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224건(1)

사과 위해 만든 국가폭력의 기록, 16년 동안 묵혀둔 대법원읽음

전현진 기자    조문희 기자

대법원 서랍 속 국가폭력의 기록 224건 추적

①사과 위해 만든 국가폭력 기록 224건, 16년 동안 묵혀둔 대법원

②법원은 어떻게 국가폭력에 가담했나…과거사 사건 분석

③재심 생각 못하고 살아온 수십 년…재심 청구해도 ‘기다리라’는 법원

간첩으로 몰렸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김장호씨. 지난 7월15일 서울 성북구 성가소비녀회에서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간첩으로 몰렸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김장호씨. 지난 7월15일 서울 성북구 성가소비녀회에서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방청석은 텅 비었다. 1983년 5월3일, 서울형사지방법원 법정에 선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그렇지.’ 어슬렁거리던 안기부 수사관과 눈이 마주쳤다. “말 잘 들으면 참작해줄 거야.” 수사관의 말에 재판 내내 자포자기한 터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길 했나…. 큰 일이야 있겠어”하고 되뇌였다. 이날은 선고 기일이었다.

재판장의 선고를 듣고 구치소로 돌아왔을 때 교도관들이 결과를 물었다. “극형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교도관이 설명해주더라구요. 사형이라고.” 지난 7월15일 김장호씨(81)를 만났다. 40년 전의 ‘사형 선고’를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국가보안법상 잠입·탈출, 금품수수, 목적수행 간첩, 반국가단체 찬양 등의 혐의였다. 가난 때문에 밀항해 일본으로 가서 지낸지 10년쯤 됐을 때 여행이라 생각하고 평양에 다녀온 것이 문제였다. 한국의 가족을 만나러 왔다가 김포공항에서 체포된 건 10년쯤 지난 1983년이었다.

죄가 된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평양에 갔다왔다고 먼저 말한 건 오히려 김장호씨였다. ‘큰 죄는 아니잖아. 겁 좀 주고 선전용으로 쓰다가 풀어주겠지’라고 생각했다. 그해 가을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겨울에 형이 확정됐다. 광주교도소로 이감된 그의 이빨은 몽땅 빠져버렸다.

1983년 5월3일 경향신문 보도. 김장호씨에 대해 사형이 선고됐다는 1심 판결 내용이 담겼다. 김장호씨는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83년 5월3일 경향신문 보도. 김장호씨에 대해 사형이 선고됐다는 1심 판결 내용이 담겼다. 김장호씨는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옥살이는 15년 넘게 이어졌다.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을 땐 마음 터놓을 가족도 친구도 없었다. 여권도 나오지 않아 일본에도 못갔다. 간첩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취업도 불가능해 두문불출했다.

2006년에는 특히 더 어렵고 힘들었다. 2002년 일본어 학원을 어렵게 차렸는데 친지에게 돈을 잘못 빌려줘 파산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바로 그 무렵이다. 2005년 대법원은 “오욕의 사법부 역사를 청산하겠다”며 지난 판결 6000여건을 검토했고, 2006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건 224건을 꼽았다. 경향신문은 정보공개 청구로 224건의 사건번호를 처음으로 입수했다. 김장호씨 사건은 224건 중 154번째였다.

자신의 사건을 대법원 판사들이 검토한 적이 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2008년 이용훈 대법원장은 과거 사법부 행태에 “국민께 사과한다”고 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죄인인 줄 알고 살았어요.”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이렇게 질문하자 그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듯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재심을 청구한 건 2015년이었다. 2년 뒤 개시된 재심에서 모든 혐의에 무죄가 선고됐다.

[국가폭력 224건①] 사과 위해 만든 국가폭력의 기록, 16년 동안 묵혀둔 대법원

(224건 목록은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이 만든 인터랙티브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khan.co.kr/kh_storytelling/2022/covered224/ )



1983년 체포 직후 안기부에서 촬영한 김장호씨의 사진. 안기부는 이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다.

1983년 체포 직후 안기부에서 촬영한 김장호씨의 사진. 안기부는 이 사진을 언론에 배포했다.

1970~1980년대에는 김장호씨 사건처럼 조작된 간첩 사건에 유죄를 선고한 판결이 많았다. 불법적인 수사는 법원의 재판을 거쳐 합법적인 형사절차로 인정받았다. 2005~2006년 대법원이 지난 판결의 잘못된 점들을 살펴보겠다며 폐기되지 않은 6000여건의 판결 중 224건을 추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중에는 ‘아람회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각종 시국·공안 사건과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 등 일본 관련 사건, 미법도·개야도 등 납북어부 관련 사건 등이 포함됐다. 경향신문은 지난 4월 224건의 사건번호를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했다. 224건의 대략적인 내용이 알려진 적은 있지만 사건번호 전체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24건’은 오점으로 남은 과거사 판결을 대법원이 스스로 검토해 정리한 목록으로 국가폭력의 다양한 면면들이 담겼다.

경향신문은 판결문을 전산으로 검색해볼 수 있는 법원도서관 특별열람실에서 지난 판결 내역들을 확인했다. 224건의 사건들은 다양한 심급의 총 598건의 판결(확인불가 1건 포함)로 구성됐다.

