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청년들, 기성세대보다 소득세 인상 반대···공정이라는 이름의 '각자도생

유선희·이혜리 기자

③ 청년들 평등보다 각자도생

19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공부하고 있다. 10명 중 6명가량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부모 지원과 같은 가정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

19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공부하고 있다. 10명 중 6명가량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부모 지원과 같은 가정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

‘부 대물림·능력주의’ 청년 인식
기성세대보다 진보적이지 않아

“금수저로 태어나려는 노오력이 부족했다.” 2015년 청년들은 이런 말을 내뱉었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성세대 조언을 풍자하며 ‘노오력’이라는 신조어가 나왔고, 흙수저·금수저 같은 수저계급론이 떠올랐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자녀의 지위도 결정된다는 청년들의 자조에 언론은 주목했다.

7년이 지난 2022년, 소위 MZ세대는 공정 논란을 제기하고 능력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확산된 신자유주의 체제는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했지만 구조를 바꾸자는 목소리는 쉽게 모아지지 않는다. 청년들이 말하는 공정의 배경에 깔려있는 것은 ‘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는 각자도생일까, 아니면 불평등 해소에 대한 요구일까.

경향신문은 지식 콘텐츠 스타트업인 언더스코어와 함께 설문조사를 의뢰했다. 부모의 지원과 성공, 고용에서의 적극적 조치,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하는 조세정책 등 크게 3개 분야 질문을 던졌다. 조사는 한국갤럽과 데이터스프링코리아를 통해 지난 1월13~17일과 5월4~9일 18~69세 시민 총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두 얼굴의 공정] 부유한 청년들, 기성세대보다 소득세 인상 반대···공정이라는 이름의 '각자도생

기성세대보다 진보적이지 않은 청년들

일단 설문조사에서는 ‘우리 사회는 부모의 지원 없이도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문장에 대한 공감도를 물었다. ‘매우 동의’부터 ‘매우 반대’까지 1~5점을 표기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를 기준으로 보면 동의가 21.3%, 반대가 57.0%였다. 10명 중 6명가량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부모 지원과 같은 가정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0·30대 청년층 응답자군과 40·50·60대 응답자군의 답변 차이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청년층 내에서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동의 쪽에 기울어 있었다. 청년 남성은 26.0%가 동의한다고 한 반면, 청년 여성은 15.6%만 동의한다고 응답해 약 10%포인트 차이가 났다. 젊은 여성일수록 부모 지원 없이는 노력한 만큼 성공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비율이 높은 것이다. 다만 남녀 간 인식 차이는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점차 줄어들었다.

2011년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에서 ‘누군가 생계가 어렵다면 이는 노력·능력의 문제다’라는 문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은 결과를 보면, 연령이 낮을수록 다소 반대하는 경향이 나타났을 뿐 청년 남성이 더 보수적이라거나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가 확연히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번 설문조사와 KGSS가 동일한 질문은 아니지만, 청년층이 기성세대보다 진보적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현재의 청년층은 부의 대물림과 능력주의에 대해 특별히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년층 응답자군의 답변을 학력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저학력 구간에서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가 두드러졌다. 고졸 청년 남성은 31.2%가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고졸 청년 여성은 8.8%만 그렇다고 해 4배 차이가 났다. 지방사립대 졸업자 중에서는 청년 남성은 24.7%, 여성은 11.5%가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고 답변해 역시나 큰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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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고용에서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대표적으로 채용 절차에서 ‘할당제’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다. ‘채용 시 지역 인재 할당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문장에 대한 공감도를 물은 결과,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45.8%)이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청년층의 동의 비율이 40대 이상 응답자군에 비해 소폭 낮았으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었다.

청년층 응답자군을 성별에 따라 구분해보면, 청년 여성의 46.2%가 지역 인재 할당제에 긍정적으로 답변해 청년 남성(34.6%)보다 10%포인트 이상 많았다. 40대 이상 응답자군에서 동의 비율이 여성(49.8%)·남성(48.5%) 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과 상반된다.

청년 여성은 ‘채용 시 학력·경력·성별 등을 보지 않고 선발하는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해야 한다’ ‘고용 안정을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필요하다’ 문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청년 남성보다 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청년 여성이 40대 이상 응답자군보다도 더 긍정적으로 대답한 질문은 블라인드 채용 하나뿐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답변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과적으로 고용의 평등 조치에 있어서도 청년층이 기성세대보다 진보적인 태도를 갖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방학 중 학교 도서관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 김기남기자

방학 중 학교 도서관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 김기남기자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 ‘반대’도
청년층 12%, 40대 이상은 7.2%
부유한 청년일수록 보수적 태도

자산 많은 청년일수록 증세에 부정적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하는 세금에 대해서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고소득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이하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자산에 대한 상속세율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이하 상속세 인상)는 문장에 대한 공감도를 동시에 물었다.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에 대해서는 청년층 응답자의 경우 12.1%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는 40대 이상 응답자가 반대한 비율(6.8%)의 1.8배 수준이다. 동의한다는 응답 비율은 청년층 응답자군(60.2%)보다 40대 이상 응답자군(76.7%)에서 약 16%포인트 높았다. 청년층 응답자가 고소득자의 세금 납부에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경향은 상속세 인상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상속세 인상에 대해 청년층 응답자군은 35.1%, 40대 이상 응답자군은 33.1%가 반대해 단순 비율로만 보면 큰 차이가 없지만, 다른 변수를 제외하고 분석(회귀분석)해보니 나이가 젊을수록 반대하는 경향이 강했다.

