성, 아파도 체류자격을 잃을까봐 보험료만 간신히 내고 병원에는 못 가는 싱글맘 등 건강권을 위협받는 사례가 속출했다. 제도가 바뀐 이후 이주민 지역보험료 징수율은 2019년 67.5%에서 2021년 90.7%로 급격히 높아졌다. 김 연구위원은 “경제적으로 곤란한 이주민조차 생계보다 보험료를 우선해야 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가혹한 숫자”라고 말했다.

혐오정치가 내세운 ‘이주민 무임승차론’

2019년 외국인 건보제도 개편
보험료 납부해야 ‘체류’ 가능
병원 이용 못하고 빚까지 져
건강권 보장은커녕 생계 위협

이주민 차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건강보험이 개편된 것은 이주민들이 내는 보험료에 비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는 근거 없는 인식 탓이다. 정치권은 이런 오해들을 증폭시킨다. 정부는 오해를 풀려는 노력은커녕 여론에 떠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가 2019년 건강보험제도 개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유세 과정에서 ‘건강보험 무임승차론’을 꺼내들었다.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내국인 표심을 잡기 위해 이주민 혐오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페이스북에도 다음과 같이 썼다. “외국인 건강보험 급여지급 상위 10명 중 8명이 중국인”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린 중국인은 피부양자 자격으로 약 33억원의 건보급여를 받았으나 약 10%만 본인이 부담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외국인 건보 재정은 흑자다. 2020년 한 해 동안 국내 거주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는 1조4915억원이지만, 건보공단이 지급한 급여비는 9200억원으로 재정수지 흑자는 5715억원에 달했다. 2017년부터 4년간 누적 흑자액은 1조4095억원이다. 일하느라 아파도 참고, 언어로 인한 소통 문제가 걸려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한 외국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이주민 단체들은 “외국인들이 몸을 망쳐가며 건강보험 적자를 메워주는데도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탄식한다.

법무부 이주민 통계에서 44%로 비중이 가장 높은 중국인(중국동포 포함)들은 정주한 지 오래돼 50세 이상 인구가 많다. 이주민 중 아픈 사람 순위에 중국인이 많은 까닭이다. 최고급여자로 지목된 60대 중국남성 혈우병 환자는 32억9501만원 상당의 보험급여를 받았지만, 본인도 3억3200만원을 부담했다. 상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중병을 앓은 것뿐인데 합당한 비난일까.

■내국인과 과도한 차별…근거 없는 ‘이주민 무임승차론’이 부추겨

고려인 최올가씨가 지난달 7일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에서 사진 촬영에 응했다. 장애가 있어 노동이 어려운 최씨는 오빠들의 도움으로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최씨에게 매달 건강보험료 13만원은 부담이 적지 않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고려인 최올가씨가 지난달 7일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에서 사진 촬영에 응했다. 장애가 있어 노동이 어려운 최씨는 오빠들의 도움으로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최씨에게 매달 건강보험료 13만원은 부담이 적지 않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내국인 취약계층 보험료 경감
이주민 소득 없어도 월 13만원
체납 즉시 보험적용 ‘올스톱’
내국인과 달리 완납 후 소급 안 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제도에서 외국인은 ‘차이’를 둬야 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외국인은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짧아 보험재정에 기여가 적다는 것, 외국인은 소득·재산 파악이 어렵다 보니 보험료를 상대적으로 적게 부담할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 해이’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재미동포나 중국동포들이 일시 가입(입국)해서 단기간 소액의 보험료만 내고 고액진료를 받은 뒤 탈퇴(출국)하는 경우가 있었고, 건강보험증을 대여·도용하는 부당수급도 없진 않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본국에서 형편이 넉넉했다면 굳이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올 이유가 있을까. 본국의 소득·재산이 많은 이도 드물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해외 소득·재산 파악이 어려운 것은 한국인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주민들의 정주(定住)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정주형 체류자격인 ‘재외동포·영주·결혼이민·거주’와 그 가족은 2020년 현재 전체 이주민의 55.3%에 달한다. 방문취업(12.2%)도 체류자격 갱신 횟수 제한이 없는 만큼 ‘정주’의 성격이 강하다(2020년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 정부의 인식에는 국내 거주 이주민 중 3분의 2가 정주화하고 있는 현실이 반영돼 있지 않다.

