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이주영 감독 “협의 없이 몰래 재편집…쿠팡이 나를 속였다”

박주연 기자

쿠팡플레이에 소송 예고한 <안나> 이주영 감독

지난 8월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주영 감독은 “이 분쟁은 단순히 편집권을 둘러싼 다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방점은 감독을 완전히 배제하고 심지어 속인 채 일방적으로 짜깁기해 창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인격을 부정한 행위에 있다”고 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지난 8월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주영 감독은 “이 분쟁은 단순히 편집권을 둘러싼 다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방점은 감독을 완전히 배제하고 심지어 속인 채 일방적으로 짜깁기해 창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인격을 부정한 행위에 있다”고 했다. /우철훈 선임기자

상황 눈치채자 6월 7일 쿠팡플레이 측
법률적 문제없다며 재편집 통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가 지난 6월 공개한 드라마 <안나>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주영 감독(44)은 지난 8월 2일 쿠팡플레이가 이 드라마의 극본을 쓰고 연출을 한 자신을 배제한 채 8부작을 6부작으로 일방적으로 재편집해 작품을 훼손했다며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하루 뒤인 3일 쿠팡플레이는 “수개월에 걸쳐 감독에게 구체적인 수정 요청을 전달했지만, 감독이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주영 감독은 이를 재반박했고, 이의태·정희성(촬영), 이재욱(조명), 박범준(그립), 김정훈(편집), 박주강(사운드)씨 등 <안나> 스태프 6인도 이주영 감독을 지지하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 감독과 6인의 스태프는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6부작 <안나> 크레딧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삭제할 것을 쿠팡플레이에 요구했다. 아울러 이 감독은 8부작 마스터 파일 그대로의 <안나> 공개도 촉구했다.

OTT 시대, 쿠팡이라는 거대자본을 상대로 한 이주영 감독의 싸움은 승리할 수 있을까. 지난 8월 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이 감독을 만났다. 그는 “많은 분이 오해하는데 이 분쟁은 단순히 편집권을 둘러싼 다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방점은 감독을 완전히 배제하고 심지어 속인 채 일방적으로 짜깁기해 창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인격을 부정한 행위에 있다”는 것이다.

한편 드라마 <안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시작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쿠팡플레이의 이용자 수 증가에 결정적 역할을 한 킬링 콘텐츠로 꼽힐 만큼 흥행성·화제성을 동시에 획득했다.

쿠팡플레이 <안나> 포스터 / 쿠팡플레이 제공

쿠팡플레이 <안나> 포스터 / 쿠팡플레이 제공

“4월 21일 편집본 회의 때
‘왜 의도 갖고 찍었냐’는 질문은
영화일 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

-6부작 <안나>의 1·2화가 공개된 날짜는 6월 24일이었어요. 쿠팡플레이가 재편집한 사실은 언제 알았습니까.

“6월 2일 음악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쿠팡플레이가 음악감독님께 별도의 추가 작업 협조요청을 해 거절했다는 내용이었어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제작사인 컨텐츠맵 이윤걸 대표님께 연락했죠. 6월 7일 쿠팡플레이 실무자가 우리집 근처로 찾아왔어요. 이윤걸 대표님도 함께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날 쿠팡플레이 실무자는 제게 다른 연출자와 다른 후반작업 업체를 통해 재편집하겠다고 통보했어요.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면서요.”

-충격이 컸겠군요.

“그랬죠. 저는 그 실무자에게 내가 모르는 편집본을 나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방송할 거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렇다고 답하더군요. 그러면 크레딧에서 제 이름을 빼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본인들 권한이라며 해주기 싫다고 했어요.”

-그때 바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요.

“참으려고 했어요. 이 작품에 너무 많은 사람이 관련돼 있고 개인마다 사정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 제기 자체를 곤란해하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저 또한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세상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왜 <안나> 6화까지 다 공개된 후에야 문제를 제기한 건가요.

