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느는데 일손 달리는 조선소…‘저임금’이 문제다읽음

김지환 기자

불황기 때 하락한 임금 수준 그대로

해결책은 결국 ‘임금 인상’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전경.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간 지난 4월 25일.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이어지는 다리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거통고하청지회)가 일정 간격으로 달아둔 깃발들이 나부꼈다. 깃발에는 “하청노동자 임금 30% 인상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번 파업의 핵심 요구사항이다.

파업 첫날 오전 7시 옥포조선소 내 선각삼거리로 하청노동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연두색 안전모를 쓴 직장(생산 현장 관리자)들이 하청노동자 파업 집회를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집회를 마친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 안에서 행진을 하면서 “이 임금으론 못살겠다”고 외쳤다. 이번 파업은 도장 노동자 중심이지만 단체교섭을 벌이고 있는 발판·탑재·조립·의장업체 노동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거통고하청지회는 이번 파업에 하청노동자 1000명이 동참하고 있고, 집회 참석자는 700명으로 추산했다.

최근 한국 조선소들의 수주 실적이 회복되면서 수주 보릿고개가 마무리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조선업은 2013년 이후 8년 만에 최대 수주 실적을 달성했다. 빅3로 꼽히는 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도 LNG·LPG 운반선, 컨테이너선, 유조선을 중심으로 목표 수주액을 크게 초과 달성했다. 지난해 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의 수주 목표 달성률은 각각 153%, 134%, 140%였다. 한국 조선업의 수주잔량은 2022년 2월 기준 3120만CGT(표준선 환산톤수)로 2년 6개월치 정도의 일감에 해당한다.

문제는 물이 들어왔지만 노 저을 사람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수주 절벽기 동안 상당수 노동자가 조선소를 떠났기 때문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저임금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인력난 해소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거제시장도 “거제도에 있는 양대 조선소(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가 하청단가와 임금을 올려야 한다”며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결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모두 임금 인상이 해법이라는 진단에는 동의하지만 가시적 조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조선소를 떠나버린 노동자들

옥포조선소의 서문 맞은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는 수주 절벽이 끝났지만 조선소 노동자들의 인력난이 여전하다고 말했다. “예전엔 서문 왼쪽 길을 따라 노동자들이 출근 때 타고 오는 오토바이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이는 것처럼 빈 곳이 많다.”

조선소 인력난은 각종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거제시가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작성한 ‘조선해양 및 지역경제 주요지표’를 보면, 조선업 불황이 시작된 2015년의 전국 조선소 노동자 규모는 18만7652명이었다.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임금 삭감·구조조정을 추진한 결과, 올해 2월 기준 조선소 노동자는 9만9315명으로 줄어들었다. 7년 전에 비해 거의 절반가량의 인력 감축이다.

거제도의 조선소 인력 역시 급감했다. 2015년 당시 7만6098명이던 거제도 조선소 노동자들의 규모는 올해 2월 기준 3만6078명으로 축소됐다. 양대 조선소의 원·하청 인력 규모 역시 꾸준히 감소해왔다. 올해 2월 기준 양대 조선소 원청 인력은 각각 8000명대를 기록했다. 사내 하청 인력을 살펴보면 삼성중공업은 1만1500명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거제시에 사내 하청 인력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다만 노동계는 대우조선해양의 사내 하청 인력을 1만명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랜 수주 절벽은 거제도의 부동산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4분기 거제도 옥포 지역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2%로 전국 평균(13.5%)보다 6.7%포인트 높았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주로 묵는 원룸의 경우 한때 40만~50만원이던 월세가 최근에는 15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2015년 당시 9000만원이던 아파트 전세가격이 최근 5000만원까지 떨어진 사례도 있다.

