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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돈 몇푼 때문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잘 살려고 왔다는 사실을 시간이 증명해주겠지, 나라도 잘 살면 되겠지 하고 믿었습니다. 온몸에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는 친구들을, 결국 자식과 생이별하는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애써 외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어느덧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주여성의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리에겐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들었고, 100명이 넘는 이주여성의 뜻을 모았습니다.”(부티탄화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 회장)

충북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는 2020년 초 이주여성 당사자들이 직접 꾸린 비영리 민간단체다. 현재 옥천군 결혼이주여성 423명 중 120명이 협의회 회원이다. 이 단체 결성은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결혼이주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노동력 확보나 혼인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취급되기를 거부하고 ‘나’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주여성 권리선언이기도 했다.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부티탄화 회장, 박지현 부회장(왼쪽). 충북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는 2020년 초 이주여성 당사자들이 직접 꾸린 비영리 민간단체다. 현재 옥천군 결혼이주여성 423명 중 120명이 협의회 회원이다.김창길기자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부티탄화 회장, 박지현 부회장(왼쪽). 충북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는 2020년 초 이주여성 당사자들이 직접 꾸린 비영리 민간단체다. 현재 옥천군 결혼이주여성 423명 중 120명이 협의회 회원이다.김창길기자

결혼이주여성협의회는 지난해 11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책자를 펴냈다. 표지에는 <우리가 만든 우리 이야기>라는 제목이 한국어·베트남어·중국어·일어·영어·태국어·네팔어 등 7개 국어로 적혀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이 책을 준비하면서 각자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혐오의 문제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7월에는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가 세상에 나왔다. <우리가 만든 우리 이야기>에 올해 6·1 지방선거 당시 협의회가 이주여성 정책을 요구하면서 지역사회에서 펼친 활동, 협의회 결성 과정 등의 내용을 덧붙인 책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은 2권의 책이 나오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 당당해지고 단단해졌다.

주간경향은 지난 8월 8일 옥천공동체허브 ‘누구나’에서 부티탄화 회장(39)을 만나 협의회를 만든 이유, 이주여성의 삶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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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부티탄화 회장. 김창길기자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부티탄화 회장. 김창길기자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베트남 타이빈에서 태어났고, 2009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있던 베트남 친구들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국제결혼을 했다. 국적 취득 뒤 개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아버지가 지어주신 베트남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옥천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 살면서 어떤 차별을 경험했나.

“많은 사람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태어난 곳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피부색을 보며 내가 태어난 나라가 얼마나 가난한지, 집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그래서 얼마를 받고 시집을 왔는지, 지금도 베트남에 얼마를 송금하는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보곤 한다. 처음 봤는데도 친한 사이인 것처럼 반말을 한다. 한 농민 아저씨가 나를 ‘월남’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저도 여기서 사는 사람인데 월남이라고 부르지 말고 존중해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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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집에서 모국어 침묵을 강제당했다. 아이가 한국어를 잘 배워야 한다며 엄마의 언어를 배제하는 것이다. 엄마가 주 양육자임에도 엄마의 언어가 배제된 채 자란 아이들은 엄마와 깊은 소통을 나누지 못하고 결국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국제결혼가정에서 이주여성이 모국어 쓰는 걸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아이와 모국어로 대화한다고 아이의 한국어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옥천에서도 아이가 두가지 언어를 모두 잘하는 사례가 있다. 한 이주여성은 임신했을 때부터 아이와 모국어로 대화했다. 그 아이가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데 학교·학원에선 한국어, 집에서 엄마랑 이야기할 때는 엄마의 모국어를 쓴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 한국어 수준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협의회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운영조직 중 하나인) 다문화가족협의회라는 곳이 있다. 그 협의회 회장에게 임원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분이 당황하면서 ‘여자는 안 된다’고 했다. 남자(결혼이주여성 배우자)만 의견을 내고 결정할 권한이 있다면 다문화가족협의회가 아니라 ‘다문화남편협의회’ 아닌가. 당사자인 이주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구조가 너무 답답했다. 남편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우리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해 결혼이주여성협의회를 꾸리게 됐다. 지역사회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당사자 단체를 만든 건 처음인 걸로 안다. 아직 사무실 공간, 인건비, 활동비도 없고 열악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제 다문화 관련 행사에서 우리에게도 발언권이 생겼다.”

2019년 6월 11일 당시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은 다문화가족 대상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물학적·과학적으로 얘기한다면 잡종강세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 똑똑하고 예쁜 애들을 사회에서 잘못 지도하면 파리 폭동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이 커졌고, 2주 뒤인 6월 25일 시민사회단체들이 익산시청 앞에서 시장 발언에 항의했다.

김철효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결혼이주여성의 수행적 시민권: 익산시장 이주민 비하 발언 규탄 시위의 경험’)에 따르면, 행사를 기획한 단체들이 예상치도 못할 만큼 많은 수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기자회견은 분노와 항의를 표출하는 집회와 시위로 순식간에 확대됐다. 이를 두고 ‘결혼이주여성들이 집단적으로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사회에 등장한 최초의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고 들었다. 익산시장의 발언도 협의회를 꾸리게 된 계기 중 하나였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7년간 일한 경험이 있어 전국적으로 이주여성 친구들이 있다. 익산시장 발언 이후 모여 항의하자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무시당했다고 느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주여성들이 힘을 합치면 뭐든지 해볼 수 있다는 걸 느꼈고, 이 경험이 협의회 결성으로 이어졌다. 2020년 1월 영동세무서에 가서 단체 고유번호증을 받고 나니 너무 설레면서도 떨렸다. 드디어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박지현 부회장. 김창길기자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박지현 부회장. 김창길기자

옥천군 결혼이주여성들이 협의회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을 경계하는 시선도 있었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박지현 부회장(29)은 “‘너희들이 협의회를 만들 순 있는데 잘 될 수 있으려나.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베트남 하이퐁에서 태어난 박 부회장은 2012년 국제결혼을 통해 옥천군에 왔다.

