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람! 1만km의 등교길(상)

바닷가 공업도시에 아프간 꼬마들 벚꽃처럼 왔고요

울산|조해람 기자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에 항복했다. 탈레반은 외국인과 관계된 모든 것을 부수려 했다. 한국에 협력한 아프간인들도 고국을 탈출해 한국에 왔다. 진천과 여수를 거쳐, 157명이 지난 2월 울산에 정착했다. 전례없는 대규모 이주에 모두가 허둥댔다. 학교 배정을 둘러싼 갈등도 컸다. 그러나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설득과 이해로 울산은 천천히 이들을 이웃으로 품고 있다.
어른들이 소란한 동안 아이들은 국경·인종을 뛰어넘어 친구가 됐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함께 뛰노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오히려 배운다. 남도의 공업도시, 이른 봄과 함께 찾아온 꼬마들은 오늘도 학교에 간다.

지난 5일, 울산 동구 한 도로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중·고등학생 자녀들이 각자의 학교로 등교하고 있다. 특별기여자 29가구 157명은 지난 2월7일 울산에 정착했다. 정착 초기 갑작스런 이주에 놀란 반발 여론은 지역사회 일원들의 노력으로 서서히 누그러들었다. 울산 동구 주민들은 이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5일, 울산 동구 한 도로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의 중·고등학생 자녀들이 각자의 학교로 등교하고 있다. 특별기여자 29가구 157명은 지난 2월7일 울산에 정착했다. 정착 초기 갑작스런 이주에 놀란 반발 여론은 지역사회 일원들의 노력으로 서서히 누그러들었다. 울산 동구 주민들은 이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다. 한수빈 기자

벚꽃과 튤립

따듯한 곳에서 벚꽃은 조금 더 일찍 핀다.

4월의 초입인 지난 6일 울산 동구 서부동에서는 연분홍색 벚꽃이 골목마다 넘실거렸다. 해가 뜨는 동쪽 해안가 현대중공업 단지로 어른들이 이미 출근한 오전 8시30분쯤, 고요하게 내리는 아침 햇살에 아파트단지 외벽의 빛깔이 천천히 선명해졌다. 자동차 몇 대가 부릉 소리를 내며 느긋하게 1차선 도로를 지나갔다.

동구시니어클럽 소속 안모씨(78)는 여느 평일처럼 개나리색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섰다. 스쿨존 등교봉사에 쓰는 노란색 작은 깃발을 든 채 클럽 회원들과 서부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몸을 풀었다. 조금 있으면 남쪽으로 난 큰길을 따라 동네 아이들이 등교할 것이었다. 두 달 전 이 동네에 정착한 28명의 아프가니스탄 꼬마들도 그때쯤 아래쪽 삼거리에 나타난다.

지난 6일 아침 울산 동구 한 아파트에 아프간 특별기여자 초등학생 자녀들이 함께 등교하기 위해 모여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6일 아침 울산 동구 한 아파트에 아프간 특별기여자 초등학생 자녀들이 함께 등교하기 위해 모여 있다. 한수빈 기자

서부초 남동쪽으로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 언덕 위 5층짜리 아파트 한 동에 꼬마들은 살았다.

아침이 되자 전나무 그늘이 드리운 아파트 앞마당으로 잠이 덜 깬 아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핑크색 패딩을 좋아하는 파르니안도, 수줍음 많은 자이라도 똑같은 데상트 가방을 매고 모인다. 교복에 히잡을 쓴 언니들과 곱슬머리 형들은 30분 전 각자의 중·고등학교로 출발했다. 모두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28명의 꼬마들은 재잘대며 꺄르륵댔다. 유치원생 동생들은 50㎝ 높이의 돌화단을 오르내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중고생 등교 인솔을 마친 출입국관리소 정씨 아저씨가 아파트 동쪽 저편에 모습을 보일 때쯤, 히잡을 쓴 인솔당번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손짓한다. 어머니들을 따라 아이들은 아파트 서쪽 좁은 내리막길을 조심히 내려가 큰길로 향했다. 이맘 때 아프간 들판을 가득 메우는 튤립 대신, 흐드러진 울산 벚꽃나무 아래로 아이들이 한 줄로 걷는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할아버지와 하늘색 GS25 편의점 간판, 휴대폰으로 봄 벚꽃을 찍는 청년을 지나 삼거리 횡단보도를 건넜다. 삼삼오오 등교하는 한국 아이들과 아프간 아이들 행렬이 만나는 지점이다. 오전 8시50분, 두 언어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머리 위로 벚꽃잎이 날렸다.

