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에 더 가혹한 재난” 비통에 잠긴 빈소읽음

이홍근 기자

‘반지하 침수 참변’ 신림동 일가족 조문객 발길 이어져

가족 부양했던 홍씨 직장 동료들 “참 따뜻했던 사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10일 차려진 수도권 집중호우로 침수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은 일가족의 빈소.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10일 차려진 수도권 집중호우로 침수된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은 일가족의 빈소. 연합뉴스

“영정사진 보셨죠. 정말 밝게 웃고 계시잖아요. 주변에 따뜻한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이었어요.”

상복을 입은 김수현씨(43)는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서 사망한 홍모씨(47)의 빈소를 바라봤다. 김씨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판매서비스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사무국장으로, 고인의 직장 동료이자 노조 동지이다. 김씨의 시선이 비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다른 동료들에게 닿았다. 빈소에서 웃음 짓는 건 영정 속 홍씨뿐이었다.

신림동 ‘반지하 참사’ 이틀째인 11일,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홍씨의 빈소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생전 고인을 기억하는 노동조합 관계자, 직장 동료, 교회 지인들이 홍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이날 낮 12시32분쯤 빈소를 찾은 한 조문객은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빈소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조문객 바로 옆에는 부루벨코리아지부에서 보낸 근조 화환이 놓여 있었다. 화환에는 “○○야, 딸이랑 행복한 곳에서 웃으며 지내고 있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일가족 중 둘째 딸인 홍씨는 폭우가 내린 9일 새벽, 신림동 반지하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언니(47), 딸(13)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홍씨는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가족을 홀로 부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가 부양하던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서울의 한 시립병원에 입원하고 있어 화를 면했다.

홍씨의 동생이 해외에 있어 부루벨코리아지부 조합원들이 전날 빈소를 대신 차렸다. 김 지부장이 잠시 상주를 맡기도 했다. 홍씨 동생이 귀국해 장례식장에 도착한 10일 오후 9시30분쯤 김 지부장은 상주 자리를 동생에게 넘겼다.

홍씨와 4년간 한 사무실에서 일한 김수현씨는 고인을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씨는 “아침에 출근하면 (홍씨가) 항상 밝은 목소리로 맞아줬다”며 “인사 하나로 기분을 좋게 해주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상 중에도 좋은 일이나 좋은 글귀가 있으면 꼭 문자로 전해줬다”며 “행복을 나누려 했던 거 같다”고 했다.

노조는 전날 오후 3시쯤 기자회견을 열고 홍씨 가족의 죽음에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지하라는 열악한 주거형태, 발달장애인·노인 등 이동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미비, 집중호우 당시의 재난대응 시스템 부실 등이 맞물려 벌어진 참사라는 것이다.

노조는 “재난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들은 불시에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수시간 동안 수재를 피하고 살아남기 위해 고립된 상황에서도 사투를 벌였다”면서 “누구에게도 더 이상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치권의 관심도 이어졌다. 빈소 앞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 유동수 의원, 윤미향 무소속 의원,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국회의원들이 보낸 근조기가 걸렸다. 전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주거취약가구 거주자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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