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끓이며 지었는데 엉망이다···내 ‘애증의 집’에도 행복이 깃들까

이숙명

이숙명의 ‘유유자적’

전화 한 통으로 일이 착착 해결되는 도시를 그리워하다가 전망을 보면 마음이 풀린다.

전화 한 통으로 일이 착착 해결되는 도시를 그리워하다가 전망을 보면 마음이 풀린다.

3주 전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16개월 동안 애를 끓이며 완공을 기다린 집이다. 모두가 그렇게 아름다운 집을 가졌으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묻는다. 배부른 소리 같아서 친구들에겐 비밀로 했지만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집은 엉망이다. 얼마나 엉망이냐면, 마감 중에 컴퓨터가 고장 나고 새로 산 물걸레 청소기가 망가지자 이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흠 너희도 이 집 식구라는 거지? 인정!’

3주 전으로 돌아가보자. 일단 가구회사의 난동이 있었다. 무엇을 구매하든 거래가 완료되기 전까지 전액을 지불하지 말 것. 이건 발리 생활의 불문율이다. 돈을 떼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받을 만큼 받았다 싶으면 판매자의 태도가 달라진다. 여기까지 온 외국인은 돈 많은 호구라는 생각에 사기를 치려는 사람도 많고, 이곳 산업, 고용, 임금 구조상 직업정신이란 걸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고, 나른한 휴양지에 살다 보면 원주민이건 이주민이건 귀찮음을 견디는 능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부주의했다. 친구한테 소개받았고 제작 현장도 두 번이나 방문했으니 괜찮겠지 방심했다. 보증금을 받아놓고도 추가 주문은 전액 결제를 해야 한다거나 재료비를 보태달라고 읍소할 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홀린 듯 야금야금 돈을 보내고 아차, 했다. 그들은 가구를 아무런 포장 없이 배에 실어 보냈다. 나무는 온통 긁히고 찍혔다. 유리는 깨졌다. 그뿐이면 배송 실수라 할 텐데 추가 주문한 품목은 제작조차 안 한 사실이 밝혀졌다. 세면대와 싱크대 등 기존 구조에 부착할 물건들은 3D 이미지를 보냈음에도 제멋대로 만들어서 설치가 불가능했다. 서랍이란 서랍은 모두 홈을 잘못 파서 열리지가 않고, 주물들은 약속과 달리 싸구려로 바뀌었다. 업체 측 반응은 적반하장이었다.

거래 완료 전까지는 절대 전액을 지불하지말라는 ‘발리의 불문율’
여기까지 온 외국인은 돈 많은 호구라는 생각에 다 사기를 치려든다
긁히고 깨지고 물은 말라버렸는데 수리공은 ‘세월아, 네월아’다
괜찮아~ 버튼 하나로 쾌변을 맛보는데 용서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인터넷 설치 기사가 와이파이 이름을 ‘빌라 아완(villa awan)’이라고 설정하기에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완이 ‘구름’이란다. 산꼭대기 하얀 집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당신은 시인이군요”라고 했더니 그가 수줍게 웃었다. 그렇게 집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인터넷 설치 기사가 와이파이 이름을 ‘빌라 아완(villa awan)’이라고 설정하기에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아완이 ‘구름’이란다. 산꼭대기 하얀 집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당신은 시인이군요”라고 했더니 그가 수줍게 웃었다. 그렇게 집의 이름이 결정되었다

“우리는 원래 가구 포장을 안 하고 보낸다. 아무도 그걸로 불평한 적 없다. 나 바쁜 사람이니까 말 걸지 마라. 잔금은 내가 깎아준 셈 칠 테니까 먹고 떨어져라.”

누락된 품목, 수리, 설치 등을 다른 회사에 의뢰하는 비용이 잔금보다 클 것이므로 ‘깎아준다’는 말은 부적절했지만 별수 있나. 이렇게 발리살이를 또 하나 배웠다.