정지숙 이주민과함께 상임이사는 “예전엔 독신 이주노동자들의 산재가 많았지만, 이주민이 다양해지면서 산부인과, 소아과 질환이 늘고 최근에는 만성 질환도 증가하고 있다”며 “체류 기간이 늘면서 의료 문제도 생애주기형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부산에서 메디나(가명)가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버지와 카자흐스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등록, 어머니는 미등록 노동자였다. 메디나는 탈장이 의심돼 바로 입원이 필요했지만 아버지는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 보험료를 체납한 상태였다. 밀린 보험료를 내더라도 소급적용을 받을 수 없다. 짧은 기간 입원했는데도 병원비가 700만원이나 나왔다. 메디나를 출생신고한 뒤 단독 세대로 보험에 가입시켜 겨우 병원비를 해결했다. 의료보험이 없는 외국인은 일반보험보다 몇 배 높은 국제수가가 적용된다. 종합병원 인큐베이터 치료라도 받으면 병원비가 수천만원으로 뛴다.

“내·외국인 간 형평성” “국민과 역차별 해소”를 강조하는 정부의 설명에는 내·외국인 간에 구분이 가능하며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결혼 외에도 한국인과 외국인이 다양하게 얽히는 혼합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누가 떠날 사람이고 남을 사람인가.

베트남 국적의 A씨는 국제결혼을 한 딸이 낳은 손주를 돌보러 한국에 왔다. F-1(방문동거) 비자로 입국한 그는 한국인 사위의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출국유예로 2021년 5월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했다. 허리와 관절이 좋지 않은데도 병원에 갈 수 없어 진통제로 버텼다. 보다 못한 사위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를 분류해보면 2020년 7월 기준 직장가입자가 48만6237명, 피부양자는 19만7098명이다. 피부양자 중 내국인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된 사람이 8만3268명(42.2%)에 달한다. A씨 같은 가족이 절반이나 된다는 의미다.

이주민 인권단체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건강보험제도에서 내국인과 차이를 두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는 기준 완화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현수엽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전 국민이 보험료를 내고, 한국 직장가입자들이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보험제도 전체를 끌고 가기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외국인들이 건강보험을 이용하는 데 대한 민원도 많이 들어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강권과 시민권의 경계

재외동포·이주결혼 등 정주화
세금·분담금 등 경제적 기여
초국적 이주 늘어나는 시대
‘새로운 시민권’ 정립할 필요

“2000년 직장건강보험과 지역건강보험 통합 이전에도 지역가입은 영세자영업자나 불안정노동자, 비경제활동 인구가 많았습니다. 직장가입은 흑자, 지역가입은 내국인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죠. 사회연대인 건강보험은 풀(pool)을 넓혀 제도 안정성을 높이도록 설계된 것이죠. 국적으로 차별할 이유가 없습니다.”(김선 시민건강연구소 센터장)

건강보험 ‘먹튀’ 논란은 지역가입 외국인 적자가 수천억원에 달한다는 공격에서 시작했다. 현장 활동가들은 2017년 ‘문재인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이후 건보적자 논란이 커진 틈을 타 ‘얌체 외국인’ 프레임이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직장·지역가입 구분 없이 통합수지만 공개하는 관행을 깨고 외국인 가입자의 자료만 분리해 문제 삼는 정치권의 행태는 온당한 것인가.

