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점심값은 왜 1000원 올랐을까요?

윤기은 기자

‘식비 초인플레이션’ 온 국민 시름

식재료 배달기사 조기완씨(54)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중앙시장의 한 식자재 도매 상점에서 배달 물품을 꺼내들고 있다. 윤기은 기자

식재료 배달기사 조기완씨(54)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 중앙시장의 한 식자재 도매 상점에서 배달 물품을 꺼내들고 있다. 윤기은 기자

극한 가뭄·인력난·유류비 상승 ‘삼중고’
농부 “20kg 비료 2000원 뛰어 8000원”
화물기사 “기름값 탓 차 팔 수도 없고”
식당도 생존 위해 어쩔 수 없는 ‘인상’
정부 보조금 등 전방위 지원대책 절실

서울 중구의 한 국수집 메뉴판에는 숫자가 적힌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최근 가격표 맨 앞자리 숫자 ‘6’을 ‘7’로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지난달까지 6500원짜리 조림 1인분에 고등어 두 토막을 내주던 인근의 분식집도 이달부터 같은 가격에 고등어 한 토막만 손님들에게 내어준다. 인천 서구의 한 마트에서 ‘30% 할인’ 딱지가 붙은 국내산 삼겹살 가격은 석 달 전 비할인가와 비슷하다.

올 들어 ‘식비 초인플레이션(급격한 물가 상승)’ 현상이 확연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4인 가구 지출 식비는 월평균 106만6902원으로 전년 대비 9.7% 증가했다. 소비자 외식 물가지수도 지난해에 비해 6.1%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공개한 양파 소비자가격은 지난 3월 1㎏당 1903원에서 6월 2175원으로, 깐마늘 소비자가격은 지난 3월 1㎏당 1만2168원에서 6월 1만3262원으로 각각 상승했다. 축산품도 예외는 아니다.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집계한 삼겹살 소비자가격은 지난 24일 기준 1kg당 2만9380원으로 3개월 전(2만3530원)보다 19.9% 올랐다.

지난 23일부터 6일간 충남 서산시 농가와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식자재 도매상점, 식당 등을 돌아다니며 식비 상승 요인을 살펴봤다. 농가는 인력 수급 부족과 비료값 상승, 가뭄으로 인한 작황 부진에 시달렸고, 화물차 기사들은 경유가 상승에 비명을 질렀다. 이는 고스란히 식당의 식자재 가격 및 식대 상승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들은 비싸진 식대가 부담스럽고, 식당 업주들은 높아진 가격에도 도리어 이문이 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인건비·유가 상승에 가뭄까지…농부들 겹악재에 ‘울상’

농부 김종필씨(55)가 지난 25일 충남 서산시 양파밭에서 크기가 작은 양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농부 김종필씨(55)가 지난 25일 충남 서산시 양파밭에서 크기가 작은 양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윤기은 기자

충남 서산시에서 2만평 규모의 밭농사를 짓는 김종필씨(55)는 지난 25일 알이 작아 밭에 남겨둔 양파 하나를 들어보이며 한탄했다. “열심히 가꾼다고 했는데 이것밖에 안 돼죠. 작년 이맘때쯤보다 한 20~30% (양파가) 덜 나왔어요.” 김씨가 극심한 가뭄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밤낮 기온 차가 심한 봄에 비가 와서 땅의 열기를 식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생육부진이 많았다”며 “스프링클러로 주 2회 6시간씩 물을 뿌렸지만 비가 내리는 것과 (수급량이)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밭 한가운데로 가자 머리부터 목까지 덮는 모자를 쓰고 허리에 검은색 바가지를 찬 인부 30여명이 양파를 캐고 있었다. 인부들 중 절반 이상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김씨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외국인 입국이 제한되면서 외국인마저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이 정도 땅에서 양파를 수확하려면 하루 30명이 3~4일 일해야 하는데 용역회사를 통해 겨우 사람을 구했다”고 했다. 인력 공급이 부족하니 인건비가 치솟았다. 김씨는 2019년 9만~10만원을 주던 일당을 현재 12만~15만원씩 지급한다. 하지만 인건비를 올려도 일할 사람이 부족해 작년에 사용한 경작지의 90% 면적에만 양파를 심었다고 했다.

농기계에 들어가는 경유값 상승도 만만치 않다. 농가는 정부로부터 유류세를 감면받은 가격에 경유(면세경유)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세금 감면 폭보다 경유값 상승 폭이 크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보면 지난 27일 자동차용 면세경유 가격은 1ℓ당 1647원으로 지난해 6월 평균(812원)에 비해 102.8% 올랐다. 면세 대상이 아닌 자동차용 경유의 가격 상승률(54.6%)보다 훨씬 높다.

같은 지역에서 마늘·생강·감자 농사를 짓는 김인국씨(53)는 “재작년까지 전체 수익 중 순수익이 10~15% 정도였지만 작년에는 인건비와 비료 가격 상승 등으로 5억원 정도 빚이 생겼다”고 했다. 예를 들어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비료의 일종인 ‘유박비료’를 모든 밭에 뿌리는데, 지난해에는 정부 도움을 받아 비료 20kg을 6500원대에 샀지만 올 들어 8500원에 구매하고 있다. 유박비료는 팜유박, 대두박 등 수입 원료가 주요 성분이다.

