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순간에도 나아질 가능성을 보는 임혜영씨

김한솔 기자
생태인문서점 에코슬로우를 운영했던 임혜영씨는 최근의 기후위기와 관련해 “최악의 순간에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우철훈 선임기자

생태인문서점 에코슬로우를 운영했던 임혜영씨는 최근의 기후위기와 관련해 “최악의 순간에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우철훈 선임기자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임혜영씨는 몇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마포구에 ‘에코슬로우’라는 작은 생태인문서점을 열었다. ‘몸과 생각의 속도에 맞게 느리게 살자’는 이름의 이 서점은 코로나19 시기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지난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임씨는 지금도 서울시민대학에서 환경 강의를 하고, 환경 관련 글도 쓰는 삶을 살고 있다. 환경단체 활동가도, 환경 관련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닌 ‘비전문가’인 그는 어떻게 환경과 관련한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임씨는 “거창하지 않게, 작게 시작하면 연결고리들이 계속 생긴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서점을 접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다 ‘김포에는 비건 카페가 있을까’ 하고 찾아봤죠. 찾아가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독서모임을 만들게 됐고, 작은 비건 페스티벌도 열었어요. 만약 ‘나는 그렇게 할 체력도 시간도 없다’ 하는 분들은 ‘온라인 서명’으로도 활동할 수 있어요. 최근 1~2년간 온라인 서명을 통해 정책이 바뀌는 사례가 많아졌어요.”

‘보통의 기후위기’ 마지막 인터뷰이로 지난달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한 비건 카페에서 임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모두가 ‘최악의 순간’이라고 하는 때에도 언제나 ‘빈틈’은 있다고 믿는다. ‘빈틈’은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다. “지금은 결과를 너무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어떤 제도가 있다고 한번에 뭔가 변하지 않잖아요. 인류사에서 완벽했던 순간은 한번도 없었어요. 가능성은 항상 있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려고 해요.” 다음은 임씨와의 일문일답.

임혜영씨가 운영했던 생태인문서점 ‘에코슬로우’의 모습. 임혜영씨 제공

임혜영씨가 운영했던 생태인문서점 ‘에코슬로우’의 모습. 임혜영씨 제공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예전엔 합정동에서 생태인문서점 ‘에코슬로우’를 운영했어요. 지금은 서울시민대학 동남권 캠퍼스에서 생활환경학 강의를 하고, 생태지혜연구소에 글도 기고합니다. 기회 닿는 대로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일반 직장을 다니다가 어떻게 생태인문서점을 열게 됐나요.

“회사 생활에 굉장히 지쳤을 때 우연히 도법스님 강의를 듣게 됐어요.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다 연결되어 있다’는 주제의 강의에서 공장식 축산업에 관한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맛있게 먹던 고기가 어떻게 유통·생산되는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동물권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다른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도 확대됐어요. 채식 카페를 열까 하다가 서점을 열게 됐어요. 책도 좋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고, 서점은 진입장벽도 좀 낮다고 생각해서 무턱대고 한 거죠. 첫 독서모임 인원은 ‘1명’이었어요. 그 친구는 이제 환경단체 활동가가 됐죠.”

-서점을 연 일이 다른 활동들로도 확장됐나요.

“채식 요리를 공부하는 20대 초반 청년이 서점에 왔다가 채식 요리 모임을 열기도 하고, 학교 과제차 다큐를 찍는 친구들이 서점에 왔다가 그 모임을 촬영했어요. 공정무역에 관심있는 분들이 왔다가 강연을 하고, 재활용품 업사이클링을 하는 분이 모임을 만들게 되기도 했고요. 서점 손님이 ‘마포 FM’에서 동네서점 이야기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에코살롱’이라는 라디오도 진행해 봤어요. 그러다 조천호 박사님(전 국립기상과학원장), 이유진 박사님(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같은 분들을 모셔서 강연회도 열었죠. 제가 계획적이진 못했지만, 그런 무모함 때문에 여행다니는 기분으로 다양한 것을 체험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생태서점 에코슬로우 전 운영자 임혜영./우철훈 선임기자

생태서점 에코슬로우 전 운영자 임혜영./우철훈 선임기자

-시민대학에서는 어떤 강연을 하나요.

