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인의 난세직필

론스타와 모피아가 쏘아올린 ‘똥바가지’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3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 사건 판정 브리핑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월 3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 사건 판정 브리핑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필자가 지난번 칼럼에서 예고했듯이 심판의 날이 왔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먹잇감으로 찍은 2002년 이후 20년, 론스타가 탈출 후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중재절차(ISDS)를 시작한 2012년 이후 10년 만인 지난 8월 31일 중재판정이 나왔다.

결과는 우리 정부의 패소. 손해배상액은 약 2억170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3000억원 정도 된다. 이에 지연이자를 더하고, 중재재판부에 낼 돈도 추가로 나간다. 변호인단 비용도 있다. 이리저리하면 4000억원이 훌쩍 넘을지도 모른다.

이 결과를 손에 든 윤석열 정부 앞에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 넓고 쉽지만 패망으로 가는 문이 있고, 어렵고 좁지만 정의로 가는 문이 있다. 어떤 문을 선택할지는 궁극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몫이다.

각각의 문은 어떤 모습일까? 넓은 문부터 보자. 이 문은 왜곡과 은폐 그리고 패망으로의 길을 여는 문이다. 이 길은 론스타 사태에서 모피아가 만들어놓은 난장판의 실상을 왜곡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이번 소송에서 (지연이자를 제외한) 당초 청구액이 46억8000만달러였는데, 이를 실제 배상액 2억1700만달러로 막았으니 선방했다’는 식의 주장이 그것이다. 이것은 고의적인 왜곡이다. 그럼 정확하고 정직하게 평가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론스타의 당초 청구액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부분이 많고 중재재판부에서 다룰 만한 다툼이 아닌 것도 많았다. 오죽했으면 2020년 11월에 마이클 톰슨 론스타 법무담당 부사장이 사적으로 ‘딜’하자고 보낸 문건에서 이런 것들 다 빼고 약간의 조세 분쟁과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매각 건만 돈을 받겠다고 했겠는가? 결국 서로 간에 진검승부를 벌인 핵심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넘기는 과정에서 금융위원회 공무원들이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론스타에 손해를 끼쳤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정부는 패소했다. 금융위 공무원들이 잘못했다는 것이다. 이 논점의 청구액은 4억3000만달러였는데 우리가 그 50%인 2억1700만달러를 물어주게 됐다.’

■한동훈 법무 “수사 시효 끝났다”

패망으로 가는 넓은 문의 두 번째 모습은 은폐다. 국가에 손해를 끼친 모피아(재정·금융 관료들을 마피아에 빗대 이르는 말)의 잘못을 최대한 쉴드(방어)치는 것이다. 이건 전혀 낯설지 않다. 지금까지 ISDS 대응 TF의 기본 입장이 은폐였기 때문이다. 관련 내용을 질의하거나 공개하라는 요구에 “소송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어렵다”는 말로 론스타의 주장은 물론이고 우리 정부가 제출한 자료까지 어둠 속에 숨겼다.

이번에는 다른가? 법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정부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이번 결정문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이건 진일보한 태도다. 그럼 은폐는 없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론스타와 모피아가 서로 어우러져 만들어낸 이 난장판의 실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겠다는 의지 표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인 지난 8월 29일 법사위에서 론스타의 불법 인수에 대해 다시 수사할 의향을 묻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질의에 대해 시효가 끝났다고 답변했다.

물론 한 장관을 위해 쉴드를 칠 수는 있다. 조 의원의 질문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3년에 있었던 인수 승인의 적법성을 수사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라서 시효가 끝났다고 대답한 것일 뿐이라고 봐줄 수 있다. 하지만 이 답변은 한 장관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마치 론스타와 관련된 다른 수사도 모두 시효가 끝난 것 같은 착각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

그럼 시효와 관련된 팩트는 무엇인가? 론스타 또는 모피아의 불법 (또는 불법의 의혹을 받는) 행위는 지난 20년 동안 차고 넘치고, 공소시효가 아직도 남아 있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번 중재판정 결과가 최종적으로 확정될 경우, 국가는 수천억원의 손해를 입게 된다. 왜? 법과 원칙에 따라 국가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금융위 공무원들이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의 재산상 손해가 걸린 중재절차를 담당한 ISDS 대응 TF를 장악한 모피아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어서 외환은행 인수는 국내법을 위반한 위법한 투자였고, 따라서 투자자-국가 중재절차에서 다룰 사안이 될 수 없다. 그러니 이 사안은 관할권 없음으로 각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스스로 포기했다. 만일 이 주장을 해서 받아들여졌다면 단 한푼도 배상할 필요가 없는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심지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중재법정에 나가 그 이유로 관할권 없음을 제기하겠다는 제안도 사실상 거부했다. 애석하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배임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고,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경우에는 업무상 배임(제356조)에 해당한다. 또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제3조 제1항 제1호는 “(업무상 배임 등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 50억원 이상이면 최고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최고 형량이 무기징역인 경우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2호에 따른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그러니까 대략 2008년 이후의 중대한 업무상 배임 행위는 아직 시효가 충분히 남아 있다.

■떵떵거리며 살아남은 모피아

넓은 문을 선택한 마지막 결과는 패망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은폐할 경우 일시적으로 국민을 속일 수 있고, 어쩌면 영원히 몇몇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0년 또는 20년이 지난 후 우리가 점점 론스타 사태의 진면목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진실은 결국 언젠가는 드러난다. 왜곡과 은폐에 앞장선 자들은 패망과 파국을 면치 못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2003년 모피아가 외환은행을 무자격 산업자본인 론스타에 팔기로 결정한 후, 그 실무 작업을 금융감독원에 떠넘겼다. 그 일을 맡게 된 금감원 실무자는 “우리가 똥바가지를 뒤집어쓰게 생겼다”고 말했다 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조금이라도 말이 되는 것처럼 억지로 포장하는 뒷감당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일을 한 금감원의 실무자들은 그 뒤 하나도 출세하지 못한 반면, 똥바가지를 떠넘겼던 모피아는 떵떵거리며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모피아가 저지른 또 다른 똥바가지를 물려받았다. 이것을 똥바가지라고 말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필요하다면 인적 청산도 하고, 보다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을 마련할 수도 있다. 아니면 똥바가지를 꽃다발로 미화하고 검은 천으로 덮고 그 세력에 기대 무언가를 해보려고 할 수도 있다. 어렵지만 좁은 문을 통해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 넓게 보이는 패망의 길을 걸을 것인가? 선택은 윤석열과 한동훈의 몫이다.


Today`s HOT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2024 파리 올림픽 D-100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