“<안나> 5·6화가 릴리즈되는 날(7월 9일), 쿠팡플레이가 8월 중 확장판을 공개한다는 보도가 나왔어요. ‘확장판은 또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고, 스태프들도 굉장히 우려했어요. 쿠팡플레이에 대한 신뢰가 없으니까요. 두 번의 능욕은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창작 윤리와 창작자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어요. 무엇보다 이번 일을 묵과해 또 다른 창작자가 같은 일을 당한다면 저 역시 도의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잘못을 바로잡기로 한 거예요.”

이 감독은 8월 2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언론에 입장문을 발표했다. 입장문에서 이 감독은 “쿠팡플레이는 제작사 컨텐츠맵을 통해 8부작으로 된 극본을 검토하고 이를 최종고로 승인”했고, “촬영은 쿠팡플레이가 승인한 최종고대로 진행”됐으며, “쿠팡플레이는 촬영이 완료될 때까지도 1~4부에 대한 가편집본에 대하여 별다른 수정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 쿠팡플레이는 지난 4월 21일 편집본 회의에서, <안나>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도, 어떠한 방향으로 다시 편집되기를 원하는지에 관한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은 채 지엽적인 부분만 논의하더니” “4월 28일, ‘아카이빙 용도’라면서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제작사와 감독에게 요구”했고 “제작사와 감독이 응하지 않자, 쿠팡플레이는 제작사에 대하여 계약 파기를 언급한 끝에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받아갔”다고 했다. 이 감독이 쿠팡플레이에 8부작 <안나>의 마스터 파일을 전달한 시기는 5월 30일이다.

-6월 7일 <안나> 재편집 통보 후 8월 2일 이 감독의 입장문 발표 전까지 쿠팡플레이 측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습니까.

“저의 법률대리인이 7월 중순 쿠팡플레이 측과 만났어요. 이번 일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설명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했어요. 하지만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어요. 다시 쿠팡플레이 측에 내용증명을 보냈죠. 하지만 입장문을 발표하기까지 쿠팡플레이 측에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입장문 발표 다음날인 8월 3일 쿠팡플레이 측은 ‘지난 수개월에 걸쳐 감독에게 구체적인 수정 요청을 전달했지만, 감독은 이를 거부했다’고 반박했어요. 이어 ‘제작사의 동의를 얻어, 계약에 명시된 우리의 권리에 의거해 원래의 제작 의도와 부합하도록 작품을 편집했다’고 주장했고요.

“이미 밝혔지만 촬영 중 한 번도 쿠팡 측으로부터 어떤 수정요구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쿠팡 측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그분들은 촬영현장에도 몇 번 안 왔어요. 그마저도 날씨 이야기나, 코로나19에 걸리지 말라는 정도의 이야기뿐이었어요. 그런데 4월 21일 편집본 회의 때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어요.”

-어땠길래요.

“편집본 회의는 내러티브와 신 구성, 캐릭터 빌드업(인물을 완성해가는 과정)이 잘 됐는지를 제작사, 투자사, 감독이 논의하고 서로의 입장을 피력하는 자리예요. 저마다 설득하고 방어하는 시간이죠. 4월 18일 8부작 편집본을 전달했고, 21일 1~4화, 22일 5~8화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21일 회의에 쿠팡플레이 실무자 2명, 저와 편집감독과 프로듀서, 그리고 컨텐츠맵 이윤걸 대표가 참석했어요. 쿠팡 측은 1·2화가 너무 길다거나, 극본에 있는 장면을 두고 이 장면은 왜 찍었냐고 묻거나, 첫 장면마다 왜 풀샷이 없느냐는 등의 지엽적 이야기만 했어요.”

