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정호영, 누가 더 ‘불공정’합니까?읽음

이혜리·유선희 기자

① 부모찬스와 정파적 편향

[두 얼굴의 공정] 조국과 정호영, 누가 더 ‘불공정’합니까?

정치 성향 따라 ‘공정’ 판단 차이

경향신문·언더스코어 조사 결과
조국·정호영 ‘부모찬스’ 논란에
공정성 인식 ‘정파적 편향’ 확인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 바로 ‘공정’이다. 공정 논란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같은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부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부정 입시 의혹과 같은 ‘부모찬스’에 따라붙었다. 불공정에 분노하는 주체로 ‘MZ세대’가 부상했고, 지난 20대 대선 때 정치권은 ‘이대남’을 공략했다. ‘공정과 상식’ 슬로건과 함께 여성가족부 폐지와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런데 공정이란 무엇일까. 합의된 공정이라는 게 있을까. 청년들은 공정에 정말 민감할까. 모든 청년이 같은 의미의 공정을 말할까. 정작 대선 이후 공정에 대한 언급은 현저히 줄어든 상태다. 국민의힘은 오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이대남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식 콘텐츠 스타트업인 언더스코어와 함께 시민들이 생각하는 공정이란 무엇인지를 실증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전국 단위 설문조사를 의뢰했다. 조사는 전문업체 데이터스프링코리아를 통해 지난 4~9일 18~69세 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은 성별·연령·지역별 인구 비율을 따랐다.

조사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은 공정했다(이하 조국)’,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아들의 경북대 의대 편입학은 공정했다(이하 정호영)’는 두 문장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는지 물었다. 고위 공직자 또는 후보자가 기회 제공을 통해 자녀 입시에서 원칙에 어긋난 혜택을 받았다는 부모찬스 논란의 대표 사례로 두 사안을 꼽았다. ‘매우 불공정하다’부터 ‘매우 공정하다’까지 1~5점을 표기하는 방식이다.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지난 대선 때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에 따라 조국과 정호영 사안의 공정성 정도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어떤 현상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이미 갖고 있던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지지나 보수·진보 성향을 반영해 판단을 내리는 ‘정파적 편향’이 나타난 것이다.

두 부모찬스 사안의 공정성 인식에 대한 정파적 편향은 전반적으로 40대 이상 응답자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청년층에서도 그러한 편향은 발견됐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한 청년 남성 응답자가 정호영 사안에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사 결과가 “한국 사회에 공정에 대한 각기 다른 인식이 존재하고, 공정과 청년을 둘러싼 일련의 담론이 정치적 다툼 차원에서 흘러왔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누굴 찍었나’ 따라 엇갈린 “잘못”…평가 잣대는 사실이 아닌 ‘편’

조국·정호영 ‘자식 특혜 논란’에
윤석열 찍은 유권자 “조국 불공정”
이재명 투표자는 “정호영 불공정”

이념 등 정치색 반영된 편향된 답
공정에 대한 객관성 결여 보여줘

윤 지지 ‘이대남’들 대답 쏠림 심해
“동일 이슈 다른 결과 내로남불격
필요에 따라 민감도 달라지는 셈”

정치성향 따라 조국·정호영에 다른 공정

조사 결과를 전체 응답자 기준으로 살펴보면 61.9%가 조국에 대해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38.3%+다소 불공정 23.6%)고 답변했다. 정호영에 대해서는 70.1%가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38.4%+다소 불공정 31.7%)고 답했다. 이는 지지 정당이나 정치인을 표본에 반영하지 않은 채 조사를 시행한 결과다.

구체적으로 연령·성별·수도권 거주 여부·교육 수준·가구 소득수준·직업 상태·결혼 여부·지난 대선 때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등 8개 요소로 조국·정호영 사안의 공정성 인식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기혼자일수록, 가구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평균적으로 조국에 공정성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정호영에 대한 공정성 문제가 없다는 답변도 평균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기혼자일수록, 가구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더 높게 나타났다.

