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식량위기는 쉽게 진정 안 될 것…지금은 농업을 보호할 때”

최민영 논설위원

농업경제 전문가, 윤병선 교수

윤병선 건국대학교 교수가 지난 9일 충주시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 세상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데 일조하는 농민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사회적 책무”라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윤병선 건국대학교 교수가 지난 9일 충주시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 세상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데 일조하는 농민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사회적 책무”라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1983년 건국대 상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세계 농식품 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의 대안 농식품 운동, 농촌과 농업의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주요 논문으로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농업지배에 관한 연구’ ‘세계적 식량위기와 한국농업의 대응 과제’ 등이 있다.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부소장,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서울특별시 공공급식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수산식품분과위원 및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 대표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농업과 먹거리의 정치경제학> <푸드플랜, 농업과 먹거리 문제의 대안 모색> 등이 있다.

농사지어 생산비도 안 나오는데
개발열풍 휩쓸려 경지면적 급감
곡물자급률 지난해 20%에 불과

밀가루부터 삼겹살까지 장바구니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국제 곡물가와 유가, 비료값 폭등에다 가뭄이 더해진 탓이다. 30년간 유지돼온 세계화가 글로벌 공급 마비와 신냉전 구도로 끝나면서 ‘저렴한 식량’ 시대가 마감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식량위기”(유엔 세계식량계획)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식량 수출을 제한한 국가도 30곳이 넘는다. 식량 무기화 시대에 우리 식탁은 무방비 노출 상태다. 2020년 기준 45.8%에 불과한 식량자급률, 사료까지 포함하면 20.2%에 불과한 곡물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다. 수입에 의존해온 제2의 주식 밀(0.5%)과 가축용 사료가 많은 옥수수(0.7%) 자급률은 극히 미미하다. 정부는 세금을 깎아서 식품물가를 잡겠다지만 원가가 더 오르면 소비자 체감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농업경제 전문가인 윤병선 교수를 지난 9일 충주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윤 교수는 “곡물가 상승이 지난 40년간 기록을 빠르게 갈아치울 정도라 이번 식량위기는 쉽게 진정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값싼 식량 수입을 통한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농민과 농촌을 살리는 정책 전환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어쩌다 이렇게 낮아진 건가요.

“1970년 80.5%에 달했던 곡물자급률은 지난해 20%대 턱걸이를 했습니다. 쌀 자급률이 높은 편(92.8%)이라 체감이 잘 안될 수도 있지만 밀, 옥수수, 콩 등을 포함하면 매우 낮아요. 식량자급률이 정부 목표치를 달성한 적이 없습니다. 근래의 하락 이유는 경지면적입니다. 지난해 경지면적은 2012년 대비 9.5% 감소했습니다. 논은 14.7%, 밭은 3.0% 줄었죠.”

- 줄어든 이유가 있습니까.

“농사지어서 생산비도 안 나오는 상황에서 농촌이 개발 열풍에 휩쓸린 영향이 가장 크죠. 지난 정부가 추진한 태양광 사업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농사짓겠다고 기껏 만든 해남 간척지를 태양광 시설로 바꾸는 민간사업이 추진되면서 땅을 빌려 농사짓던 농민들이 크게 반발했죠. 충북 괴산군 사리면에 민간 개발한다는 산업단지에 알고 보니 폐기물매립장 건립이 허용돼 파문이 일었어요. 폐기물 매립만큼 남는 장사가 없다나요. 생산성이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이런 식으로 경지면적이 줄면 만회할 방법이 없어요. 농민들을 괴롭혀서 농업을 지키기 힘들게 만드는 겁니다.”

밀과 옥수수 자급률은 극히 미미
이번에 일본처럼 밀 자급률 올려야

- 밀·옥수수는 해외 의존이 심각합니다. 각각 빵, 면 가격 상승과 사료를 먹여 키우는 소·돼지·닭고기값으로 직결되는데요.

