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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인천 서구 가좌점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김미리씨(59)는 10년 전 의무휴업일이 도입되고 “사람 구실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쉬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김씨는 “의무휴업일이 있기 전에는 가족행사는커녕 가족과 모여 밥 먹기도 힘들었고, 일이 바쁠 때는 일주일 내내 일했다”며 “대체인력이 모자라 휴일을 사용하려면 눈치가 보이는데, 의무휴업으로 모두가 쉴 수 있어 확실히 부담이 덜하다”고 했다.

대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의 계산대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의 계산대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옷매장에서 일하는 김씨는 하루에 2만보씩 걸으며 일한다고 했다. 무릎 연골이 닳아 3~4년 전 양쪽 다 시술을 받았다고 했다. 주 5일, 하루 8시간씩 일해서 손에 쥐는 한 달 수입은 160여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김씨는 “마트노동자들은 주로 40~50대 가정주부로, 일과 가정을 챙겨야 한다”며 “의무휴업 폐지는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마트 경기 양주점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정호순씨(59)는 의무휴업일이 둘째, 넷째주 수요일이다. 양주점 이마트 노동자들은 “의무휴업일을 모두 함께 쉴 수 있는 일요일로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런데 오히려 의무휴업 폐지 이야기가 나왔다. 정씨는 “윤석열 정부 눈에는 재벌만 보이고 최저임금 수준을 받으면서 일하는 마트노동자는 안 보이느냐”며 “대체 뭐가 급해서 이 시국에 노동자 의견은 반영되지도 않은 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들고 나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형마트 영업제한과 의무휴업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 난립으로 골목상권 침해 우려가 제기되면서 2012년 1월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시행됐다. 소상공인 보호와 골목상권 살리기가 주요 목적이었고, 동시에 마트 노동자들은 의무휴업으로 쉴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건강권 보호’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해왔다.

무조정실은 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첫 번째 규제심판회의를 열어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에 대해 논의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의무휴업일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무조정실은 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첫 번째 규제심판회의를 열어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에 대해 논의한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의무휴업일 안내문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는 지난달 20일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를 ‘국민제안’이란 이름으로 들고 나왔다. ‘어뷰징’ 사건으로 ‘국민제안’ 자체는 철회됐지만, 국무조정실은 지난 4일 규제심판회의를 열고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에 관한 논의를 했다.

반면 노동자들은 “휴업일을 주말로 통일하고, 월 4회로 늘릴 것”을 요구하며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 확대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마트노동조합이 자체적으로 지난해 1월15일부터 18일까지 47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66.3%)이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월 4회로 늘리자고 했고, 일요일로 고정해야 한다는 응답도 78.8%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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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18년 마트노동자 16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비스 노동자 삶의 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노동자들은 쉴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 1순위로 의무휴업 확대(32.6%)를 꼽았다. 이어 적정 인원 충원(25%), 휴게시간 보장과 확대(21.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기 의무휴업 확대는 노동 조건이나 환경이 열악한 비직영 노동자(39.5%),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37.9%)에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조사를 진행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대형마트 정기휴점제는 ‘노동시간 단축’과 맞물려 있고, 노동안전(건강, 휴식) 차원에서도 중요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오는 18일까지 규제정보포털을 통해 대형마트 영업제한 규제에 대한 의견을 듣고, 24일 2차 규제심판회의에서 논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의에서 결론이 폐지로 나온다고 해도, 법 개정 사안인 만큼 실제 폐지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민정 마트노동조합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육아휴직 기간 확대를 말하며 ‘일·가정 양립’도 약속하지 않았나. 대다수 여성 노동자인 마트노동자들이 제대로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일·가정 양립 지원책’”이라며 “소상공인과 대형마트의 상생발전을 도모하고,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신체적 건강을 위해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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