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폭주 감당 못한 구조 매뉴얼…‘반지하’ 골든타임 놓쳤다

박하얀 기자

‘신림동 일가족 참변’ 늦은 출동·구조가 남긴 것

주민 항의 받는 여당 지도부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1일 수해 복구를 위해 방문한 서울 동작구 사당2동 주민센터 앞에서 한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주민 항의 받는 여당 지도부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이 11일 수해 복구를 위해 방문한 서울 동작구 사당2동 주민센터 앞에서 한 시민의 항의를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관할 소방서 전원 타 현장 투입 상황서 긴급신고 ‘코드0’ 접수
8일 밤 서울서 2400건 신고…접수 순서 따른 출동으론 ‘한계’
위급성 따라 우선순위 두는 촘촘한 상황별 재난 대응책 필요

지난 8일 밤 퍼부은 기록적인 폭우로 일가족 3명이 반지하 주택에서 익사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이들을 구조해달라는 신고는 당일 오후 8시59분 접수됐다. 경찰은 신고 접수 후 20분, 소방은 45분쯤 지나 현장에 처음 도착했다. 구조작업이 시작된 것은 신고 후 2시간46분이 지난 오후 11시45분. 발달장애인 언니, 비장애인 동생과 그의 딸은 자정이 넘은 시각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날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 주택에서도 50대 여성이 밀려드는 물을 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소방은 신고 1시간 뒤 현장에 도착했다. 기후위기로 비슷한 재난의 발생이 잦을 가능성이 큰 만큼 신속한 구조를 위해 체계적인 재난 구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경찰은 지난 8일 오후 8시59분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주택 안이 침수돼 문이 안 열리고 내부에 3명이 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이 신고를 ‘코드0’으로 분류했다. 8일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서울 관악경찰서에 접수된 폭우 관련 신고 192건 중 긴급출동을 요하는 코드0으로 분류된 사건은 15건(7.8%)이다.

신사지구대 경찰관 2명이 오후 9시20분, 나머지 4명은 9시30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관악소방서는 당시 소방인력이 모두 다른 현장에 대응하고 있었다. 인접 지역인 구로소방서 구급대가 9시46분쯤 현장에 도착했지만, 구조 장비가 없는 구급차는 현장에서 손을 쓸 수 없었다. 반지하 주택 현장 배수·인명구조 작업이 시작된 건 신고 후 2시간46분이 지난 오후 11시45분이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인접 지역 모두 신고가 폭주해 가용한 구조 자원이 없었다고 말한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신고) 시간 순으로 처리한다”며 “현장에 가고 있는 도중에 ‘코드0’ 신고가 떨어지면 (다른 현장 신고자에게) 전화로 양해를 구할 수 있겠지만, (출동 나가 있는) 신고 사건을 종결하기 전에 당사자들을 놔두고 올 수는 없다”고 했다.

소방당국은 신고가 접수된 순서대로 대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긴급성 등을 고려해 조정한다고 밝혔다. 8일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서울지역 25개 소방서에 접수된 신고는 2400건에 이른다.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중간에 (더 긴급한) 현장에 출동하고 (인력을) 재편성할 수는 있겠지만, 소방인력과 장비에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사안의 위급성 등에 따라 출동에 우선순위를 두는 매뉴얼을 상황별로 촘촘하게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객관적으로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우선 출동하도록 (매뉴얼을) 검토하고 보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에서는 119 종합상황실이 기피 부서로 꼽히는데, 상황을 잘 판단해 자원을 적정하게 배분하는 베테랑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재난 상황과 인명 구조에 필요한 공공부문의 인력과 예산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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