[두 얼굴의 공정] 부유한 청년들, 기성세대보다 소득세 인상 반대···공정이라는 이름의 '각자도생

특히 ‘가구 자산 수준’을 기준으로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에 대한 응답을 세분화해 분석한 결과, 자산이 많은 응답자군에서 청년층과 40대 이상의 인식 격차가 자산이 적은 응답자군에 비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가구 자산이 5억5000만원 이상(상위 25%)인 집단을 따져봤을 때 40대 이상은 7.2%(매우 반대 2.3%+다소 반대 4.9%)만 고소득자 소득세 인상에 반대했지만, 청년층은 반대 비율이 18.5%(매우 반대 6.2%+다소 반대 12.3%)나 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구 자산이 적을수록 고소득자의 소득세 인상에 동의하는 가운데, 40대 이상 응답자군은 보유 자산 규모에 따른 입장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청년층 응답자군은 부유할수록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가구 자산이 많은 응답자군의 특징은 ‘우리 사회는 부모의 지원 없이도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 질문에서도 나타난다. 가구 자산 5억5000만원 이상인 경우 이 문장에 대해 매우 반대가 11.9%로 그보다 자산이 적은 응답자군의 반대 비율보다 5~9%포인트 적었다. 자산이 많을수록 성공에는 개인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한편 설문조사에서는 청년 남성 응답자가 향후 자신의 지위나 성취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부모보다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성취했거나, 향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에 대한 답변을 분석해보니 여성은 젊을수록 본인의 지위를 더 긍정적으로 전망했지만, 남성은 젊을수록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40대 이상 남성의 경우 20.6%만 해당 문장에 반대한다고 답변한 반면, 청년 남성은 1.5배인 30.5%가 반대했다. 이는 40대 이상 여성과 청년 여성의 반대 응답 비율(각각 21.8%, 25.5%)보다도 높은 수치다.

“자신의 자원 잃었을 때의 비용
기성세대보다 청년이 크게 느껴”

언더스코어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보수적 이대남 대 진보적 이대녀’라는 프레임은 오히려 각자도생의 세계관을 체화한 청년세대로서의 공통점을 간과하게끔 만들 수도 있다”며 “현재의 청년들이 자신들의 자원을 잃었을 때 비용을 기성세대보다 더 크게 느끼기에, 이러한 두려움이 응답에서 나타났을 수 있다”고 밝혔다.


비수도권의 서비스직, 남성보단 여성이 “불안정 노동 경험”…46%는 “10년째 그렇다”


청년층 내에서도 성별, 직업, 거주지 등에 따라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경험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10여년의 궤적을 따라 확인해보니 불안정성은 양극화·계층화 돼 나타나는 특징도 발견됐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백승호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청년세대 내 불안정성은 계층화되는가? : 청년 불안정노동의 유형과 세대 내 격차 결정요인’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조사는 2008년 당시 19~50세였던 경제활동 참가자들이 경험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변화를 추적한 것으로, 청년집단(19~34세)과 비청년집단(35~50세)으로 나눠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어떤 궤적을 보이는지 살펴봤다.

노동의 ‘불안정성’ 측정은 고용, 소득, 사회적 보호(사회보험) 등 세 가지 변수를 활용했다. 임금근로자는 고용계약형태와 근로시간 등을 따져, 비임금근로자는 유급 종업원 고용 여부나 무급가족 종사자 여부 등을 기준으로 설정했다. 또 시간당 중위임금·소득의 3분의 2 이하인 경우 소득 불안정으로, 4대보험 중 하나라도 가입하지 않은 경우 사회적 보호 측면에서 불안정한 것으로 간주했다.

조사에 따르면 청년집단에서 여성, 저숙련 서비스직, 비수도권 거주일 경우 노동시장에서 불안정성을 경험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저숙련 서비스직은 안정형보다는 불안정형에 속할 확률이 1.8배 높았으며, 자영업이 불안정성을 경험할 확률이 컸다. 반면 기술 전문직이 저숙련 서비스직보다 안정적인 노동시장을 경험할 확률은 5배 높았다. 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안정형보다 불안정형에 속할 확률은 1.18배 높았고, 반대로 안정적인 노동시장을 경험하는 집단에 속할 가능성은 0.79배 낮았다. 지역별 격차도 확인됐다.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불안정한 노동시장 유형에 속할 확률이 수도권 거주보다 1.05배 높았고, 비수도권에 거주하는 기간이 높을수록 이 차이는 더 벌어졌다.

불안정형 노동을 경험한 청년들을 10여년간 살펴보면 불안정한 노동이 지속되는 비율이 46%(매우 불안정+불안정)에 달한 반면 안정적인 상태를 보인 비율은 26%에 그쳤다. 정규직이 아니거나 숙련도·임금수준이 낮은 노동시장에서 첫발을 뗀 청년 10명 중 절반가량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고용·소득 등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이승윤 교수는 “청년들은 최저임금 언저리서 일해도 된다는 쪽에서 말하는 논리가 ‘보수가 낮은 곳에서 일하다보면 임금 상승이 일어나고 숙련도가 쌓인다’는 것이지만 조사서 확인한 사실은 ‘징검다리 효과’는 보이지 않고 저숙련 서비스직은 계속 불안정형에 놓일 확률이 크다는 점”이라며 “공정이라는 담론도 결국 청년 내 계층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두 얼굴의 공정] 부유한 청년들, 기성세대보다 소득세 인상 반대···공정이라는 이름의 '각자도생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혜리·유선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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