“강연 제목은 ‘나와 지구를 살리는 저탄소 생활’이에요. 1부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생수, 아보카도, SPA 의류 같은 것들이 기후위기, 인권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1부가 ‘팩트 전달’이라면 2부는 ‘재연결 작업’이에요. 조안나 메이시의 책 <생명으로 돌아가기>에서 영감을 받은 강의입니다. 환경 문제에 관심있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알면 알수록 우울하고 무력해진다’는 거예요. ‘지구 온도 몇 도 오르기까지 몇 년 남았다’ 같은 카운트다운을 보면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는 마음도 들고요. 2부에서는 자연에 고마움을 느꼈던 순간, 해양생물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사람의 입장, 석탄화력발전소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같은 것을 해요.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동안 느꼈던 두려움을 서로 나누고, 지구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거죠.”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요즘 어떤 고민이 있나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만 만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강연하면서 보면 저보다 훨씬 잘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6년째 샴푸를 쓰지 않는 ‘노푸’를 하고, 휴지 한 장 쓰는 것에도 민감한 분들이에요. 저를 둘러싼 환경에서는 기후위기 이슈에 관심없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없는 것 같아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과 좀 더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환경 전문가’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게 왜 중요할까요.

“전 석·박사 학위도 없고, 환경단체에서 일한 경험도 없어요. 큰 포부를 갖고 ‘환경을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활동하면서 즐거웠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어떤 연예인이 채식을 한다고 하면 ‘에이, 연예인이니까’라고 생각하지만, 내 바로 옆의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나 오늘부터 뭐 할거야’라고 결심하면, 나도 하기 쉬워요. 자기 검열을 조금 덜 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환경 문제는 모두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일 수밖에 없어요. ‘내가 할 수 있을까?’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에코슬로우에서 나뭇가지, 나뭇잎 등 자연에서 나오는 소재를 이용한 예술 활동이 진행 중이다. 임혜영씨 제공

에코슬로우에서 나뭇가지, 나뭇잎 등 자연에서 나오는 소재를 이용한 예술 활동이 진행 중이다. 임혜영씨 제공

-고민하는 분들께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혼자 있지 않다는 거요. 환경 문제에 관심있는 분들은 대부분 고립감, 외로움이 있어요. 신념은 갖는 것도 어렵지만 유지하는 건 더 어렵잖아요. 늘 흔들리죠. 혼자서는 힘들어요. 느슨하게라도 연결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모임에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나누는 것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생각하는 분들이 은근히 많거든요. 연결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연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검색만 해도 많이 나와요. ‘플라스틱’이라고만 쳐도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모임이 나오고, ‘기후위기’라고 쳐도 지역별 모임이 나와요. 독서모임, 식생활 모임을 꾸리고 싶다면 자금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들도 꽤 있거든요. 숲과나눔 같은 단체, 한살림 등 생활협동조합, 독서동아리센터, 주민자치공동체사업 등 평범한 시민들을 지원해 주는 사업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주변을 잘 관찰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코로나 때문에 서점을 접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다 ‘김포에는 비건 카페가 있을까?’ 하고 찾아봤더니 있는 거예요. 찾아가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독서모임을 만들게 됐고, 작은 비건 페스티벌도 열게 됐어요. 이렇게 자기 동네에 있는 비건 카페라든지, 리필 상점 같은 곳에 가도 좋아요. 거창하지 않게, 작게 시작하면 연결고리들이 계속 생겨요. 만약 ‘나는 그렇게 할 체력도 시간도 없다’ 하시는 분들은 손가락만으로도 할 수 있는 온라인 서명으로도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1~2년간 온라인 서명을 통해 정책이 바뀌는 사례가 많아졌거든요.”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나요.

“지금은 결과를 너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어떤 제도가 있다고 한번에 뭔가 변하지 않잖아요. 인류사에서 완벽했던 순간도 한번도 없었어요. 우리가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할 때도 항상 ‘빈틈’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빈틈이 언제 생길 지 모르고, 가능성은 항상 있어요. 그런 것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 ‘빈틈’이라는게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인가요.

“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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