두 사안에 대한 공정성 인식에 가장 큰 변수가 된 것은 대선 때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였다.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응답자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투표한 응답자의 공정성 인식 정도가 크게 달랐다. 윤 후보 투표자의 경우 조국에 대해서는 78.6%가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57.4%+다소 불공정 21.2%)고 답변했다. 반면 정호영에 대해서는 59.7%만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23.9%+다소 불공정 35.8%)고 답했다.

이재명 후보 투표자의 경우 조국에 대해서는 45.9%가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22.1%+다소 불공정 23.8%)고 답변했다. 정호영에 대해서는 79.3%가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51.4%+다소 불공정 27.9%)고 했다. 윤 후보 투표자와 이 후보 투표자의 조국·정호영 사안에 대한 공정성 인식이 거꾸로 나타난 것이다. 윤 후보에게 투표했든, 이 후보에게 투표했든 조국과 정호영 사안에 대해 각각 매우 불공정하다고 답한 비율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 같은 정파적 편향의 정도는 40·50·60대 응답자에서 심했다. 윤 후보에게 투표한 40대 이상 응답자가 조국에 대해 매우 불공정하다고 답한 비율은 남성이 61.5%, 여성이 58.7%로 높았는데, 정호영에 대해서는 각각 14.0%, 26.2%에 불과했다. 차이가 각각 47.5%포인트, 32.5%포인트로 크다. 이 후보에게 투표한 40대 이상 응답자는 조국에 대해 매우 불공정하다고 한 비율이 남성은 16.7%, 여성은 25.7%로 낮은 반면, 정호영에 대해서는 60.4%, 53.2%였다. 차이가 각각 43.7%포인트, 27.5%포인트였다.

지난해 11월28일 윤석열 국민의힘 당시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하우스커피에서 열린 ‘대선 D-100, 내일을 생각하는 청년위원회 및 청년본부 출범식’에서 공정나무 심기 퍼포먼스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11월28일 윤석열 국민의힘 당시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하우스커피에서 열린 ‘대선 D-100, 내일을 생각하는 청년위원회 및 청년본부 출범식’에서 공정나무 심기 퍼포먼스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투표 청년 남성’ 정파적 편향 부각

20·30대 청년층 응답자를 별도로 따져보면 어떨까. 청년층 응답자들의 답변에서도 정파적 편향은 확인됐다. 통계를 살펴보면, 윤 후보를 지지한 청년 남성과 이 후보에게 투표한 청년 여성 응답자군에서 인식 차이가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윤 후보 투표 청년 남성은 조국에 대해서는 73.0%가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53.3%+다소 불공정 19.7%)고 답했다. 반면 정호영에 대해서는 61.3%만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26.3%+다소 불공정 35.0%)고 했다. 조국이냐, 정호영이냐에 따라 매우 불공정하다고 보는 차이가 27.0%포인트나 된 것이다.

이 후보에게 투표한 청년 여성의 경우 조국에 대해서는 52.8%가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24.1%+다소 불공정 28.7%)고 답변했다. 정호영에 대해서는 72.3%가 불공정하다(매우 불공정 41.7%+다소 불공정 30.6%)고 했다. 매우 불공정의 비율 차이가 17.6%포인트였다.

더 엄격하게 수도권 거주 여부·교육 수준·가구 소득수준·직업 상태·결혼 여부 등 변수를 제외하고 따져보면(회귀분석), 윤 후보에게 투표한 청년 남성만 정호영에 관대한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윤 후보를 지지한 청년층 응답자군에서 성별에 따라 공정성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성별에 따른 정파적 편향은 이 후보 투표 청년층 응답자군이나, 40대 이상 응답자군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동안 청년층은 흔히 선거에서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지 못하는 ‘스윙보터’로 불려왔다는 점에서, 청년층의 정파적 편향은 새롭게 해석될 수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윤 후보에게 많은 표를 던진 이대남과 함께 이 후보를 지지한 청년 여성인 ‘개딸(성격이 드센 딸)’이 정치 주체로 조명되기도 했다.