지역가입 외국인을 갈라치기하는 데는 외국인을 ‘노동력’으로만 보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배제의 논리가 내국인 약자에게는 향하지 않을까. ‘차별의 정치’는 또 다른 배제를 낳는다. 김 센터장은 “복지의 ‘자격’을 따지는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주민도 노인, 장애인, 취준생 등 다양한 형태들이 있고, 내·외국인 누구나 열악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포용적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19는 내·외국인의 경계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정부는 방역을 위해 외국인도 백신 접종 대상에 포함시켰지만, 재난지원금은 ‘국민’에게만 지급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외국인들은 마스크 구입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지자체들은 외국인의 코로나19 검사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가 비판이 일자 취소했다. 보건소가 선별진료소로 바뀌면서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한동안 일반 병원에서 수만~수십만원을 내고 필수 예방접종을 받아야 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외국인노동자의 권리 설문조사 결과 ‘안전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 권리’(62.5%),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70.6%),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권리’(72.0%) 등에선 동의하는 응답이 높았으나, ‘복지급여 지급’(32.4%)이나 ‘재난지원금 지급’(26.5%) 등은 동의 비율이 낮았다. 김기태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사회 제도나 질서는 선주민들이 쌓아올린 것이기에 이주민이 와서 누리는 데 대한 거부감이 전혀 근거 없다고 볼 순 없다”며 “외국인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국가는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보편적 권리’(T H 마셜)라는 명제 위에 성립했다. 이 명제는 20세기 후반부터 한계를 드러냈다. 초국적 이주가 늘면서 시민(국민)의 틀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들이 늘어난 것이다. 중국동포, 고려인,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등이 그들이다. 5% 이주민을 포괄하는 ‘시민권의 재구성’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이 왔다.”(막스 프리슈, <시아모 이탈리아니>)

외국인 건강보험 논란은 시민권의 범위에 대한 질문과 닿아있다. 그들도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세금과 부담금을 내며 경제적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적어도 ‘국민’이 아니어서 건강을 해치거나 생명을 잃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미선 희망의친구들 상임이사는 “한국의 해외 원조도 늘어나고 아프리카·아시아 아동들과의 일대일 결연 사업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반면, 국내에서 출생해 자라는 이주아동들이 단지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방치되고 죽어가도 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미등록 이주아동은 의료접근권이 제한돼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52%(2019년 경기도 실태조사)에 달한다. 김미선 상임이사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얀마 출신 결혼이주여성 이주희씨(54)는 경계를 넘는 사람이다. 1996년 한국에 온 그는 20년 넘게 이주민 의료 지원 활동을 벌여왔다. “코로나19에 걸렸는데도 일하라고 해서 난리난 적도 있고, 체류 연장 동안 아이가 생겨 곤란해진 커플도 있었고, 요즘은 자살 사례도 들려와요. 낮밤 교대 근무도 힘든데 대화할 사람은 없지, 집에 전화하면 돈 얘기만 하고, 그러다 애인이랑 헤어진다든지 문제가 생기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거죠.”

그가 사비를 털어가며 이주민들을 돕는 이유가 뭘까. “나도 잘 모르겠어(웃음). 엠퍼시(empathy·공감)인 거 같아요. 외국인들 아파도 일해야 해요. 어떤 사장님은 내가 병원에 직원을 데려갔다고 욕을 해요.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해야 하잖아요. 사장님이 필요로 해서 일하러 온 것뿐인데 이상하지 않나요.” 이씨는 의료지원 경험을 살려 연세대 상담코칭학 석사를 마치고 하버드대 연수프로그램을 이수했다. 하지만 그의 피부색은 때때로 차별의 이유가 됐다. 2016년 한양대에서 다문화교육 박사 과정을 시작한 것도 “한국인의 마인드셋(사고방식)을 바꿔보고 싶다”는 결심 때문이다.

“한국에선 ‘나’의 남편이 아니라 ‘우리’ 남편이라고 하잖아요. 우리라는 표현을 쓰면서 왜 함께 잘 살자는 마음은 없죠. 한국은 차별을 넘어서면 더 큰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아니에요. ‘We are different, but We are the same’(우리는 다르면서 똑같다).”

[5%의 한국]③보호받지 못하는 몸-혐오정치가 내세운 ‘이주민 무임승차론’
■기획취재팀 배문규·김원진·최민지(스포트라이트부) 이두리(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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