불황기 동안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은행 경남본부는 지난 1월 발표한 ‘경남지역 고용 현황 및 주요 특징’ 보고서에서 “현장 모니터링 및 인터뷰 결과, 조선업 구조조정 이후 경남지역 용접공 등 기술직 종사자의 상당수가 평택, 이천 등 수도권 건설현장과 중국 해외선사 등으로 이직했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배달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시장으로 이동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업 인력난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지난 4월 1일 제3차 조선해양산업 최고경영자(CEO) 포럼에서 발표한 ‘조선인력 현황과 양성’에 따르면 최근 수주한 선박이 본격적으로 착공되는 올해 상반기부터 현장의 생산인력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협회는 하반기에는 증가폭이 더 커져 오는 9월이면 약 9500명의 생산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감 느는데 일손 달리는 조선소…‘저임금’이 문제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왜 떠나는가

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나는 이유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이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최근 ‘지역별 고용조사’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00년대 초반에는 제조업 평균임금에 비해 조선업의 임금 수준이 1.5배까지 높았다. 2019년에는 제조업 평균과 차이가 거의 없었다.

이김춘택 거통고하청지회 전략조직부장은 “조선업 불황이 본격화된 2016년에는 하청업체가 문을 닫아 하청노동자들이 타의로 다른 곳으로 갔다면 지금은 조선소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떠난다”며 “조선업 불황기 때 하락한 임금 수준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육상 플랜트나 건설현장과 비교할 때 임금 차이가 크기 때문에 지금도 거제도에서 하청노동자들이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소 노동자들의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다. 도장공인 강인석 거통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도장 파트만 봐도 평균 연령이 50대이고, 20~30대는 거의 없다. 그나마 어리다는 친구가 30대 후반, 40대 초반”이라며 “10년 뒤면 숙련된 도장공들이 정년퇴직하게 되는데 조선소가 어떻게 존속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용접공인 유최안 거통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현장의 허리층이 사라지면서 숙련공들의 임금도 떨어지는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젊은층이 있으면 숙련공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젊은층이 주로 힘쓰는 일을 하고, 숙련공은 기술을 쓰는 식으로 분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허리가 끊어지다 보니 고령의 숙련공이 힘도 쓰고 기술도 써야 하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다. 몸이 축나기 때문에 쉬어줘야 한다. 결국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짧아지다 보니 숙련공이 돼도 소득이 높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해엔 (상대적으로 일을 많이 한) 용접 보조가 사수보다 연간 소득이 더 높은 사례도 있었다.”

하청노동자를 일회용 소모품처럼 여기는 조선소 분위기도 노동자 이탈의 원인 중 하나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에 대한 신뢰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게 경기가 안 좋아지면 손쉽게 하청노동자부터 자른다”며 “숙련공을 양성하려면 용접의 경우 최소한 3년은 걸리는데 그 기간 안에 업체가 망하고 고령자 쳐내고 하니 답이 없다”고 말했다.

인력난이 심해지자 업체들은 다단계 하도급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조선소의 생산직 노동시장은 원청 정규직, 하청업체가 직접고용한 본공(1차 하청노동자), 1차 하청업체에서 재하도급을 받아 일하는 물량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김춘택 전략조직부장은 “본공이 잘 안 구해지는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물량팀, 알바천국 등에서 인력을 모아 조선소에 공급하는 아웃소싱 업체 등이 늘어나면서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직뿐 아니라 사무직들의 이탈 흐름도 가속화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사무직들 사이에선 ‘탈출’, ‘탈조(탈조선업)’ 등의 용어를 자주 쓴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현대중공업 등으로 이직하거나 조선업 자체를 떠나고 싶다는 취지다. 금속노조 대우조선해양 사무직지회 오픈채팅방에는 “현대(중공업)로는 설계 쪽보다 생산관리가 많이 간 것 같다. 설계는 탈조를 많이 한 것 같다”, “능력 있는 인력은 다 이직했다”, “인력 유출이 심해 부서장들이 회의를 자주 하는데 결론은 촉탁직 대거 채용”, “오늘도 6명 퇴사했다” 등 인력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무직지회는 지난 4월 27일 거제시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공문을 보내 사무직 여건 개선방안을 질의했다. 공문에는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사무직군 이탈이 심각한 상황이다. 동종업계와의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커서 생긴 문제”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현범 사무직지회장은 지난 3월 30일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 주주총회에 보낸 글에서 “현대중공업의 대규모 경력채용이 불을 지폈지만, 인력 유출은 그 이전부터 계속되고 있었다”며 “유출이 돼도 유입이 있다면 희망이 있겠지만, 지금의 대우조선해양은 극도로 투자를 꺼린다. 신입사원의 고용을 촉진할 수 있도록 주주 여러분의 많은 도움을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노동자들이 지난 4월 25일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이날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 제공