살구색 작은 학교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한 꼬마가 서툰 한국어로 안씨에게 인사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 외국 꼬마들이 안씨는 손주 같다. 스쿨존 제한속도 ‘30’ 딱지를 가방에 단 아이들은 줄지어 교문을 지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지난 6일 아침 울산 동구 서부초등학교로 등교하는 아프간 특별기여자 초등학생 자녀들이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등교는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인솔한다. 한수빈 기자

지난 6일 아침 울산 동구 서부초등학교로 등교하는 아프간 특별기여자 초등학생 자녀들이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초등학생들의 등교는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인솔한다. 한수빈 기자

모래와 땀, AK-47

2021년 8월11일, 총상을 입은 한 남자가 아프간 파르완주(州)의 한국병원에서 사망했다.

남자는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에 들어왔다. 간호사 하피즈 압둘은 놀라서 뛰쳐나왔다. 여자는 남자가 병원 앞에서 탈레반의 총에 맞았다고 했다. 왜 맞았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여자는 부르카를 쓰고 있지 않았다.

수도 카불은 전날부터 탈레반의 수중에 넘어갔다. 8월10일. 아침부터 소문이 돌더니 점심때쯤 카불 시내에 탈레반이 쫙 깔렸다. 병원에서 소식을 들은 하피즈는 휴대폰의 모든 데이터를 지웠다. 한국과 관련한 메시지와 사진, 연락처가 너무 많았다. 카불과 가까운 파르완 거리에도 AK-47 소총을 든 탈레반 단원들이 속속 들어왔다.

하피즈는 면도와 빗질을 끊었다. 깨끗한 옷도 입지 않았다. 병원 사무실 자리에 놓인 감사패엔 하피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숨겼다. 숨었다. 병원이 위치한 공군기지에 주둔하던 미군은 이미 철수했다. 카불공항에 가야 했다. 한국 정부가 피난작전을 편다고 들었다.

지난 4일 오후 울산 동구 중앙아파트에서 하피즈 압둘(48)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아프간 한국 협력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그는 탈레반에 아프간 정부가 넘어간 지난해 8월, 한국 정부의 ‘미라클 작전’으로 고국을 탈출해 한국에 왔다. 한수빈 기자

지난 4일 오후 울산 동구 중앙아파트에서 하피즈 압둘(48)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아프간 한국 협력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그는 탈레반에 아프간 정부가 넘어간 지난해 8월, 한국 정부의 ‘미라클 작전’으로 고국을 탈출해 한국에 왔다. 한수빈 기자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카불 거리를 직각으로 내리찍었다. 흙범벅인 피난민 수만 명이 골목마다 바글거렸다.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더 빽빽해졌다. 사막 열풍이 가득한 도로. 한국 대사관이 준비한 버스가 하피즈 가족과 아프간인들을 태우고 카불공항으로, 수만의 인파 사이로, 아주 천천히 기어갔다. “창문 열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창문을 통해 버스에 타려 했다. 에어컨 없는 버스, 씻지 못한 몸에서는 독한 냄새가 났다. 모래와 먼지에 머리카락이 떡졌다. 아이들은 앵앵 울었다. 탈레반 대원들이 버스가 움직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카불의 ‘특별기여자’들을 태운 군용기들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하얀 방역복을 입은 한국인들이 검진을 위해 나타나자 하피즈는 그때서야 코로나를 떠올렸다.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그 바이러스를 카불의 피난민들은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미스터 킴, 미스터 킴

하피즈 가족은 한국 정부가 마련해준 호텔로 가 한숨을 돌리고 진천 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두 달을 보냈다. 10월27일부터는 여수 해경교육원으로 옮겨 넉 달을 지냈다. 가을의 여수에서 하피즈네 셋째 딸 사라(16)가 다른 친구들과 한국어를 배우던 어느 날 오후, 30분 거리의 한 횟집에서 한국인 아저씨 4명이 은갈치 회에 소주잔을 기울였다.