결국 세면대도, 싱크대도, 옷장도 없이 3주를 지냈다. 그전까지 나는 티크 산지, 전통 목공예, 저렴한 가구로 유명한 인도네시아에서 어떻게 이케아가 살아남는지 의문이었다. 이케아 인도네시아는 배송비와 관세 문제로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하지만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수배한 두 번째 가구회사마저 실패할 경우, 나는 미련 없이 이케아를 이용할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물이다. 이사 이틀 후 물이 끊겼다. 나는 물 저장소가 빈 줄 알았다. 우리 집은 상수도가 없다. 이 집을 짓기 시작할 때만 해도 누사프니다는 물 부족 사태가 심각해서 상수도 신청을 받지 않았다. 요즘은 신청을 받긴 하는데 1년 정도 기다려야 한다. 대신 도로 건너 사는 땅주인네 수도에서 호스를 연결해 물 저장소를 채우기로 계약을 했다. 문제는 땅주인 가족이 매우 친환경적인 분들이라는 점이다. 땅주인네 수도도 물이 콸콸 나오지는 않는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도를 우물에 받아서 쓴다. 그러니 내 집 저장소에 물이 떨어진 후에 호스를 연결해 물을 받으려면 늦다. 미리 연결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주인 가족은 그 일을 차일피일 미뤘다. 바가지로 물을 길어 살림도 하고, 목욕도 하고, 농사도 짓는 그들은 일인당 하루 평균 150ℓ의 물을 쓰는 서구적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은 누사프니다 사투리를 써서 구글 번역기가 안 통한다. 내게서 물, 호스, 저장소 등의 단어를 들은 그들은 다정하게 “오, 너 물이 없구나. 우리 집에 와서 씻어”라고 나를 토닥일 뿐이었다. 내가 원한 것은 내 집에서 내 샤워기, 내 세탁기, 내 수전을 사용할 수 있도록 내 물 저장소를 채우는 것이건만 그 일은 도무지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주가 지나 마침내 땅주인을 맞닥뜨린 동거인이 강력하게 요청한 후에야 수도 호스가 연결되었다.

인스타그램에 예쁜 집 사진을 올리자 친구들에게서 축하가 쏟아졌다. 하지만 프레임 밖은 공사판이다

인스타그램에 예쁜 집 사진을 올리자 친구들에게서 축하가 쏟아졌다. 하지만 프레임 밖은 공사판이다

이사 이틀 만에 물이 끊기자 나는 ‘올 것이 왔구나! 결국 저장소가 비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누사프니다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트럭으로 물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있다. 하지만 트럭들은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 이 동네가 이렇다. 누구든 온다고 한 날짜와 시간에 나타나는 법이 없다. 전기, 수도, 인터넷, 택배 다 마찬가지다. 오기로 한 때에 못 온다고 미리 언질을 주는 사람도 없다. 인터넷을 신청할 때는 “내일 온다는 소리를 다섯 번 하고 다섯 번 어겼잖아요. 여기 인터넷도, 전화도 안 되는데 내가 매일 당신을 기다리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 갇혀 있습니다”라는 말을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읍소 이모티콘을 다섯 개 붙여 보낸 다음에야 설치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하여간 물 트럭 두 대가 약속을 어기고 예약 직원이 취소 연락을 제때 전달하지 않고 이래저래 꼬이는 바람에 나는 눈이 풀리고 이가 몇 개 빠진 위협적인 인상의 트럭기사에게 몇 대 맞을 위기에 처했다. 이웃의 중재로 마무리가 되긴 했으나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물이 끊긴 게 저장소가 비어서가 아니라 펌프 고장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답답한 나머지 인터넷으로 독학한 결과 펌프 고장은 수압 설정이 잘못되어 발생한 것이었다. 드라이버로 나사만 돌려주면 해결된다. 그러나 일전에 소개했던 우리의 똥고집 공사감독은 강제로 스위치를 접지시켜 펌프를 켜고 끄는 변칙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그 결과 펌프의 부속이 부러지고 말았다. 주말 휴가니까 기다리래 놓고 영영 안 나타난 공사감독, “에이 이 펌프 별론데. 내가 고쳐줄게” 그래 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동네 유지 아저씨에게 2주를 바쳤다. 나 혼자 원인을 알아내고 필요한 부품을 주문하고 배송받기까지 일주일이 또 걸렸다. 그사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 몸과 그릇을 씻고 청소를 했다. 손 씻은 물을 모았다가 대소변을 내리는 친환경 물 절약 생활을 실천하기도 했다.

주방은 입주와 동시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배관 연결 부속 하나가 잘못 사용된 탓이다. 배관이 꼬여서 수전이 제대로 인출되지 않기도 했다. 설거지 두 번 만에 수전이 망가졌다.

