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소울리스좌’는 왜 정규직이 아닐까읽음

김지환 기자

재입사만 3번…‘쪼개기 계약’으로 근무기간 공백

“2년 이상 근무 시 정규직 전환 의무 회피 꼼수”

‘소울리스좌’라는 별명이 붙은 에버랜드 캐스트(기간제 노동자) 김한나씨(23)가 놀이기구인 ‘아마존 익스프레스’ 안내 멘트를 하고 있는 모습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소울리스좌’라는 별명이 붙은 에버랜드 캐스트(기간제 노동자) 김한나씨(23)가 놀이기구인 ‘아마존 익스프레스’ 안내 멘트를 하고 있는 모습 / 유튜브 화면 갈무리

“머리! 젖습니다. 옷도! 젖습니다. 신발! 젖습니다. 양말까지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 양말 다 다 젖습니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아, 마, 존조로존조로존.”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에버랜드의 놀이기구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일하는 캐스트(기간제 노동자)의 안내 멘트 동영상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에버랜드 유튜브 채널 ‘티타남’이 지난 4월 4일 ‘에버랜드 아마존 N년차의 멘트! 중독성 갑’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이 영상의 조회 수는 지난 6월 1일 현재 1500만회를 넘었다.

■‘소울리스좌 열풍’ 김한나씨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이 영상의 주인공 김한나씨(23)에겐 ‘소울리스좌’라는 별명도 붙었다. 현란하고 경쾌한 속사포랩과 대비되는 영혼 없는 눈빛 때문이다. 영상 댓글창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영혼 없음”, “정박과 엇박을 왔다갔다 하는 미친 박자감, 초점 없는 눈빛, 자본주의에 지친 발걸음이 합쳐져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 “진짜 시급만큼만 일하는 교과서” 등의 반응이 나왔다. 영혼을 갈아넣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일하는 모습이 직장인들의 반향을 이끌어낸 셈이다.

소울리스좌 열풍으로 김씨 근무경력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에버랜드가 있는 경기 용인시 출신인 김씨는 2019년 7월 처음 에버랜드에 입사했다. 올해가 에버랜드에서 일한 지 4년째다. 지난 4월 말 근로계약 기간이 끝난 김씨는 재계약 뒤 티타남을 운영하는 마케팅 부서의 캐스트로 일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선 이번 재계약이 정규직 전환이라는 추측도 나왔지만 김씨는 여전히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다.

기간제법은 “2년 이상 일한 기간제 노동자의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4년째 근무 중인 김씨는 왜 여전히 비정규직일까. 김씨가 3번의 재입사 과정을 거치면서 근무기간 공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간제 노동자가 공백 없이 일하길 원하는데도 재입사 관행을 통해 회사가 공백 기간을 두는 것은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계는 소울리스좌의 ‘소울리스’ 이면에 ‘쪼개기 계약’ 관행이 있다고 지적한다.

에버랜드는 기간제 노동자를 캐스트라고 부른다. 연간 수천명의 청년 노동자들이 캐스트로 일한다. 근무 분야는 놀이기구(어트랙션), 손님 안내, 음식·음료·캐릭터 상품 등 판매, 청소, 주차, 동물원, 티켓 판매, 이벤트·공연기술 보조 등 다양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캐스트는 ‘하루 9시간·주 5일 기본 근무’를 하는 상시직(F-CAST)이 가장 많다. 이밖에도 2~6개월 근무를 하는 단기 상시직(I-CAST), 하루 6.5시간을 일하는 파트직(PD6), 주말 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주말직(H-CAST) 등이 있다.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인 9160원부터 1만원 사이로 일하는 분야에 따라 다르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에버랜드 캐스트’로 검색하면 지원 방법, 근무 후기가 수없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청년 노동자들 사이에선 인기 있는 일자리다.

현재 캐스트의 근로계약 기간은 기본적으로 10개월(2개월+4개월+4개월)이다. 10개월 근무 뒤 면접 등을 거쳐 ‘트레이너’로 전환하면 10개월(5개월+5개월)을 더 일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연속해서 일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이 20개월이다. 에버랜드 측은 “대부분의 캐스트들이 20대 초중반으로 입사 시 ‘평균 6개월 근무 미만’을 희망하는 비율이 높고, 실제 평균 근무기간도 약 6개월이다. 휴학, 군 입대, 사회진출 등 다양한 캐스트들의 상황을 고려해 계약기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레이너 전환 전 최장 근로계약 기간을 10개월로 한 것이 퇴직금 지급 회피 의도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평균 10개월을 근무한 캐스트는 모두 트레이너 선발 대상자가 되며 본인이 희망할 경우 대부분 트레이너로 전환된다”고 설명했다.

