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걸려도 일합니다···‘K-직장인’이니까

조해람 기자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대중교통·의료기관 등 마스크 착용 의무화 계도기간 첫날인 2020년 10월13일 오전 서울 구로구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대중교통·의료기관 등 마스크 착용 의무화 계도기간 첫날인 2020년 10월13일 오전 서울 구로구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어린이집 교사 A씨는 어린이집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는 바람에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격리해야 했지만 원장은 출근을 강요했다. A씨는 출근해 회의에 참석하고 업무도 했다. PCR 검사를 받은 다른 동료 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교사들을 가장 황당하게 한 건 원장의 다음 공지였다.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하는 동안은 무급휴가입니다.”

코로나19로 ‘아프면 쉴 권리’가 수면 위로 올랐지만 직장인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직장인 10명 가운데 3명은 격리 기간임에도 일을 했다. 유사증상이 있거나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라도 무조건 직장에 직접 출근해 일해야 한다는 ‘프리젠티즘’ 역시 만연했다. 특히 비정규직일수록 코로나19로 인한 임금 삭감·실직 등 불이익이 더 심각했다.

28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코로나19와 직장생활 변화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에 확진된 적 있는 직장인 353명 중 34.3%는 “코로나19에 확진돼도 출근하거나 집에서 일했다”고 답했다. 재택에서 일했다는 응답은 29.5%, 직장에 출근해 일했다는 응답은 4.8%였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6월10일부터 16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수행한 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를 프리드리히에버트 재단과 함께 심층 분석한 결과다.

코로나19 증상이 있어도 절반은 직장에 출근해야 했다. ‘감기·몸살 등 유사 증상’을 느낀 직장인 549명 중 49.9%는 직장에 출근해 일했고, 20.4%는 재택으로 일했다.

경향신문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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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업무를 해야 했던 이유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에서 다소 다르게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진에도 일한 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98.8%는 ‘업무적 이유(대신 맡을 사람이 없어서·복귀 후 업무 부담·업무성과 저하)’를 꼽았다. 비정규직 응답자는 65.8%로 훨씬 적었다. 대신 소득 감소나 인사상 불이익 등 ‘불이익 우려’ 때문에 업무를 계속했다는 응답이 비정규직에서 34.2%로 높았다. 정규직은 8.4%로 4분의 1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직장인들은 원치 않는 휴가 사용부터 임금삭감, 사직 등 심각한 권리침해를 당했다. 직장갑질119는 올해 1월부터 8월15일까지 접수된 ‘코로나19 관련 갑질’ 45건 가운데 18건(36.7%)이 ‘원하지 않는 연차사용과 무급휴가 강요’였다고 밝혔다. ‘코로나19 감염이나 백신접종 시 업무 지속 강요’가 12건(24.5%), ‘사직강요’가 7건(14.3%), ‘임금삭감’이 4건(8.2%) 순이었다.

이 같은 불이익은 비정규직에서 더 심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격리를 유급 연차휴가 외에 별도 유급휴가 처리했다’는 응답은 정규직에서는 45.0%였지만 비정규직에서는 15.3%에 그쳤다. 반면 ‘무급휴가·휴직처리했다’는 응답은 비정규직(37.4%)이 정규직(11.7%)보다 3배 높았다.

불평등끝장2022대선유권자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1월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부실한 상병수당 시범사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시민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불평등끝장2022대선유권자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1월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부실한 상병수당 시범사업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시민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소득과 고용 등에서도 비정규직의 타격이 더 컸다. 비정규직의 50.5%는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20년 1월과 비교해 소득이 줄었다’고 답했다. 정규직(13.7%)보다 4배가량 많았다. 2020년 1월 이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실직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비정규직에서 29.5%로 나타났다. 정규직은 6.0%에 그쳤다. 비정규직 48.0%가 ‘코로나19 이후 이직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 가운데 49.5%는 ‘이직 후 급여가 줄었다’고 응답했다. 직장갑질119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직이 더 나은 근로조건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향된 근로조건으로 어쩔 수 없이 이동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확진 이후 퇴사 권고·강요를 받았다’는 응답도 비정규직에서 12.3%로 정규직(3.2%)의 3배에 달했다.

직장갑질119 여수진 노무사는 “비정규직은 지난 2년간 질병과 실업이라는 복합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저하된 근로조건으로 내몰렸고 ‘빈곤 위험’까지 감수하고 있다”며 “비정규직과 5인 미만 사업장 등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라는 것이 이번 조사로 확인됐다. 사각지대 없는 지원정책이 시급하다”고 했다.

‘아프면 쉴 권리’ 실현을 위해 병가제도 보장 등 법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갑질119 박현서 변호사는 “아프면 쉰다는 방역 수칙이 지켜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병가제도를 노동자의 법적 권리로 보장하는 것”이라며 “쉬는 동안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상병수당의 도입도 시급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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