울산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이었다. 아프간인을 채용하기 위해 해경교육원의 정부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진 뒤였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조선업 대기업들은 곧 교육원을 퇴소할 아프간인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현대도 그 중 하나였다. 협력사 모임 회장인 김명구 지테크 대표가 앞장섰다. 지금은 하피즈의 사장님인 김 대표가 소주를 따르며 물었다. “아프간에서 다 의사나 간호사였다매, 기계 조립 같은 거 잘 할 수 있을라나?”

지난 5일 울산 동구 거리 너머로 현대중공업 공장이 보인다. 한수빈 기자

지난 5일 울산 동구 거리 너머로 현대중공업 공장이 보인다. 한수빈 기자

“그러게요….” 현대중공업 동반성장지원부 김창유씨와 김병수씨도 고민이 컸다. 꼭 데려오고 싶었지만, 생소한 공업도시에 그들을 어떻게 연착륙시킬지가 걱정이었다. 외국인 노동자야 오래 봐 왔지만, 수백 명이 한번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주거 지원이 가능한 곳을 원했다.

아저씨들은 동구 현대중공업 근처 언덕 위 중앙아파트를 떠올렸다. 옛날엔 회사 간부들이 살았고 최근엔 해외출장 복귀자들의 임시 격리숙소로 쓰던 5층 6라인 아파트 독채였다. “동반 쪽이 아파트만 잘 어떻게 해 주면, 그 사람들 적응은 우리 협력사들이 잘 해볼게.” “네, 잘 얘기해 볼게요.” “그분들 오면 우리 따로 병원 안 찾아다녀도 되는 거 아냐?” “하하하!”

지난 4일 오후 하교한 아프간 어린이들이 아파트에 들어서고 있다. 과거 현대중공업 간부급 직원들이 숙소로 사용했고, 최근까지 해외 출장 복귀자의 임시 격리숙소로 사용하던 이 건물을 현대중공업은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에게 제공했다. 호실이 30개인 이 아파트에 이사온 아프간 가족은 마침 29가구였다. 한수빈 기자

지난 4일 오후 하교한 아프간 어린이들이 아파트에 들어서고 있다. 과거 현대중공업 간부급 직원들이 숙소로 사용했고, 최근까지 해외 출장 복귀자의 임시 격리숙소로 사용하던 이 건물을 현대중공업은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에게 제공했다. 호실이 30개인 이 아파트에 이사온 아프간 가족은 마침 29가구였다. 한수빈 기자

울산으로 돌아간 이들은 32평형 호실 30개가 있는 낡은 사택을 열심히 청소했다. 1월의 어느 날, 전나무가 둘러싼 아파트단지로 현대중공업은 아프간인들을 불렀다. “땡큐, 씨 유 어게인!” 아파트를 둘러본 아프간인들은 손을 흔들며 여수로 돌아갔다. 아프간인 76가구 중 29가구가 울산을 골랐다.

29가구 157명은 2월7일 오전 11시, 버스 4대에 나눠 타고 동구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 도착했다. 스물아홉 가족의 세간살이는 트럭 3대에 모두 담겼다. 현대중공업 직원 10여명이 든 ‘Welcome to HHI(Hyundai Heavy Industries)’ 현수막이 겨울 아침 바닷바람에 흔들렸고, 버스에서 막 내린 여자아이들의 머리에선 스카프가 휘날렸다. “아이들만 보였어요, 너무 예뻐서….” 창유씨의 감상도 잠깐, 일감이 쏟아졌다. 이사를 시작으로 12개 협력사에 나눠 취업한 아버지들의 출입증 발급, 온갖 회의, 가구와 주방기기 마련…당혹해하는 주민들도 상대해야 했다.

아프간 초등학생 28명이 서부초 한 곳으로 일괄 배정되자 일부 학부모들이 반발했다. 아프간인들의 이주 관련 정보가 지역사회에 충분히 공유되지 못했던 데다, 157명이 한번에 오는 건 전례가 없었다. 이슬람 문화는 더더욱 낯설었다.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여러 오해도 반복됐다.

