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안녕하신가요(4)

“노동자 짜내는 ‘21세기 평화시장’ 물류센터, 불안정 노동이 핵심”

조해람 기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가운데)이 17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상황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류호정 정의당 의원(가운데)이 17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상황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현대판 막장” “21세기 평화시장”…

‘새벽배송’으로 대표되는 이커머스 업체들의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자조하는 말이다. 이들이 처한 위험은 복합적이다. 코로나19를 타고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했지만, 성장의 과실은 노동자 보호보다는 ‘더 많은 확장’에 투입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안전사고와 화재, 장시간·고강도 노동, 고무줄 노동시간과 노동인권 침해 등에 시달리게 됐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위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불안정한 고용구조를 바로잡고, 장시간 노동과 시설 안전에 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귀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노동권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은 17일 오후 류호정·이은주 정의당 의원실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상황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커머스 산업은 온라인 쇼핑 환경 발전과 코로나19가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에 따라 물류센터도 단순한 보관 창고가 아니라 입고와 재고관리, 포장, 배송 등 물류 과정 전반을 수행하게 됐다. 또 당일배송·심야배송 등서비스가 확산되고 소비자들이 이에 익숙해지면서 업계 전반의 배송 속도가 빨라지게 됐다.

물류량이 늘고 업무 속도가 빨라지면서 ‘짜내기 노동’의 우려가 커졌다. 장 소장은 “물류센터에서 수행되는 상하차 등 업무는 극도로 열악한 노동환경과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유명하다”며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동화를 추구하지만, 설비 도입 가격이 높아서 현장에서는 여전히 작업자의 노동력을 극단적으로 추출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물류센터가 대형화·복잡화되면서 화재 위험도 늘었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물류센터 대형화·복잡화로)내부에 많은 물건이 적재돼 있을 뿐만 아니라,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설비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또 기본적으로 ‘물건을 쌓아두는 공간’이라는 관념 때문에 일반 건축물에 비해 값싸고 화재에 취약한 가연성 소재를 사용하고, 저온창고 등 커다란 냉장고의 밀폐형 구조는 더욱 위험하다”고 했다.

특히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고용구조가 위험을 키운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이라도 ‘쪼개기 계약’을 중심으로 한 계약직이 대부분이고, 간접고용의 경우 도급이나 인력업체를 통한 일용직이 많다.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산재신청조차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상황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17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의당 류호정 의원 주최로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상황과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17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의당 류호정 의원 주최로 열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장 소장은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일해 소득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노동강도를 최대화하지 않으면 다음 고용이나 재계약에 불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장시간·고강도 노동을)감내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 연구원은 “일하다 아프거나 다치는 경우 대부분 산재신청을 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처리한다”며 “고용상의 불안정 때문에 노동자가 스스로 산재신청을 체념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나서기도 어렵다. 관리자들의 눈 밖에 나면 다음 계약이나 출근을 담보하기도 쉽지 않다. 쿠팡에 휴게시간·에어컨 설치 등을 요구하던 중 계약해지를 당한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분회장은 “휴게시간과 냉난방 장치 관련 서명에 많은 이들이 서명해줬지만 어떤 분들은 이름을 적는 데 불안해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들어 노조 간부에 대한 노골적인 해고가 벌어지고 있다”며 “일부 센터에서 휴게시간이나 갑질 완화 등 성과가 있었지만, 노조가 없는 센터는 이전의 문제들이 똑같다고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용구조부터 노동시간·강도, 불법노동행위 감시 강화 등 복합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문은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파견법 적용을 폐지하고, 계약형태나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원사용자의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며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법령을 신설하고 노동시간 특례업종에서 물류산업 적용을 제외하고 작업거부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근로감독 강화와 더불어 노동자 개개인에게 임금 내역을 자세히 고지해야 한다”며 “생활물류서비스법에 휴식시간과 공간, 연속노동시간 규제 등을 구체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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