“미 농무부는 한국을 ‘잉여농산물 원조가 가장 성공적인 나라’로 꼽습니다. 전후 잉여농산물 원조가 현재의 바탕이 됐습니다. 한국 축산업은 사실상 가공산업이에요. 사료를 ‘길러서’ 먹이는 게 아니라 ‘들여와서’ 먹입니다. 사료값이 폭등하면 농민들은 감당을 못해요. 배고파서 우는 소 울음은 처량해서 차마 들을 수가 없대요. 그래서 2008년 식량위기 때 극단적 선택도 있었는데 이번에도 걱정입니다. 밀의 경우 2008년 식량위기 때 우리밀의 경쟁력이 재조명받은 바 있는데, 제분기술 자체를 외국산 밀이 아닌 우리밀 용도로 맞추면 제빵제면에 적합한 상품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해요. 이번 기회에 일본처럼 밀 자급률을 올려야 합니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농업이나 전통을 자급해내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유효한 말 아닐까 싶군요.”

기후위기·전쟁 등 복합요인 겹쳐
위기 얼마나 오래갈지 가늠 어려워
생산 소수국 집중에 유통독점 탓도

1988년 한 농민이 농협 앞에 쌀포대를 쌓아놓고 추곡수매가 인상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8년 한 농민이 농협 앞에 쌀포대를 쌓아놓고 추곡수매가 인상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이번 식량위기는 언제쯤 진정될까요.

“현 위기는 기후위기 우려 속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물류망 마비 등이 겹쳐서 아주 심각해요. 얼마나 더 오래갈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실질 식량가격지수(147.2)는 최악의 국제곡물파동 때인 1974년(137.4)과 글로벌 소요사태를 일으킨 2008년(114.3)을 이미 뛰어넘은 상황입니다.”

[논설위원의 단도직입] “이번 식량위기는 쉽게 진정 안 될 것…지금은 농업을 보호할 때”

- 2007~2008년 식량위기 때 이명박 정부가 해외 식량기지 개발을 주도했죠.

“‘제2의 녹색혁명’을 통한 식량 증산 필요성이 제기되고 이에 초국적 대기업들이 직접 농업생산 과정에 뛰어들었는데, 땅뺏기(land grabbing)가 심각했어요. 예로 2008년 대우로지스틱스 자회사는 마다가스카르 전체 경작지의 절반인 130만㏊를 99년간 무상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해 논란이 됐죠. 만성적 영양실조가 2명 중 1명꼴인 나라에서 농지를 점유한 거예요. 러시아 연해주에도 한국 기업 진출이 활발했습니다. 자본 중심의 먹거리 체제가 본격화된 겁니다. 문제가 커지자 FAO는 2014년을 ‘가족농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농업은 기업이 아닌 농민이 지켜야 한다는 것이죠. 가족농이 전 세계 농장의 90%이고, 이들이 차지하는 생산량이 80%이며 이들이 지구를 보살피고 세계를 먹여 살린다고 옹호하고 나섰는데, 2018년 유엔은 농민권리선언도 채택했습니다.”

해외 식량기지는 당사국이 자국 수요를 이유로 수출 금지령을 내리면 ‘남의 떡’이다. 올해 국내 기업들이 연해주 농장에서 재배한 옥수수·콩을 들여오려다 러시아 정부의 관세 부과 조치 탓에 반입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자유무역주의 그늘 짙어지고
대규모 농업에 지구온난화 가속
기후를 팔아서 이윤을 챙긴 것

- 세계화에 따라 식량교역이 늘면서 외부충격에 취약해진 것일까요.

“무역률(수출량/생산량)을 보면 곡물은 다른 품목에 비해 굉장히 낮습니다. 자국 내 소비하고 남는 부분을 수출하는 공급자 우위 시장이에요. 문제는 곡물 생산이 미국(옥수수), 인도(쌀), 브라질(콩), 러시아(밀)를 비롯한 소수국가에 집중돼 있고, 4대 곡물 메이저사(ADM·번지·카길·드레퓌스)가 유통을 독점하며 가격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곡물시장에 유입되는 투기자본도 문제예요. 2007~2008년 곡물가격 상승요인의 47%가 투기자본 영향이었다는 사후 분석도 있습니다.”

