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인권위 향해 연일 각 세운 이준석…시민사회 “인권위 흔들기 안돼”

박하얀 기자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이준헌 기자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이준헌 기자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장애인 출근길 시위 비판에 앞장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번에는 국가인권위원회를 향해 “아무데나 ‘혐오’ 딱지를 붙인다”며 공개 비판에 나섰다. 시민사회는 이 대표의 발언이 이명박 정부 당시와 같은 ‘인권위 흔들기’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경계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라는 말을 한 <82년생 김지영> 작가의 말을 지적했다고 해서 인권위에서 여성혐오라고 했다고 하네요”라며 “(인권위가) 아무데나 혐오 발언 딱지 붙여서 성역을 만드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권위가 지난해 11월 발행한 <혐오차별 대응하기> 책자에서 이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발언(“여성혐오나 차별은 망상에 가까운 소설·영화를 통해 갖게 된 근거없는 피해의식”)이 ‘여성·페미니스트에 관한 혐오 표현’으로 실린 것을 접한 데 대해 뒤늦게 내놓은 입장이다.

인권위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외치며 출근길 시위에 나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에 조력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이 대표는 박진 인권위 사무총장 등이 전장연 삭발식 현장을 찾아 “이 대표 발언의 사회적 영향을 살피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인권위에서 이준석이 장애인 혐오를 했다고는 말 못하니 무슨 사회적 영향을 밝히겠다고 하는지 기대합니다만 신속하게 해주셨으면 한다”고 썼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는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그 역할을 하기 위한 인권위의 정당한 활동”이라며 “인권위를 주춤하게 만들려는 노림수라고 생각한다. 인권위를 공격하라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말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인권위가) ‘살펴보겠다’는 건 일반적인 말인데, (이 대표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면서 결국 자신이 얻고 싶은 정치적 이익만 좇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행한 <혐오차별 대응하기> 책자 갈무리.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행한 <혐오차별 대응하기> 책자 갈무리.

인권위는 현행법상 입법·사법·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국가기구로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감시 기능을 한다. 앞서 인권위는 “선천적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는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언이나 “절름발이 총리”라고 한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이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라고 판단해 시정을 권고했다. 정부부처에서 법에 명시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시민들의 권리가 침해되면 이를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됐던 ‘인권위 길들이기’와 비슷한 데자뷔(기시감)가 느껴진다는 진단도 나온다. 2008년 1월 이명박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되며, 지나치게 격상된 조직의 위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며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기구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인권활동가들의 노숙 농성에 이어 유엔 인권최고대표실이 우려 서한을 보내는 등 국내외 여론이 나빠지면서 무위에 그쳤다. 대신 이명박 정부는 이듬해 인권위 조직을 21% 감축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경찰청과 청와대 등이 나서 인권위 조직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가 하면, 전임 안경환 위원장이 사실상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물러난 뒤 인권에 문외한인 법학자를 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기구 무력화를 끊임없이 진행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시민사회는 인권위가 보다 강력하게 정치인의 발언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명숙 활동가는 “(정치인의) 혐오 발언에 인권위가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며 “인권위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국제인권기준을 견지해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권이 ‘입장 차이’인 것처럼 말하는 정치인들의 몰지각한 행동을 제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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