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단 첫 타겟 된 '테라·루나' 사태···수사 쟁점 셋

조해람 기자
한국산 가상자산 루나와 테라USD의 폭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약세장이 지속되고 있는 5월 18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루나 차트가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한국산 가상자산 루나와 테라USD의 폭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약세장이 지속되고 있는 5월 18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루나 차트가 띄워져 있다. 연합뉴스

99.99% 폭락 사태를 빚은 테라·루나 사태의 파장이 커지면서 검찰도 사건을 주의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최근 부활한 ‘여의도 저승사자’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은 이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삼아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폭락한 가상자산 테라USD(UST)와 루나 개발에 관여한 테라폼랩스 전직 개발자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고, 피해자들의 고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수사의 향방을 가를 쟁점을 정리했다.

■‘연이율 20%’ 앵커 프로토콜, 지속 가능했을까

현재 시점에 가장 관심이 모이는 것은 테라 생태계의 ‘앵커 프로토콜’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테라라는 ‘생태계’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UST는 가상자산의 가치를 실제 화폐에 고정시키는 ‘스테이블코인’이다. 등락이 심한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자산보다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받는다. UST도 1개당 1달러를 지향한다. 그런데 보통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등 실제 자산을 보유함으로써 안정성을 담보하는 데 비해, 테라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안정성을 담보한다는 차이가 있다.

발행사 테라폼랩스는 ‘1UST=1달러’라는 공식을 지키기 위해 UST와 루나가 돌고 도는 일종의 생태계를 구성했다. 1UST가 1달러 아래인 0.9달러로 내려가면 투자자는 이를 시스템에 팔고 0.9달러 대신 1달러어치의 루나를 받는다. 시중 공급이 줄어든 UST는 다시 가격이 오르며 1달러 선으로 상향한다. 반대로 1UST가 1달러보다 높은 1.1달러로 오르면 투자자는 1UST를 구입하기 위해 1달러어치의 루나를 시스템에 팔고 1UST를 받는다. 공급이 풀린 UST는 다시 가격은 1달러 선으로 하향한다. 수요·공급 구조에서 차익거래로 이득을 보려는 투자자들의 심리와 알고리즘이 이를 가능케 한다.

합수단 첫 타겟 된 '테라·루나' 사태···수사 쟁점 셋

가치가 고정된 UST와 달리 루나의 가치는 UST 거래에서 발생하는 소액의 수수료에 기반한다. UST 거래가 늘어날수록 루나를 예치(스테이킹)한 이들에게 보상이 주어지고, 이 보상을 노리는 이들은 루나를 더 보유하려 하면서 가치가 우상향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이 성공하려면 생태계 내 이용자가 늘어야 한다. 그러나 ‘1달러’ 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테이블코인에서 투자자들은 큰 이득을 보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유인이 필요했다. 이 유인이 바로 앵커 프로토콜이었다. 앵커 프로토콜은 이용자가 UST를 유치하면 연 19.4%의 고이율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유인했다. 앵커 프로토콜은 한때 세계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서비스 중 2위까지 성장했다.

문제는 연 20%에 가까운 고이율 서비스가 지속 가능했는지 여부다. 앵커 프로토콜은 예치와 함께 가상자산을 대출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대출 이자율은 12.4%로 예금이자보다 낮았다. 결국 계속 신규 이용자가 발생해야 그들의 예치금으로 이자를 지급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폰지 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테라폼랩스가 이 시스템이 애초부터 불안했다는 점을 알고도 시스템을 유지했다면 이용자를 기망한 것이고 이는 사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앵커 프로토콜은 총 예치금과 대여금, 준비금 등 상황과 운영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긴 했다(전인태 국민의힘 가상자산특별위원회 위원·지난달 23일 국회 세미나)”는 유보적 의견도 있다.