-극본에 나오는 장면은 당연히 촬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들은 자신들이 승인한 최종고를 보지 않고 이전 극본을 갖고 온 거였어요. 그래서 프로듀서가 최종고를 가져다줘야 했어요. 뿐만 아니라 콘티(장면 번호·화면 크기·촬영 각도와 위치·의상·소품·대사·액션 등 촬영을 위해 극본을 바탕으로 필요한 모든 사항을 기록한 것)도 한 번도 안 보고 온 것 같았어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저는 제 편집본의 장점을 어필하고 이유를 설명했죠. 그랬더니 왜 의도를 갖고 찍었냐고 묻더라고요. 제가 영화일 하면서 제일 충격적으로 들은 말인 것 같아요. 감독에게 왜 의도를 갖고 찍었냐는 것은 왜 사냐는 질문과 같으니까요. 아예 제 의견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어요. 다음날 컨텐츠맵 이윤걸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설득이 안 되고 (쿠팡플레이 측의) 편집 이해도가 너무 낮아 의미 없는 미팅인 것 같다며 4월 22일 미팅을 취소시켰더라고요. 편집본은 음향 정리도 안 되고, 음악도 덜 만들어진 상태예요.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 완성을 한 후 다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가 6부작으로 재편집한 <안나>는 지훈과 현주, 지원의 서사를 다 날려버려 긴장감이 사라지고 굉장히 평면적인 작품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초 내가 그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유미/안나를 포함한 4명 모두였다”고 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유미/안나(수지 분), 지훈(김준한 분), 현주(정은채 분), 지원(박예영 분) / 쿠팡플레이 제공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가 6부작으로 재편집한 <안나>는 지훈과 현주, 지원의 서사를 다 날려버려 긴장감이 사라지고 굉장히 평면적인 작품이 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초 내가 그린 이 작품의 주인공은 유미/안나를 포함한 4명 모두였다”고 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유미/안나(수지 분), 지훈(김준한 분), 현주(정은채 분), 지원(박예영 분) / 쿠팡플레이 제공

“계약내용과 별개로
저작인격권은 감독인 내게 있어
쿠팡플레이의 행동은
동일성유지권·성명표시권 침해행위”

-수정된 부분은 전혀 없었습니까.

“쿠팡플레이 측에서 삭제를 요구한 두 장면이 있어 수용했는데, 이튿날 이윤걸 대표가 두가지 수정 제안을 했어요. 그중 하나는 쿠팡플레이 측에서 삭제를 요구한 장면 하나를 다시 넣어달라는 거였어요. 그대로 받아들여 편집 정리를 한 후 믹싱과 녹음, 음악, CG, 색보정 등 후반작업을 3주간 마쳤어요. 그런 뒤 5월 30일 쿠팡플레이에 8부작 <안나>의 마스터 파일을 전달한 거예요.”

-쿠팡플레이 측은 제작사 동의를 얻어 편집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 감독은 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제작사는 쿠팡플레이와 계약한 것이니 감독은 제작사에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건 아닌가요.

“제작사와 쿠팡플레이의 계약내용과 별개로 저작인격권(저작자의 인격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권리)은 저작물을 양도한다고 따라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감독인 제게 있어요. 쿠팡플레이의 행동은 저작인격권에 속하는 두 가지, 즉 감독의 동일성유지권과 성명표시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행위예요.”

저작권법 제13조에 명시돼 있는 ‘동일성유지권’은 저작자의 작품을 타인이 함부로 바꾸지 못하게 하는 권리다. 저작인격권 중 하나라서,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사고팔 수 없다. 같은 법 제12조에 있는 ‘성명표시권’은 나의 작품에 나의 이름을 표시할 것을 요구하는 권리다. 반대로 내가 원하지 않으면 내 이름을 뺄 권리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무엇보다 쿠팡플레이가 감독을 ‘속이면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계에 발을 내딛기 전 CF감독으로 일한 그는 “광고와 영화를 찍은 지 22년”이라며 “광고주와 투자자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 그런데 쿠팡플레이는 그런 논의나 설득, 협의 과정이 전혀 없이 저를 비롯한 스태프를 감쪽같이 속인 채 몰래 재편집을 함으로써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쿠팡플레이가 4월 28일 ‘아카이빙 용도’라면서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가져갔다고 했지요. 이 감독은 그때 이미 쿠팡 측이 재편집을 시작했다고 보는 거군요.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열면 실시간으로 모든 요소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편집할 수 있어요. 보통은 마스터 파일을 넘긴 다음 이 파일을 넘기죠. 작품을 지구촌 어디에서 트느냐에 따라 자막이나 예고편 등 계속 뭔가를 새로 만들어야 하기에 각 소스가 필요하거든요. 사람으로 치면 심장과 같은 편집 프로젝트 파일을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연출자나 편집감독에게 요구하는 것은 큰 결례예요. 저는 아카이브 용도라면 5월 30일 마스터 파일과 같이 전달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쿠팡플레이 측은 제작사에 계약 파기까지 언급한 끝에 파일을 받아갔죠. 그때만 해도 저는 설마 했어요.”