지난 4일 오후 울산 동구 중앙아파트를 배경으로 현대중공업 동반성장지원부 김병수(좌)·김창유(우) 책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프간인들의 생활과 적응 전반을 지원하며 이들은 아프간인들과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한수빈 기자

지난 4일 오후 울산 동구 중앙아파트를 배경으로 현대중공업 동반성장지원부 김병수(좌)·김창유(우) 책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프간인들의 생활과 적응 전반을 지원하며 이들은 아프간인들과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한수빈 기자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이해가 간다고 창유씨와 병수씨는 생각했다. 현대중공업을 둘러싼 작은 마을. 반대하는 이들도 찬성하는 이들도 직장동료였다. 밀어붙이는 대신 직접 반대 여론 한가운데로 뛰어들기로 했다. 저녁마다 교육청 학부모설명회를 따라다니고, 필요하면 따로 사람들을 만났다. 창유씨의 휴대폰은 온종일 지이잉 떨었다. 그 사이, 여론이 천천히 움직였다.

치열한 저녁을 보내고 해가 밝으면 두 사람은 매일같이 아파트로 출근했다. 스물아홉 가족이 다 들어가고 남은 101호가 관리실이자 사무실이다. 101호에 앉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한밤중에 산통이 온 한 산모를 태우고 병원을 찾아다니고, 꼬마들을 놀이터에 데리고 나갔다. 접종은 뭐 그리 많은지. 2월 말 아이들의 코로나19 2차 예방접종 날, 병수씨는 30여명을 이끌고 10분 거리 일산해수욕장 옆 병원으로 향했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는 사막나라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을 구경할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병원 방에 모이자 간호사가 예진표를 한아름 들고 왔다. ‘아 맞다….’ 병수씨는 방을 둘러봤다. 예진표를 받아든 아이들은 큰 눈을 끔뻑거리며 병수씨를 향해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결국 병수씨는 예진표를 영어로 혼자 다 썼다. 일정이 늦어져 바다는 물 건너 갔고, 병수씨는 물어나 봤다. “뭐 갖고 싶노?” 아이들은 책가방을 원했다.

울산 동구 중앙아파트 101호는 관리실 겸 사무실로 쓰인다. 지난 4일 오후 101호에 아프간 학생들이 놓고 간 한글 연습 공책이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울산 동구 중앙아파트 101호는 관리실 겸 사무실로 쓰인다. 지난 4일 오후 101호에 아프간 학생들이 놓고 간 한글 연습 공책이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계절은 겨울에서 봄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매일 두 사람이 아파트 정문에 모습을 드러내면 허리 높이만한 아프간 꼬마들이 달려와 손을 잡아끌며 미스터 킴, 미스터 킴, 아프간 달리어로 뭐라뭐라 떠들었다. 병수씨는 영어회화책을 사서 승용차에 두었다. 창유씨는 그런 그를 조금 놀렸다. 3월21일이 오고 있었다.

따듯한 곳에서 벚꽃은

3월21일 월요일 오전 8시. 낡은 옛 사옥 앞마당이 분주해졌다. 첫 등교에 나선 85명의 아이들과 부모들, 법무부와 교육청과 현대중공업 어른들이 복작대는 틈으로 노란색 유치원 통학버스가 부릉 들어왔다. 남목고 교복을 입고 아파트 앞에 선 살림과 워리스, 다우드, 아지미를 아버지들이 휴대폰으로 찰칵찰칵 찍었다. 여자아이들 몇은 처음 입는 교복치마를 거꾸로 입고 나왔다. 하피즈 부부와 네 자녀도 마당에 함께였다. 저녁에 아이들이 돌아오면 아프간 볶음밥 팔라우를 곁들여 가족파티를 즐기기로 했다.

4일 오후 울산 동구 하피즈씨의 집에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교복이 걸려 있다. 아프간에 정착한 특별기여자들의 자녀들은 지난 3월21일 등교를 시작했다. 한수빈 기자

4일 오후 울산 동구 하피즈씨의 집에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의 교복이 걸려 있다. 아프간에 정착한 특별기여자들의 자녀들은 지난 3월21일 등교를 시작했다. 한수빈 기자

초등학생 꼬마들은 저마다 갈색 종이가방을 손에 들었다. 한국 친구들에게 나눠줄 간식이 잔뜩 든 종이가방 위로 띄어쓰기가 제각각인 자기소개가 적혔다. ‘안녕하세요! 나는파르하트예요 만나서반가워요’ ‘안녕 나는로하프저예요 만나서 반가워’….

