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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난민 지침’ 뜯어보니…이유도 모른 채 감내해온 ‘편견의 장벽’

조해람 기자

그간 밀실 속에 숨겨져 있던 정부의 난민 관련 지침이 공개됐다. 지난달 14일 시민단체가 낸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법무부 패소가 확정되면서다. 이번 소송을 통해 공개가 결정된 지침은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 난민인정자의 체류·사범관리와 관련된 지침(이하 지침)’이다. 여기에는 고국의 위기를 피해 한국에 온 이들이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절차들과 그 과정마다 이들의 법적 지위 등에 대한 판단 기준들이 담겨 있다. 지침이 철저히 숨겨져 있다보니, 난민들은 이유도 모른 채 법무부로부터 일방적인 ‘불허’ 통지를 받아왔다.

경향신문은 1일 이 지침을 입수해 난민·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했다. A4 용지 48쪽 분량의 문서에는 난민신청자에 대한 편견이 곳곳에 담겨 있었다. ‘불법체류나 취업 등 다른 목적을 위해 난민 신청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문서 전반에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간 지침을 공개하지 않은 법무부 결정이 난민협약 가입국으로서 국제규범에도 위배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달 14일 법원에서 공개가 결정된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지침’ 중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 난민인정자의 체류·사범관리와 관련된 지침’. 조해람 기자

지난달 14일 법원에서 공개가 결정된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지침’ 중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 난민인정자의 체류·사범관리와 관련된 지침’. 조해람 기자

■과거 직업 불문, 국내선 ‘단순노무’만 허용

한국은 난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지위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난민신청자’는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심사를 신청한 사람이다. 심사를 거쳐 난민으로 인정을 받으면 ‘난민인정자’가 된다. 그 외에 ‘인도적체류자’가 있다. 난민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고문이나 처벌 등으로 생명과 신체의 자유 등을 현저히 침해당할 수 있다고 볼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는 사람이다.

지침을 보면 난민신청자의 자유가 가장 제한된다. 취업, 가족결합, 사법절차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불이익이 존재했다. 난민신청자는 신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는 취업 활동을 할 수 없다. 난민 심사는 원칙적으로 6개월 안에 끝내도록 돼 있는데 그 기준에 맞춘 것이다. 난민법에 따라 이 기간 동안 생계비를 지원하지만 월 4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2019년 기준 전체 난민신청자 1만5452명의 4%인 609명만 받았다. 대다수는 이민자 커뮤니티나 시민단체를 통해 생계에 도움을 받는다.

현실에서 난민 심사 절차는 대부분 6개월을 넘긴다. 신청자들은 6개월 후에 취업을 한다. 그러나 취업 업종에 제한이 있다.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는 ‘단순노무’만 할 수 있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온 난민들은 고국에서 학자·언론인·법률가 등 전문직이었던 사례가 많음에도 단순노무직만 허가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 그나마 인도적체류자는 외국어회화강사(E-2)를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영어가 공용어인 7개 국가 국민에게만 발급된다.

2020년 12월 한 난민 아이가 경기 동두천 시장에서 새로 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20년 12월 한 난민 아이가 경기 동두천 시장에서 새로 산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이준헌 기자

우간다에서 온 A씨는 이 규정으로 피해를 입었다. 2011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난민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인도적체류자 자격으로 살고 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공장 노동뿐이었다. 병원 치료를 받을 만큼 건강이 악화돼 더는 단순노무를 하기 어려웠다. A씨는 영어회화 강사가 돼 생계를 이어가려고 했다. 우간다는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기에 어릴 때부터 쭉 영어를 써왔다. A씨는 국내에서 국제영어교사자격증(TESOL) 석사 학위도 취득했다. 그러나 출입국사무소에서 취업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우간다는 한국이 E-2 비자 발급국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미국과 영국 등 7개 국가의 국민만 이 비자로 원어민강사 취업이 가능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자문을 받아 국내에서 학위를 따기까지 A씨는 이 같은 안내사항을 전혀 듣지 못했다. 당연히 그런 지침이 있는 줄도 몰랐다. A씨는 다시 단순노무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공익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지침을 비밀로 관리해 온 법무부는 중요한 변동사항도 제대로 공지하지 않았다. 2019년부터 난민신청자들은 단순노무 중 건설업 취업이 불가능해졌다. 정부가 국내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건설업 취업을 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사이트에 올라온 ‘난민인정절차 가이드북’에는 이 내용이 빠져 있었다. 언론을 통해 관련 내용이 알려졌지만 한국어에 익숙치 않은 난민 입장에서는 뉴스를 접하기 쉽지 않았다.

■가족결합 철저히 제한…결혼한다면 ‘진정성’ 의심

가족결합의 문턱은 지나치게 높았다. 지침은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는 가족결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난민인정자만 고국에 있는 가족을 데려올 수 있는데, 이마저도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에 한정됐다. 이란 출신으로 한국에서 종교를 개종해 난민 신청을 한 김민혁군(한국 이름)은 2018년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함께 난민 신청을 한 아버지는 따로 3년간 법적 다툼을 해야 했다. 같은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조차 성인 자녀는 한국에 데려오지 못했다.

