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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위험 ‘반지하’ 8631가구 추려놓고 부처·지자체는 “우리 일 아니다”

김원진 기자

영화 ‘기생충’ 화제 직후 국토부 핵심 관리가구 지정

행안부·지자체와 제대로 공유 안 돼 ‘제각각’ 일처리

수도권 814가구 침수 피해…“부처간 칸막이 낮춰야”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공급대책이 발표된 지난달 16일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반지하 주택 밀집 지역에서 주민들이 골목길을 걷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 을발표하고 반지하 등 재해 취약주택 거주자의 공공·민간 임대주택 이주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성동훈 기자

윤석열 정부의 첫 주택공급대책이 발표된 지난달 16일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반지하 주택 밀집 지역에서 주민들이 골목길을 걷고 있다. 정부는 이날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 을발표하고 반지하 등 재해 취약주택 거주자의 공공·민간 임대주택 이주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성동훈 기자

국토교통부가 영화 <기생충>이 화제가 된 2020년 7월 반지하 주택 8631호를 ‘최저주거미달·침수우려 반지하 가구’(핵심 관리가구)로 분류했지만, 이중 약 10%가 올해 침수 피해를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가 핵심 관리가구로 지정한 반지하 주택에 관한 정보와 대책이 행정안전부, 해당 지방자치단체 등과 제대로 공유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18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경기도·서울시·인천시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국토부는 2020년 7월 ‘최저주거미달·침수우려 반지하 가구’ 8631호를 핵심 관리가구로 분류했다. 전국 반지하 주택(32만7000가구)의 2.6%다. 지정된 핵심 관리가구는 전체의 95.2%인 8218호가 수도권에 집중됐다.

정부가 핵심 관리가구를 지정한지 2년이 지났지만 수도권에 위치한 814가구는 올해 침수 피해를 입었다. 전체 10% 수준이다. 기초 지자체별로 보면 서울 구로구의 경우 74가구 중 19가구가 침수됐다. 4가구 중 1가구 꼴이다. 서울 관악구(26가구)와 서초구(12가구)도 핵심 관리가구의 피해가 컸다. 경기도의 경우 광명시에서 핵심 관리가구로 분류된 반지하 주택 2267가구 중 603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 경기 부천시(43건), 시흥시(34건)에서도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경기도의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 피해를 막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관리가 필요한 반지하 주택을 분류했지만 행정자치부, 해당 지자체와는 정보를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부는 관리 대상 반지하 주택 거주자에게 주거 상향 지원을 할 뿐 침수피해 방지 등은 행안부와 지자체의 몫”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열악한 반지하 주택 거주자에게 공공임대주택으로의 이주 지원만 한다는 의미다.

반면 재난 방지 담당 부처인 행안부는 ‘최저주거미달·침수우려 반지하 가구’ 현황을 국토부에서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반지하 주택 관리 대상 명단을 국토부에서 전달받은 게 없다”며 “행안부는 개별 반지하 주택 지원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 지자체에선 ‘부처 간 칸막이’가 작동했다. 경기도는 주택정책과, 자연재난과, 건축디자인과 모두 핵심 관리가구로 분류된 반지하 주택을 대상으로 한 침수피해 방지 대책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다. 각 과 관계자는 모두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했다.

일부 지자체는 국토부 대책과는 별도로 반지하 주택 침수피해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 관악구는 지자체 재난관리기금을 활용해 반지하 주택에 순차적으로 역류방지기, 물막이판 등을 설치하고 있다.

국토부가 공공임대주택 이주 지원을 하고 있지만 진척이 더딘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 부처간·지자체 내 부처간 공조로 핵심 관리가구에 침수피해 대책을 함께 추진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8월까지 이주 지원이 확정된 반지하 주택 거주 가구는 서울 4012가구 중 640가구(16%), 경기 3982가구 중 68가구(1.7%)에 불과하다.

이는 서울시가 향후 추진하는 반지하 주택 거주자의 공공임대주택 이주에 정책적 고려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입주 시 면적이 작아져 가족이 함께 살기 어려운 점, 직장이나 자녀 학교와 멀리 떨어지는 점, 노년층의 경우 오래 살던 지역을 떠나기 쉽지 않은 점 등이 이주를 꺼리는 이유로 꼽힌다.

장 의원은 “행정 당국이 전체 반지하 주택 중 아주 일부만을 취약가구로 선정해 놓고도 각자 따로 움직이며 소극적으로 대응해 피해를 키웠다”며 “부처간 칸막이를 낮추고 탁상 행정에서 벗어나야 복잡하게 얽힌 반지하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서울 등 중부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일대 반지하 주택에서 주민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문재원 기자

지난달 초 서울 등 중부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일대 반지하 주택에서 주민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문재원 기자

국토부가 최저주거미달·침수우려 반지하 가구를 8631가구만 추린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는 같은 해 2월 업무보고에서 반지하 주택 32만7000가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추진하진 않았다. 당시 코로나19 확산 등을 이유로 들었다. 대신 국토부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반지하 주택에 살면서 주거급여를 받는 가구와 2009~2018년 침수피해를 겪은 반지하 주택만을 추려 핵심 관리가구에 포함시켰다.

반지하 주택은 대체로 면적이 넓어 대부분 최저주거 기준 면적을 충족한다. 최저주거 기준 면적은 3인 가구 36㎡(약 10.5평), 4인 가구 43㎡(약 13평)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반지하를 택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넓은 면적이 필요한 가족단위로 거주하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정책 우선 순위의 반지하 주택 가구를 선정하는데 최저주거기준과 주거급여 수급 여부를 함께 적용했던 것부터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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