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니까 여성 당직을 줄인다고요? 너무 어처구니 없는 대안이에요. 이런 식으로 여성들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걸 가장 우려했는데….”
서울교통공사 소속 여성 역무원 A씨는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대책으로) 여성 직원들의 당직 근무를 줄이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14일 서울지하철 신당역에서 숨진 피해자와 같은 업무를 한다는 A씨는 “위험하지 않은 일터를 만들어 달랬더니 어떻게 여성 당직을 줄이겠다는 식의 표피적 대책밖에 생각하지 못하냐”면서 “경영진은 그게 진짜 대안이 될 거로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이 지난 20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한 대책을 언급하면서 “여성 직원의 당직 근무를 줄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근무제도를 바꾸겠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보호’를 명목으로 여성 노동자들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식이라 오히려 직장 내 성차별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서울교통공사 내부게시판에도 “오히려 여성 노동자들을 회사에서 설 자리 잃게 만드는 행위 아니냐” “직원들 간 갈등 유발하는 뻔한 결과를 왜 예상 못 하나” “인원 부족 사태가 진짜 구조적 문제다” 등 공사를 비판하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김 사장의 발언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최악의 대안”이라고 비판했다. 배 대표는 “이번 사건은 젠더폭력에 기반한 사건이다. 이 구조적 문제를 고려하면서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저 여성들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는 대안은 대안이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배 대표는 이어 “위험하니까 여성 당직을 줄이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니까 밤에 여자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종류의 사고방식과 똑같은 것”이라면서 “안전한 환경은 근본적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데서 나오지 여성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도 “여성을 일부 업무에서 배제하면 채용이나 승진 과정에서 여성에게는 특정 업무를 맡길 수 없다는 선입견이 작용하고 다시 특정 성별의 직원을 배제하는 이유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 당직을 줄이면 그만큼 남성 직원들이 더 많이 당직을 서야 할 것인데, 본의 아니게 성별 간 갈등을 조장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는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폐쇄회로(CC)TV를 더 활용한다든지, 첨단 기술을 도입한다든지, 현존하는 기술을 활용해서도 안전한 일터를 만들도록 대안을 낼 수 있다”면서 “열심히 여성만 보호해주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는 이날 오전 성명을 내고 “여성의 직무 수행 능력을 제한해 특정 업무에서 제외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고, 오히려 불이익 조치에 해다한다”면서 “2인1조 순찰 근무가 가능하도록 추가 인력이 필요한데, 실질적 사용자인 서울시는 공사 뒤로 숨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지난 19일부터 오는 30일까지를 ‘신당역 사고 추모 및 추모행동 주간’으로 정하고 추모리본 패용, 추모제, 조합원 총회 등을 진행 중이다.