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용 논문, A4 1장당 18달러”…논문 대필 시장의 ‘국제분업 구조’

강연주·유경선 기자

6만3000원만 있으면 원하는 논문 한 편이 뚝딱 완성되는 시장이 있다. 키워드 하나만 건네면 논문 작성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이 무색하게 한나절 만에 완성된 논문을 받을 수 있다. 논문을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Ghostwriter)’는 선입금을 받으면 지구 반대편에서 의뢰인의 요구에 맞춰 집필을 시작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가 케냐 출신 대필작가의 힘을 빌려 논문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을 계기로 그간 물밑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던 ‘논문 대필 시장’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필한 논문을 대학입시나 연구에 활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경향신문은 논문 대필 시장의 글로벌 생태계가 어떤지 알아보려고 10여 명의 해외 대필작가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학술논문 대필 의뢰에 응한 저자들은 대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 케냐·파키스탄 국적의 대필작가에게 한 장관 자녀가 작성한 논문 두 편과 동일한 주제의 소논문을 각각 의뢰했다. 이를 통해 논문 대필 과정에서 이뤄지는 불법적인 행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입시용 논문, A4 1장당 18달러”…논문 대필 시장의 ‘국제분업 구조’[현대판 음서제, 대입스펙②]

■“주제와 분야에 상관없이 하루 안에 가능”

먼저 케냐 국적의 대필작가 조셉(가명)을 온라인상에서 만났다. 케냐 소재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마쳤다는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학술 논문을 대필한다’ ‘질 좋은 결과물을 얻고 싶다면 메시지를 달라’는 홍보 문구를 버젓이 올려놓았다. 지난 23일, 조셉의 SNS 계정에 “고등학생 입시용 논문도 대필 가능한가요? 저는 한국인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2시간 만에 답변이 왔다. “물론입니다. 당신이 제게 논문 대필을 의뢰한 세 번째 한국인이네요.”

‘A4용지 1장당 18달러(2만3000원)’. 조셉은 “주제와 상관없이 논문 분량만으로 금액을 책정하며 선입금되는 대로 대필 작업에 착수한다”고 했다. 논문 주제는 이공계든 인문계든 상관 없었다. 그는 “어느 분야든 몇 시간 내로 5~8장 정도의 소논문 한 편을 완성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할인이 가능하냐’고 문의하니 “처음 제시한 금액(72달러)에서 50달러(약 6만3000원)까지 깎아주겠다”고 했다. 한 장관 자녀가 작성한 글과 동일한 국가채무를 주제로 “소논문을 하루 이내에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9시간 만에 8쪽짜리 영문 소논문을 답신으로 보내주었다. 논문을 작성한 것은 조셉이었지만 완성본에는 대필을 의뢰한 기자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

조셉은 “직업을 구하지 못해 가족과 함께 대필 작업을 하고 있다”며 “생업으로 삼기에는 들이는 품에 비해 수익성이 턱없이 낮다”고 했다. 다음 기회에도 자신에게 의뢰를 부탁한다며 “더 좋은 퀄리티의 논문은 1~2주 정도의 시간과 좀 더 높은 금액을 주면 된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걸리면 어떡하냐?”고 묻자 “걱정하지 마라. 아무도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인 학생들 의뢰 많아…대부분 ‘대학 진학용’ 논문 의뢰”

논문 대필은 해외 프리랜서 사이트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해외 프리랜서 플랫폼 ‘파이버’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이 플랫폼은 학술 논문의 대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논문 대필이 성사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플랫폼에서 파키스탄 출신 대필작가 사이프(가명)에게 ‘대입용 논문을 대필해줄 수 있느냐’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답변을 메시지가 아닌 사진으로 대신했다. 사진에는 휴대전화에 직접 손으로 적은 글씨가 있었다. “파이버에서 대학, 논문, 대필 등의 단어를 입력하면 안됩니다. 연락처를 보낼테니 왓츠앱 메신저로 (논문 대필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해요.”

그의 안내에 따라 다른 메신저 앱으로 넘어왔다. 그제서야 원하는 주제, 기한, 분량, 생각하고 있는 금액 등을 자세히 물었다. 주제에 대해선 “폭넓은 분야에 대해 다 쓸 수 있다”고 했다.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대필 팀’을 운영하는 덕이다. 사이프는 “7명이 한 팀이고, 대부분 파키스탄인”이라며 “정보통신기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법 분야 저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이프는 “해외에서 민법으로 박사학위를 땄고, 사이버 관련 법이 세부 전공”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대필 일을 시작한 지는 5년 정도 됐으며, 본인을 비롯해 파키스탄·이탈리아·호주 국적의 7명이 논문 대필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공계·사회경제학 등으로 각자 전공을 분담해 대필을 한다고 했다. 그는 “많은 한국인에게 논문 대필 의뢰를 받았으며, 대부분 ‘대학 진학용’ 목적의 논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귀띔했다. 한국인들이 주로 어떤 주제의 논문을 요구했는지 묻자 “주로 법 분야에 대한 서술을 요구하는 의뢰가 많았다”며 “라 로쉬 대학,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 멘로(Menlo) 대학, 하딘스 시몬스 대학 등 여러 곳의 진학을 도와줬다”고 했다.

