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어떻게 국가폭력에 가담했나

전현진 기자    조문희 기자

대법원 서랍 속 국가폭력의 기록 224건 추적

①사과 위해 만든 국가폭력 기록 224건, 16년 동안 묵혀둔 대법원

②법원은 어떻게 국가폭력에 가담했나…과거사 사건 분석

③재심 생각 못하고 살아온 수십 년…재심 청구해도 ‘기다리라’는 법원

김양기씨가 여수 자택에서 그동안 모아놓은 사건 자료와 보도 내용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김양기씨가 여수 자택에서 그동안 모아놓은 사건 자료와 보도 내용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18세기 영국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은 “유죄의 증거는 신중하게 인정해야 한다”며 “죄 없는 한 사람이 고통받는 것보다 열 명의 죄인이 도망치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재판의 목표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과거 각종 시국·공안 사건과 간첩 조작 사건에 유죄 판결을 내린 사법부는 1930년대 소련의 대숙청을 이끈 니콜라이 예조프의 말을 더욱 따랐던 듯하다. 그는 “한 명의 스파이를 놓치는 것보다 수십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초를 겪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유태흥 전 대법원장이 1981년 4월 취임하면서 “법을 해석 적용함에 있어서도 항상 국가의 존망을 의식하면서 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김양기씨(72)는 출소 이후 심해진 당뇨병을 오래 앓았다. 지금은 하루에 약을 12알씩 먹는다. 간첩으로 처벌 받기까지 5번의 재판을 받았다. “법원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고 하소연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2005~2006년 대법원이 잘못된 사법부의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1970~1980년대 나온 6000여건의 과거사 판결문을 검토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건 224건을 선별한 사건번호 목록을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했다. 1970~1980년대 벌어진 이 사건 속 당사자들은 판결을 통해 인생이 뿌리부터 뒤흔들렸다. 김양기씨 사건은 224건 중 213번째다.

[국가폭력 224건②] 법원은 어떻게 국가폭력에 가담했나


■“정상적인 공문서라 할 수 없는” 유력 증거

김양기씨는 1975년 일본에 있는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김포공항 검문검색과 예비군 훈련 관련 사항 등을 탐지해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을 한 혐의 등으로 1986년 5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이 선고됐다. 항소심에서 이 결과는 그대로 유지됐다가 1987년 5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김포공항 검문검색과 경비 상황에 대한 국가기밀을 수집했다는 혐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였다. 김양기씨가 수집해 보고한 국가기밀이라는 게 “김포공항에 제일 먼저 도착하면 입국 신고를 한다” “소지품은 금속탐지 엑스레이 검사를 한다” “휴대품을 가지고 세관으로 가면 세관원이 검색한다”와 같은 누구에게나 공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 내용이 고도의 중요성을 가진 국가기밀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하급심에서는 그의 간첩죄를 구성하는 범죄사실 중 하나로 인정됐던 내용이다. 그러나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 형이 그대로 유지됐다. 1987년 12월 형이 확정됐다.

유죄 선고의 유력한 증거는 ‘영사증명서’였다. 김양기씨 사건 1심에서 일본국 대한민국대사관 1등 서기관 겸 영사가 작성한 영사증명서가 증거로 제출됐다. 김양기씨가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를 포섭한 공작지도원으로부터 지령을 받았다는 자백을 보강하는 증거다. 영사증명서에는 ‘공작지도원 김철주가 1944년생으로 1952년 12월 조총련 산하 기관의 선전부장을 지낸 반국가단체의 핵심인물’이라고 기재돼 있다.

