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부필부는 상상도 어려운 호화판 대입스펙, 이렇게 만들어진다

유경선·강연주·문재원 기자
[현대판 음서제, 대입스펙①]필부필부는 상상도 어려운 호화판 대입스펙, 이렇게 만들어진다

“NYU(뉴욕대학교)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녀를 보내달라면서 2년간 1억5000만원을 지불했습니다”, “의대 재학생들이 하루 만에 수행평가 보고서를 만들어주기도 해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사례로 확인된 대학 입시자원 격차의 현주소가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 인사검증을 계기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국내 소재 국제학교에 다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딸은 법률·보건·교육·경제 등 광범위한 분야를 넘나드는 저술활동을 했다. 내용의 함량과는 별개로 여러 전문 분야를 종횡으로 넘나들며 논문이건 소논문이건 쓴다는 것 자체가 ‘보통’의 고등학생으로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다. 한 장관 딸의 여러 저작물은 논문 대필·표절 의혹을 받는 터다. 사회 상류층이 입시, 그 중에서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알음알음 쌓는 스펙을 신분 세습의 수단으로 삼는 세태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현실판, 확장판인 셈이다.

한국 사회 엘리트와 부유층은 막대한 재력과 폐쇄적 네트워크를 무기로 필부필부는 상상하기 어려운 자녀의 스펙을 차근차근 설계한다. 초상류층이 해외로 눈을 돌린 지도 제법 됐다. 일찌감치 논문 저술, 상품·서비스 기획, 봉사활동과 같은 초고급 스펙을 준비하거나 국제고 입학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국제 유수의 명문대 간판을 두드린다.

경향신문은 현대판 음서제와 다를 바 없는 ‘세습의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국제적 분업구조와 착취구조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최소한의 ‘공정’과 ‘정의’를 세우기 위한 첫 단추는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진단한다. 그 첫 순서로 요지경같은 ‘스펙쌓기’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학종에 ‘탐구보고서 대필’ 여전…컨설팅비 “한해 1000만원” 요구 업체도

국내 대학 입시에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있다. ‘조국 사태’ 이후로 논문 저술, 봉사활동, 외부 수상 실적 등을 기재할 수 없게 되었지만 과목별 ‘세부능력 특기사항’(세특)이나 ‘창의적 체험활동’(창체) 분야는 여전히 정성적 평가의 여지가 있다. 경제적·시간적 여유, 네트워크, 정보력과 같은 부모의 ‘입시자원’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영역이다.

‘세특’에서는 탐구보고서가 소논문의 기능을 대체한다. 탐구보고서는 학생이 과목별 탐구 주제를 선정해 수행한 뒤 쓰는 연구보고서이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는 심심찮게 ‘대필’ 이야기가 들린다. 한 대치동 입시 컨설턴트는 22일 “한 달에 300만원을 받고 보고서를 써주는 업체가 있다”며 “과목별 보고서 의뢰가 들어오면 주제와 관련된 분야의 대학원생을 섭외해 대필하게 하는 식”이라고 귀띔했다. 서울 대치·압구정·목동 등에서 입시 학원을 운영하는 한 업체에 대필을 문의해봤다. “최소한 수업의 형식은 띠어야 한다”면서 세 차례 수업에 150만~200만원을 제시했다. “가격은 난이도와 깊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대치동에서 입시연구소를 운영하는 한 소장은 특히 의대 입시에서 대필이 횡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 소재 의과대학 재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상위권 학생들의 탐구보고서를 ‘주문 제작’해주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수행평가나 발표 주제를 받으면 이 주제를 의대 재학생들에게 전달해서 주문 바로 다음날 보고서를 완성해주는 식이다. 이 소장은 “이렇게 서비스를 받는 비용이 한 해 1750만원 정도 된다”며 “인터넷 검색으로는 노출되지 않는 서비스로, 알음알음 소개를 받아야 이용이 가능하다”고 했다. 한 해 1000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부르는 입시 업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입시 전문가들은 ‘세특’이나 ‘창체’는 학교 간 편차가 크게 벌어지는 분야라고 말한다. 입시 정보가 모이는 강남 학군 교사들은 학생부에 세특을 어떻게 기재해야 좋은지 잘 안다. 똑같이 수학 과목 세특을 써도, 어떤 교사는 ‘지수함수를 활용해 코로나19 확진자 추이를 분석해서 수학 이론을 실생활과 연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쓰는 반면 어떤 교사는 ‘수학 문제를 성실히 풀었으며 오답을 열심히 관리했다’고 적는 식이다.

