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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년차 중증장애인 부부 최영은·이상우씨가 지난 8일 입주하는 서울 창동의 한 전세임대아파트 복도에서 이사가 진행되는 동안 집 안을 들여다보다가 서로의 볼을 꼬집으며 웃고 있다. 부부는 2019년 5월 결혼해 자립가정을 꾸렸다.  |강윤중 기자

결혼 4년차 중증장애인 부부 최영은·이상우씨가 지난 8일 입주하는 서울 창동의 한 전세임대아파트 복도에서 이사가 진행되는 동안 집 안을 들여다보다가 서로의 볼을 꼬집으며 웃고 있다. 부부는 2019년 5월 결혼해 자립가정을 꾸렸다.  |강윤중 기자

“진짜 이사를 가긴 하네. 이사 가니까 어때?”(영은)

“시원섭섭해. 너는?”(상우)

“이 집에서 많은 추억을 남겨 행복했던 것 같아.”(영은)

포장이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상우(40)·최영은(31)씨 부부는 나란히 전동휠체어에 앉아 ‘진소리’(음성지원 애플리케이션)를 통해 가만가만 대화를 나눴다.

지난 8일, 결혼 4년차 중증장애인 부부인 상우씨와 영은씨가 자립가정을 꾸리고 있는 서울 창동 주공2단지 아파트를 찾았다. 2019년 당시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예비부부를 카메라에 담은 지 3년 만이다. 영은·상우씨와 각각의 활동을 보조하는 활동지원사들이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결혼 후 첫 이사 날이었다.

2019년 5월 6일 열린 영은씨와 상우씨의 결혼식 모습.  |강윤중 기자

2019년 5월 6일 열린 영은씨와 상우씨의 결혼식 모습.  |강윤중 기자

이사 전날 부부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사 전날 부부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집에서 내내 누워지내는 상우씨의 시선은 늘 영은씨를 향하고 있었다.  |강윤중 기자

집에서 내내 누워지내는 상우씨의 시선은 늘 영은씨를 향하고 있었다.  |강윤중 기자

부부는 지난 1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신혼부부 전세임대주택 입주자로 선정됐고, 최근 인근의 아파트를 계약했다. “이렇게 어려울 수 있나?” 상우씨가 휴대폰을 꾹꾹 눌러 입력한 문자가 ‘진소리’를 통해 울렸다. 전세임대 조건과 지하철역 가까운 곳에 전동휠체어의 접근이 용이한 아파트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계약이 된다고 했다가 장애인이라서 안 된다”고 말을 바꾸는 경우도 많았다. 대출 신청부터 이사까지 세세한 일들은 활동지원사의 몫이었다. 상우씨의 활동지원사 노규호씨는 “장애인 자립에 집이 제일 큰 문제인데 주택접근권과 정보접근성이 취약한 장애인들을 위한 제도가 없다”고 했다.

상우씨가 4년간 전세로 살던 집에서 옮겨지는 이삿짐을 바라보고 있다. 상우씨는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상우씨가 4년간 전세로 살던 집에서 옮겨지는 이삿짐을 바라보고 있다. 상우씨는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상우씨가 이사 당일 자신을 대신해 부동산 관련 일을 처리하는 노규호 활동지원사를 바라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상우씨가 이사 당일 자신을 대신해 부동산 관련 일을 처리하는 노규호 활동지원사를 바라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집을 구하면서 부부의 다툼도 잦았다. “길바닥에 나앉을 거냐”고 영은씨가 다그치면 상우씨는 “(부동산에) 매물이 없다”며 툭 던지고는 느긋하게 유튜브를 들여다봐 아내의 속을 긁었다. 전세임대 입주자 선정 문자메시지를 받자마자 “앗싸~”를 외치며 좋아했다는 상우씨는 정작 외부 활동 중이던 영은씨에게 이 소식을 먼저 알리지 않아 또 한소리를 들었다. 기자를 앞에 두고 ‘진소리’로 핀잔과 변명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부부는 시선을 맞추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세대주로 책임을 다하라”는 문자를 ‘진소리’ 앱에 입력하는 영은씨.  |강윤중 기자

“세대주로 책임을 다하라”는 문자를 ‘진소리’ 앱에 입력하는 영은씨.  |강윤중 기자

집 구하며 다퉜던 이야기를 ‘진소리’ 통해 기자에게 늘어놓던 부부는 곧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강윤중 기자

집 구하며 다퉜던 이야기를 ‘진소리’ 통해 기자에게 늘어놓던 부부는 곧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강윤중 기자

상우씨와 영은씨는 ‘탈시설’ 장애인이다. 2015년 3월, 둘은 20년을 넘게 살던 장애인거주시설을 나왔다. 시설 안에서 금지된 사랑이 시설 밖에서 고백과 연애로 이어졌다. 3년 전 장애인과 활동가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좋은 시설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사회의 ‘문턱들’을 낮추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 권익옹호 활동가로서 장애인 이용시설물을 점검하고,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강의에 나서기도 한다. 탈시설과 이동권, 예산 확보 등 장애인 현안과 관련된 집회나 기자회견에도 참석한다.

영은씨가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부부는 장애인 권리옹호 활동가로 일한다.  |강윤중 기자

영은씨가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일대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부부는 장애인 권리옹호 활동가로 일한다.  |강윤중 기자

상우씨와 활동지원사 노규호씨가 지난달 30일 서울시의회 앞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상우씨와 활동지원사 노규호씨가 지난달 30일 서울시의회 앞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출근길 시위에 수차례 나섰던 상우씨는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휠체어 행렬에 대한 참혹한 욕설에도 “모든 장애인들을 위한 일이라서 견딜 수 있다”고 했다. 영은씨는 “더디지만 세상이 바뀌는 게 보인다”며 뿌듯해했다. 부부는 최근 발달·중증장애인 가족의 동반자살 사건에는 “이제 와서 이슈가 됐다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언어장애를 가진 부부는 음성을 지원하는 ‘진소리’ 앱으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영은씨가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에 항의하는 비장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입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언어장애를 가진 부부는 음성을 지원하는 ‘진소리’ 앱으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영은씨가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에 항의하는 비장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입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부부는 이삿짐이 부려지는 오후 내내 복도에서 집 안을 들여다봤다. 조금 더 넓어진 공간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이사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둘은 일제히 “설렌다”고 했다. 영은씨는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부담 탓에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해 이사할 필요 없이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사가 진행되는 동안 복도에서 기다리는 영은씨와 상우씨 부부.  |강윤중 기자

이사가 진행되는 동안 복도에서 기다리는 영은씨와 상우씨 부부.  |강윤중 기자

영은씨가 이사가 끝난 뒤 안방으로 들어서며 좋아하고 있다. 벽에 부부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다.  |강윤중 기자

영은씨가 이사가 끝난 뒤 안방으로 들어서며 좋아하고 있다. 벽에 부부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다.  |강윤중 기자

이사 첫날 밤, 부부는 여느 때처럼 잠들기 전에 많은 얘기를 나눴을 것이다. “이자와 월세 내기 빠듯하니 아끼며 살자”는 영은씨의 말에, 상우씨는 얼굴 가득한 미소로 답했을 것이다. “내가 잘할게. 사랑해.”

영은씨와 상우씨가 서로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영은씨와 상우씨가 서로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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