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에 얻은 파킨슨병, 삼성반도체 노동자는 울었다

유선희 기자
31살에 얻은 파킨슨병, 삼성반도체 노동자는 울었다

20대 후반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평택공장 근무 이후 A씨(32)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근무한 지 3년여만에 파킨슨병이 생겼고, 지금은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A씨는 27살이던 2017년 6월 평택공장 내 확산공정에서 일을 시작했다. 확산공정은 반도체를 만드는 핵심공정 중 하나다. 800~1200도의 초고온 전기로에서 웨이퍼(실리콘 원판)에 불순물(비소, 인, 붕소이온 등)을 확산해 반도체 층의 전도형태를 변화시키는 공정이다. A씨는 세척작업을 맡았다.

1000도 넘는 곳에서 사람이 작업을 할 수는 없으니 온도를 200도까지 내린다. 그래도 워낙 고온인 데다가, 서두르지 않으면 교대근무 마지막 조에 업무가 몰리기에 방독면 등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하고 일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3년여가 지났을 때 왼손이 “미친듯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A씨는 지난해 2월 병원에서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불과 31살이었다.

A씨는 18일 기자와 통화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손이 이렇게 떨렸을 때는 이미 뇌에 있는 도파민 세포가 60% 이상 죽은 거라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까지 간 거였다”고 말했다.

현재 약물 치료도 쉽지 않다고 했다. 평생 약을 먹고 살아야 하는데 벌써부터 약을 많이 복용하면 면역력이 생겨 이후 약물 효과가 없어질 수 있다고 한다. A씨는 “요즘에는 왼쪽 다리에도 힘이 없어 온전히 뻗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힘이 빠지는걸 막기 위해 운동을 하는데 역부족인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든다. 죽는 병은 아니라니까 살아나가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회사를 그만뒀다. 원래 일하던 부서에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고 타 부서로도 가지 못하면서 쫓기듯 나왔다. 파킨슨병과 관련한 가족력도 없는 A씨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주변 도움을 받아 병원을 찾았다. 확산공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비소 노출을 의심했다. 검사 결과 A씨 몸에서 323.82ug/gCrea의 비소가 검출됐다. 이는 일반인구 집단의 상위 10% 이내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비소는 다양한 형태의 화합물로,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적 형태에 따라 유기비소와 무기비소로 나뉘는데, 무기비소가 인체 위해성이 더 크다고 알려졌다. A씨 몸에서는 무기비소 As5+, As3+도 검출됐다.

병원에서는 “작업환경에 의한 무기비소 노출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파킨슨병 환자의 뇌척수액에서 비소 농도가 높았고 동물실험에서 비소가 파킨슨병을 유발할 수 있는 기전이 제시된 점 등으로 볼 때 유해가스의 복합 노출에 의해 질병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지난 6월7일 A씨가 낸 산재 신청을 불승인 했다. A씨가 업무수행 중 산화질소, 불화수소 등을 취급하거나 노출될 가능성이 있지만 노출기간이 길지 않고 이들 물질과 파킨슨병 간의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업무상 고농도 비소에 노출됐다는 점도 객관적 사실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고, 비소 노출과 파킨슨의 의학적 관련성이 확인된 바가 없다고 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는 “작업자가 비소에 고농도로 노출됐다면 당연히 그 외 유기용제 등 화학물질에도 그만큼 노출됐다고 볼 수 있는데, 공단이 이 검사 결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묻고 싶다”며 “공단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과거 두 차례 파킨슨병과 업무관련성 판단에서 산재를 불승인해 왔지만, 이후 행정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돼 뒤집혔다. 무책임한 판정으로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태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반올림과 A씨는 공단의 산재 불승인 처분에 불복해 고용노동부에 재심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반올림은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으로 기능하고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하려면 제대로 된 판단기준이 필요하고, 또다시 소송을 통해 바로잡으려면 너무도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며 “고용노동부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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