동아리나 진로 탐색 활동을 적는 ‘창체’에서도 격차는 있다. 자립형사립고(자사고)나 특수목적고(특목고) 학생들은 다양한 구성을 도모할 수 있지만 일반고는 전교생이 똑같이 듣는 ‘명사특강’ 같은 것들을 획일적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행위도 종종 있는 일이다. 학생-학부모-교사가 작심하고 동아리 활동내역 등을 ‘뻥튀기’해 적는 경우다. 학교 밖 대회에서 수상한 내역은 기본적으로 입시에 활용할 수 없게 돼 있지만 학교장이 인정하면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있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입김이 센 학부모들은 각종 대회를 수소문해 자녀를 참가시킨 뒤 수상 내역을 인정하게 한다. 한 자사고 교사는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상류층에서 되지도 않는 편법을 쓰고, 그래도 사회 요직에 진출하는 걸 보면서 자녀들이 대체 어떤 생각을 할까 싶다”고 개탄했다. 대치동 지역 입시 관계자는 “부모가 자녀에게 거짓 이력을 기재하라고 하고, 학교 교사도 여기에 부응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목적을 달성하라는 의식을 명확히 심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해외대 입시 한해 3000만~1억원…“무조건 보내달라” 2년간 1억5000원 쓰기도

해외 대학 입시는 더 하다. 스펙을 쌓기 위한 무한경쟁이 벌어진다. 국내 대학과 달리 논문·수상·봉사활동 등 내역을 기재하는 데 제한이 없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폭도 국내 대학 입시에 비해 넓은 편이다. 미국은 교육컨설턴트협회가 활성화돼 있다. 국가가 입시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편승해 고가의 컨설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국내 학부모들은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린다. 한동훈 장관의 딸도 해외 대학 입시를 목표로 화려한 스펙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유학 컨설팅은 한 해에 3000만원선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하반기 각 1000만원에 해외에서 하는 여름 캠프나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데 수백만원씩 든다. 압구정의 한 유학 컨설턴트는 “한 해에 1억원까지 쓰기도 한다”고 했다. 압구정의 또 다른 컨설팅 업체에 ‘자녀를 유학보내고 싶다’고 문의했더니 “GPA, SAT, 엑스트라커리큘럼, 원서 작성까지 한 해 2만 달러에 도와드리겠다. 전반적인 틀을 설계해서 관리해 드린다. 비용은 서비스 범위에 따라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논문 대필도 국내 입시보다 공공연하다. 이 업체는 논문 시세를 “한 편당 3000~4000달러”라고 제시했다. 미국 학제 기준 9~12학년 4년간 1000만원가량 지불하고 정보만을 얻는 ‘보급형 프로그램’도 있다.