매일 온다면서 안 오는 수리공들을 기다렸다. 공사 중인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동네 유지에게 부탁하고, 무작정 건재상에 들러 묻기도 했다. 사람을 소개받고, 약속을 잡고,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밤에 전화를 걸어서 “오늘 왜 안 왔어요? 내일은 오나요?” 물어보면서 다양한 핑계를 수집했다. 급기야 3주째에 “오늘 인부를 보내려고 했지. 근데 걔가 교통사고가 났다잖아. 걷지를 못한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누사프니다도 발리 힌두 권역이라 건물마다 기도탑을 만들고 사제를 불러 입주식을 하는데 그걸 안 해서 이런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전압이 널을 뛰고 조명이 깜빡대는 게 똥고집 반장님이 전기 공사를 잘못한 탓인 줄 알았는데 실은 폴터가이스트였나.

이번주, 나는 사람 구하기를 포기하고 직접 수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동거인에게 내가 이대로는 살 수 없으니 직접 수리를 해보겠다, 뭘 어떻게 고칠지 공부도 끝냈고 부품도 다 배송받았다, 만약 실패하면 나는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이 집을 떠나 있겠다, 내 정신건강을 위한 결정이다, 라고 통보를 했다. 갑자기 관광객이 늘어 하루 14시간 일을 하느라 집을 방치하던 동거인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아무래도 주방 수전을 부러뜨린 장본인이 그런 말을 하니까, 건물의 안전을 걱정한 것 같다. 그는 마지막 보루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사 전 우리가 살던 건물의 관리인이다. 우리의 시공업자는 ‘구석구석 인도네시아 품질’이라고 그 건물을 비웃었는데 결국 시공업자는 프랑스로 가버리고 ‘인도네시아 품질’ 관리인이 구세주로 나선 것이다. ‘이럴 거면 그 건물에 계속 살지 집은 왜 지었나’라는 후회도 잠시, 관리인은 연락을 받고 한 시간 만에 달려왔다. 나는 감동해서 눈이 젖을 정도였다. 영원히 오지 않는 ‘내일’ 소리만 줄곧 듣다가 당장 달려오는 사람이라니, 그것만으로도 그는 구원이고 영웅이었다.

관리인이 다녀가고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주방 수전은 교체되었다. 이제 주방을 쓸 수 있다. 물이 똑똑 떨어지던 부위는 고쳐졌다. 대신 벽체에 매립된 토출구가 망가져서 이제는 물이 줄줄 새고, 그것을 고치려면 시멘트벽을 파내야 한다. 펌프 부속은 교체되었다. 이제 펌프를 쓸 수 있다. 다만 수압 설정 문제로 다시 펌프가 멈추지 않는 증상이 발생했고, 이번에는 내가 직접 수리를 했다. 뜨거운 물이 나오다 말다 하는 온수기는 잠깐 고쳐진 듯 보였으나 반나절 만에 다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단 변기 버튼을 누르면 똥이 흘러내려 가는 쾌적함에 만족한다. 똥, 그렇다, 그게 중요하다.

오늘도 아침에 쾌변을 하고 물을 내렸다. 무려 이틀째다. 새로운 가구회사가 ‘내일 배송 간다’면서 취소도 없이 안 나타나는 짓을 나흘째 하고 있지만 괜찮다. 주민들이 땔감을 찾아 마당을 돌아다니는 통에 집에서도 외출복을 입고 지내지만 괜찮다. 한 번 수리를 받았는데도 다시 주저앉아 바닥을 긁는 문짝들, 괜찮다. 3주 동안 내가 다이빙센터에 나가 세수하고 이 닦고, 염색을 못해 백발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이사하니까 좋지?” “다 해결될 거야”라면서 나를 배부른 인간 만들던 친구들에게도 화가 덜 난다. 버튼을 누르면 똥이 씻겨 내려가는 세상에서 용서 못할 일이 뭐란 말인가. 앗 그런데 내가 집 나온 지 몇 시간째더라? 주방 누수 부위에 받쳐둔 양동이를 세 시간에 한 번씩 비워야 하는데. 기다려라 내 애증의 집이여.



[다른 삶]애끓이며 지었는데 엉망이다···내 ‘애증의 집’에도 행복이 깃들까

▶이숙명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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