‘소울리스좌’라는 별명이 붙은 에버랜드 캐스트(기간제 노동자) 김한나씨(23)가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티타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튜브 화면 갈무리

‘소울리스좌’라는 별명이 붙은 에버랜드 캐스트(기간제 노동자) 김한나씨(23)가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티타남’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유튜브 화면 갈무리

■‘눈 가리고 아웅’인 재입사 관행

고용노동부의 ‘기간제 노동자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은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경우에 근로계약 관계의 단절을 목적으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근로계약과 근로계약 사이에 공백 기간을 설정하지 않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년 이상 일한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려 ‘쪼개기 계약’을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쪼개기 계약은 중소기업중앙회와 2년간 7차례에 걸쳐 근로계약을 맺은 한 여성 기간제 노동자가 2014년 해고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현대차가 23개월간 16차례에 걸쳐 쪼개기 계약을 한 촉탁직 노동자에게 계약 만료를 통지한 것도 논란이 됐다. 노동부는 2014년 12월 쪼개기 계약 관행을 막기 위해 총 계약기간(2년) 내 갱신 횟수를 최대 3회로 제한하는 내용을 기간제법에 포함시키자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법 개정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독일은 2년 한도로 최대 3회까지 갱신을 허용하고 위반 시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한다.

에버랜드에선 캐스트들이 퇴사 뒤 재입사하는 사례들이 있다. 3번 재입사한 소울리스좌가 대표적이다. 전직 캐스트 A씨(28)는 “놀이기구 운영 파트는 재입사하는 경우가 다른 파트보다 더 많았다. (소울리스좌처럼) 3번 재입사한 사람도 꽤 있었고, 4번 재입사한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전직 캐스트 B씨(27)는 “3번 넘게 재입사한 캐스트는 ‘몸속에 (삼성을 상징하는) 파란 피가 흐른다’는 이야길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에버랜드는 재입사 때까지 6개월의 공백을 두는 규정을 운영 중이다. 에버랜드 측은 “퇴사 후 1~2개월 안에 빠르게 재입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상시직 캐스트로 일하다 복학 등의 이유로 퇴사한 뒤 주말직으로 재입사를 원하는 경우 근무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재입사한다”고 밝혔다.

전직 캐스트들은 현장에선 이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짚었다. A씨는 “6개월이 되기 전 돌아온 사람이 오히려 더 많았다”고 말했다. B씨는 “회사도 새로 오는 사람보다 키워둔 사람을 쓰고 싶어한다. 관리자가 재입사 의향이 있는 캐스트에게 ‘한두 달 있다가 다시 들어오는 걸로 하자’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캐스트들은 규정과 달리 어떻게 6개월이 지나기 전 재입사할 수 있을까. 에버랜드 캐스팅센터에 6개월이 되기 전 재입사가 가능한지 문의하니 “규정은 6개월인데 e메일을 바꿔 다시 지원해도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에버랜드의 재입사 관행은 노동부 가이드라인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준성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는 “기간제 노동자가 계약 갱신을 원하는 경우에도 일괄적으로 공백 기간을 두는 건 2년 이상 근무 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기간제법을 회피하기 위해 근로기간 단절이라는 ‘외형’을 만들려는 꼼수”라고 말했다.

에버랜드와 함께 양대 테마파크로 꼽히는 롯데월드는 2020년 2월부터 캐스트와 1개월 단위(최장 23개월)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는 “단기의 근로계약을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갱신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반한다. 롯데월드는 “향후 엔데믹으로 정상 운영이 가능해지면 예전처럼 노동자가 장기(12개월), 단기(4개월) 근로계약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3개월로 계약기간을 제한한 것이 기간제법 회피 목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선 “현재 장기근로 근무자 중 우수인력을 선발해 정규직 전환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규직 전환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원칙과 예외가 바뀐 청년 아르바이트

근본적으로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캐스트가 맡는 업무 중 상당수는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시·지속 업무’다. 노동부 가이드라인은 상시·지속 업무의 경우 무기계약직 채용을 권고하고 있다.

가이드라인대로라면 에버랜드·롯데월드는 원칙적으로 캐스트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성수기 때 일시적으로 더 필요한 인력만 기간제로 뽑아야 한다. 하지만 캐스트 노동시장은 원칙과 예외가 뒤바뀐 상황이다. 박준성 노무사는 “중·고령자를 배제하고 청년 노동자를 계속 갈아끼우는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놀이기구의 안전사고 방지가 중요한 놀이공원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숙련성을 갖춘 정규직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놀이기구 조작 자격증을 땄던 A씨는 “필기·실기 등 깐깐한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따지만 계속 캐스트가 물갈이되면 아무래도 안전관리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은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이 무기계약직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기계약직 채용 방식을 도입한 사업장도 있다. 국내 최대 영화관인 CJ CGV는 티켓 발권, 상영관 안내, 음료·팝콘 판매, 관리·청소 등의 업무를 하는 ‘미소지기’를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다. 성수기 등에 대비해 근로계약 기간이 6개월 이내인 단기 미소지기도 뽑지만 무기계약직 채용이 원칙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일반 미소지기(1773명)가 단기 미소지기(329명)보다 5배 이상 많다.

김유정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기간제 남용 해결을 기업의 선의에만 맡겨둘 순 없다.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을 금지하고, 노동자가 원한다는 명시적 의사가 있을 때만 기간제 사용을 허용하는 식으로 규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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