“재벌집 자제들도 지도했다”는 압구정의 한 유학 컨설턴트 A씨는 “학생이 토플(TOEFL) 100점도 안 되는 학생이고, 간단한 영어 소설도 못 읽을 정도였는데 어머니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NYU에 보내달라. 아프리카어학과든 아랍어학과든 보내달라’고 했다”고 최근 사례를 소개했다. 이 학생은 2년간 1억5000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투입한 끝에 목표 대학에 진학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SAT를 시행하지 못해 시험 비중이 준 것도 운 좋게 작용했다. 이 학생은 ‘스포츠 매니지먼트’로 가닥을 잡았다. 재활용 소재로 스포츠 유니폼을 만드는 활동을 기획한 뒤 시제품을 만들어 스펙을 꾸몄다. A씨는 “판사·변호사·검사의 자녀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여권 실세 B의원과 유명 배우 C씨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들도 압구정 지역 유학 컨설팅 업체 문을 두드렸다. A씨는 “B의원의 아들은 5년 전쯤 다니던 학원에서 ‘더 이상 맡을 수 없다’고 한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유학 컨설팅을 해 온 컨설턴트 D씨는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젊은 학생들이 대학 간판을 내걸고 같은 학교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에게 고가의 컨설팅을 하며 돈을 번다”며 “입시에서 특별활동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 논문 발행, 봉사활동, 각종 경시대회, 인턴 활동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주는 업체들이 있다”고 했다. 기자에게 한 해 컨설팅 비용 2만달러를 제시한 한 업체는 “에세이(자기소개서)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 학교에서 다 읽지도 못한다”며 경시대회 참여나 여름방학 활동을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 한인 학부모는 경향신문에 “최근 유명한 글쓰기 대회에 지원했는데 수상자의 80% 가까이가 한국 학생이었고, 그 중에서도 국제학교 소속이 가장 많았다”며 “컨설팅 서비스를 통해 찍어낸 결과물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아무리 글쓰기가 뛰어나도 컨설팅을 등에 업은 학생들은 절대 못 따라잡겠다 싶어서 다음 번에는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다.

■교육법 ‘사각지대’ 국제학교는 부유층 대입 우회로…미인가 학교에선 ‘성적 세탁’도

국제학교는 부유층의 새로운 세습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국내 교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가깝기 때문에 고가의 학비만 감당하면 해외 대학 진학이나 국내 명문대 진학의 우회로로 삼을 수 있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국제학교는 원래 외국인 학생을 위한 학교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 학생 비율이 30%를 넘지 않아야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며 “수 년 전에 교육부가 대대적으로 감사를 벌였지만 그 이후 실질적 조치도 미비했다”고 했다. 경기도교육청에 문의한 결과 국제학교는 사립학교법상 감사의 의무도 지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국제학교 내부 관계자의 고발이 없으면 감사가 불가능하다”며 “교육계 사람들끼리 국제학교는 사각지대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한 유학 컨설턴트는 특히 미인가 국제학교에 문제가 많다고 했다. 학생들의 문제 행동 이력이나 성적을 세탁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 컨설턴트는 “학생의 학점을 높여주는 일이 학교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국내 최상위권 대학을 갈 성적이 안 되는 부유층 자녀들이 해외 대학으로 진학한 후 해당 학교와 교류협정을 맺은 국내 주요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오거나 편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상류층의 이런 세태에 ‘보통’의 학부모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일산 지역 한 고등학생 학부모는 “주위에서 자녀 스펙을 만들어주는 것들을 보니 박탈감이 느껴진다”며 “아이의 의지가 전혀 없어도 부모의 힘으로 입시에 정말 유리한 스펙이 쌓일 수 있다는 걸 보며 씁쓸함을 느낀다”고 했다. 한 학부모는 고등학생들이 학원 강사가 대신 써준 보고서로 스펙을 쌓은 뒤 대학에 들어갔지만 법원에서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는 기사를 링크했다. 그러면서 “어떤 제도라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면서 혼란스럽다”고 했다.

한동훈 장관 딸과 그 주변의 사례가 논란이 된 이후 미주 지역 한인 학부모들은 지난 17일(한국시간) 국제청원 사이트 체인지닷오알지(change.org)에 청원글을 올리고 “이 사태의 본질은 한국 특권층이 미국 명문대 진학을 위해 촘촘히 설계하고 실행한 조직범죄”라고 했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린 글에서 “타국에서 차별과 인종주의에 맞서며 고단한 이방인의 삶을 견디는 재미 한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편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우월한 지위를 세습하는 행태가 참담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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