증명서대로라면 1944년생인 김철주는 8살인 1952년에 반국가 단체의 핵심인물로 활동했다는 얘기가 된다. 2009년 김양기씨의 재심 사건을 맡은 광주고법 형사1부는 이 영사증명서를 두고 “정상적인 경로로 수집한 진실한 내용을 기재한 공문서라면 도저히 기재될 수 없는 경험칙에 반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영사증명서에는 1987년 2월4일 파기환송 전 2심의 선고 이후 ‘타자과장의 단순한 오기’라는 취지의 정정확인서가 붙었지만 재심 재판부는 “(정정확인서가) 증거로 채택된 바 없을 뿐 아니라, 작성 경위 역시 분명히 밝혀지지 않아 신빙성에 관한 합리적 의심이 배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양기씨는 파기환송 전 상고심에서 영사증명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는 자백이 진실할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이면 정황증거 내지 간접증거라도 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사증명서는 비단 김양기씨 사건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체 불명의 공작원에 포섭됐다는 증거로 영사증명서가 자주 사용됐다. 영사증명서는 진위 확인도 제대로 되지 않고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과거사 사건을 오래 살핀 한 관계자는 영사증명서와 법원의 관계를 자판기에 비유했다.

“영사증명서를 증거로 제출하면 법원은 자판기처럼 유죄 판결을 내준다”

영사증명서는 간첩사건의 만능열쇠라고도 불렸다.

김양기씨는 1999년 사면·복권됐지만,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은 그로부터 10년 더 지난 2009년이 돼서야 가능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김양기씨는 1999년 사면·복권됐지만,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은 그로부터 10년 더 지난 2009년이 돼서야 가능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불법감금·고문에 의한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는 법원

가장 강력한 증거는 자백이었다. 주로 따지게 되는 것은 임의성이다. 고문, 폭행, 협박, 속임수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제 뜻에 따라 한 자백인지를 가리는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임의성이 없는 것으로 ‘의심’만 돼도 그 자백은 증거로 쓸 수 없다. 1970~1980년대에는 이런 원칙이 없어서 고문이 횡행했을까. 수사기관은 유죄 판결을 받기 위해 고문을 했다.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없이 자백에 의존했다. 고문을 통한 자백이 법정에서 증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김양기씨는 재판에서 장기 구금과 고문으로 한 거짓자백은 임의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양기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원심이 적법하게 조사 채택한 증거 등을 살펴보면 피고인의 각 범죄사실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임의성이나 신빙성이 없는 진술이라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할 자료는 기록상 보이지 아니하”다고 했다.

자백의 임의성은 과거사 사건에서 매번 논란이 됐다. ‘송씨 일가 사건’은 이 자백의 임의성이 쟁점이 돼 3번의 상고심을 포함해 재판을 7차례나 치렀다. 북한 공작원에 포섭된 일가 친척들이 1957년부터 25년 동안 간첩 활동을 했다며 1982년에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었다.

상고심 판결은 “피고인들은 적게는 75일, 많게는 116일의 장기 불법구속을 당하였다고 할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또 “불법구속되고 있는 동안 인간으로서는 감내할 수 없는 신체상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피고인들의 주장과 이들이 안기부 수사관들의 협박과 회유를 받는 과정도 판결문에 기록됐다. 피고인들의 자백이 담긴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임의성이 없어 증거로 쓸 수 없으므로 무죄 취지의 판결을 해야한다며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후 안기부는 대책회의를 벌였다. 주심 대법관을 내사하거나,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통해 협조를 구하며 압박했다. 이런 재판 개입 속에서 대법원은 파기환송심 때 담당수사관 등을 증인으로 신청해 자백의 임의성을 입증하라고 조언한 뒤 사건 배당 등 대책을 내놨다. 2007년 나온 국정원과거사위원회 보고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에 담긴 내용이다.

실제 재판도 그렇게 흘러갔다. 23명의 관계자를 검사 측 증인으로 신문해 자백의 임의성을 인정하고 형량만 일부 감경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재상고심에서 또 다시 파기환송됐다. 상고심의 기속력을 따르지 않았다는 형식적인 이유 때문인데, 이때 ‘자백과 임의성이 없다고 의심하게 된 사유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이 적극적으로 인정되면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다’는 추가 법리를 제시한다. 1984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차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유죄가 선고됐고, 재재상고심에서 확정된다. 이 사건은 2009년 재심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됐다.