축·수산 업계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옥수수와 대두박 등이 들어간 가축 사료값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매달 역대 최고가를 갱신하고 있다. 올해 5월 돼지, 젖소, 양계용 배합사료 1㎏당 평균가격은 작년 5월 615원에서 720원으로, 526원에서 610원으로, 462원에서 561원으로 각각 올랐다. 어선 연료인 면세유 가격도 이달 들어 26만원대로 전년 동기(11만원대)에 비해 2배 이상 상승했다. 여기에 축·수산 업자들도 농가와 마찬가지로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활기 속 그늘, 가락시장의 이면…유가 인상에 등골 휘는 운송업자들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 도매상들이 양파 경매를 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지난 24일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 도매상들이 양파 경매를 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지난 24일 오후 10시40분. 전국의 농산물이 모이는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양파 코너에 도매상인 40여명이 몰려들었다. “○○농장 양파 15kg.” 오후 11시 정각 경매사가 경매 시작을 알리자 리모콘에 가격을 입력하느라 상인들의 손이 바빠졌다. “206번 2만1300원.” 경매사가 낙찰자와 낙찰가를 알리자 경매에 실패한 상인들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청과가 2000원 (더) 싸다”며 앞서 다른 업체 경매에서 양파를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한 상인의 목소리도 들렸다.

이날 가락시장에서 전남 무안산 양파 150망을 산 강모씨는 “기름값 미쳤나봐”라며 지게차에 실린 양파를 자신의 1t 트럭으로 옮겼다. 그는 서울 일대의 식당에 양파를 판매하는 ‘도매상’이자 식재료를 배달하는 ‘화물기사’다. 그는 지난 한달간 기름값으로 70만~80만원을 썼다며 3개월 전에 비해 순수입이 30~40% 줄었다고 했다. “양파값이 오르니까 주문량이 3개월 전에 비해 20~30% 줄었습니다. (식당 주인들로부터) 욕도 X지게 먹었죠. 그런데 기름값 올랐다고 경유 트럭을 팔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돌아다닐 때 에어컨 덜 트는 것 뿐이에요.”

경유 가격은 지난달 12일 역대 최고가(2008년 7월 1947.75원)를 경신한 뒤 7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6월 넷째주(6월19일∼23일) 전국 주유소의 평균 경유 가격은 전주보다 44.5원 오른 1ℓ당 2127.2원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방역 제한이 완화돼 전세계적으로 유류 수요가 늘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석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수출량이 감소해 유가가 폭등한 것이다. 유가가 급등하자 정부는 다음달 유류세를 현행법상 최대한도인 37%까지 인하하기로 했다.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마련해도 현장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주 3회 서울 가락시장과 부산지역 시장 곳곳을 오가며 채소를 배달하는 신모씨(47)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난달에 (부산 도매업체한테) 회당 운송비를 5만원 겨우 올려 받았어요. 그런데 자기들도 힘들다며 (운송비를) 더 안올려주려고 합니다. 인상 요구를 안 받아주면 운행을 정지해야죠.”

■도매상도 식당주인도…가격 인상 망설이는 ‘모두의 고통’

식재료 배달기사 조기완씨(54)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 밀가루를 배달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식재료 배달기사 조기완씨(54)가 지난 23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 밀가루를 배달하고 있다. 윤기은 기자

지난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각국의 곡물 수출 금지령으로 수입산 식재료 가격도 크게 상승했다. 23일 서울 중구 중앙시장에서 식당으로 식재료 배달을 28년째 하고 있는 조기완씨(54)를 만났다. 그는 가격이 가장 많이 뛴 제품으로 밀가루, 식용유, 물엿을 꼽았다. 조씨의 형이 운영하는 도매업체는 이날 1.8ℓ 들이 식용유를 7250원에 떼왔는데 연초만 해도 절반 가격이었다고 했다. 납품하는 물엿 구매가도 올 초 9kg 기준으로 8000원대에서 현재 14000원대까지 올랐다. 식용유 제조업체는 식용유 생산량이 주문량보다 적어 각 도매업체에 판매수량을 임의로 배당하는 상황이다.

“사장님 저 왔어요.” 조씨는 자신의 물건을 납품받는 노점상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20년간 꾸준히 물건을 배달해온 곳이라고 했다. “장사에서는 신뢰가 중요합니다. 그게 깨지면 거래 못해요. 그래서 물건 떼오는 가격이 올라도 식당에 도매가를 함부로 못 올리고요.” 조씨가 명동 거리에 들어섰다. 대부분의 식당은 손님이 없어 텅 비어 있었다. “우스개 소리로 IMF(1997년 금융위기) 때보다도 물가가 더 오르고 있다는 말을 해요. 여기 황학동에 주방기구 중고 가게가 많거든요? 하도 폐업하는 식당이 많으니까 오죽하면 거기도 망한다는 얘기가 나와요.”

당신의 점심값은 왜 1000원 올랐을까요?

식당 주인들도 식자재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음식 가격을 쉽사리 올릴 수 없다고 했다. 조씨로부터 식용유를 배달받은 분식집 사장 A씨는 “식용유와 밀가루 값이 너무 올라 한 달 정도 고민하다가 튀김값을 2000원에서 500원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사식당에서 뷔페식 백반을 파는 B씨는 “근처 공사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상대하는데, 업체가 지정식당을 바꿀까봐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다”고 했다. 정부가 다음달부터 가스·전기 요금 인상을 예고해 상인들의 근심은 더 깊어지고 있다. 전기요금은 kWh(킬로와트시)당 5원, 주택과 상가 등에서 쓰는 민수용 도시가스 요금은 메가줄(MJ)당 1.11원 오른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28일 “올해 우크라이나가 봄 농사를 짓지 못해 가을 산출량이 얼마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곡물 대란이 내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유가와 곡물 가격이 잡히지 않는 이상 식재료 물가는 앞으로도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곡물·석유 등 원자재 유통 세금 감면과 보조금 지원, 일부 자영업자 금융 지원, 석유 등 독과점 산업 모니터링 등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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