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볕에 우거지···꿈도 못 꿨었죠" 동작구 미소주택 박 할머니의 행복

이성희 기자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들어선 어르신 전용 ‘미소주택’은 구립어린이집을 새로 지으면서 그 위에 공공주택을 공급한 복합건물이다.|동작구 제공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들어선 어르신 전용 ‘미소주택’은 구립어린이집을 새로 지으면서 그 위에 공공주택을 공급한 복합건물이다.|동작구 제공

‘지자체 최초’ 동작구가 직접 지은 공공주택
교통 편한 곳에 안전·단열 강화한 설계·시공
반지하·옥탑 전전하던 홀몸어르신들 맞춤형

서울 동작구 대방동 ‘미소주택’에 사는 박신영 할머니(72)는 지난 1일 집 발코니에 배추 우거지 한 무더기를 널어놨다. 햇볕이 강한 것 같아 우산도 펴뒀다. “햇빛이 그리웠어요.” 반지하에 살던 두달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젠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벌레를 잡지 않아도 되고, 천장 모서리에 쳐진 거미줄을 치우지 않아도 된다. 여름에는 비가 새고 겨울에는 세탁기가 얼어터질 걱정도 사라졌다. 지난 2월 이곳에 입주하면서 할머니에게 찾아온 변화들이다.

미소주택은 동작구가 자체적으로 공급해온 공공주택 중 하나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인 저소득 홀몸어르신에게 공급한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미소주택은 어르신들의 특성을 고려해 안전과 냉난방 등에 신경써 설계·시공했다. |동작구 제공

서울 동작구 대방동 미소주택은 어르신들의 특성을 고려해 안전과 냉난방 등에 신경써 설계·시공했다. |동작구 제공

반지하에 사는 지난 6년간 박 할머니는 빨래를 꼭 냉장고 옆에서 말렸다. 방이 워낙 눅눅해 냉장고 돌아가는 열기에라도 빨래를 말려야 했다. 반지하 전에는 옥탑방에서 5년을 살았다. 옥탑방은 햇볕도 잘 들고 빨래도 잘 말랐지만, 할머니에게 4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은 곤욕이었다.

가정폭력을 당해 집을 나온 지 30년. 교회 기도실과 고시원 등을 전전하며 지낸 그가 서울에서 번듯한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영구임대주택과 국민임대주택 등에도 신청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동작구가 자치구 단위에서 공공주택을 직접 선보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중앙정부에서 공급하는 공공주택만으로는 당장 취약한 주거환경에 놓인 주민들을 돕는 데 한계가 있었다. 동작구는 2015년 상도3동 모자안심주택 26가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동작구형 공공주택’ 440가구를 공급했다. 185가구 추가 물량도 확보해둔 상태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미소주택’에 사는 박신영 할머니가 발코니에서 배추 우거지를 말리고 있다. |동작구 제공

서울 동작구 대방동 ‘미소주택’에 사는 박신영 할머니가 발코니에서 배추 우거지를 말리고 있다. |동작구 제공

특히 박 할머니가 거주하는 대방동 미소주택은 동작구가 자체 건설했다. 기초지자체가 직접 지어 공급한 공공주택은 전국 처음이다. 동작구는 2017년 상도4동 27가구에 이어 지난해 사당4동과 대방동에 각각 18가구, 22가구 미소주택을 홀몸어르신에게 공급했다.

대방동 미소주택은 구립어린이집을 새로 지으면서 지상 6층 규모 건물을 함께 올린 복합형태다. 모두 전용면적 21~25㎡ 원룸형으로, 법정 1인가구 최저주거면적(14㎡)보다 넓은 평수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10일 “공공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주관하는 사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니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자치구 단위에서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공공주택을 어린이집이나 경로당 등과 결합해 가능한 일이었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 ‘미소주택’은 어르신 전용 공공주택인 만큼 화장실 양변기 옆에 안전 손잡이를 설치했다. |동작구 제공

서울 동작구 대방동 ‘미소주택’은 어르신 전용 공공주택인 만큼 화장실 양변기 옆에 안전 손잡이를 설치했다. |동작구 제공

미소주택은 어르신들 특성을 고려해 안전과 냉난방에도 신경썼다. 화장실 바닥에도 보일러가 들어오며 양변기 옆에는 안전 손잡이를 설치했다. 주방에는 가스렌지 대신 인덕션(전기레인지)을 구비했고, 단창 구조였던 발코니 창문 샷시도 최근 이중창으로 전면 교체했다. 어르신들이 이웃과 함께할 수 있도록 툇마루가 있는 커뮤니티 시설도 갖췄다. 이곳에서는 영화상영과 꽃꽂이, 치매검진 등 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모든 미소주택에는 어르신들의 생활을 돕는 주택 관리 보조사가 상주한다.

어르신들을 위한 공공주택이라고 조용하고 외진 곳이 아니라 시끌벅적 활기를 띠는 곳에 위치해있다. 지척에 성대시장과 지하철 7호선 신대방삼거리역 등이 있다. 박 할머니는 “외롭고 답답할 때 동네를 한바퀴 돌며 바쁘게 사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작구 내 공공주택 비율은 7% 수준에서 현재 8.7%로 늘었다. 구는 이를 2025년까지 10%로 늘릴 계획이다. 이 청장은 “공공주택은 흔들림없는 철학과 의지가 수반돼야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앞으로도 어르신과 모자가정, 청년층까지 소외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희망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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