사이프에게도 한동훈 장관의 딸이 지난 2월 한 온라인 컨퍼런스에 제출한 논문과 유사한 주제를 정해 부탁해봤다. 한 장관의 딸은 ‘머신 러닝 접근법을 사용한 우울증 비율 수행 분석’을 주제로 방글라데시 국적의 연구자와 함께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분량은 이 논문과 같은 5장으로 의뢰했다.

23일 오후에 ‘24일 자정’을 시한으로 제시했고, 금액은 협상 끝에 100달러(약 12만6500원)로 정했다. 결과물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걱정된다는 말에 그는 60달러(약 7만6000원)를 선금으로 받고, 최종 결과물을 전달해준 뒤 나머지 40달러(약 5만원)를 받겠다고 했다. 결과물은 시한보다 50분 일찍 도착했다.

논문은 요구사항을 충실히 담고 있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자살률이 2위라는 통계 등을 인용했고,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의학적 예측 알고리즘이 자살 위험을 감소시켰다는 실증 연구들을 소개했다. 논문은 캐나다 정부가 자살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인공지능 기술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고 호주에서도 같은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소개한 뒤 ‘한국 정부도 인공지능 기술과 비식별화 의료 데이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으로 마무리했다.

■“표절률 10~16% 아래로 맞춰드려요”

이렇게 전달받은 두 논문은 표절검사에 걸리지 않을까? 케냐 출신 조셉은 “논문을 보내주기 전에 논문 표절 방지 프로그램인 ‘턴잇인(Turnitin)’에 한 번 돌리고 발송하니 문제 없다”고 했다. 실제 두 논문을 표절 검사기에 돌려본 결과 표절률이 각각 6%, 4%에 그쳤다. 표절을 의심받는 수준인 10%~16%에 비해 절반 이상 낮은, 안정적인 수치다.

아예 ‘표절률까지 맞춰주겠다’고 제안한 대필작가도 있었다. 파이버 플랫폼에서 만난 파키스탄 대필작가 하마드는 “학술지마다 표절률을 다르게 제시한다”며 “우리가 작성해주는 논문은 의뢰인이 정해주는 표절률 최대치에 따라 다르게 작성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두 편의 논문을 두고 “고등학생이 썼다고 보면 괜찮은 소리를 들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조셉에게 의뢰한 ‘국가채무’ 논문을 본 고려대학교 강사 A씨는 “학술지에 기고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고등학생이 썼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공부도 많이 했고 잘 정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한 장관의 처조카들로부터 ‘논문 표절 피해’를 당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원 뉴멕시코 주립대 교수에게도 같은 논문을 평가해달라고 건넸다. 이 교수는 “고등학생이 작성한 레포트 수준의 글이라 정상적인 학술지에 등재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오픈 액세스 저널인 ‘ABC Research Alert’을 비롯한 약탈적 학술지에는 등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급된 ABC Research Alert는 한 장관 딸도 논문을 올린 곳이다. 이 저널은 공식 홍보 영상에서 “온라인에 논문을 올려 놓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없이, 50달러(약 6만3000원)에 게재가 가능하다”고 공공연히 홍보한다. 비용만 내면 고등학교 수준의 소논문이라도 심사를 거치지 않고 게재할 수 있다.

대필 논문의 낮은 표절율은 학계의 골칫거리다. 딱히 검증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논문을 쓸 줄 아는 사람이 대필을 하게 되면 대체로 표절 검사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도록 교묘하게 빠져나간다”며 “그래서 논문 대필이 표절보다 훨씬 악질적”이라고 했다. 이어 “논문 대필을 비롯해 부정한 방식으로 대학에 진학해놓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공정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자녀를 교육시켰던 많은 학부모들에게 허탈감과 박탈감을 줄 수밖에 없다”며 “결과적으로 논문 대필과 표절 행위는 학계를 넘어 사회 신뢰의 근간을 무너뜨린다”고 했다.

■대필에서 드러나는 글로벌 착취 구조

연락이 닿은 대필 작가 중 제3세계 출신 고학력자 비중이 높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자신의 지식을 해외 유수의 명문대로 가길 희망하는 타국 고등학생들을 위해 사용하는 셈이다. A 강사는 “대필 작가 중에는 학술적 글쓰기를 배웠으나 이를 사회에서 실현할 기회를 받지 못해 대필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1세계 국가인 미국으로 진입하고자 제3세계 국가의 지식과 노동을 끌어다 쓰는 소위 ‘착취’ 구조로 보인다”고 평했다.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대필 저자들이) 글로벌 수직 학벌체제에서 한국과 중국 등의 ‘학벌 계급’을 위한 하청 노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케냐,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엘리트들도 영국이나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글로벌 학벌 체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종우 교수노조 정책실장은 “이같은 불법 행위는 한국 사회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시킬 우려가 높다. 소위 부유한 집안 자제들은 정보력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대필 비용이 저렴한 제3세계 국가에게 지속적으로 대필을 요청할 것”이라며 “정직하게 입시에 임하거나 연구에 임하는 사람들 모두 ‘신뢰’에 대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부끄럽고, 불쾌하다”고 했다. 이 실장은 “현재로서는 학생이 작성했다고 나온 논문이 실제 그가 작성한 것이 맞는지, 논문이 등재된 학술지가 혹여 약탈적 학술지는 아닌지에 대해 대학 입학처에서 보다 면밀하게 검토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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