-쿠팡플레이는 왜 이 감독에게 사전 논의도 없이 다른 감독을 섭외해 몰래 재편집을 했다고 생각하나요.

“(자본을 댄) 갑인 쿠팡플레이가 의견을 냈는데, 을도 아닌 병이 명분과 의도를 갑에게 설명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느낀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어요. 쿠팡 측이 제게 편집에 관한 의견을 내놓은 날은 4월 21일 1~4화에 대한 편집본 회의가 유일했으니까요.”

-이 감독은 8부작이 6부작으로 단순히 분량만 줄어든 게 아니라 서사, 촬영, 편집, 내러티브의 의도 등이 모두 크게 훼손됐다고 주장했어요. 어떻게 훼손된 건가요.

“쿠팡은 1·2화에 마스터 오리지널 버전의 4화 초반까지를 다 넣었어요. 그러니까 사건만 하이라이트처럼 다 가져다 붙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정서나 빌드업 같은 것을 다 뺀 거죠. 그런데 제가 진짜 충격을 받은 것은 3~6화였어요.”

-왜요.

“자기들이 신의 순서를 마음대로 바꿔놔 감정의 개연성도 없고 사건의 인과관계도 굉장히 분절돼 있어요. 그러니까 사건 중심으로만 붙이면서 주변 인물들의 서사는 다 뺐고, 그 빈 자리가 어색하니까 순서를 뒤죽박죽 바꿔놓은 거예요. 물리적인 시간도 다 파괴돼 있고요. 특히 지훈(김준한 분)과 현주(정은채 분), 지원(박예영 분)의 서사를 다 날려버리니까 긴장감이 사라지고 굉장히 평면적인 작품이 되고 말았어요. 그저 연민이 느껴지는 거짓말쟁이의 해프닝에 관한 드라마가 된 거죠.”

이 감독은 “당초 나는 <안나>를 거짓말쟁이 이야기만 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유미/안나(수지 분), 지훈, 현주, 지원까지 4명의 캐릭터는 한 사람 안에 있는 자아로서 오만함, 질투, 정의로움 등 인간의 여러 감정을 각각의 캐릭터로 분화시켜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주인공도 원톱 개념이 아니라 이 4명 모두”라고 했다. 이 감독은 또 “이 작품에는 기꺼이 조역이나 단역으로 출연해준 훌륭한 배우들이 계시는데, 6부작에서 그분들의 분량이 대폭 삭제돼 너무 죄송한 마음”이라고도 했다.

<안나> 이주영 감독 / 우철훈 선임기자

<안나> 이주영 감독 / 우철훈 선임기자

“나 혼자 명분 쌓고자 하는 싸움 아냐
상처받은 분들 사과받아야 할 일
요구사항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송할 것”

-6부작 <안나>는 흥행에 성공했어요. 쿠팡 측도 이 점을 강조했고요.