-협의회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다문화가족지원법에 근거한 여성가족부 지정기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

“협의회는 일종의 친정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연락이 온다. 이곳만큼은 자기편이 돼줄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어에 능한 회원이 이주여성 지원, 일자리 관련 정보 등을 번역해 다른 회원에게 안내해주는 일도 한다. 그리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말 그대로 가족 중심이다. 어쩔 수 없이 이혼을 결심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혼하기 전 조사를 하는 과정이 있더라. 이 친구는 한국어를 거의 몰라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통역 지원을 부탁했다.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내가 직접 통역을 하러 갔다. 이혼하는 여성들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도와주질 않는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도 한다고 들었다.

“밤에 가정폭력을 당한 이주여성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한번은 한 이주여성이 도와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당시 마산에 내려가 있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원래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시키고 피해자가 쉼터에 가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이주여성을 배우자랑 같이 있도록 했다. 이 이주여성은 남편과 함께 있는 것이 두려워 자동차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이후 이 친구가 다시 폭력을 당한 뒤 112에 신고하고 내게도 연락을 했다. 현장에 가보니 형사들이 남편 말만 듣고 있었다. 남편 말이 다 맞는 게 아니고 이주여성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고 형사들에게 요청했다. 또 피해자가 긴급 쉼터에 갈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 피해자가 ‘언니가 안 왔으면 오늘도 자동차 안에서 잘 뻔했다’고 이야기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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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회가 봉사활동도 한다고 들었다. 봉사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

“결혼이주여성 가정이 농사를 많이 짓는다. 일손이 필요하면 협의회 회원들이 주말에 찾아가서 하루 4시간씩 도와준다. 지역에서 행사가 있으면 통역 지원 봉사활동도 한다. 우리가 도움만 받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시혜와 동정의 눈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기분 나쁘다.”

-결혼이주여성에게 일자리란 어떤 의미인가. 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이주여성의 자존감 측면에서도 중요할 것 같다.

“남편 벌이로만 가계를 꾸려가는 게 쉽지 않다. 또 결혼이주여성은 남편과 나이 차이가 큰 사례가 적지 않다. 남편이 먼저 퇴직하면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 아이들이 크면 학원비도 들어가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하면 남편한테 용돈을 받아 쓸 때보다 자존감도 높아진다. 문제는 이주여성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14명의 옥천군 이주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던 사회복지시설 도우미 사업이 민원이 제기됐다는 이유로 중단됐다. 해당 민원만 처리하면 되지 민원이 있다고 일자리를 아예 없애버리는 건 차별 아닌가. 공무원들이 개선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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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과 올해 7월 2권의 책이 잇달아 나왔다. 어떻게 준비하게 됐나.

“지난해 말 펴낸 <우리가 만든 우리 이야기>는 우리의 목소리가 정치권이 만드는 이주여성 정책에 반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 최근에 나온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포도밭출판사와 집필을 맡은 한인정 전 옥천신문 기자가 출간을 제안했다. 전국적으로 판매하면 후원금이 마련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출간 이후 다른 지역에서 전화가 많이 왔다. 협의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물어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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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회는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자회견, 정책 토론회 개최 등의 활동을 펼쳤다.

“선거 때 보니 제대로 된 이주여성 정책이 없었다. 옥천엔 다문화가정 지원 조례만 있고 이주민 지원 조례가 없다. 가족으로만 지원 대상을 정해두니 이혼한 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들은 보호받지 못한다.”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이주여성의 출산율이 6%나 되기 때문에 이들의 존재가 중요하다’, ‘국제결혼가정 아이들 덕분에 지역의 작은 학교들이 학생 수를 채우고 있으니 더욱 신경써야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들었다. 이주여성을 누군가의 부인, 며느리, 엄마로서만 인정하고 존재 자체로는 무시하는 한국사회 인식도 여전한 듯하다.

“우리는 애 낳는 기계도 아니고,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존재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각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고유한 권리가 있다. 출산, 가족에 얽히지 않더라도 이주여성 자체로 소중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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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어떤 계획이 있나.

“옥천·보은·영동을 묶어서 충북 남부권 이주여성협의회를 꾸리고 이후엔 전국 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들고 싶다. 우리가 겪는 문제가 ‘이 지역’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옥천군에 이주민 지원 조례 제정, 이주민 인권센터 설립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 지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어 교육을 받고 싶거나 일자리에서 월급을 못 받을 경우 찾을 곳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곳이 없다. 큰 도시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작은 지역에서 시작했지만 모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처럼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을 하면 좋겠다.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지만 가족이라는 범주를 넘어 이주민을 지원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결혼이주여성뿐 아니라 이주노동자, 이혼여성 등이 모두 포괄될 수 있도록 말이다. 잘 살려고 노력 중인데 왜 만날 밑에 있어야 하나. (한국사회가) 우리를 인정해주면 좋겠다.”


김지환 기자 baldki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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