윤 후보 지지 청년 남성의 특이점은 6·1 지방선거에서의 투표 의사결정 의향에 대한 질문·답변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지방선거 때 어느 정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도 물었다. 정호영 사안은 대선과 지방선거 사이에 불거졌기 때문에 이 이슈가 표심에 영향을 미쳤는지 추정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윤 후보에게 투표했던 청년 여성·40대 이상 남성·40대 이상 여성 응답자군에서는 모두 정호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할수록 국민의힘 투표를 확정하지 않은 비율(이탈률)이 높아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윤 후보 투표 청년 남성 응답자군에서는 정호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든 국민의힘 투표를 확정하지 않은 비율이 비슷했다. 정호영 사안이 윤 후보에게 투표한 청년 남성의 지방선거 의사결정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이다. ‘이대남이 공정성에 특별히 민감하다’는 통념이 과연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다만 윤 후보 투표 청년 남성의 국민의힘 이탈률 자체는 40대 이상에 비해 높았다. 여가부 폐지,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 후퇴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전반적으로는 남성보다 여성의 이탈률이 높았다.

청년 노동자 공동체 ‘청년 전태일’ 회원들이 2019년 9월11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만나기 위해 정의와 희망, 공정의 사다리를 들고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로 걸어가고 있다. 청년들은 조 장관과 만나 사회에서 조명 받지 못했던 사각지대 청년들의 현실과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논란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생각 및 대안을 얘기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민 기자

청년 노동자 공동체 ‘청년 전태일’ 회원들이 2019년 9월11일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만나기 위해 정의와 희망, 공정의 사다리를 들고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로 걸어가고 있다. 청년들은 조 장관과 만나 사회에서 조명 받지 못했던 사각지대 청년들의 현실과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논란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생각 및 대안을 얘기하겠다고 밝혔다. 김영민 기자

누구를 위한 공정담론·세대론인가

전문가들은 이번 설문조사 결과가 정파적 편향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정파적 편향에 따르면 같은 사안을 보고도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불공정 논란의 대표 사례인 부모찬스에 대해서도 그러한 태도가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최근 몇 년간 불거진 특정 사안에 대한 공정 논란이 정파적 편향을 기반으로 전개돼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일한 공정성 이슈조차도 정파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로 정치적 당파성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청년층의 공정성 개념도 당파성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류연미 연구자(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는 “ ‘무엇이 불공정한가’ 혹은 ‘무엇이 더 불공정하게 느껴지는가’에 대한 판단이 언제나 객관적으로 도출되지는 않으며, 상황에서의 필요에 따라 그에 대한 민감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결과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는 “청년들에게서만 ‘성별에 따른 정치성향 양극화’, 즉 지지 정당과 성별이 결부된 팬덤화 현상이 관찰된 게 이번 조사 결과의 중요한 점”이라며 “보수 성향 청년 남성이 오히려 균형감 있게 부모찬스 이슈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공정성에 가장 관심이 많다는 통념과 실제 데이터상에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다만 청년층의 정파적 편향에 대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사 결과를 보면 정파적 편향을 발산하는 집단은 40대 이상의 유권자이지, MZ세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20·30대가 더 갈라져있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조국·정호영 사안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조국·정호영 사안이 애초에 정치적 이슈이기 때문에 가장 큰 분열의 지점이 어느 정당에 투표하느냐와 관련해 나타난 것”이라며 “정치권이 말하는 공정은 청년 일부의 공정관을 전체의 공정관으로 오해한 결과로, 정당이 공정을 표방하고 특수한 공정관을 따라간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득표 이익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세대론이라는 판을 짜고 움직이는 모습을 ‘세대게임’이라고 규정했다. 문제는 정파적 편향이 강해질수록 민주주의에 저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청년층 내부의 다양한 청년들이 오히려 정치 참여를 꺼리거나 부담을 갖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정파적 편향 강화의 배경으로는 내 입장과 동일한 취지의 파편적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활성화가 지목된다.

전 교수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나름대로의 절충점을 찾아가는 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사결정의 핵심 요소이지만, 정파적 편향이 강해질수록 대화가 힘들어진다”며 “주장의 근거와 합리적 이유를 대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공정이라는 것에만 맞춰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우려가 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두 얼굴의 공정] 조국과 정호영, 누가 더 ‘불공정’합니까?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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