“과연 그들이 잘해서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힘은 분명히 있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되게 잘했어요. 저희 화면은 질감부터 달라요. 제가 광고를 찍었던 감독인데, 그렇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는 앞서 쿠팡플레이 측에 보낸 내용증명과 언론에 공개한 입장문에서 ▲‘안나’의 일방적인 편집에 대한 공개 사과 ▲감독인 자신을 비롯해 모든 스태프에 대한 사과 ▲현재의 6부작 <안나> 크레딧에 오른 자신의 이름 삭제 ▲8부작 마스터 파일 그대로의 <안나> 감독판 릴리즈 등을 요구했다. 쿠팡플레이는 이 가운데 “총 8부작의 <안나> 감독판을 8월 중 공개할 예정이며, 영등위 심의가 완료되는 즉시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8부작 <안나>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마치고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결정됐다. 공개가 임박했다는 얘기다.

-8부작 <안나>가 공개되면 6부작 <안나>와 비교하면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평가하는 목소리들이 나올 거예요. 그에 대한 부담은 없습니까.

“그 정도 각오는 돼 있어요. 그리고 쿠팡 측에서 8부작 <안나>를 틀고 유저 데이터를 분석해서 자신들이 더 효율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했다는 명분을 만들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어요. 만약 사실이라면 쿠팡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이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쿠팡 측에 요구한 사항 전부가 관철되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할 건가요.

“나 혼자 명분 쌓고자 하는 싸움이 아니에요. 스태프를 비롯해 상처받은 분들이 사과를 받아야 하는 일이고, 저로서도 그게 가장 우선순위예요. 제가 동의하지 않은 편집본에 제 이름이 올라 있는 것도 동의할 수 없고요. 이러한 요구사항을 쿠팡플레이 측이 끝내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연히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이주영 감독은 광고감독으로 활동하다 2012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해 영화 연출의 길에 들어섰다. 단편영화 <사랑은 근성>(2010)과 <나의 오른쪽, 당신의 왼쪽>(2012)에 이어 이병헌 주연의 장편영화 <싱글라이더>(2017)의 각본·연출을 맡았다. 광고로는 쌍용자동차 ‘티볼리’,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로레알 ‘랑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2’·‘갤럭시카메라S’ 등 수많은 굵직한 CF를 연출했다.

저작인격권 판례
<배니싱 트윈> 사건

<배니싱 트윈>을 제작한 영화사 Y사는 지난 2000년 영화 개봉 후 가정용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하면서 본래 94분이던 영화의 여러 장면을 자르고 여주인공의 정사 장면, 가정부의 정사 장면 등을 삽입, 본래 94분짜리 영화를 84분으로 다르게 편집해 제작·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출자인 감독의 승낙은 없었다. 감독이 Y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2002년 법원은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고 Y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빛은 내 가슴에> 사건

KBS영상사업단은 1996년 영화 <빛은 내 가슴에>(1995)를 KBS 2TV로 방영하면서 주인공이 십자가를 끌고 가는 장면과 점자공부를 위해 손가락을 촛불에 태우면서 극기훈련을 하는 장면, 여자 주인공이 점자를 배우는 주인공을 돕는 장면, 교실에서의 생물시간 수업 장면, 바닷가 언덕 위에서 남녀 주인공이 키스하는 장면 등을 삭제 편집해 방송하지 않았다. KBS영상사업단은 TV방송의 특성상 불가피한 삭제였다고 주장했지만 2001년 서울고등법원은 이 역시 저작자의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 등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확정).

6부작 <안나>가 더 재미있다면

<안나> ‘감독판’이 공개되면 전례 없는 ‘편집 배틀’이 벌어질 수 있다. 만약 감독판보다 쿠팡플레이의 6부작 <안나>가 더 호평을 받아도 저작인격권 침해가 인정될 수 있을까. 2008년 서울고등법원은 “우리 저작권법의 해석상으로는 저작물의 동일성을 해치는 변경이 저작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이상 그와 같은 변경이 실제로 저작자의 명예와 성망을 해한 것인지 여부를 묻지 않고 저작물의 완전성에 관한 저작자의 인격적 이익이 침해된 것으로 간주하므로 이는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결론내렸다(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확정). 이런 판례에 의한다면 <안나> ‘감독판’과 6부작 <안나> 중 어느 쪽이 대중의 호응을 얻든지에 관계없이 저작인격권 침해가 인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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