갈색 가방은 현대중공업 아저씨들의 아이디어였다. 학교 배정을 놓고 설왕설래가 계속되던 어느 날, 눈치 빠른 고등학생 큰언니들이 조심스레 물어 왔었다. “우리 동생들, 학교 못 가요?” “갈 수 있지, 걱정 마. 선물을 준비할까?” 첫 등교를 앞둔 어느 날 밤 101호에 아이들을 모아 간식을 종이봉투에 나눠 담았다. 편지도 하나씩 넣자고 했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아프간 “머스마들”이 손편지 양식을 프린트해 왔다. ‘안녕! 나는 ___, 만나서 반가워!’ 빈칸에 이름을 적고 가방에 넣으라고 준 건데, 제멋대로인 꼬마들은 내용을 종이봉투에 그대로 적어버렸다.

아프간 아이들이 한 방에 모여 울산 동구 서부초 한국 학생들에게 나눠줄 간식 선물을 나눠 포장하고 있다. 지난 3월21일 아프간 초등학생들이 각자의 이름이 적힌 간식 선물 종이봉투를 들고 첫 등교하는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돼 큰 반향을 불렀다. 김창유 현대중공업 책임 제공

아프간 아이들이 한 방에 모여 울산 동구 서부초 한국 학생들에게 나눠줄 간식 선물을 나눠 포장하고 있다. 지난 3월21일 아프간 초등학생들이 각자의 이름이 적힌 간식 선물 종이봉투를 들고 첫 등교하는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돼 큰 반향을 불렀다. 김창유 현대중공업 책임 제공

울산 동구에 정착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초등학생 자녀들이 지난 3월21일 오전 서부초등학교로 등교하기 전 재학생들에게 선물할 과자 꾸러미를 각자 손에 들고 있다. 연합뉴스

울산 동구에 정착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초등학생 자녀들이 지난 3월21일 오전 서부초등학교로 등교하기 전 재학생들에게 선물할 과자 꾸러미를 각자 손에 들고 있다. 연합뉴스

다시 21일 아침 중앙아파트, 3~4명씩 짝지은 중·고등학생들이 먼저 각자의 학교로 출발했다. 그룹마다 아버지들이 한두명씩 따라붙었다. “멀리서 왔는데 얼라들 학교 가는 거 안 보고 싶겠습니까.” 병수씨와 12명의 협력사 사장님들도 한 명씩 붙어 따라갔다.

갈색 종이봉투를 든 초등학생들이 곧이어 한 줄로 출발했다. 작은 발들이 조심조심, 언덕길을 내려갔다. 학부모 몇 명만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낼 뿐 소란은 없었다. 따듯한 곳에서 벚꽃은 조금 더 일찍 핀다. 남쪽 바닷가 공업도시, 3월 말의 막바지 꽃샘추위를 뚫고 연분홍 벚꽃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행렬의 맨 앞에서 열 살 아스마는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손을 꼭 잡았다.

창유씨는 먼발치에서 행렬을 지켜봤다. 하늘색 GS25 간판과 버스정류장과 가로수들을 지나, 활짝 웃는 선생님들이 기다리는 교문으로 아이들이 한 줄로 들어갔다. “훅 들어갔다”고 창유씨는 기억한다. 마지막 아이가 교문을 통과하자 그의 다리가 풀렸다. 지난 두 달, 수많은 민원전화와 실랑이와 간곡한 설득으로 자주 뜨거워졌던 그 휴대폰을 꺼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과 경찰, 구청·교육청 공무원…이날을 함께 준비한 담당자 18명이 모인 단톡방에 그는 짧게 보고했다.

“아프간 자녀들 모두 무사히 등교했습니다.”

6일 아침 울산 동구 중앙아파트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유치원생 자녀와 동생이 등교 전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 초등학생이 든 가방엔 스쿨존 제한속도를 나타내는 ‘30’ 딱지가 붙어 있다. 한수빈 기자

6일 아침 울산 동구 중앙아파트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유치원생 자녀와 동생이 등교 전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 초등학생이 든 가방엔 스쿨존 제한속도를 나타내는 ‘30’ 딱지가 붙어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5일 오전 울산 동구 한 아파트 앞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중·고등학생 자녀들이 각자 학교로 등교하고 있다.한수빈 기자

지난 5일 오전 울산 동구 한 아파트 앞에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중·고등학생 자녀들이 각자 학교로 등교하고 있다.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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