224건의 내용을 확인해 시국·공안, 일본 관련, 납북어부 등 3개 유형으로 분류했다. 시국·공안 사건이 102건. 일본 관련 사건은 61건이었다. 납북어부 관련 사건은 19건이었다. 사건의 내용이나 당사자를 확인할 수 없는 미확인 사건이 42건이었다.

대법원은 2007년 2월 224건의 유형에 대해 간략히 밝힌 바 있다. 당시 대법원에 따르면, 간첩사건(141건)이 절반을 넘겼고, 긴급조치 위반사건(26건), 반국가단체 구성사건(13건), 민주화운동(12건), 기타 사건(32건) 등 이었다.

이중 무기징역(34건)과 사형(21건), 징역 10~20년(30건)의 중형이 선고된 사건이 85건에 달했다. 원심의 무죄판결을 파기(1건)하거나, 무죄·면소·무죄취지 파기환송이나 선고유예 등을 판결(16건) 한 경우도 일부 있었다. 224건 중 재심이 개시돼 일부 또는 전체 당사자에 대해 선고가 이뤄진 건 7월26일 기준 120건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104건은 재심 청구를 하지 않았거나, 재심이 개시되지 않아 세부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다.

경향신문이 지난 4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받은 ‘대법원 과거사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재검토 자료’ 224건 목록. 번호마다 각 심급에서 다룬 사건의 사건번호들이 기재돼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4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받은 ‘대법원 과거사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재검토 자료’ 224건 목록. 번호마다 각 심급에서 다룬 사건의 사건번호들이 기재돼 있다.

과거사 ‘문제 판결’ 꼽아놓은 뒤 손 놓았던 대법원

과거사 사건 224건 목록은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직접 판결문을 읽으며 검토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시작은 2005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이었다. 이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을 강조했다. 취임식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사법부의 어두운 과거에 대해 “그냥 접어두고 지나갈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유신시절 등 암울한 시기의 사법부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당시 판결 경향에 대한 내부조사를 해서 적당한 시기에 발표를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내부조사’가 224건의 목록을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 대법원장도 “직접 과거사 판결문을 읽어보며” 1970~1980년대 사법부의 잘못된 처신을 보았다고 했다.

판결문을 직접 검토해 224건을 꼽은 건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정책심의관이었던 이용구 당시 판사(현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지난 7월14일 전화통화에서 224건 선별 기준에 대해 “판결문상 문제가 있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을 선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주장이 있거나, 양형의 적정성에 의문이 생기는 지가 주요 판단 기준이었다.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고됐더라도, 다른 심급 혹은 재판 과정의 문제점을 살펴야 할 만한 사건도 꼽았다. 이 변호사는 “재심을 목적으로 검토한 것이 아니고, 과거 재판에 문제가 있었는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모든 판결을 다 볼 수 없으니 그 중에서 일부를 꼽아 과거사 반성을 위한 토대로 삼으려는 사전 작업이었다는 얘기다.

판결문 검토 작업은 2006년 마무리됐지만 이후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2007년 2월 동아일보에 ‘대법, 시국 공안사건 판결중 224건 재심대상 선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재심 청구권한이 없는 (대)법원에서 재심 대상 판결을 선정했다는 이 보도는 당시에도 논란이 됐다.

국회 회의록을 보면, 당시 장윤기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어떤 종류의 사건이 얼마나 법원에서 처리돼야 될 것인가에 대한 조사에 불과했다”며 “법원이 직권으로 나서 과거에 한 판결에 대해 다시 재판할 수가 없다”고 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검토한 결과가 뭐냐”고 다시 묻자 장 처장은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것이 주장됐으며 어떤 형이 선고됐는가를 검토한 것이 전부”라고 했다.

“앞으로 어떤 종류의 사건들이 법원 내에서 문제가 될 것인가 또는 과거사에 대해서 현재 국민들의 요구가 일부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실체가 어떤 것일까, 이런 것을 예측하기 위해서 대법원장님께서 읽어 보셨다고 합니다”라는 해명을 더했다.

사법부의 과거사를 반성하겠다며 만든 224건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의미가 축소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9년 12월 나온 <역사 속의 사법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9년 12월 나온 <역사 속의 사법부>. 경향신문 자료사진

당시 진실화해위원회가 224건 목록을 요청했음에도 대법원은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있는 과거사 판결을 선별해놓고도 추가 조치는 없었고, 재심을 청구·권고할 수 있는 검찰과 진실화해위원회에 제공하지 않았다. 이런 요구는 당시에도 있었지만 ‘재판 공정성’을 이유로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연히 사건 당사자들도 이런 내용을 알 수 없었다.

후속 조치라 할 만 한 것은 2009년 12월 발간한 <역사 속의 사법부>에 224건에 포함됐던 과거사 판결 일부를 소개한 정도다. 사법부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일부 과거사 판결을 다뤘는데, 과거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의 입장에서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반성의 뜻을 내비친 건 2008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의 사법부 60주년 기념식 발언을 소개한 대목이 전부다. 당시 기념식에서 이 대법원장은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고,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하였다”며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을 드린데 대하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건의 당사자를 구체적으로 거론해 사과하지는 않았다.

