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툴, 자율과 통제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주영재 기자

2021년 직장인 79%가 사용… 재택근무 활성화의 명암

워커힐호텔의 재택근무자를 위한 패키지 / 워커힐호텔앤리조트 제공

워커힐호텔의 재택근무자를 위한 패키지 / 워커힐호텔앤리조트 제공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협업툴 사용이 늘었다. 협업툴은 메신저와 e메일, 문서공유, 영상회의 서비스 등을 통합해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팀원 간 소통과 협업을 돕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해 업무와 관련한 의견 교환과 토론이 활발하다는 장점이 높게 평가받고 있다. 업무 진척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일의 흐름이 빨라지고, 문서화로 업무를 파악하고, 인수인계할 때도 용이하다. 기존에 e메일이나 범용 메신저로 이뤄지던 외부 고객이나 협력사와의 소통도 협업툴 안에서 이뤄지는 사례가 많아졌다.

협업툴이 원격 근무를 위한 필수 도구처럼 인식되면서 전염병 확산 이후 국내외에서 사용이 크게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협업툴을 사용하는 직장인은 2019년 55%에서 2021년 79%로 증가했다. 최근 거리 두기 해제로 사무실 출근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협업툴 이용은 이런 변화와 상관없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7일 인크루트가 직장인 939명을 대상으로 ‘협업툴 활용 현황과 엔데믹 이후 수요 예상’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7.0%가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디지털 기술이 생산성을 해친다면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협업툴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마켓앤마켓의 지난해 7월 조사를 보면 글로벌 협업툴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472억달러(약 58조원)에서 2026년 858억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시장 규모는 4000억~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7월 세일즈포스에 인수된 슬랙(Slack)이 선두주자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즈(Teams), 구글의 지스위트(G Suite) 같은 외산 툴과 함께 토스랩의 잔디, NHN의 두레이, 네이버웍스, 카카오워크 등 토종 협업툴이 이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기업은 협업툴을 기반으로 언제 어디서나 원격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디지털 본사’를 구축 중이다. 직원들은 협업툴 덕분에 원격근무가 용이해지면서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던 화상회의도 점차 익숙해지면서 출장을 가거나 대면 회의를 할 필요성이 줄었다.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고, 자료를 주고받거나, 회의를 하기 위해 만나러 가는 비용이 줄면서 효율성이 높아져 종합적으로 보면 장점이 훨씬 많다”면서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기록이 남으니 부정적으로 보면 책임소재 추궁이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두레이를 서비스하는 NHN 관계자는 “카톡으로 일하는 분이 많지만, 오히려 일과 생활을 분리하는 데 협업툴이 더 좋아보인다”면서 “아직은 제공되지 않지만 협업툴에 데이터가 쌓이면 인사평가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례로 협업툴은 직원 개인의 감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을 둬 동료평가 시 상대방을 추천할 수 있다. 프로젝트 안에서 서로를 언급하거나 대화를 한 데이터가 누적되면서 인사평가할 때 누구와 함께 일을 하면 좋겠다는 게 드러나는 식이다. 해당 직원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킹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 볼 수 있고, 새 업무를 등록한 이후 얼마나 지속했고,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조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평가의 직접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단점은 역설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가 꼭 생산적이지만은 않다는 데서 나온다. 필요에 따라 여러 협업툴을 사용하면서 혼란스럽고, 주고받는 메시지가 많아지면서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호소가 대표적이다. 생산성 분석 회사인 ‘Time Is Ltd’에 따르면 미국 대기업 직원들은 평균적으로 주당 200개 이상의 슬랙 메시지를 보낸다. 대면회의보다 일정을 잡기 쉬운 덕분에 화상회의가 수시로 열리면서 더 바빠졌다는 반응도 있다. IT업계에서 일하는 A씨는 “화상회의가 하루에도 여러 번 잡히는데 임원이 된 듯 바쁜 느낌”이라면서 “메시지가 수시로 튀어나오고, 날 지목해 호출하는데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슬랙 소통을 게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가 오가는 메시지를 볼 수 있다 보니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부분은 다 제거되고 업무 이야기만 하면서 진짜 인공지능이 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업무와 관련된 사람이 모두 들어와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건 좋지만 때론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협업툴 ‘슬랙’의 스크린숏 / 슬랙 제공

