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처음’ 등장하는 스토킹 피해자 지원 예산 ‘고작 7억원’

윤기은 기자    권정혁 기자
1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사 내 여자 화장실 앞에 지난 14일 살해당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추모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이준헌 기자

1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사 내 여자 화장실 앞에 지난 14일 살해당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피해자 추모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이준헌 기자

신당역 살인사건으로 스토킹 피해자 보호 정책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지만, 정부부처의 관련 예산은 턱없이 적은 규모로 편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도 정부 예산으로 사상 처음 편성됐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지만, 피해 규모나 사회적 관심도에 비해 책정된 액수가 미미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증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23년도 여가부 예산안에는 ‘스토킹 피해자의 일상회복 지원을 위한 특화 서비스 제공’ 명목으로 7억원이 새롭게 편성됐다. 이는 2023년도 여성가족부 전체 예산 1조5505억원의 0.046% 수준에 불과하다.

여가부는 사업계획서를 통해 신규 편성한 스토킹 피해자 지원 예산을 피해자에게 임대주택을 포함해 임시 주거지를 제공하고, 피해자 치료 및 일상 회복 지원을 위해 사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포괄적 지원책이 여가부 예산안에 별도로 명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2년도 예산안에서 여가부는 젠더폭력 법률상담 지원 대상을 기존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에서 스토킹 피해자로 확대해 관련 예산을 3억원 증원한 바 있지만,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주거지 제공이나 일상 회복 지원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동안 정부의 스토킹 피해 지원은 성범죄나 가정폭력 등 다른 젠더폭력 피해 지원과 비교해 “사각지대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적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2년도 여가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에는 361억7600만원,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는 361억7200만원,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지원에는 177억5800만원을 편성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물리적인 폭력이 덜 발생하는 스토킹 피해는 다른 젠더폭력에 비해 가려져 있었고, ‘가해자가 좋아하는데 피해자가 받아주지 않은 사건’이라는 식의 가해자 중심적인 관점으로 우리 사회가 바라봐왔다”며 “멍들거나 뼈가 부러지지 않아도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 분노 등을 포함한 폭력 개념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피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정부가 조사하도록 제도화하고, 피해자 보호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별도의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연간 예산 7억원으로는 전국의 스토킹 피해자를 종합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월1일부터 18일 오전 5시까지 112에 접수된 스토킹 피해 신고 건수는 2만180건에 달한다. 여가부가 운영하는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가 2021년 접수한 스토킹 상담은 2710건이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피해자 보호 쉼터만 만든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스토킹 사실을 알리는 시점부터 피해자가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갈 때까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새로 쉼터를 짓든, 빌리든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이고, 전국 단위임을 고려했을 때 7억원으로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 실태조사, 피해자 정신적 치료 지원, 법률 상담, 피해자 낙인을 막기 위한 교육과 홍보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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