1983년 12월24일 경향신문에 보도된 ‘송씨 일가 사건’.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고등법원이 유죄로 맞섰다는 기사 제목에서 당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1983년 12월24일 경향신문에 보도된 ‘송씨 일가 사건’.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고등법원이 유죄로 맞섰다는 기사 제목에서 당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불법구금 상태에서의 자백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이를 뒤집기 위해 안기부와 대법원이 함께 논의한 끝에 유죄 논리를 사실상 창조해 선고한 것이다. 사법부 60주년을 기념해 2008년 대법원 산하 사법발전재단이 펴낸 <역사 속의 사법부>에 송씨 일가 사건이 짧게 거론된다. 대법원은 과거사 사건 재검토를 위해 224건을 분류한 뒤 추가 조치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 책을 통해 과거사 정리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안기부와 대법원의 논의는 <역사 속의 사법부>에 서술되지 않았다.

만약 첫 파기환송 때의 판결이 유지됐다면 불법구금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방식은 이후에 줄어들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았다. 불법체포와 고문에 의해 억지로 쓰여진 자백은 계속 증거로 활용됐고 납북된 뒤 귀환한 어부들이나 조국이 그리워 온 재일교포 유학생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데 쓰였다.

■“공무원의 범죄행위가 재심 사유”

과거사 사건들 상당수가 비슷한 형태를 띈다. 갑작스런 체포에 이어지는 혹독한 고문, 장기간 구금 동안 수사관이 원하는 대로 따라 하는 거짓 자백,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짓 증거들. 검사와 판사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다. 그래서 재심 개시 사유도 유사하다. 장경욱 변호사(법무법인 상록)는 “대부분의 재심 사유는 수사 상황에서 공무원들의 범죄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양기씨의 경우는, 군인인 광주보안대 소속 수사관들이 수사권 없이 민간인을 불법 연행한 뒤 감금하고 안기부 수사관의 명의를 빌려 수사했다. 형법 제124조(불법체포, 불법감금) 위반이다. 판결에 영향을 미친 이런 불법행위들이 재심 사유가 된다.

이런 행위는 형법이 제정된 1958년부터 불법이었다. 당시 판사는 왜 이런 사실은 따져 묻지 않았을까. 장경욱 변호사는 “사법체계를 당시의 시대 상황과 떨어져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간첩을 처벌해야 한다는 국가와 여론의 목소리에 억울한 이들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재판의 목표는 흐릿해진 것이다.

재심에선 자백과 영사증명서 등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리고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재심 사건에서 무죄 선고 이유 역시 늘 비슷하다. 재심 재판부는 증거를 기초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따져보는 원심의 사실인정에 대해 “도저히 수긍할 수 없고 그 위법성이 중대하다”고 했다. 애초에 재일공작원에게 포섭됐다는 사실을 증명할 객관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사건에 제출된 증거들은 공허하고 허무하다…무엇보다도 최후의 인권 수호기관인 법원은 최고법원에 이르기까지 5번에 걸친 재판을 거쳤음에도, 결과적으로 이러한 잘못을 지적하는 피고인과 그 변호인들의 주장에 관하여 눈과 귀를 막은 채 공허한 증거들이 그려낸 허상만 바라보았다.” 김양기씨 재심 재판부의 지적이다.

김양기씨는 아직도 체포된 2월이 되면 불안에 떤다. 자다가도 잠에서 깨고 몸이 떨린다. 자신을 고문하거나 재판에 넘기고 유죄 판결을 내린 가해자들은 훈장을 받고 승승장구해 국가유공자가 되는 등 혜택을 받지만,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생계와 당장의 병원비 걱정을 한다. “대법원이 결정했기 때문에 간첩이 된 것이 아닙니까. 1심이고 2심이고 재판을 잘못했으면 대법원에서 딱 판단을 해줬어야죠. 얼마나 많은 무지랭이 일반인들이 인생을 망치고 살았겠습니까.” 김양기씨는 “국가가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몸과 마음의 상처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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