협업툴 ‘슬랙’의 스크린숏 / 슬랙 제공

■감독과 감시 사이의 균형 찾기

협업툴의 장단점은 직군마다 개인마다 달리 느낄 수 있다. 임일 교수는 일의 종류에 따라 협업툴의 유용성이 달라진다고 봤다. 임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자료만 주고받아도 충분할 경우에 협업툴의 장점이 극대화된다. 사람 간의 관계가 중요한 일은 협업툴에만 의존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영업·판매직만이 아니라 연구개발(R&D) 분야에서 특히 그렇다. 매체에 따라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매체 풍부성 이론’에 따르면 e메일, 전화, 화상회의, 면대면 만남의 순으로 정보의 깊이가 깊어진다. 임 교수는 “연구개발은 단순히 자료를 주고받는다고 협업이 되는 게 아니라 물리적인 장소에서 함께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다”면서 “결국 업무 특성에 따라 그에 맞는 매체를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협업툴은 관리자들이 좋아할 만한 감시의 툴로 활용될 수도 있다.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면서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과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뒤처진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자기 착취’에 나설 수도 있다. 퇴근이라고 표시해놓고 야근하면서 보고서를 작성해 다음날 일찍 협업툴에 올려놓는 식이다. 조양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요즘 줌으로 강의할 때가 많은데 학생 입장에선 그냥 강의실에서 수업 들을 땐 남들이 날 확인할 것 같지 않은데 줌으로 하면 사람들이 나를 계속 보고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면서 “내가 남을 보듯, 남도 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일을 알아서 더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직종차와 개인차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성취 욕구가 강한 사람은 재택근무를 할 때 업무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면서 “지금은 인간 관리자가 있기 때문에 허술한 면도 있지만 앞으로 ICT 기술의 발달로 성과 관리가 엄격해지고, 알고리즘이 업무까지 분배한다면 ‘최적화’만 따지는, 훨씬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업무가 할당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비즈니스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프론트(Front)’가 2020년 11월 조사·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조사 응답자의 57%는 원격근무 이후 스트레스를 더 받고 있으며, 66%는 업무량이 상당히 증가했다고 답했다. 가장 큰 고충은 소통 과정에서 너무 많은 앱을 사용(41%)하거나 주고받는 메시지의 양이 증가(34%)한 데서 왔다. 응답자의 84%는 재택근무를 시작한 후 회사가 새로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한개 이상 추가했다고 밝혔는데, 이들 중 56%는 새 도구를 추가한 결과 주당 4시간 이상 근무 시간이 늘었다고 말했다. 국내 상황도 비슷할 수 있다. 핀테크 업계에서 일하는 B씨는 “슬랙 알림이 밤늦게 올 경우 바로 답해야 하나 아니면 아침에 출근해서 해도 되는지 알쏭달쏭한 때가 많다”고 말했다.

협업툴 안에 쌓이는 내용이 많지만 정작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B씨는 “워낙 많은 콘텐츠를 안에서 주고받다 보니 다 파악하지 못하고 압도당할 때가 있다”면서 “그래서 특정 주제를 확인해야 할 때 협업툴 안에서 검색하면 너무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서 결국 관련해서 깊이 아는 분에게 따로 물어보게 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런 상황이 2000년대를 전후해 붐이 일었던 ‘지식관리시스템’ 도입으로 생긴 문제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지식관리시스템은 직원이 가진 노하우와 기술을 혼자 갖고 있지 말고 문서화하면 다른 사람이 쓸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정작 지식을 문서화하는 것도 힘들고, 구축한 후에도 추가 작업이 필요한 정보가 많아 활용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 이 문제는 협업툴 안의 검색도구와 문서화 체계를 개선하면 해결할 수도 있다.

일터에서 과도하게 디지털 기술을 사용할 경우 오히려 생산성을 해칠 수 있음을 풍자한 그래픽 /  Darius Foroux

일터에서 과도하게 디지털 기술을 사용할 경우 오히려 생산성을 해칠 수 있음을 풍자한 그래픽 / Darius Foroux

■협업툴 선용하는 조직문화 필요

협업툴에 인공지능을 접목할 경우 메시지나 업무 현황 등을 파악해 도움이 필요한 직원이나 장시간 노동 등 이상징후를 보인 직원을 가려낼 수 있다. 직원 간 상호작용을 파악해 협업 과정을 개선할 수도 있다. 물론 감시와 통제, 자기 착취의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대학원 교수는 “실시간으로 자신의 활동이 온라인상에서 기록되면서 끊임없이 동료와 비교하게 되고, 성과가 밖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라 상호경쟁을 부추기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면서 “물리적 공간에서 업무평가를 하기 어려워지다 보니 협업툴이 보완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년 전인 2012년 조사이긴 하지만 컨설팅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직장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직원 생산성을 최대 25%까지 높일 수 있다고 한다. 협업툴이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앞다퉈 기업들이 도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협업툴의 단점을 말한 이들도 협업툴이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는 데는 의문을 달지 않았다. 결국 역효과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정서적 소통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이모티콘을 적절히 활용하면 보완할 수 있다. 퇴근 후에는 알람이 오지 않도록 설정하거나, 개인이 설정한 업무 시간 외에 누군가 메시지를 보낼 때 근무 중이 아니라는 알람이 뜨게 하는 식으로 ‘알람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협업툴을 선용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중요하다. 과거 ‘카톡 지옥’이 또 다른 마이크로한 형태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오계택 소장은 “오후 4~5시에 다음날 아침까지 보고하라는 업무를 부과하면, 그건 오후 6시 이후 야근하라는 말과 같다”면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업무시간을 명확히 하는 것 못지않게 업무시간에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법규 정비도 필요하다. 임일 교수는 “협업툴에서 나오는 정보는 언제 접속했고, 누구에게 뭘 보냈는지 알 수 있는 ‘로그’ 정보라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협업툴에 접속한 IP를 추적해 근무지를 파악하거나 메시지와 자료를 들여다보는 것도 회사가 사용자의 동의를 받았다면 법적으론 면피할 수 있겠지만 윤리적으로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협업툴로 얻은 정보를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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