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1인 가구의 ‘이웃’ 만들기···서교동주민센터의 ‘원데이클래스’

김보미 기자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에서 지난 12일 열린 고시원 1인 가구의  ‘테라리움’ 만들기 수업에서 주민들이 강사와 함께 각자의 어항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다. 마포구 제공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에서 지난 12일 열린 고시원 1인 가구의 ‘테라리움’ 만들기 수업에서 주민들이 강사와 함께 각자의 어항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다. 마포구 제공

“일주일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주말에는 동묘에 갔다가 약속에 있어서 성수동에도 들렀어요. 어제는 주민센터에 상담받으러 왔잖아요.”

“어르신은 뭐하셨어요?”

“나도 동묘에 갔었어요. 자전거 새로 사러.”

“도난 방지 자물쇠도 같이 사셨어요? 너무 더울 때는 타지 마시고요. 다음에 두 분이 같이 동묘 가시면 되겠네요.”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 주민자치실에 모인 박정수씨(가명·61)와 최성민씨(가명·67)에게 주민센터의 윤덕규 주무관이 안부를 묻자 서로의 일상 이야기가 시작됐다.

“얼굴이 좀 나아지신 거 같아.” “나아지긴. 잘 먹어야 하는데…. 잘 안 되네.” 그리고 김주철씨(68)가 주무관에게 물었다. “오늘은 뭐 만듭니까? 지난주에 만든 방향제 향이 방 안 가득 차서 너무 좋아요.”

고시원 1인 가구의 ‘이웃’ 만들기···서교동주민센터의 ‘원데이클래스’

세 사람은 주민센터에서 멀지 않은 고시원에 혼자 사는 주민들이다. 같은 고시원 2층과 3층에 짧게는 반년, 길게는 5년간 살았지만 한 달 전 이곳에서 처음 만나, 처음 얼굴을 마주하고, 처음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딱히 특별할 것 없이 주고받은 이 날의 대화가 이들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과의 교류였다.

“다들 혼자 있는 게 익숙하잖아요. 텔레비전이 가장 친한 친구지. 방음도 안 되고, 사람들이 수시로 들고나는 고시원은 옆방 사람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말을 먼저 걸었다가 거절당하면 상처받으니, 그게 걱정돼 인사도 잘 안 하게 되지.”

올 초부터 고시원에 살고 있다는 최씨가 말했다. ‘이웃이 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고시원 1인 가구는 다른 주거 형태보다 고립되기 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중장년 비율이 높아 고독사 등 사회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교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취약계층이 많이 사는 고시원을 대상으로 이 같은 ‘원데이 클래스’를 꾸린 건, 거주자들을 ‘방’ 바깥으로 이끌어 관계망을 만들고 여가 활동을 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특히 서교동에는 58개(마포 지역의 38%)의 고시원이 밀집돼 있다. 비좁고, 열악한 여건이지만 저렴한 월세를 따라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에서 지난 12일 열린 고시원 1인 가구의  ‘테라리움’ 만들기 수업에서 주민들이 각자의 어항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다. 마포구 제공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에서 지난 12일 열린 고시원 1인 가구의 ‘테라리움’ 만들기 수업에서 주민들이 각자의 어항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다. 마포구 제공

서교동주민센터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관계가 이어질 수 있도록 같은 고시원에 거주하는 1인 가구 6명과 협의체 위원들로 수업을 구성했다. 지난달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도장과 부채, 방향제를 만들었다. 이날은 마지막 ‘테라리움’ 수업이다. 어항 바닥에 야자활성탄을 깔고, 난석(휴가토)을 올린 뒤 두껍게 부은 배양토 위에 이끼를 심어 각자의 정원을 만들었다. 표면이 부드러운 비단이끼, 뿌리가 긴 꼬리이끼를 갖가지로 잘라 꾸몄다.

“잘하시네. 내 것도 좀 봐줘요.” “이끼가 시루떡 같아. 농사짓는 거 같지 않아? 식물이랑 흙을 만지니 힐링 되고 너무 좋지요?” “사람은 흙이랑 가까워야 해.”

수업 전에는 “차라리 먹거리를 지원해 주는 게 낫지 않냐”며 회의적이었던 고시원 주민들도 이젠 서로 친해질 기회를 갖고 사람들과 활동하는 시간을 보내는 데 만족감이 컸다. “같은 고시원 사람과 처음 대화했다”는 참여자들은 “앞으로 주민센터의 다른 교육에도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아, 턱을 움직이려고 일부러 껌을 씹었다”는 그동안 김씨의 일상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타인과 교류할 의지가 생긴 것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에서 지난달 21일 고시원 1인 가구 주민들이 모여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만들고 있다. 마포구 제공

서울 마포구 서교동주민센터에서 지난달 21일 고시원 1인 가구 주민들이 모여 자신의 이름을 새긴 도장을 만들고 있다. 마포구 제공

특히 고시원은 50대 이상 중년층 남성 1인 가구 비율이 높다. 혼자 사는 가구 중에서도 남과 대화를 하거나 어울리려고 밖으로 나오기 가장 힘든 계층이다. 윤 주무관은 “수업을 통해 주민센터가 편해지면서 임대주택에 관해 묻기도 한다”며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이웃에게 전파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교동주민센터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반기에도 같은 고시원 주민들로 구성된 교실을 운영할 예정이다. 최씨는 “몇 년 만에 이런 모임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혼자 고독하게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데 외롭지 않을 수가 있겠나. 수업이 끝나는 것이 아쉽다.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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