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피해자들이 부르는 노래…“다시 일어나선 안 되는 일 아닙니까?”읽음

전현진 기자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 지지자들이 함께 모여 연습한 타악기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 지지자들이 함께 모여 연습한 타악기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1958년, 가난했던 그의 집은 학비를 낼 수 없었다. 열일곱살의 김장호씨(81)가 홀로 일본으로 건너간 것도 그 때문이다. 더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곳저곳 전전하다 1963년 도쿄의 작은 건축회사에 취직했다. 담벼락 쌓는 일을 했다. 무거운 등짐을 지었다.

명절이 되면 동료들은 모두 고향에 갔다. 그는 빈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술도 못 마시니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마음에 그렸다.

통영군(지금의 통영시) 사량면이 그의 고향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해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지냈다.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다시 돌아간 곳도 고향이었다.

빈집에 홀로 있으면 사량도의 풍경이 떠올랐다. 어릴 적 맘껏 뛰놀던 뒷동산이 그리웠다. ‘고향초’라는 노래를 불렀다. 명절이면 내내 이 노래가 떠올랐다. 어릴 적 배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가엾게 눈물이 났다. 지금도 이 노래를 떠올리면 눈물부터 난다.

빈방에서 홀로 불렀던 노래, ‘고향초’를 부르려 김장호씨는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무대에 올랐다. 김장호씨는 하얀 모자를 쓰고 하얀 셔츠 단추를 목 밑까지 단정하게 잠궜다. 혼자가 아니었다. 무대에 오른 14명은 하얀색 상의와 검정색 하의를 맞춰 입었다.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6월26일) 기념 행사가 열렸다. 기념행사 1부에선 주관단체 관계자들이 인사했고, 고문피해자들의 가족과 삶에 대한 인터뷰 영상이 상영됐다. 이들이 합창에 나선 건 2부 ‘치유마당’에서다. 매주 모여 연습했던 타악기 공연도 펼쳤다.

이들에겐 ‘고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본인이 고문을 당했거나, 가족이 고문을 당했거나. 그리고 그들 곁에서 함께 있어준 지지자들이다.

조갑제 기자는 1987년에 낸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에서 “고문자를 살인미수나 살인교사, 또는 살인죄로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는 “인간이 물속에서 살 수 없고, 벼락 맞으면 죽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면 물 먹이고 감전시키는 고문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나 살인미수로 처벌해야 한다는 게 많은 변호사들의 견해”라고 주장했다.

고문을 겪어낸 이들에게 ‘고문 생존자’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장호씨도 고문 생존자다. ‘일본 우회 잠입 간첩’이라며 고문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사형 선고까지 받았지만 결국 살아남아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했다.

고문 피해자들과 그 가족, 이들과 함께 해온 지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문 피해자들과 그 가족, 이들과 함께 해온 지지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간첩 조작 사건 수사관 이름도 공개

행사장에는 머리가 희끗한 이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울릉도 간첩단 사건,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 수십년 전 정국을 흔들었던 공안 사건의 당사자들이다.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들이었고, 이제는 하나 둘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됐다. 이들은 국가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로 이곳에 왔다.

구명우씨(65)는 자신이 생존자들 중 “막둥이”라고 했다. 20대 때 일을 구하러 일본에 몇 달 다녀왔던 게 그를 ‘막둥이’로 만들었다. 1986년 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붙잡혔다. 일본에서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국가기밀을 탐지하려 했다는 혐의였다. 5년3개월 간 옥살이를 했다.

출소한 뒤 요양원 등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 봉사활동을 할 때 곧잘 나서서 노래를 불렀다. 고문과 억울한 옥살이의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2011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상처가 모두 지워지지 않았다. 그저 노래할 때면 잠시 상처가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노래는 에너지가 있다. 계속 노래를 하다보니 작곡가 선생님을 만나 노래(동백꽃 전설)도 받았다.

구명우씨는 이날 행사장에서 독창을 했다. 합창에 앞서 혼자 무대에 올랐다. 그가 고른 곡은 ‘떠나가는 배’. 눈을 감고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원곡자인 가수 정태춘을 좋아했다. “함께 고통을 나누던 어르신들이 하나 둘 떠나가시는 모습에서 이 노래가 떠올랐다”고 했다.

행사를 주최한 인권의학연구소는 이날 간첩 조작 사건으로 훈·포장았다가 최근 취소된 공무원, 즉 수사기관의 수사관 이름을 공개했다. 국정원(옛 안기부 등), 경찰청, 국방부 등의 조작간첩 사건 피해자 중 2005년부터 2021년 10월까지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된 건 449명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고있다. 국정원이 214명, 경찰청 120명, 국방부 75명이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2018년 훈·포장을 취소한 공무원은 53명이었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은 행안부가 당시 보도자료를 발표하면서 정작 훈·포상이 취소된 이들의 기본적인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오히려 고문 피해자들의 이름을 실명 그대로 사용해 사건을 특정했다고 했다.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 지지자들이 함께 모여 연습한 타악기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고문 피해자와 그 가족, 지지자들이 함께 모여 연습한 타악기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인권의학연구소는 두 차례에 걸쳐 정보공개청구소송을 내 지난해 11월 가려진 수사관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화영 소장은 “고문 피해자들의 피해회복과 국가공무원들의 공권력 남용에 대한 책임 규명·재발 방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도 고문 가해자들에 책임을 묻는 과정이 매주 중요하다”고 밝혔다.