대법원의 과거사 정리 작업은 사실상 이렇게 마무리됐다. 224건 목록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2008년 법원행정처는 224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비공개하면서 답변을 내놓았다. 대법원이 국회에 제공한 재조사 검토대상 사건 목록 자체를 “선정한 바 전혀 없다”고 했고, “분석대상을 좁히기 위한 편의적인 것”이며 “재심대상판결이나 재검토가 필요한 판결 목록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제대로 된 과거사 반성이 이뤄지지 않은 건 정치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 작업이 시작된 게 2005년이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경찰과 국정원, 군에서 과거사위원회가 만들어졌고,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과거사 청산 작업이 이뤄졌다.

고문과 불법구금 등 위법적 수사행태에 합법적인 외관을 만들어 준 과거 사법부의 판결은 늘 비판 대상이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사법부의 과거 청산을 공언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퇴장과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바라보면서 사법부는 과거사 반성에 대해 태도를 바꿨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2008년 사법부 60주년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용훈 대법원장이 2008년 사법부 60주년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법원 내부에서도 의견 충돌이 있었다. 사법행정을 관장하는 법원행정처가 과거사 판결을 살펴본 뒤 목록을 작성한 것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다. 법원의 과거사 반성은 재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판결의 문제를 인식하고 직접 재심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어렵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재판의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사법부가 처음부터 과거사 반성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는 비판도 있다. 여러 건의 과거사 판결 재심을 다룬 조용환 변호사는 당시 대법원의 224건 정리 작업에 대해 “판사 한 명이 외부 인사도 없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지난 판결을 검토했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사법부가 애초에 과거사 반성의 진정성이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대법원이 쇼를 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대법원 관계자들에게 224건이 만들어진 계기와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 대해 묻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은 얻지 못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했고, 장윤기 행정처장과 박병대 기조실장, 이광범 사법정책실장 등은 모두 “관여한 바 없어 답변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이용구 변호사에게 목록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과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채 마무리된 과정에 대한 생각에 대해 물었지만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지금의 대법원은 어떤 입장인지 확인하기 위해 224건 목록 작성과 그 기준 등에 대해 법원행정처에 질의했으나, “현재로서는 과거 어떤 기준에 따라 사건을 선정했는지 알기 어렵다. 당시 어느 실에서 해당 자료를 작성했는지 확인할 자료가 없다. 해당 목록의 생산이유를 현 시점에서 알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국가폭력의 민낯을 담은 224건은 세월과 함께 ‘있지만 없는 존재’가 됐다.

사법부보다 더 당당한 ‘피해자’

김장호씨는 억울하게 처벌 받은 과정과 그 이후의 힘겨운 삶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김장호씨는 억울하게 처벌 받은 과정과 그 이후의 힘겨운 삶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김장호씨는 재심에서 무죄 선고가 있던 날 재판부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과거 그를 교도소에 가둔 재판부도, 재심을 한 재판부도 사과하지 않았다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재판은 독립된 행위이니 대법원이 나서 사과할 일은 아니라 할 수 있지만 당사자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 지 알 수 없다.

“국가가 일개 개인에게 허리 숙여 사과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겠지만, 섭섭하긴 했죠.” 그는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의 재심에 종종 함께 한다. 어떤 판사들은 ‘선배 판사들의 잘못을 사과한다’고 허리 숙여 인사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고맙죠. 사과하기 어렵겠죠. 이해는 해요.” 하지만 판사에 따라 누군가는 사과 받고, 누군가는 사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허리가 아파 걸음이 불편했다. 40대에 간첩으로 몰려 60대에 출소한 그는 이제 80대가 되었다. “치료를 받으며 얼마나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지난 7월15일 김장호씨와는 서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인근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러 7번 출구로 나오니 진회색 차량이 서있었다. 자동차 창문이 내려갔고 김장호씨가 얼굴을 드러냈다. 흰색 칼라 셔츠를 단정하게 차려입고 검은 나이키 모자를 썼다. 하얀 수염이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차는 흠집 하나 없이 반짝였다.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다. 내부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그와 마주 앉았을 때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기타를 치기 위해 오른손 손톱만 세심하게 길러 다듬었다. 그는 가족도 친구도 없다고 했다. 15년을 감옥에서, 30년을 간첩 꼬리표를 단 채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이들은 그를 “멋쟁이”라고 했다. 지난 일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는다. 자신있게 마주하고 자신을 가꾸며 살아갔다.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다”고 말하는 그는 사법부의 그 누구보다 당당해보였다.

김장호씨는 평소 허리가 아파 잘 못 돌아 다닌다고 했다. 그래도 성가소비녀회에 자리한 인권의학연구소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모임에는 늘 참여하려고 한다. jjin23@kyunghyang.com

김장호씨는 평소 허리가 아파 잘 못 돌아 다닌다고 했다. 그래도 성가소비녀회에 자리한 인권의학연구소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모임에는 늘 참여하려고 한다.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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