대우조선해양 사내 하청노동자들이 지난 4월 25일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행진을 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은 이날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 제공

■인력난 해소 방안은 임금 인상

조선업 인력난 해소의 열쇠는 결국 임금 인상이다. 이는 노동자들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지난 3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양대 조선소에 저임금 구조 개선과 하청단가 인상을 제안했다. 변 시장은 “지금과 같은 임금 및 단가 수준으로는 숙련노동자를 지키기도, 새로운 인력을 유입시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지자체장이 노사교섭의 영역인 임금 문제를 언급하고 나섰다는 자체가 이례적이다. 그만큼 임금 인상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변 시장은 지난 4월 4일 MBC경남 라디오 ‘좋은아침’에도 출연해 “조선소 노동자 임금이 10년 가까이 동결됐고, (원청이 협력사들에 주는) 하청단가는 오히려 더 떨어졌다”며 “물가는 오르고 주변의 모든 게 인상되는데 유독 조선소 노동자들의 임금, 하청단가만 하락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제시도 지원을 할 테니 핵심인 임금에 대해선 양대 조선소가 결단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빅3를 포함한 조선업체들은 아직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수주량이 늘고 한국 조선업 주력 선종인 LNG 운반선·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등의 선가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점은 임금 인상에 긍정적 신호다. 하지만 선박 건조의 필수 소재인 후판 가격 상승이라는 복병이 나타났다. 2017년 t당 60만원이던 후판 가격은 2018년 이후 t당 70만~80만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후판 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해 후판 가격은 t당 110만~115만원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후판 비용은 선박 제조비용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만큼 조선업체로선 수익성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가를 잘 받아 마진을 남긴 뒤 아랫단으로 내려주면 좋은데 후판 가격 상승 등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며 “수주 회복에 따른 이익이 아래로 내려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인력난 해소 단기 처방만 보여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조선소에 이주노동자를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법무부는 지난 4월 19일 용접공·도장공에 대해 운영해온 쿼터제를 폐지했다. 기존에는 외국인 용접공은 총 600명, 도장공은 연간 300명만 고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용접공·도장공을 4428명까지 고용할 수 있게 됐다. 산업부는 “용접공·도장공의 임금요건을 전년도 1인당 GNI(국민총소득)의 80% 이상(2021년 연 3219만원)으로 통일해 무분별한 저임금 외국인 인력 고용을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이 대책을 “언 발에 오줌 누기”라며 비판하고 있다. 김태정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조선소 노동시장에 국내의 젊은 노동자들을 진입시켜 숙련노동자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조선산업의 기술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임금과 노동강도 등의 문제로 신규 인력이 들어오지 않자 이주노동자를 대신 투입하겠다는 건 단견”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언어 장벽 때문에 숙련도를 빨리 높이기 어렵고 중대재해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다.

조선소 사내 하청업체들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인력난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회사협의회는 최근 주 52시간 상한제 철회를 위해 하청노동자들에게 서명을 받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지회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늘려 임금을 높이고 싶은 심리를 이용하려는 의도”라고 짚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애초에 근시안적 대책으로 조선업 불황 시 숙련공 이탈을 방치한 게 문제였다. 또다시 현재의 인력난을 미봉책인 장시간 노동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숙련공 부족 상태에서 중대재해 위험이 커질 게 분명하다”며 “근본적인 대책은 경기변동 여부와 무관하게 숙련 인력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장기적 고용 플랜”이라고 말했다.

김형수 거통고하청지회장은 올해 여름이 조선업 인력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조선소를 떠날지 계속 다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노조에서 하청노동자들을 만나보면 떠나려는 분들이 더 많았다.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금이 인상되지 않으면 여름휴가를 전후로 사람들이 많이 이탈할 것 같다.”

▶관련기사: “육상만큼 돈 준다 해도 조선소로 안 돌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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