간첩 조작 사건은 항상 피해자의 이름으로 거론됐다. 이날은 피해자의 이름은 가려지고 수사관들의 이름이 적시됐다. 이들 중에는 국가유공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보국훈장을 받은 이들도 많았다.

김양기씨(72)는 1986년 2월 일본에서 온 작은아버지에게 김이나 인삼차 같은 선물을 사주려고 서울의 롯데백화점에 앞에 갔다가 보안부대 군 수사관에게 체포됐다.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군 수사관으로부터 고문을 받았고 검찰 조사에서 “고문을 당해서 한 허위자백”이라고 했지만 검사는 오히려 김양기씨에게 손찌검했다. 법원에서도 여러 번 억울함을 호소했고 판사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징역 7년을 선고받아 5년 동안 옥살이한 뒤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2009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진실이 밝혀졌지만 아직도 체포됐던 2월만 되면 몸이 아프다. 가족들이 겪은 고통도 쉽게 잊힐 수 없다.

김양기씨를 수사한 ‘공적’으로 훈·포장을 받은 이들의 이름도 이날 공개됐다. 육군본부505보안부대 유창수(대령·보국훈장 광복장), 이승우(중령·보국훈장 삼일장), 박봉철(준위·대통령표창). 김양기씨는 몇 해 전 이들의 이름을 들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김양기씨는 “나를 고문한 이들이 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가유공자로 본인과 자손들이 그 혜택을 누리고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분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고문이나 조작 같은 건 이제는 없어지지 않았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김양기씨는 “다시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고 주먹을 꽉 쥐었다.

“고문 피해자 지원은 국가의 의무, 가해자 처벌은 고문 방지 최선책”

김양기씨는 이날 결의문 낭독에도 나섰다. 고문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공식 사과할 것과 고문 가해자를 끝까지 찾아내 처벌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10년 전 발의돼 폐기와 제출을 반복하며 여전히 계류 중인 ‘고문방지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고문방지 및 피해구제 법안은 고문행위를 규제하고 고문 피해자와 유족을 지원하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높여 결의문을 읽은 김양기씨는 “여전히 답답한 심정”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발생 전, 2019년에 했던 같은 행사에서도 그가 결의문 낭독자로 나섰다. 그때도 같은 내용이었지만 현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날 행사 현수막에는 ‘고문피해자 지원법 제정하라’는 구호가 크게 쓰였다. 또 한쪽에는 “고문 피해자 지원은 UN이 정한 국가의 의무입니다. 고문 가해자 처벌은 고문 방지를 위한 최선책입니다.”라는 문구도 적혀있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 해야 합니다.”라고 마무리됐다.

이날 합창 마지막 곡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었다. 통일의 염원을 담았던 김남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민중가요다. ‘서로 일으켜주고 기대며 손을 맞잡고 함께 가자’는 가사 때문에 단합과 연대를 나타내는 노래로 즐겨불린다.

지난달 26일 열린 국제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에서 참가자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왼쪽 두번째가 고문 피해자 김양기씨다.

지난달 26일 열린 국제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에서 참가자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왼쪽 두번째가 고문 피해자 김양기씨다.

무대에서 이미 몇 곡을 부른 합창팀은 긴장이 풀어진 듯 좀 더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여유도 생겼다. 노래를 마치자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사회를 맡은 박민중 인권의학연구소 팀장은 자리에서 합창을 보던 참가자들에게 제안했다.

“우리 일어나서 한 번 더 같이 불러보시죠!”

다시 노랫소리가 행사장에 울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옆자리에 이들과 손을 맞잡았다.

김양기씨도 좌우로 손을 맞잡고 웃으며 노래를 불렀다.

행사가 끝났을 때 어린 손녀가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에게 뛰어갔다. 김양기씨는 손녀를 안고 함박 웃음지었다. 고문과 폭력, 조작된 간첩사건 같은 어두운 과거는 잠시 잊은 듯했다.

“절망 속에서 인생을 살다가 극복하고 자식을 키우고 손주를 보니 감회가 정말 남달라요. 나에게 있어서는 꽃 같은 아이들이죠. 보물보다 소중하고.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는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선 안 될 것 아닙니까?”

김양기씨가 되물었다.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에 함께 한 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문 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에 함께 한 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글·사진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고문 피해자들이 부르는 노래…“다시 일어나선 안 되는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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