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안감 승진 인사, 2시간 만에 행안부 요구로 '전면 수정'···경찰 '발칵'

이유진 기자
어지럽게 얽힌 전선 너머로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가 보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어지럽게 얽힌 전선 너머로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가 보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행정안전부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자문위)’가 사실상 31년 만에 ‘경찰국’ 부활을 선언한 21일 정부가 경찰 고위직인 치안감 전보 인사를 단행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인사 내용을 수정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7명의 치안감이 당초 발령됐던 보직에서 다른 보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직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번 치안감 인사 번복은 행안부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경찰을 틀어쥐려고 하는 흐름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경찰 내부에서는 “전례 없는 사상 초유의 오락가락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는 이날 오후 7시14분쯤 유재성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수사국장을 경찰청 국수본 수사국장으로 내정하는 등 치안감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정부는 2시간15분여 만에 국수본 수사국장 자리에 윤승영 충남경찰청 자치경찰부장를 내정했다고 수정된 인사안을 내놓았다. 이에 유 국장은 현 보직에 그대로 남게 됐다.

보직이 정정된 건 유 국장만이 아니다. 경찰청 생활안전국장에는 당초 김수영 경기남부경찰청 분당경찰서장이 내정했으나 김준철 광주경찰청장으로 바뀌었다. 경찰청 교통국장에는 김학관 경찰청 기획조정관이 내정됐으나 정용근 총북경찰청장으로 변경됐다. 김 조정관은 대신 서울청 자치경찰차장 자리에 내정됐다. 당초 경찰청 국수본 사이버수사국장에 내정됐던 최주원 국수본 과학수사관리관은 국수본 수사기획조정관으로 보직이 재배정됐다. 중앙경찰학교장 내정자도 정용근 충북경찰청장에서 이명교 서울청 자치경찰차장으로 변경됐다. 이명교 서울청 자치경찰차장은 경찰인재개발원장 재임 때 ‘경찰 골프장 특혜 의혹’을 받았다. 인사 대상인 치안감들은 인사과로부터 당일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거처를 옮기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치안감 전보 인사가 정정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경찰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 생활 20년 만에 이런 인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실무경험과 무관하게 승진 인사가 나는 등 사상 초유의 오락가락 인사가 벌어졌다”고 했다.

경찰청은 당초 “인사 명단이 협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실무자가 최종 버전을 올려야 하는데 중간 버전을 잘못 올렸다”며 “실무자가 인사 발령자 확인을 하고 전화를 받는 과정에서 뒤늦게 오류를 발견했다. 행안부가 관여한 바는 없다”고 해명했다. 실무자의 단순 실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청은 추가 해명 과정에서 “행안부에서 최종본이라고 온 것을 통보받아 내부망에 게시한 것인데, 행안부에서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안이 최종본이라며 수정을 요청했다”고 해명을 번복했다. 결국 경찰 실무자의 실수가 아니라 행안부의 수정 요구로 인사가 번복됐다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치안감 인사가 대통령 승인 사안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실의 의도, 혹은 해외 출장에서 이날 복귀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의도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 장관은 취임 직후 행안부 자문위를 구성해 경찰 통제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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