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착취 사건인 ‘엘 성착취 사건’ 피해 의심 사례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수가 현재까지 알려진 6명보다 많은 10여명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규모 수사팀을 꾸린 경찰은 가해자 엘의 공범이 최소 2명 이상이라고 보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n번방 사건’ 주범들에게 중형이 선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유사 사건이 재발하는 것은 종범인 성착취물 소지자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엘 성착취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뒤 이 사건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입었거나 미수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는 제보가 ‘프로젝트 리셋(ReSET)’에 이어졌다. 리셋은 2019년 출범한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로 성착취 사건에 연루된 모바일 메신저 단체방 등을 모니터링한다. 리셋 활동가 최서희(활동명)씨는 4일 “엘에 의한 피해로 의심된다고 제보한 피해자나 대리인이 5~6명 정도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아동·청소년 6명 이외에도 적지 않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리셋에 제보가 접수된 시점은 엘 성착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8월29일부터 9월2일까지다. 제보자들은 “수법이 똑같다”며 자신이 겪은 사건의 가해자도 엘이 아닌지 의심했다. n번방 사건을 파헤친 ‘추적단 불꽃’ 활동가 등을 사칭해 접근하는 수법 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n번방 그 후]③여전히 그들은 조언과 요령을 공유하며 성착취물을 사고판다
📌[n번방 그 후]②‘갓갓’은 10대 피해자들에게 “엄마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n번방 그 후]①성폭력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조건 사냥’
제보자들의 대리인을 자처한 A씨는 “미성년 피해자가 많다. (성착취물 제작) 미수라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리셋에 전했다. 리셋은 증거를 취합해 경찰에 신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는 피해자 신고이고, 일부는 피해자 지원단체에서 왔다. 몇 건을 인지했는지는 아직 밝히기 어렵다”며 “공범을 최소 2명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원은지 미디어플랫폼 얼룩소 에디터(추적단 불꽃 활동가 ‘단’)에 따르면 엘은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 ‘n번방’을 운영한 문형욱이 구속될 무렵인 2020년 중반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피해자들을 협박해 강제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게 하고, 이들의 신체에 표식을 남기기도 했다. 엘은 추적을 피하려고 여러 닉네임과 계정을 사용하며 복수의 인터넷 대화방을 운영했다.
성착취물은 최소 350개이고 사진이나 영상이 공유된 텔레그램 대화방은 3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참가자가 5000여명에 이르는 대화방도 있었다. 성착취물은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등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도 유통됐다. 엘은 ‘추적단 불꽃’ ‘최은아’ 등을 사칭해 “도와주겠다”며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플랫브리핑] n번방 방지법, ‘사전검열’이 아니라 ‘범죄영상 필터링’이다
리셋은 엘처럼 경찰이나 피해자 단체 등을 사칭해 피해자 지원 체계를 무력화하려는 악질적인 수법이 2019년부터 시작됐다고 했다.
리셋이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에서 활동하는 성착취 단체방들을 모니터링한 결과 이른바 ‘노예들’(성착취 피해자)을 만들어 성적 행위를 시키고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유포하는 범행이 다수 발견됐다. 리셋은 성착취물들을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신고했다.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때만 수사 자원을 집중한다는 것도 문제이다. 사법부가 성착취물 소지·시청자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n번방 사건 이후 2020년 6월 개정된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구입하거나 소지·시청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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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얀 기자 white@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