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세 달 앞둔 ‘예술인권리보호법’…외국인 예술가는 보호 못 받나요

윤기은 기자

예술인 범위 ‘국민’ 한정

문체부 “별도 방안 마련”

다국적 예술인 연대체는

“외국인 포함 명문화해야”

2017년 벨기에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라니(가명)는 “일이 재밌다”는 모델 친구의 후기를 듣고 흥미가 생겨 모델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됐다. 함께 일한 사진작가 몇 명은 사진 포즈를 지도하는 척하면서 엉덩이, 다리, 얼굴 등을 만졌다. 라니는 이런 일을 겪어도 별다른 조치를 못 취했다. 피해 사실을 문제 삼았다가는 모델 업계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20대 필리핀 여성 가수 니콜(가명)도 한국에서 부당한 일을 겪었다. 그는 2018년 E-6(예술흥행)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했다. 하지만 니콜이 한국 소속사 매니저 소개로 간 장소는 ‘바’였다. 그곳에서 벗어난 뒤 니콜은 다른 소속사와 월급 158만원, 주 1회 휴무를 조건으로 하루 80~100분 노래 공연을 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소속사는 ‘수수료’를 떼고 월급을 40만원만 줬다. 휴일도 월 1~2회뿐이었다.

오는 9월25부터 시행되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 권리 보호 대상에 외국인도 포함돼야 한다는 외국 국적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12일까지 수차례 메신저를 통해 기자와 대화한 라니와 니콜도 “외국 예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예술계 성추행’ 등 사건이 잇달이 발생하자 노동권·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인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지난해 9월 제정됐다. 법에는 국가기관이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가들의 노동과 복지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예술인에 대한 성희롱·성폭력을 금지·예방하는 정책, 피해자 보호와 권리구제를 위한 정책을 국가기관이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이 법이 적용되는 예술인 범위가 ‘국민’으로 한정된다는 점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다국적 예술인들의 연대체 ‘한국다양성예술가협회’(DAKA)는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세칙에 법률 적용 대상을 ‘외국인을 포함한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예술가’로 명확히 규정할 것을 요구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법 적용 대상이 ‘국민’이어도 외국인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윤성천 문체부 예술정책관은 지난달 24일 공청회에서 “예술활동증명 등을 통해 외국 예술인 보호를 위한 별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경주 DAKA 공동설립자는 12일 통화에서 “문화다양성 국제 협약을 맺은 상황에서 문화권 주권자를 대한민국 국적자만 염두에 두고 법을 만드는 것은 시대착오적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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