-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수출국 농민들이 유통 기업들에 가격통제권을 빼앗겼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캐나다에선 농산물 수출이 늘어도 농민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유무역의 그늘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같은 수출 중심의 산업화된 대규모 농업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는 겁니다. 해외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증가한 온실가스인 아산화질소 배출량의 70% 정도가 2007~2016년 농업생산에서 나왔다고 해요.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 비료를 대량 투입해서인데, 전 세계 질소질 비료 연간 소비량이 2% 감소하는 동안 브라질 사용량은 80%, 인도 20%, 호주 40%, 뉴질랜드는 60% 증가했다고 합니다. 기후를 팔아서 이윤을 챙긴 거죠. 자유무역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떳떳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2018년 한국 농경지에서 사용된 화학비료는 1㏊당 호주의 5배, 미국의 2배에 달합니다.”

식량 수입 통한 문제해결엔 한계
농업 정책 전환으로 돌파구 찾아야

- 농업을 기업 시각의 포디즘으로 해석하는 데서 식량위기와 기후위기가 동시에 심화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글로벌 가치사슬(GVC)로 볼 때 공업 부문에서는 국가 간 분업 체계가 가능하지만 농업의 경우 생산주체가 기업이 아닌 농민, 공장이 아닌 농촌지역사회입니다. 농민이 주도하는 농업생산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보는 시각이 은근히 존재하는데, 그렇게 효율적이지 못하다면 농민이 주도하는 농업은 멸종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잖습니까. FAO 말대로 농업의 90%는 가족에 의해 구성되는데, 이들을 각종 FTA에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게 과연 올바른지, 아니면 이들이 지역·생태 선순환 체계를 이루며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올바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도농 연계 농산물 소비를 비롯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이어나가야 합니다.”

- 기후변화와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상업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합니다. 이집트는 염분과 가뭄에 강한 GM밀 재배를 검토 중이고, 유럽연합 내에서도 GM작물 한시적 수입허가 목소리가 나온다고요.

“GM밀이 일단 상용화돼 밭에 나오면 그 영향은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미국산 GM옥수수가 들어오자 토종 옥수수가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경작된 적 없는데도 옥수수 수염(꽃)을 통해 교배가 일어났다고 해요. 유전자 영향을 통제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찰옥수수도 종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해 미국에서 종자를 키워요. 땅이 좁은 우리나라 종자의 경우 해외 채종이 굉장히 많습니다. 여기 상추 씨앗 봉지에 ‘유럽산’이라고 적혀 있는 것도 그 이유고요. GM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요즘은 나쁜 형질을 잘라내는 유전자편집(GE)을 더 많이 얘기하는데,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건 마찬가지입니다.”

- 식량안전을 확보하려면 헌법에 이를 명기하고 국가재정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스위스는 식량안보를 헌법에 명기했다고 하던데요.

“2017년 개헌론이 나왔을 때 농민들이 ‘1987년 개헌 때 최저임금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것처럼 이번에 농업 관련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농민들 삶이 그새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한때 농업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95%에 달했어요.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고 농산물시장이 개방되면서 지금은 60%를 겨우 넘습니다. 1970년대 농촌이 살 만했던 건 새마을운동 때문이 아니라 농업 개방 전이었기 때문이에요. 올해 농업예산은 전체 국가 예산의 2.8%에 불과합니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농업과 농촌을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식량주권은 농민·소비자 주체로
식량안보보다 더 나아간 개념
윤석열 정부 이 취지에 충실해야

- 윤석열 정부는 ‘식량주권’을 얘기하는 동시에 ‘해외 공급망 확보’를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데 서로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식량주권은 종자·생산·가공에 이르기까지 농민과 소비자가 주체가 되는 것을 뜻합니다. 자급생산과 수입까지 포함한 원활한 확보를 이르는 ‘식량안보’보다 더 나아간 개념인데 이 근본 취지가 잘 담겨야 합니다. 농민들은 직불금 예산을 5조원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에 기대를 걸었지만, 이건 5년 후 목표치로 바뀌었어요. 식량위기가 코앞입니다. 농(農)을 보호할 때예요. 이 세상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데 일조하는 농민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사회적 책무입니다.”

최민영 논설위원

최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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