2019년 10월14일 이란 출신 난민 김민혁군이 서울대 학생들이 개최한 기자회견을 앞두고 계단에 앉아 있다. 서울대생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김민혁군의 아버지 역시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헌 기자

2019년 10월14일 이란 출신 난민 김민혁군이 서울대 학생들이 개최한 기자회견을 앞두고 계단에 앉아 있다. 서울대생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김민혁군의 아버지 역시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헌 기자

인도적체류자는 가족이 ‘국내에 입국해 체류 중’인 경우에만 가족결합을 할 수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가족에 대한 사증 발급은 불인정된다. 인도적체류자가 국내 체류 중 배우자가 생겨 가족결합을 신청하면 ‘혼인의 진정성’을 따진다. 구체적인 지침은 나와 있지 않지만 혼인에 이르게 된 경위와 데이트 사진 등 물증을 토대로 면담을 진행한다.

이 같은 의심은 난민 신청 절차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령 ‘난민신청자의 체류자격 변경허가’에는 1년 이상 체류하다가 체류기간 만료가 임박(4개월 이내)한 사람이 난민 신청을 하면 체류기간 연장을 불허하고 출국기한만 유예해 준다. ‘체류기간이 끝나가니 난민 신청을 해 이유 없이 더 머물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실제 난민신청자 상당수가 다른 자격으로 체류하다가 난민 신청을 한다. 한국 체류 중 고국에 전쟁이나 쿠데타 등 뜻밖의 정치사회적 위기가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한재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체류기간이 4개월 남으면 ‘가짜 난민’일 것으로 보고 제 발로 나가게 하는 운영”이라고 말했다.

■항소·상고하면 씌워지는 ‘소송남용자’ 굴레

지침의 사법절차를 다룬 조항에서도 난민을 향한 편견을 짐작할 수 있다. ‘난민소송 제기자 등 조치사항’의 하위 조항 ‘소송남용자에 대한 조치사항’에는 “항소(상고)장 또는 (재)항고장을 제출한 경우 또는 소송종료 후 같은 처분(난민불인정 처분 1건)에 대해 반복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 “체류기간 연장 불허 후 소송 절차 종료 시까지 30일 범위 내에서 출국기간을 유예한다”고 적혀 있다. 내국인은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항소와 상고를 할 수 있다. 반면 난민은 난민 불인정의 부당함을 소송으로 호소할 때도 ‘소송을 남용하는 자’라는 낙인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난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에 있어 체약국 국민에게 부여되는 것과 동일한 대우를 부여받는다”고 명시한 난민협약에 위배된다.

출국명령과 구금(보호) 기준도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지침은 난민 신청 당시 신청자가 불법체류 상태였다면 출국명령 대상으로 정한다. 불법체류 중인 자가 “자진 출석해 난민재신청을 하는 경우”도 보호 조치 대상이다. 결국 난민 신청 사유를 들여다보려는 노력보다 체류자격만을 앞세워 보호 조치를 내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한재 변호사는 “난민신청자까지 구금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난민협약 위반 소지가 있는데 이를 지침으로까지 만든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공개가 결정된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지침’ 중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 난민인정자의 체류·사범관리와 관련된 지침’. 조해람 기자

지난달 14일 공개가 결정된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지침’ 중 ‘난민신청자와 인도적체류자, 난민인정자의 체류·사범관리와 관련된 지침’. 조해람 기자

■이유조차 알 수 없던 ‘내 운명’…법원 “지침 공개로 얻는 공익 더 크다”

그동안 난민들은 불리한 처분을 받아도 항의는 물론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우간다 출신 A씨가 2011년 난민 신청을 불허받았을 때도 정부는 통지서에 “제출자료 등을 볼 때 당신이 박해받고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한 줄짜리 설명만 했을 뿐이었다. 이예지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는 “난민신청 불허자들은 대부분 ‘불허됐다’는 한 줄만 기록된 통지서를 받는다”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과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당사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정지침이 비공개 됐던 것은 “행정청은 처분 기준을 되도록 구체적으로 정해 공표해야 한다”는 행정절차법에 위배된다. 국제인권규범에도 반한다. 한국 정부를 포함한 유엔 회원국 대다수가 채택한 국제이주기구의 ‘안전하고 질서있고 정규적인 이주 글로벌 콤팩트’에는 “이주절차의 법적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일 것을 약속하며, 입국·체류·노동 등 필요한 요건의 정보를 전달하고, 권리의무에 대한 정보가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접근되도록 보장한다”고 적혀 있다.

이번 정보공개 소송에서도 행정공개의 원칙이 쟁점이 됐다. 법무부는 지침이 공개될 경우 “난민신청자 등이 기준을 유리하게 적용해 체류허가 신청을 하거나 불법 취업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난민인권센터 측은 “상대방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처분이 지침 내용에 포함돼 있다”며 “불이익한 처분 기준의 공표 의무를 명시한 행정절차법에 위반된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정보가 공개돼야 난민법령 등이 보장하는 관련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고, 적법한 행정이 이루어지는지 국민의 적절한 감시와 통제를 받음으로써 얻는 공공의 이익이 훨씬 크다”며 난민인권센터의 손을 들어줬다.

이예지 변호사는 “어떤 요건을 갖추면 된다는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이 없어 처분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게 당사자들에게는 당혹스럽고 절망적이었다”며 “당사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규정이기에 당연히 공개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지난 3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사단법인 두루, 난민인권센터 등의 주최로 열린 난민지침 정보공개청구소송 2심 선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사단법인 두루, 난민인권센터 등의 주최로 열린 난민지침 정보공개청구소송 2심 선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6월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녀가 파키스탄 라호르의 빈민가에서 식수를 받기 위해 쪼그려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2019년 6월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녀가 파키스탄 라호르의 빈민가에서 식수를 받기 위해 쪼그려 앉아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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