서울남부지검 청사. 이준헌 기자

서울남부지검 청사. 이준헌 기자

테라 생태계의 알고리즘이 취약했다는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문제 소지가 있다. 외부적 요인 등으로 UST의 가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생태계 전체가 신뢰를 잃어 루나까지 동반 하락하며 서로를 끌어내리는 ‘죽음의 나선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테라폼랩스 권도형 대표에게 지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사했다는 전직 개발자 강형석 스탠다드프로토콜 대표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등록된 특허에는 루나 과공급을 막을 수 있는 변수가 있는데 실제 코드를 뜯어보면 구현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인력·자금 주고받은 ‘K사’…공동창업자는?

테라폼랩스와 긴밀하게 연결된 블록체인 기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K사’도 도마에 올랐다. K사는 ‘코인으로 코인 가치를 유지한다’는 테라 생태계 알고리즘 특허를 보유했고, 테라폼랩스와 협업하며 테라 관련 서비스 개발에도 관여했다. 두 회사가 개발자와 병역특례요원 등 인력을 공유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회사가 권 대표의 ‘차명회사’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3일 경향신문이 확인한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면 K사는 2020년 7월부터 테라폼랩스 서울 사무실과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었다. 그러다가 테라·루나 폭락 직전인 지난달 1일 인근 다른 건물로 옮겼다. 지금은 해산된 테라폼랩스 한국법인 등기를 보면 K사 대표는 테라폼랩스 감사로도 등록돼 있었다.

K사 대표는 지난해 국세청의 테라폼랩스 탈세 혐의 조사 과정에서 60억원가량의 가상화폐를 받은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다만 국세청은 테라폼랩스의 탈세에만 추징금을 부과했다.

지난달 13일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모습.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폭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은 9개월여 만에 4천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연합뉴스

지난달 13일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모습.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폭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은 9개월여 만에 4천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연합뉴스

해외에서도 두 회사의 연결고리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CEO는 지난 1일(현지시각) 테라폼랩스와 권 대표의 사기 의혹에 대해 내부 조사를 지시했다고 미국 경제지 <포춘>에 밝혔다. 자오창펑 CEO는 테라폼랩스가 K사의 클라우드에 주요 문서들을 숨겼는지 여부, 내부자거래 여부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인 신현성 티몬 이사회 의장에게도 관심이 모인다. 신 의장은 2018년 권 대표와 함께 테라폼랩스를 창업했고 2020년 3월 퇴사했다. 권 대표는 신 의장이 총괄로 있는 차이코퍼레이션 싱가포르 법인에 최근까지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K사 대표와 신 의장 측은 언론에 지속적으로 “별도 법인이며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

■‘행방 묘연’ 권도형은 어디에?

가장 중요한 고리는 테라폼랩스 권 대표의 행방이다. 현재 권 대표는 국내는 물론, 테라폼랩스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행방이 묘연하다. 트위터로만 소통하는 권 대표는 회사가 정상 운영 중이라고 했지만 실제 싱가포르 현지 사무실은 폐쇄된 것으로 전해졌다. 권 대표는 최근까지 싱가포르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블룸버그와 인터뷰할 당시의 권도형 대표. 블룸버그 영상 갈무리 지난달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블룸버그 영상 캡처

블룸버그와 인터뷰할 당시의 권도형 대표. 블룸버그 영상 갈무리 지난달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블룸버그 영상 캡처

검찰이 현지 수사기관 등과 얼마나 공조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싱가포르 경찰은 지난달 23일 주싱가포르 한국대사간에 “현재까지 권 대표에 대한 수사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테라·루나 폭락 피해자들이 전 세계에 있는 만큼 국제 공조 가능성은 열려 있다.

지금도 수사기관에는 피해자들의 추가 고소·고발이 이어지며 피해액이 계속 늘고 있다. 지난 2일 법무법인 대건은 총합 약 10억원의 피해를 본 12명을 대리해 서울남부지검에 테라·루나 사태 관련자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달 12일에는 법무법인LKB 대리로 약 피해를 본 5명(피해액 약 14억원)이, 지난달 27일에는 ‘테라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에 소속된 투자자 87명(피해액 약 77억원)이 관련자들을 고소·고발했다. 합수단에 걸려 있는 사건 규모는 피해자 104명에 피해액 101억원으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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